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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영화를 널리 알리는 과정에서의 수련체험

글/ 미국 미주리주 대법제자

[밍후이왕] 올해 DC 법회에서 NTD(新唐人)에서 일하는 수련생이 우리에게 ‘자유중국: 믿음의 용기(Free China: The Courage to Believe)’라는 깊이 진상을 알린 다큐멘터리 영화를 방영해 주었다. 동시에 NTD 수련생은 또한 전 세계 수련생과 협조해 공동으로 ‘자유중국’을 널리 알렸다. 이것은 매우 감동적인 영화로 서방국가의 사유방식으로 찍어 서방사회를 겨냥해 진상을 알리는데 적합하다. 금년 필라델피아 ‘언론자유 영화제’에서 비영리기구 ‘미국동견(美國洞見)’ 창시자 마가렛 추(Margaret Chew)는 “나는 이 영화가 이 세계를 개변할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데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절대 간단한 진상영화가 아니다. 겨우 53분으로 한 사람에게 진상을 깊이 알려준다. 이 영화가 중생을 구하는 작용은 분명히 강력하게 나타날 것이다.

나는, NTD에서 사회 경험이 있고 정계 인사에게 진상을 알리는 경험이 풍부한 수련생을 참여시켜 이 영화를 널리 알리기를 희망했다. 미국에 온 지 4년밖에 되지 않고 학교를 갓 졸업해 이제 막 미국사회에 발을 디디려는 나에게는 이런 홍보 작업은 난이도가 크다. 나는 자신이 이 항목에 협조를 잘할 능력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또 생각하니 이것 역시 자신을 단련하는 좋은 기회이고 또한 역시 성숙으로 향하는 기회다. 그리하여 나는 지방 협조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그녀는 나를 크게 지지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힘껏 노력해 보려고 생각했다.

수련 중 나는 자주 한 가지 잘못을 범하는데 일을 너무 간단히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이상화된 희망만으로는 안 되고 정말로 곤란에 부딪히면 어떻게 금강부동의 정념으로 이를 대해야 하는지가 협조 과정에서 끊임없이 극복해야 할 문제가 됐다.

나는 NTD 항목의 총책임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고 자신이 지방에 ‘자유중국’을 널리 알리는 협조인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전달했다. 곧 회답을 받을 것으로 믿었지만 며칠간 응답이 없었고 이후에 홍보훈련 정보도 받지 못했다. 나중에 현지 책임자가 나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이 적어 요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그렇다면 그만두자!’ 그러나 현지 협조인은 나를 격려하며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자신에 대한 의심은 또한 일종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사실 나의 능력은 사부님이 주신 것이다.’ 나는 너무나 자신의 능력에 집착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는가에 집착한다. 심지어 자신이 없다. 이 모두 자신에 대한 집착심의 표현이다. 이런 것은 다 수련의 길에서 극복해야 할 것이다.

처음으로 온라인 훈련에 참가했다. NTD 수련생은 비공개로 시사회를 열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나는 대략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됐다. 나는 또 현지에서 흥미를 갖고 참여할 몇 사람을 찾았다. 이렇게 우리의 홍보팀은 성립됐다. 이때 이미 8월 중순이 됐다. NTD는 각 지역에서 8월에 두 차례 시사회를 개최했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즉시 행동해야 했다.

첫 번째 일은 장소를 찾아야 했다. 장소 수준이 너무 낮아도 안 되고 동시에 예산 문제를 고려해야 했다. 이것도 여태껏 해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다른 한 수련생이 도와주었다. 우리는 도서관을 찾아보고 호텔 회의실을 찾아보고 영화관도 찾아보았다. 그러나 각 방면의 조건이 그다지 이상적이지 못했다. 최후에 우리는 지역사회를 찾았으며 우리는 거기에서 ‘자유중국’ 시사회를 개최했다. 장소문제를 해결한 후 비로소 발견했는데 원래 이것은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적합한 관중을 초청하는 문제였다. 나는 원래 학교에서 진상을 알려준 사람과 션윈을 본 적이 있는 교수들에게 초청 이메일을 보냈다. 장소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도 초청하고 동시에 현지 수련생에게 그들 친척이나 친구를 초청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회답을 기다리는 과정도 수련의 과정이다. 나는 매일 몇 번이나 이메일을 점검하고 어느 사람이 영화를 보는데 등록한 것을 보았다. 이 과정에서 불안, 조바심은 모두 다 나타난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션윈 매표시의 경험이 떠오르게 했다.

밖에서 온종일 고생스럽게 션윈을 알리는 일을 한 후 표가 단번에 많이 나가기를 원했다. 매표 상황에서 불안한 심리는 자신이 지불한데에 대한 집착이고 배포한 매 한 장의 전단지가 모두 표 한 장씩을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했다. 나는 등록을 기다는 과정 중에서도 마찬가지 느낌이 들었다. 초청을 한번 할 때마다 한 사람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줄곧 마지막 날까지 다만 몇몇 사람만 등록했을 뿐이었다. 비록 나는 자신에게 부정적이지 말고 정념을 유지하자고 했지만 성공에 집착하니 줄곧 압력 중에 있었다. 시사회 상영 당일에 등록한 사람들도 오지 않았으며 다만 소수 사람만 왔다. 일체는 긴장 중에서 재빨리 지나갔다. 나는 좀 실망했다. 하지만 주변 수련생은 계속 나를 격려해 주었다. 필경 이것은 우리가 처음 시사회를 했던 것이고 좋든 좋지 않든 우리는 다 일부 경험을 쌓았다.

NTD 책임자는 우리에게 관중은 정계 인사와 재계 인사를 목표로 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이런 사람과 접촉한 경험이 없다. 어떤 사람을 초청해야 할까? 나는 이 도시의 시장이 생각났다. 이전에 표창장을 받을 때 그와 몇 번 접촉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그녀와 약속시간을 잡아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그녀는 사무실에 없었다. 나는 더듬더듬하며 말을 남겼다. 느낌은 좋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회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후 점심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나와의 만남에 동의했다.

매번 자신이 수련에서 일부 장애를 돌파할 때, 자신을 초월해 일부 노력을 할 때 흔히 일은 일부 개변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면 금년 5월에 대법 홍전 20주년 때, 이 시장에게 표창을 요청하는 자료를 보낸 적이 있다. 긴 시간이 지나도 회답을 받지 못해 그녀가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고 느꼈다. 나는 쉽게 속인의 태도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나는 자신이 전화를 잘하지 못하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고 나의 모든 것을 모두 내건다는 심태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찬가지로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 날 시장비서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시장은 우리에게 표창을 주겠다고 했다.

이번에 시장과 만난 후 그녀는 ‘자유중국’을 보러 오겠다고 동의했다. 시사회 방영 날 다른 사람들은 거의 다 왔지만 시장은 줄곧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시사회 이전에 다른 활동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또 생각했다. ‘그녀는 잊지 않았을까, 과연 올까.’ 그러나 동시에 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이런 부정적 생각을 하지 말고 정념을 유지하자고 경고했다. 이때 한 관객이 다른 사람이 더 있냐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막 대답하려 할 때 시장이 문 앞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나는 관객에게 우리는 그녀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는 과정 중에 시장은 매우 몰입했다.

한 번은 주(州) 의원 한 분을 초청하려 했다. 나는 그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매번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나는 현재 이런 정계 인사에게 전화를 걸 때 매우 긴장된다. 때로는 심장이 매우 빨리 뛴다. 이때 나는 발정념을 하고 자신을 한번 조절한다.

일부 긴장감을 갖고 나는 그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 영화 시사회에 초청했다. 그는 그날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시간이 있을 때 단독적으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동의했다. 마지막에 그는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우리 집에 와서 보여주세요.” 이렇게 나는 또 그의 집에 가서 그에게 ‘자유중국’을 보여 주었다. 영화 상영 후 몇 분간 그는 말이 없었다. 비록 그는 내가 기대한 만큼 그렇게 대대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지지를 받는데 집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명으로 말하면 우리의 노력은 가치가 있다.

그 한동안 나는 줄곧 여러 사람과 단체를 요청해 ‘자유중국’ 시사회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줄곧 평탄치 않았고 도처에서 난관에 부딪쳤다. 한동안 이 항목에 참여하는 수련생도 적고 때로 매우 고립적이고 도움도 없었다. 많은 사람은 장기적출이라는 사람을 경악케 하는 악행을 들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런 나는 고립적인 느낌을 지탱하기 어려웠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우는 것을 애써 자제했다. 좀 냉정해진 후 법공부를 하려 생각했다. 법이야말로 나에게 힘을 준다. 나는 생각대로 책 한 권을 펼쳤는데 ‘각지역 설법6’이었다. 비록 이전에 이미 여러 번 보았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던 법리가 떠오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사부님께서는 “개개 대법제자로 말한다면, 일체의 일을 법으로써 가늠한다면 더욱 바르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는 수련생 모두 문제가 쉽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법이 있으므로 곧 법의 요구에 따라 하기 때문이다. 기타 생명이 어떠한 상태이든지 간에 천변만화하는 각종 복잡한 표현도 모두 대법제자를 교란할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셨다.[1]

나는 이 구절을 몇 번이나 읽었다. 당시 사부님께서 내 앞에서 의미심장하게 설법을 해주시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와 격려의 느낌을 받았다. 나는 아직도 다른 사람의 태도를 의식하고 또한 세간의 형세를 의식하고 속인 중의 소위 지지를 얻기를 기대했다. 내가 시사회를 여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속인에게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또 속인에 의지해 속인이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 만약 세인이 다 일어나 반대하면 이 미혹은 깨지게 되며 또한 대법제자의 수련 환경이 사라진다. 그런 걱정, 고려심, 긴장감, 압력은 결국은 다 결과에 대한 집착이다.

“깨달음(悟)이 먼저이고 보는 것은 나중이라, 마음을 닦고 업을 제거하여 본성이 나와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2] 또 깊이 파헤치면 이런 결과에 대한 집착심은 또한 신사신법에 대한 부족한 표현이다. 동시에 나는 또 자신의 일부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자신이 협조해 일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잠재의식상 자신의 압력을 남에게 나누어 주려는 경향이 있다. 이 항목에 참가하는 매 사람이 다 이 부분의 압력을 감당하게 하려 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참여하지 못할 때 나는 번뇌를 느끼고 또한 그렇게 많은 압력을 혼자 감당하기 싫어한다. 내가 이런 집착심을 찾은 후 그때부터 압력이 많이 감소한 듯했다.

지난 주 금요일 우리는 인근의 한 도시 시청사에서 ‘진선인 미술전’을 개최했다. 주말에 시청사에서 다른 활동이 개최돼 많은 사람이 참관하러 왔다. 많은 사람은 미술전시회에 감동을 받았고 박해를 질책하고 파룬궁 수련생에게 관심과 동정을 표현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세인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세인이 선념이 없는 것도 아니며, 우리 자신의 마음이 우리가 보는 것을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미술전에서 나는 두 부부를 보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내가 법을 얻은 경험을 알려 주었더니 그들은 매우 감동했다.

이번 주 화요일, 미국 대통령 변론회를 개최하는 저녁에 우리는 이 시청사에서 ‘자유중국’ 시사회를 개최했다. 두 부부는 감동해 그들 교회에서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이 낯이 익었지만 어디에서 만났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그들이 지난 주에 만난 부부라는 것이 생각났다. 이것은 아마 나에 대한 사부님의 격려인 것 같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그 어떤 구하는 마음을 지니지 않을 때 일의 결과는 흔히 예상 밖이 된다.

“관건은 당신들이 집착심이나 속인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그것을 제거해 버릴 것인가 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당신들이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없앨 수 있다면, 그럼 당신이 해낸 일은 그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며 가장 신성한 것이다.”[3]

이상은 내가 ‘자유중국’ 항목을 널리 알리는 중에서의 일부 수련체험이다. 부족한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2012년 미국중부법회 원고)

[1]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각지역설법6-2004년 부활절 뉴욕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왜 볼 수 없는가?’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뉴질랜드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2년 10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0/27/2645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