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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으로 문제를 보지 말아야 한다 – 수련생이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반성”을 다시 말함

글/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명혜주간 제559호’(한글 명혜주간 제323호)에 발표된 ‘사람의 마음으로 문제를 보지 말아야 한다.’라는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내 남편도 병업(病業) 박해의 형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몇 년 동안 남편(수련생)과 함께 걸어왔던 수련 중의 사소한 것들을 회상하면 아직도 가슴이 많이 아프다. 이로 인해 메울 수 없는 한을 남겼다.

나와 남편은 ‘7.20’ 전에 법을 얻은 노 수련생이다. 남편은 비록 개인수련시기에 법을 얻고 수련하여 법에 대해 깊게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표면의 일부 난관도 용감하게 돌파했으며 사람 마음도 많이 내려놓았었다.

개인 수련시기를 지나 정법 수련시기에 들어선 후 그는 모든 대법제자와 같이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법을 실증했다. 그는 업무관계로 많은 집들을 찾아다녀야 했는데 일하는 과정 중에서 접촉하게 되는 모든 세인에게 진상을 되도록 올바르게 알렸다. 그러는 과정에서 진상을 똑똑히 모르는 세인이 은밀하게 고발을 하여 사악한 ‘610’요원과 직장의 상사로부터 여러 차례 압력을 받았으나 남편은 그런 압력에도 불구하고 직접 대면했다. 남편이 일하는 중에 ‘진선인(眞善忍)’의 법리에 따라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며 열심히 일하면서 탐하지 않고 취하지 않아 고객으로부터는 호평을, 직장 상사로부터는 칭찬을 받았다. 수련을 시작한 이후 해마다 직장의 선진적인 모범 노동자로 평가를 받았으며 여러 번 성급 ‘모범노동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남편은 속인의 눈으로 볼 때 대법을 확고하게 믿는 사람이었으며 많은 수련생들로부터도 마음속으로 ‘그는 진정한 수련자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매일 5, 6시간씩 걸어 다니면서 일하는 고생스러운 업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서도 일 년을 하루같이 법 공부와 연공을 거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정법수련시기 수련은 처음 수련 길에 들어서서 수련하는 그런 표면의 약속이 아니다. 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정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남편은 성격이 급한 사람인데 대법을 수련한 후 변화가 아주 컸다. 그러나 몇 년 전, 법을 실증하면서 수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었는데, 즉 3가지 일을 잘하며 사람을 얼마나 구하는 것만으로 정진하는가 정진하지 않는가를 가늠하는 척도로 여겼을 뿐 수련의 근본적인 관건이 심성을 닦는 것이라는 것을 소홀히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난관 속에서 그가 없애려는 많은 사람 마음을 내려놓기 아주 어려웠다. 박해 초기, 우리 부부는 저녁에 나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는데 장소의 선택이나 방법 등의 의견이 같지 않을 때 남편은 화를 내기 일쑤며 심지어 발길로 문을 걷어차 파손시키기도 했다. 또 아이가 수련을 느슨히 하고 노는 데만 정신을 파는 것 같으면 화를 내며 꾸중을 심하게 했는데 여러 번이나 아이를 잡아당겨 끌며 연공하라고 윽박질러 아이가 울면서 몇 번이나 수련을 안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구할 때는 아주 선하고 자비로웠으며 세인들에게 진상을 좀 더 명백하게 알리기 위해 집에 저축된 돈을 계속 인출해서 자료점의 필요한 자금으로 대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했는데 아껴 먹고 아껴 쓰며 생활비를 철저히 절약했다. 무더운 여름철 네다섯 시간을 걸어 다녀 온몸이 땀에 흠뻑 젖고 갈증으로 힘들었어도 단돈 1위안짜리 시원한 물조차도 사 마시지 않았다. 남편은 더위로 목이 말라 매점 앞을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그냥 참고 물을 사지 않았다. 이처럼 남편은 사람을 구하는 이 방면에 대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달라서 나는 맘속으로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편은 안을 향해 찾을 줄 몰라 괴로워했다. 그는 다른 많은 일에서 항상 ‘나는 수련자이고 나는 속인과 다르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다. 확실히 매우 불만스러운 마음에서 비록 자신의 사람 마음을 많이 참았으나, 실제적인 사람의 관념이 이런 일을 이용하여 없애고 제고하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많은 정황을 법으로 가늠하지 못해 하나의 관 또 하나의 난이 쌓이고 쌓이게 되었다.

한번은 물값을 받으러 다니는 수금원이 우리 집에 왔다. 대부분 집들은 물값을 월별로 지급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비교적 값이 저렴하다. 그러나 유독 우리 집만은 그런 월별로 해주지 않았다. 여러 번 수금을 하러 온 수금원에게 우리 집도 매월 물값을 지급하게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수금원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 일에 격분한 남편은 분기를 통제하지 못한 채 노발대발하면서 이번에는 아예 물값을 주지 말라고 나에게 요구했고, 그럼에도 내가 대금을 지급하자, 수금원을 향해 받은 돈을 도로 내놓으라고 압박을 가해 수금 왔던 두 사람이 겁에 질려 즉시 돌아간 일도 있었다.

그때 나는 밖을 향해 찾는 마음이 아주 강했다. 남편의 그런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많은 행동을 보고 ‘이건 수련자의 자세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행위다.’ 하는 생각으로 다만 그런 남편을 깔봤는데 특히 그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말에는 늘 질책하는 말투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나도 사람 마음을 없애고 제고하는 기회를 많이 놓쳐버렸다.

2006년 3월 어느 날 남편이 날 보고 새로 바지를 사 입으라고 해서 나는 옷가게에서 당시에 좀 유행하는 바지를 샀다. 남편이 내가 사 온 바지를 보더니 그는 단번에 성을 내며 계속해서 나의 사상이 좋지 않게 변했다고 꾸짖고는 그치지 않고 계속 2, 3시간을 끌며 화를 냈는데 결국 이 일로 남편은 종일 화가 나 있었다. 당시 나도 자신에게 변이된 관념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다음날 이 말이 또 나오게 되자 남편은 다시 성깔을 부리며 긴긴 시간이 지나도록 나를 꾸짖었다. 그때 나는 교류 문장을 쓰고 있던 중이라 다만 묵묵히 듣고 있었을 뿐 대꾸를 하지 않았으나, 남편의 질책이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자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쓰고 있던 교류 문장의 마지막 부분을 찢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남편이 나의 그런 행동을 목격하고 놀라면서 ‘자신이 너무 지나쳤다는 느낌을 받은 듯이’ 얼른 내가 찢은 원고를 투명테이프로 한 조각 한 조각씩 맞춰 붙이면서 “만약 내가 당신의 수련을 방해했다면 나는 정말로 죄를 지은 것이다.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그냥 마구 화만 내고 싶었어.” 하면서 자책의 말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이런 일이 있고 나서도 며칠이 지나자 또 그 일을 들추어내며 반복하여 화를 냈다. 저녁 6시 발정념할 때 나는 천목으로 구세력의 신 2명이 내 오른쪽 앞에 나타난 것을 봤다. 그중 한 신이 남편을 가리키면서 아주 무시하는 어조로 나를 향해 “그 꼴을 좀 봐라.”라고 했다. 나는 즉시 사악은 박해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내가 끊임없이 발정념하자 구세력은 사라졌다. 밤 12시 발정념할 때 나는 또 천목으로 보았는데 남편의 베개 중간에 반 자 정도 돼 보이는 뾰족하고 예리한 칼날 끝이 위로 곤두서 있는 걸 보았다. 그때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남편이 누우면 곧바로 머리 뒷부분에 닿게 될 위치였다. 나는 발정념하면서 사악의 모든 박해를 해체한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 후 이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2006년 4월 초, 남편은 휴가로 집에 있었는데 둘째 동생으로부터 함께 어머니 집에 가서 마작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은 수련하기 전에는 늘 밖에서 도박을 즐겼던 사람이었다. 수련을 시작한 후 내려놓았지만 근본적인 집착을 완전히 없애지 못해 가족이 함께 모여서 어울리며 놀 때는 언제나 돈을 걸고 좀 놀았다. 그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알면서도 그걸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고 어떤 면에서는 절실하게 원하기도 했다. 남편은 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에게 “이번만 동생하고 어머니 집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놀고 이후로 다시는 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그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못 가게 말렸다. “당신은 무슨 일에 부딪히면 법으로 가늠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렇게 한다면 이후로 어떻게 수련을 하겠나! 수련하려면 좀 잘 수련하라. 수련하지 않을 마음이면 당신은 마작하러 가라. 그리고 이후로 당신은 수련하지 말라!” 하고 아주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한 말은 확실히 아주 심했고 또 너무 과했다. 그런 언행을 한 후 나는 아주 슬펐다. 결국 나는 사람 마음으로 사람을 지적하는 방식을 통해 강제로 다른 사람을 개변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사람 마음은 수련생을 돕는 작용을 일으킬 수 없었다. 사부님께선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말씀하시길 “기와 기 사이에 제약작용이 없다.”고 하셨다. 이때 둘째 동생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남편은 수화기에 대고 즉시 가겠다고 대답했다. 남편은 때맞춰 집을 나서려고 하면서 내가 그에게 심한 말을 한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대단히 화를 내면서 더한 말로 내게 대답조로 말했다. “이후로 나는 수련하지 않겠다. 이것은 당신이 날 핍박한 때문이다. 내가 뭘 하고 싶으면 뭘 하겠다. 당신 두고 봐라, 나가서 여자를 찾겠다!”고 말하며 집을 나갔는데 남편의 불안해하는 모습을 역력하게 보아낼 수 있었다.

남편은 이튿날 집에 돌아왔는데 어제의 불안했던 모습과는 딴 사람 같았다. 남편은 비록 자신이 틀렸다는 언급을 했지만 수련은 어린애 장난이 아니다! 사악은 그의 그런 약점을 잡고 박해하기 시작했다. 3일 후 그가 직장에 있을 때 느닷없이 많은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 후 40일 동안 다섯 차례나 많은 코피를 흘렸는데 날이 갈수록 더욱 많이 흘렸다. 반시간 동안 코피를 흘리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6시간 반이 지나도 멈추지 않을 정도였다. 결국 코피를 많이 흘리던 어느 날 쇼크로 바닥에 쓰러지기도 했다. 현지의 한 수련생이 저녁에 꿈을 꾸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난 걸 봤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사부님의 가지를 받아 남편은 그때는 생사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남편은 이번 병업의 박해를 받은 후, 몸 상태는 확연히 좋지 않게 변했다. 얼굴색이 창백하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씩씩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런 후로 계속 기침하는 천식 증세를 보였다. 아주 긴 병업의 증상(구세력의 박해)에 남편은 어쩔 수 없었다. 2006년 말에 남편은 심한 기침과 토혈을 했으며 온몸이 붓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설 쇠기 전 직장동료들이 남편에게 “병원에 가봐라!”라고 했지만 그래도 남편의 마음은 아주 확고했다. 남편은 자신이 그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마음이 아주 무거워 감당하기 어려워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편과 교류하려고 시도했지만 말을 많이 하려 하지 않고 매일 발정념만 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나는 그의 눈을 보고 마음이 갑자기 흔들렸다. 그가 곧 세상을 떠나려 하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의 머릿속은 텅- 비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밤낮으로 도와, 대량으로 사악의 박해를 부정한다는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에 대한 사악의 방해가 아주 컸다. 그날 며칠은 이상하게 아주 곤해졌다.

돌아가는 형세는 계속 구세력의 안배대로 악화됐다. 그믐날 남편은 내게 말했다. “이번에는 당신이 내 말을 들어줘라. 내가 마음속의 기분을 풀 수 있도록 하자!”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아파하는 그런 남편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를 몰랐다. 남편은 그러면서 또 계속해서 3일 동안 마작으로 놀았다.

2007년 음력 초삼일, 내가 집에 돌아와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가 부어 뻣뻣하게 된 남편이 손을 내밀며 나에게 좀 잡아달라고 했다. 나는 순간 분노가 있는 대로 몽땅 치밀어 올라와 질책하는 마음으로 “당신은, 나가 놀아라! 나는 당신을 잡아주지 않겠다!”라고 원망조로 말했다. 그가 고통스럽게 거기에 서 있는 것을 보고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서 갔다. 그러나 내가 남편을 부축해 집으로 온 지 10분 후에 남편은 갑자기 병업의 형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몇 년 동안 매번 남편과 함께 수련하며 걸어왔던 길을 회상하면 나는 언제나 어느 한 지점의 시간에 멈춰 서 있는데, ‘남편이 내게 손을 내밀며 잡아달라고 했던 순간이다.’ 나는 마음을 오랫동안 평정시킬 수가 없었다.

수련은 얼마나 엄숙한 것인가. 남편은 한을 남긴 채 갔다. 또한 사후에 좋지 않는 영향을 세인들에게 주게 되었는데 대법을 인정하는데 많은 방해를 준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 우리가 실수(實修)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딪힌 모든 난관을 속인의 편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대했고, 일에 부딪히면 사람 마음으로 좋은 결과가 있기를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과정에서 연마해내지 못했다. 결국 난관이 크게 쌓여 넘을 수 없는 죽음의 고비로 된 것이다. 사부님께선 대법제자마다 수련의 마지막까지 안배해 주셨지만 남편은 사상 경지를 승화시키는 것이 더디어 구세력의 안배를 모두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타고난 수명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직도 사람 마음으로 일하는 대법제자, 법 중의 형식에 따르지 말며 중생의 부탁에 어긋나지 말며 이 만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기연을 놓치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부적절한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10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0/28/2645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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