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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수련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역 장교 군법무관입니다. 지금 국방부에서 군법무관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오늘 성회를 빌어 직장에서 수련한 심득체험을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법을 얻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만성위염이 있어서 자주 위가 답답하고 아팠다. 심할 때는 아파서 일어서지 못할 정도였고 이틀간 누워 있어야 나아졌다. 나중에는 통증뿐만 아니라 한 두 숟가락만 먹어도 위가 더부룩해져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24살인 1990년에 패러글라이딩을 타려고 점프대에서 막 뛰어오르다가 부주의로 허공에서 맴돌며 떨어져 산기슭에 부딪쳤다. 두 발은 여러 군데가 골절되었고 왼쪽 인대가 끊어져 세 번이나 수술을 했는데 1년이 넘어서야 회복되었다. 표면상 뼈와 살은 치료되었지만 큰 후유증이 남아서 근육과 뼈는 수시로 쑤시고 아팠다.

여름에 선풍기를 틀지 못했고 에어컨을 켜면 머리가 아팠다. 냉방중인 곳에 들어가려면 두꺼운 잠바와 모자를 써야 했다. 겨울에는 손발이 차가워 마치 얼음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중의와 양의 10여 곳을 찾았지만 완쾌되지 않았다. 신체는 점점 나빠지고 간수치도 이상해졌다. 위장도 더욱 나빠져 차가운 음식이나 과일을 먹으면 설사를 했다. 30세도 되지 않은 내 신체는 노인의 신체처럼 점차 퇴화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그때 나는 외국에서 막 유학을 마치고 와서 출세길은 막이 오르고 있었고, 착하고 총명한 아내와 귀여운 딸이 있었다. 사업과 가정은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피로한 몸뚱이를 힘껏 끌고 다니는 느낌만 들었고 행복한 줄을 몰랐다. 나는 인생이 왜 이렇게 고생스러운가를 생각했다.

2000년 3월 나를 치료해 주는 한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전법륜’을 권했다. 구매하여 본 후 나는 보배를 얻은 것 같았고 정말로 진감했다. 사부님은 이렇게 얕은 언어로 우주의 진리를 매우 간단하고도 똑똑히 말씀해 주셨다. 나는 매우 흥분되어 연이어 몇 번이나 보았는데 밤늦도록 보아도 졸리지 않았다. 5월 1일, 나는 대만 신점시에 가서 9일 학습반에 참가하여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배웠다. 이튿날 저녁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온몸이 비할 바 없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온몸이 쑤시고 아픈 느낌이 사라졌다. 심지어 언제 좋아졌는지 느낌도 없었다. 이는 나를 또다시 감동시켰다. 나는 사부님께서 신체의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해 주신 것을 알았다. 나는 하늘을 보며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2. 직장에서 작은 수련

법을 얻은 후 이렇게 좋은 법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나는 사람에게 홍법하고 진상을 알리는 외에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근무지 농구장에서 연공했다. 이곳은 식당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다. 이렇게 되어 직장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법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군 검사관이었다. 한번은 도가 공법을 수련하는 피고를 만났다. 심문을 마친 후 나는 그에게 홍법을 하였다. 그를 구치소에 압송시키고 ‘전법륜’ 책을 가져다주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나는 이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작년에 그는 군사교도관의 동료를 통해 나에게 말을 전했다. 그는 대법을 소개해주어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고 복역 중에도 여전히 수련하고 있다고 했다.

수련 후 나는 심문을 할 때 참을성이 있게 되었고 태도가 상화롭고 성실해졌다. 한번은 장교 군관이 거짓으로 보고하고 출장비를 사용하고 기업체(廠商)의 비행기 표를 선물 받아 조사받게 되었다. 조사원은 그를 나에게 이송하여 심문하게 했다. 그는 이송을 시킨 직장이 그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원망했다. 나는 그의 진술을 귀 기울여 듣고 하나하나 기록하고는 똑똑히 조사하겠다고 대답했다. 후에 그는 압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숙사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유서에서 그는 내가 가장 정의로운 검찰이라고 말했다. 그는 응급실에 보내졌지만 혼수상태에 처했고 장기간 머리에 산소가 부족해서 중환자실에서 죽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10여 일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가 나를 마지막으로 보지 못해 가지 못한다면서 그를 만나달라고 나에게 청했다. 나는 병실에 들어가서 그에게 말했다. “파룬따파를 기억하고 리훙쯔 사부님을 기억하게.” 그는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이 기이한 연분은 비록 대가는 크지만 의미가 컸다.

10년 전 군대에서는 술 문화가 성행했다. 군인은 소속된 상관에 복종할 것이 요구된다. 회식을 할 때는 특히 그렇다. 술자리에서 주동적으로 상관에게 술을 권해야 하고 상관이 술을 권할 때 건배를 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고 상관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상관도 체면이 깎이는 느낌이다. 수련을 시작한 초기에 술을 마시는 것은 고험이었다. 수련 전에 나는 술을 마셨다. 사부님은 “불가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당신은 어느 부처가 술단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는가? 없다. 내가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했지만 속인 중의 수련에서 집착심을 제거한 후 장래에는 다시 먹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술은 끊어버린 후 다시 마시면 안 된다. 연공인(煉功人)의 몸에는 모두 공이 있는 것이 아닌가? 각종 형태의 공이라, 어떤 공능은 당신 신체의 표면에서 현현(顯現)하며 모두 순정(純淨)하다. 당신이 술을 마시기만 하면 ‘훅’ 단번에 전부 다 신체를 떠나므로 이 순간 당신의 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누구도 그런 냄새를 꺼린다.”(전법륜)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은 내가 수련할 수 있는가를 고험하고 진정으로 수련할 수 있는가를 본다고 생각했다. 세간에서 대법수련보다 더 엄숙하고 위대하고 수승한 일은 없다. 나는 다시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상관과 회식을 할 때마다 상관은 나에게 술을 권하며 억지로 마시라고 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여 술을 먹을 수 없다고 완곡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마시라고 요구했다. 주변 사람들도 상관을 업신여기고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며 술을 권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했다. 그들은 내가 동요하지 않자 어떤 사람은 원만히 수습하려고 대신 마셨고 주스나 차로 바꾸게 했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은 후 다시는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반년 후 나는 군사검찰관을 담당하면서 행정부의 주관을 겸했다. 나는 선타후아의 정신으로 행정물품을 우선 다른 부서에 주었다. 한번은 다른 부서에서 프린터가 고장 났다. 반드시 다음 년도에 구매한 후 보충할 수 있다. 나는 직원에게 “내 것을 가져다가 그들이 사용하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직원은 “그러면 당신은 사용할 것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 행정부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들은 사건을 처리하는데 수시로 급히 필요할 때가 있어요. 우리 사무실은 프린터가 있으니 나는 당신들과 같이 사용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나는 각종 기회를 이용하여 진상을 알렸다. 그 당시에는 홍콩에서 23조 불법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뤼광르TV 교육 후 전 동료에게 홍콩 기본법 23조 입법초안은 사실 중공사당이 파룬궁을 탄압하고 인권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해 주었다. 사람들은 중공사당의 본질을 똑똑히 말했다. 또한 나는 학술경연 기회를 이용하여 대학교수인 대법제자를 요청하여 강연하게 했다. 그는 강연 내용 중에 대법의 진상내용을 넣었다.

2003년, 나는 미국 워싱턴 군사물품 구매 법제관을 담당하고 법률사무 내용을 처리하는 것도 책임졌다. 그런데 직장에는 사람이 적어 늘 일부 다른 업무를 보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전법륜’ 제4강 ‘심성제고’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업무를 밀어본 적이 없었다.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연마(煉)하도록 가르쳐 준 결과, 전 공장의 정신 면모를 모두 이끌었다. 예전에는 편직물공장의 수건을 늘 자기 집으로 하나씩 가져갔는데 모든 직원들이 그랬다.”

내가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관은 내가 다른 상품구입팀을 지원하여 일을 처리하기를 희망했다. 나는 주저 없이 동의했다.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스스로 두 가지 직업을 겸하는가? 후에 상관은 나를 찾아 다른 기타 업무를 많이 보았다. 나는 모두 흔쾌히 응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대법에 모두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한번은 상관에게 션윈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일이 있어 보러 가지는 못하지만 나의 평소 일하는 태도와 인품에 감탄한다며 나를 꼭 지지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NTD에 표 한 장 값의 돈을 기부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일하면 이득이 있다. 바로 토요일 오후마다 (북경시간 일요일 5시, 6시, 7시) 중공대사관 앞에서 전세계 발정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차를 몰고 중공대사관에 가는 도중에 많은 나쁜 생각이 떠올랐다. ‘길을 잘못 가지는 않을까?’, ‘금방 미국에 와서 길도 익숙하지 않은데 가지말자.’ 마음속에는 두려운 마음도 올라왔다. ‘특무가 사진을 찍어 교란하지 않을까?’ 나는 이것이 교란임을 의식하고 가면서 발정념을 하여 순조롭게 도착했다. 그 후 워싱턴에 머무는 3년 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엄동설한과 무더위에도 토요일 오후마다 중공대사관 앞에 가서 연공하고 발정념했다.

미국에서 나의 신분은 군인이자 준 외교관이다. 이치를 따지자면 중공 항의 활동에 참가하면 좀 민감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태껏 이런 일을 회피한 적이 없다. 나는 대법제자가 하는 것은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대법제자의 사명이기 때문에 나는 두려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내가 이런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알게 된 상관은 신분에 주의하고, 이런 정치활동을 하지 말며, 조기에 소환되어 번거로움을 불러오지 말고 전도를 잃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대법이 어떻게 나의 병을 치료해 주었는지와 대법의 아름다움, 중공의 잔혹한 박해진상을 알렸고 우리는 인권을 지키고 사람을 구하며 좋은 일을 하는 것이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알렸다. 그는 진상을 알고 난후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후에 2006년 4월 20일 대기원시보 기자 왕원이가 백악관에서 후진타오를 부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쓴 기사를 상관이 보고 파룬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즉시 나를 찾아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나는 이 기회를 빌어 중공의 장기적출 사건을 상세히 알려 주었다.

2006년 임기가 되어 귀국할 때 직원들은 대부분의 귀국비행기표를 한 여행사에 근무하는 화교를 통하여 구매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매한 후 그녀는 나에게 몇 백 달러의 수표수수료를 한 장 붙여 주었다. 나는 ‘전법륜’ 중의 한 단락이 생각났다. “나는 연공인(煉功人)인데, 어찌 이런 것을 구할 수 있는가? 내가 이 부당한 재물을 얻음으로써 나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德(더)를 주어야 하는가?” 그리하여 나는 우편으로 수표를 부쳐 주었다. 편지에서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에 쩐싼런을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아무 이유 없이 이 돈을 가지면 안 되고 만약 비행기표가 원래 그렇게 비싸면 다시 새로운 영수증을 나에게 주어 청산하면 된다고 했다. 만약 당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이윤이라면 나는 마땅히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내가 귀국한 후, 미국 동료들은 내가 있을 때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모순이 있으면 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는데 내가 떠난 후부터 여러 사람은 서로 다투고 자주 국내에 보고하여 평온한 나날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그곳에 있을 때 특별히 무슨 일을 한 것이 없고 다만 대법 쩐싼런 법리에 따라 일을 처리하였고 여러 사람을 위해 복무하여 사람들은 모두 나를 믿고 많은 문제는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지난번에 나는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다(佛光普照, 禮義圓明)고 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신체가 발산하는 에너지는 일체 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전법륜) 이것은 마땅히 수련인의 에너지장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관료계에서 공명에 대한 집착은 나에게 커다란 고험이었다. 내가 미국대사관에 파견되는 그해 말, 우리 반은 진급했다. 내가 미국 근무 3년을 선택한 것은 진급의 기회를 포기한 것과 같았다. 귀국한 후 군교학교의 대부분의 동창은 이미 진급을 했다. 나는 속으로 언짢은 생각이 들었고 그들과 말을 해도 이상하고 느낌이 좀 불편했다. 다른 사람도 자주 나에게 “당신은 그렇게 우수한데 사실 당신이 출국하지 않았으면 진급은 바로 당신의 것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것은 자주 나의 마음을 고험했다. 나는 이것이 공명에 대한 집착심이라는 것을 알았고 약간의 질투심도 일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사부님의 한 단락의 법이 생각났다. “그러나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이치상 스승의 법신이 책임지고 있기에 다른 사람이 당신의 것을 가져가려 해도 가져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한다. 때로는 당신이 보기에 그 물건이 당신의 것이며 남도 당신에게 이 물건은 당신의 것이라고 알려주지만, 사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은 바로 당신의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최후에 이르러서는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 당신이 이 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내려놓지 못한다면 바로 집착심으로서, 곧 이런 방법으로 당신에게 이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바로 이 문제다.”(전법륜) 1년 동안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법으로 대조하고 점차 공명에 대한 집착심을 담담히 보게 되었다. 이때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발생했다. 내가 승진을 한 것이다.

지금은 나 자신의 사무실이 있다. 나는 이곳을 홍법하고 진상을 알리는 장소로 배치했다. 벽에는 서예가 수련생이 쓴 ‘쩐싼런’ 세 글자가 있고, 진선인 국제 미술전에 전시한 ‘순정한 부름’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 그림에는 비옷을 입은 채 맨해튼에서 진상을 알리는 여자아이가 있는데 눈빛이 아주 자비롭고 감동적이어서 사무실에 오는 사람의 눈길을 끈다. 다른 책상에는 진상자료, 션윈광고, 중딩방 사건의 전단지 등이 있다. 나의 사무실에 온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의 진상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다. 요즘 법률교육을 선전하는 기회를 통하여 대법의 쩐싼런의 법리를 수업의 내용에 넣는다. 몇 개 수업을 마치면 3, 4명이 대법의 진상을 알 수 있다.

3. 결어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방금 이야기했고, 이전에도 나는 이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대법제자는 각종 업종, 각종 사회 계층에 다 있으며 각종 업종에서 모두 중생을 구도하고 있고 법을 실증하고 있으며 대법제자의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당신들이 각종 업종 중에서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체를 잘한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세간의 각종 업종은 모두 당신에게 제공한 수련장소이다.”(신경문-2007년 뉴욕법회 설법)

군인이라는 직업은 인사이동이 빈번하고 안정적이지 못하다. 법을 얻기 전 나는 이것을 자주 고생으로 생각했다. 군대에서 24년을 근무하면서 이미 19개 직장에서 근무했다. 그중 법을 얻은 11년 동안 7곳의 직장을 옮겼다. 그러나 나는 전혀 고생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행각이라고 생각한다. 도처에 다니면서 인연이 있는 중생을 구하고 대법의 복음과 진상을 알려 준다. 일하면서 수련을 하고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 비할 바 없이 자랑스럽다고 느낀다.

이상은 자신이 군법무관을 하면서 수련한 심득체험이다. 부적절한 부분은 수련생이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2년 타이완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발언고)

문장발표: 2012년 11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해외법회 발언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2/2657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