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윈난(雲南) 쿤밍(昆明)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노제자이고 10몇 년간 무엇이 수련인지 전혀 몰랐으며 오늘에서야 비로소 수련의 엄숙성과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특별함을 감수했다. 이 기간 무수한 시련과 인생의 어려움을 지나왔다. 모두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로 뛰쳐나왔다.
수련 중에서 나는 늘 외출해야 했는데 길이 가까우면 걷고 먼 길은 차를 탄다. 시골에 가면 수련생 집에 투숙하기에 시간은 나로 놓고 말하면 매우 진귀하다. 법 공부와 연공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3시 30분에 일어나 연공하고(정공을 더 많이 하기 위해) 발정념 후 법 공부한다. 매일 한 강의를 다 읽은 후에 일 처리를 한다. 어떤 때 길이 멀어 법 공부 시간이 되지 않을 때 차에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는다. 요 몇 년간 이미 규칙으로 형성되어 문을 나서면 핸드폰 문자메시지(MMS)를 보내고 음성전화를 걸며 발정념하고 다시 설법을 듣는다. 총적으로 자신이 세 가지 일에 있으며 비록 바쁘고 고생스러우나 일하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 나는 수련하는 이 길에서 절대로 조그마한 태만이 있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 본문 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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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번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는 일념에 가로막혔다. 대법교류회는 우리의 신성한 회의이며 마음대로 대할 수 없으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감히 쓰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제9회 법회 원고를 요구할 때 이번은 마땅히 사부님께 답안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대법제자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인식했다.
1. 신사신법(信師信法), 박해 반대
나는 노제자이고 10몇 년간 무엇이 수련인지 전혀 몰랐으며 오늘에서야 비로소 수련의 엄숙성과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특별함을 감수했다. 이 기간 무수한 시련과 인생의 어려움을 지나왔다. 모두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로 뛰쳐나왔다. 사부님에 대한 감사를 제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오직 정진과 착실한 수련(實修)으로 사은에 보답하려 한다!
수련에 들어설 때 수련이 무엇인지 몰랐고 다만 연마만 하며 단체 법 공부 때 늘 매우 억지스럽게 했다. “하루에 휴식도 쉽지 않는데 오히려 단체로 법 공부하다니. 자신이 혼자서 집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사실 전혀 같지 않은데 애석하게도 당시 전혀 깨닫지 못했다. 원하지 않더라도 체면 때문에 법 공부를 견지했다. 그러나 그런 법 공부는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는데 온 머리가 사람 마음이고 집착이므로 전혀 법이 들어가지 않았다. 돌아와서 오늘 했던 법 공부를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조금의 인상도 없었다. 하지만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존께선 바로 이런 하사(下士)인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줄곧 내 손을 이끌어 수련의 길을 걷게 하셨다. 그때 비록 수련할 줄 몰랐으나 이 법이 좋은 것을 알았는데 인류도덕이 승화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으며 병을 치료하고 신체를 건강히 해서 이 나라에 희망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1999년 ‘7.20’ 박해가 시작되어 나는 멍해졌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연마하지 못하게 하니 정부가 반드시 착각한 것이다. 베이징에 가서 대법의 공정함을 말하기 위해 천안문에 가려 했는데 신방국을 알아보기도 전에 납치되고 말았다. 그 시각에 나는 이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의 진실한 본 모습임을 알았으며 이 사당은 또 한 차례 나에게 사악한 모습을 드러냈다.
2003년에 법 공부와 연공에 정진하지 못해 나는 사악에 틈을 타게 되어 납치돼 3년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3년간 나는 속인의 법률을 이용해 박해를 반대했으며 두 차례 기율검사기관에 편지를 써서 노동교양소의 어둠을 반영했다. 경찰은 죄수를 종용해 파룬궁 수련생을 욕하고 때리며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고 잠도 자게 못하는 등 체벌을 가했다고 했으며 게다가 몇 명의 악독한 경찰을 고발했다.
기율검사기관에서 사람을 보내 나와 면담해도 나는 조그마한 두려운 마음이 없었으며 그들이 온갖 수단으로 교활하게 변명하고 발뺌해도 나는 속인의 법률과 자신의 노력으로 그들을 대했다. “우리 파룬궁 수련생은 진선인(眞善忍)을 행할 수 있으며 경찰은 죄수를 종용해 폭력을 가하는데 누가 좋고 누가 나쁜지는 일목요연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좋은 사람도 전향하려면 어디로 전향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으로 전향합니까?” 사당이, 사부님이 재물을 수탈한다고 유언비어를 날조하면 나는 그들이 식당에서 채소를 파는 것과 비유한다. “이곳에서는 오이 하나에 10위안, 낡은 노동교양복과 낡은 이불도 7백 위안 등이지만 우리 사부님께선 이 법을 전하시고 세인을 구도하시기 위해 책 한 권에 12위안으로 팔았는데(당시 서점에 다른 책들은 모두 20위안 이상) 그들에게 과연 누가 재물을 수탈했습니까?” 그들은 얼굴이 온통 어두운 표정이었으며 경찰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이 여기에서 고생해도 당신 사부님은 외국에서 호화주택을 사서 복을 누리고 있다.” 나는 말했다. “텔레비전과 방송에서의 말은 전부 유언비어이고 비방이며 천안문 분신자살도 실수투성이 거짓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유언비어를 믿고 자신의 머리로 사고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은 주관 없이 남을 따라 떠들썩합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며 살아있는 송장과 같습니다.”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금방 갔을 때, 매일 아침 집합을 할 때 대대장은 입을 열기만 하면 파룬궁을 욕했다. 나는 몇 차례 그를 찾아 진상을 알렸으며 점차 그는 그렇게 파룬궁을 미워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도 역시 피해자이다. 마침내 어느 날 아침 파룬궁을 칭찬했는데 그 시각 나는 그를 위해 정말 기뻤다.
나는 그 3년을 대법에 대한 결연한 믿음을 갖고 사존의 고도(苦度)에 감격하며 확고하게 지나왔다.
2. 사부님께선 바로 내 신변에 계신다
사부님께선 우리에게 대륙 자료점을 곳곳에서 꽃이 피듯 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수련생을 도와 컴퓨터를 설치해 주었는데 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과정 역시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이다. 나는 나이 많은 수련생을 가르쳤는데 그는 기억력이 떨어지고 마우스를 만져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배치라는 것을 알았는데, 나에게 이 과정에서 매우 많은 집착심(쟁투심, 건방진 마음, 남을 깔보는 마음, 허영심 등)을 제거, 수련해 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가르칠 때 최대한 인내심을 유지해 그들에게 천천히 배우게 했다. 한 번에 조금씩 가르치느라 나는 여러 번 뛰어다녀야 했는데 어떤 때는 몇 집을 다니느라 밥도 제때에 먹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힘닿는 대로 아낌없이 수련생들을 가르치며, 어떤 땐 오늘 막 배웠지만 이튿날 또 전화가 와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컴퓨터 혹은 프린터가 고장났다는 의미)
어느 한번 노수련생 집에서 기계를 수리하고, 오후 12시가 되어 발정념하고 집에 돌아오니 하늘은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며 곧 폭우가 쏟아지려 했다. 나는 한편으로 자전거를 몰고 집으로 달렸으며 한편으로는 사부님께 먼저 비가 오지 말고 집에 간 다음 오게 해달라고 했다. 그 20분 동안 하늘은 우레가 울고 번개가 칠뿐 비는 오지 않았다. 내가 집에 도착해 문에 들어서자 하늘은 구멍이 난 듯 큰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존, 감사합니다!”
한번 수련생을 도와 컴퓨터 고장을 처리하고 집에 돌아올 때 역시 깊은 밤 12시가 넘었다. 대문은 이미 잠겨 있어 나는 대문을 열라고 몇 번 소리쳤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 문을 열어주세요.’라고 말했다.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나는 조용히 들어가 문을 잘 잠그고 동시에 사부님께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다만 제자가 정념이 족하고 어떠한 때에도 모두 법에 있으면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도와주심을 깨달았다.
3. 두려운 마음을 수련하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다
2008년 올림픽 전, 한 차례 수련생과 함께 스티커를 붙일 때 나는 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됐다. 당시 다른 수련생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수련생의 보자기를 이용했는데 나와 경찰은 모두 보자기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경찰의 주의력을 나에게 집중되게 했는데 나는 머리를 흔들며 수련생에게 빨리 가라고 했다.
수련생이 간 후 나는 구치소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사람의 일체 마음을 다 내려놓으니 두렵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을 연루시키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서 사람을 구할 것만 생각했으며 동시에 사악에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이 무엇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고 그들 배후의 흑수와 난귀를 해체하는 발정념을 했다. 나는 사부님께 “저는 여기에 있을 수 없으며 여기에서 진상을 알린 후 저는 나갈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곳에서 15일간 나는 정각 발정념을 견지하고 연공했으며, 다른 이에게 삼퇴를 권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삼퇴 했다. 그 기간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면담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파룬궁은 고덕(高德) 대법이며 우주대법입니다. 사람을 선하게 가르치며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며 인류도덕이 올라갈 수 있어 이 사회가 희망이 있게 되는데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 나쁩니까? 전 세계가 좋게 변하면 당신들 경찰도 그렇게 수고하지 않아도 되는데 좋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박해에 참여할 수 없으며 진상을 알린 것은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말했다. “공산당이 당신들에게 먹고 마시게 하며 월급을 주는데 당신들은 그래도 당을 반대하고 있다.” 나는 말했다. “당신들이 출근하지 않고 악행(파룬궁 박해)을 하지 않아도 그가 당신에게 돈을 주고 일을 줍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도 당을 반대함이 없으며 단지 당신들에게 그것이 무슨 당인지 알렸을 뿐입니다. 공산당은 전혀 실체가 없는데 그것이 무엇으로 당신을 살립니까? 전 중국 인민이 그를 먹여 살립니다.”
그들은 또 나를 속이며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한 사람이 병이 있었는데 당신들이 그를 둘러놓고 당신들 그 ‘전법륜’의 염으로 발정념했다. 이후에 이 할아버지는 죽고 당신들은 모두 달아났다.” 나는 이 일이 있는 것을 믿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당신들이 사람을 해쳐서 죽였고 대법제자와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악을 행하지 않았다면 모두 그를 도와 병업관을 지나게 하기에 이 수련생은 죽을 수 없습니다. 그 자신의 염이 바르면 우리 사부님께서 그를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 말을 듣고 매우 화가 났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근무하는 곳이 국보인지 안전국인지 물으니, 그들은 안전국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특무 직업이란 것이 즉시 생각나서 사부님께서 특무도 구도해야 한다는 법이 생각났다. 나는 사부님의 크나큰 마음과 자비에 감동되어 자신이 자비롭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그들도 사부님의 자비에 용해되어 단번에 흉악한 몰골이 사라졌다.
한참 침묵이 흘러 그들은 또다시 나를 찾아오겠다고 말해서, 나는 환영한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당신들은 바로 진상을 들으러 오라.’라고 말했다. 그들이 간 후 다시는 오지 않았으며 15일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 한 차례 마난은 나에게 오직 마난에서 정념을 유지하고 진정으로 생사를 놓으면 마난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했다!
나온 후 자신이 무엇 때문에 납치될 수 있었는지 생각했다. 두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비록 세 가지 일도 했으나 염이 바르지 못하고 심장이 두근거려 구세력이 틈을 탄 것이었다. 당신이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으면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다. 수련생들은 올림픽 전에 납치됐는데 이렇게 빨리 나올 수 있기 쉽지 않다고 말했는데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구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두려운 마음을 수련한 후 몇 년 중에서 나는 컴퓨터 기술을 하든 진상자료를 하든 오직 내가 필요하기만 하면 가서 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임을 알기에 무조건 복종했다. 그러므로 줄곧 매우 순조로웠다.
4.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다
나는 쟁투심이 매우 강하고 성격이 조급하며 급하기만 하면 큰 소리로 외친다. 다른 사람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뼛속에서 다른 사람을 깔보았는데 마치 지도자가 현실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중과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장기적으로 줄곧 자신의 수련이 괜찮다고 여겼는데 명리를 담담히 보고 질투심도 없으며 쟁투심도 수련해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검사하니 자신의 수련이 너무 부족함을 알았다.
예를 들면 노년 수련생과 함께 하는 날에 비록 그를 도와 청소하고 옷도 빨았으나(이 수련생은 80여 세이며 눈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법 공부하라면 보이지 않는다고 하거나 내가 법을 읽어주어도 그는 듣다가 잠이 드는 등등이었다. 이치대로 말하면 이런 상황이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수련생이 어떤 방면에서 자신을 수련인으로 대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때 나는 그에게 마땅히 대법의 요구대로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지만 그가 하지 못할 때 나는 사람 마음이 일어나 그를 깔보고 그가 착실히 수련하지 않아 누락이 있어 비로소 구세력이 틀어쥐고 박해할 수 있다고 여겼다. 시간이 길어지니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 그에 대해서 참지도 못했는데 자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까지 쓰니 온 얼굴에 땀이 흐를 정도로 부끄럽다. 그를 도와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해쳤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셨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불복하고 겉으로만 복종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보지 않을 때는 여전히 자신의 뜻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1]
사부님의 설법에 대조하면 자신이 어떻게 수련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안으로 찾으니 무슨 마음으로 자신이 수련생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었는가? 깊이 파보니 사(私)를 위하고 나를 위하는 더러운 마음이었다. 갑자기 놀라서 깨어났다. ‘이렇게 오래 수련했는데도 모순에 봉착하면 선념이 없는데 무엇을 수련했는가? 일체 사람 마음은 모두 사에 연원되며 이 사심을 버리지 않으면 영원히 수련해 내지 못한다.’ 나는 자신의 수련과정을 깊이 되새겨 본 후 수련의 엄숙성을 인식했으며 형식에 흐르고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착실히 수련하는 그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착실히 수련(實修)’에 대한 개념을 아직 이성적으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일사 일념을 모두 법에 두어야 하며 말과 행동이 모두 수련인 같아야만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부를 수 있다.
심성이 제고되니 고험이 또 왔다. 나는 사부님께서 또 고심하게 배치하신 것임을 알았다. 이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 제자를 위해 사존께서 얼마나 많은 마음을 쓰셨을까. 수련생이 소개해서 한 노수련생을 알았는데 이 수련생은 법 공부하고 자료를 만들며 내가 그를 가르치기를 희망했다. 나는 매우 기쁘게 대답했다. 하지만 안전문제를 주의하는데 오해가 있어서 내 말투가 선하지 못했다. 거기에 목청까지 높아 그 수련생은 견디기 어려워 화가 난 김에 나를 내쫓았다. 게다가 듣기 싫은 말을 했다. 실제로 말한다면 이렇게 나이가 들어도 나는 여태껏 이렇게 각박한 말은 듣지 못했는데 정말 경우가 없었다.
나는 고험이 온 것을 알았다. 어떤 듣기 싫은 말일지라도 나는 모두 심성을 지켜 원망과 증오도 없어야 하며 논쟁은 더욱 없어야 한다. 이때 사존의 법이 내 뇌리에 들어왔다. “강변(強辯)에 부딪쳐도 다투지 말지니 안으로 찾는 것만이 수련이리라 해석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거니 마음 비워 집착 없으면 명견(明見)이 나온다네”[2] 그가 나를 내쫒았기에 나도 화를 내고 일을 내버리며 관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는 가지 않고 차분히 내가 할 일을 했다. 그가 컴퓨터에 시스템 두 개를 설치하려 해서 나는 줄곧 묵묵히 그를 도와 설치하고 그에게 조작을 가르쳤다. 비록 하루 밥을 먹지 않았으나 나도 배고프지 않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어 나를 제고해 주셨다. 동시에 나는 줄곧 자신이 어느 방면이 잘하지 못했는지 찾아 어조가 선하지 못하다고 그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트집을 잡았다. 그런 그를 보고 내 마음은 견디기 어려웠다. 이후에 그도 인식해서 우리는 모두 안으로 찾아 간격을 없앴다. 총적으로 나는 그래도 그에게 매우 감사했다.
이후에 우리는 모두 깨달았다. 자료점을 꾸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고 누락이 있으면 구세력은 약점을 틀어쥐고 교란하는데 만약 제때에 바로잡지 못하면 더욱 큰 마난이 있을 수 있으므로 염이 꼭 발라야 한다. 수련생 사이에 꼭 서로 잘 협조해야 하며 인위적으로 간격을 조작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생각지 못할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5. 오직 법 공부를 잘해야만 수련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다
수련 중에서 나는 늘 외출해야 했는데 길이 가까우면 걷고 먼 길은 차를 탄다. 시골에 가면 수련생 집에 투숙하기에 시간은 나로 놓고 말하면 매우 진귀하다. 법 공부와 연공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3시 30분에 일어나 연공하고(정공을 더 많이 하기 위해) 발정념 후 법 공부한다. 매일 한 강의를 다 읽은 후에 일 처리를 한다. 어떤 때 길이 멀어 법 공부 시간이 되지 않을 때 차에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는다. 요 몇 년간 이미 규칙으로 형성되어 문을 나서면 핸드폰 문자메시지(MMS)를 보내고 음성전화를 걸며 발정념하고 다시 설법을 듣는다. 총적으로 자신이 세 가지 일에 있으며 비록 바쁘고 고생스러우나 일하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 나는 수련하는 이 길에서 절대로 조그마한 태만이 있어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어떤 때 법 공부할 때 사상이 전일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기타 것을 생각하고 전념하지 못하는 현상도 있는 이것은 사상업의 교란이다. 어떤 때는 마음이 조용하지 못하는데 일하려는 마음이 조성한 것이다. 나는 앞으로 수련 중에서 제때에 자신을 바로잡고 그것을 수련하겠다!
수련생과 교류 중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 현상을 발견했는데 어떤 수련생, 특히 노년 수련생은 제5장 공법을 할 때 동작이 정확하지 않고 어떤 때는 차이가 너무 크다. 전혀 사부님께서 당시 전한 제5장 공법이 아니다. 1999년 7.20 이후 대륙 대법제자들이 단체 법 공부와 연공하는 환경을 잃어 모두 각자가 집에서 한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요령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여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린지 얼떨떨하게 연마한다. 그 결과 지금 고치려면 매우 어려운데 나는 여기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다. 수련생들이 단체 법 공부할 때 서로 시연해 서로 동작을 바로잡아주기를 바라며 그런 노년 수련생을 도와주길 바란다. 타당하지 못한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 주시기를 바란다.
여기에서도 밍후이왕 편집부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린다. 수고하십니다. 허스.
주: [1]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청성’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홍음3-논쟁하지 말라’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8일
문장분류: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8/2650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