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롄(大連) 대법제자
[밍후이왕]
1. 마난을겪다
아내는 목뼈 질환으로 대수술을 한 뒤 각종 후유증으로 병이 늘 반복됐다. 한방, 양방 전문가에게 진료하고 안마하며 물리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었다. 또 일부 기공사의 학습반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이름난’ 기공사에게 기공 치료를 받아도 여전히 효과가 없었다. 늘 누워있어 더 고통스러웠고 거의 마비됐다. 매일 단지 세수하고 화장실에 갈 때만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내는 그러다가 창밖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부러웠다. 속으로 늘 언제면 저렇게 걸어다닐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때 나는 과학연구를 하면서 퇴근 후에는 시장에 물건을 사러 나가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밥하고 요리하며 청소를 했다. 밤에는 아내를 안마해주었는데 나도 기진맥진해졌다.
2. 간절한 기다림
거의 삶의 자신감을 잃어가고 절망에 빠졌을 때 톈진(天津)에서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한 옛 동료가 우리에게 ‘파룬궁’ 책과 사부님의 설법 녹음테이프 16개를 선물해주었다. 이때부터 우리 생활은 또 새롭게 희망으로 불타올랐다!
그날 밤 나는 ‘파룬궁’을 한번 읽었는데 매우 좋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 등 각종 문제에 흥미를 가져왔었다. 글자도 잘 모르던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과학화보’라는 잡지를 보기 좋아했다. 출근하면서부터는 ‘UFO 탐구’ 등 잡지를 읽었다. 그러나 많은 문제는 이런 잡지에서 똑똑히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파룬궁’ 이 책에서는 매우 통찰력 있게 훌륭하게 논술돼 있었다. 나는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 너무나 한스러웠다.
이튿날 아침 아내도 이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는데 진실로 이 공이 너무나 좋음을 느꼈다. 직장 동료의 “아마 기적은 당신 몸에서 나타날 것이네”라는 격려 하에 우리는 학습반 티켓을 구매하는 절차를 밟았다.
아내의 현 신체 상황으로는 학습반에 참가하기 힘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육체훈련을 했다. 침대식 의자에 누워있었는데 점차 각도를 줄여 앉게 했고 십분 앉아 있었던 것을 1, 2시간 앉을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내심으로 학습반에 참가할 강렬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3. 사부님께서는 자비로우셨다
1994년 3월 27일 학습반이 열렸다. 일체 준비를 한 우리는 직장 동료의 도움으로 나는 아내를 업고 외국어전문학교 강당에 들어갔다. 아내는 왼쪽 앞좌석 통로에 침대식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설법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설법이 거의 시작될 무렵 실무자와 시 기공협회 책임자가 잇따라 찾아와 갑자기 우리에게 티켓을 물리고 퇴장할 것을 요구했다. 책임자가 말했다. “기공사의 공력이 너무 강해 환자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전에 이미 책을 보았기에 이 공은 오직 유익할 뿐 해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어찌 사부님의 얼굴도 뵙지 못하고 떠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결연히 티켓을 물리지 않았다. 파룬궁을 배우려고 마음을 먹었기에 정말 그들이 쫓아내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설법이 시작되기 전 5분전이다. 마음이 급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일체를 생각하지 않고 강단에 뛰어올라 무대 뒤에서 사부님을 찾았다. 내가 처음으로 사부님을 뵈었을 때, 자비롭고 선한 눈매가 사진과 똑같았다. 나는 즉시 앞으로 다가가 여쭸다. “당신이 기공사 리훙쯔(李洪志) 선생이신가요?” 사부님께서 대답하셨다. “맞습니다!” 나는 사부님과 악수한 후 바로 아내의 상황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병 치료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즉시 간절하게 사부님께 설명을 드렸다. “우리는 병을 치료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보름 전부터 우리는 당신의 책을 보았고 설법 녹음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학습반에서 중병 환자를 받지 않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정신병 환자가 아니고 마비된 것도 아닙니다. 학습을 견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을 배우러 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듣고 나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이 수련생은 꽤 오성이 있군! 가 봅시다.”
아!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수련생으로 받아들이셨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우리의 사부님이 되셨다!
이때 사부님께서는 무대 뒤쪽에서 앞으로 걸어 나오셨고 다시 강단에서 내려 곧바로 침대식 의자에 앉아있는 아내에게로 다가갔다. 나도 기쁜 마음으로 사부님 뒤를 따랐다. 네 생각에 사부님께서 그냥 아내의 상황을 보려는 줄로 알았다. 뜻밖에 사부님께서 ‘봅시다’라는 말씀은 직접 아내의 신체를 청리하는 것이었다. 이때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원래 사부님께서는 진정으로 공을 배우러 온 수련생에게 건강한 신체로 공을 배우도록 신체를 청리하시는 것이었다. 정말로 자비로우셨다. 위대한 사부님이시여!
4. 신기함을 실증하다
청리하는 과정에 사부님께서는 아내의 정수리와 목을 몇 번 손바닥으로 치셨다. 그리고 또 두 어깨와 두 다리를 청리하셨다. 사부님의 손은 아내 신체에서 대략 십 센티미터를 사이 두고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발끝 부위에서 손바닥을 모아 주먹을 쥐셨고 그 다음 손에 들어있는 것을 땅을 향해 크게 내리치셨다. 2분도 안됐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다 나았어요! 걸어보세요.” 아내는 강단 앞으로 두 바퀴 걸었다. 사부님께서 또 알려주셨다. “병이 없어졌습니다! 자리에 앉아 설법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 전반 장내에서 열렬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후로 아내는 앉아서 설법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들을수록 더욱 가벼워졌다.
제1강의가 끝난 후 내가 아내를 업으려하자 말했다. “나 스스로 걸어볼게요.” 아내는 두 다리가 매우 가벼워졌음을 느낀다며 걸어서 강당을 나갔다. 차를 타고 집문 앞에 도착해서 내가 또 아내를 업고 3층으로 올라가려 하자 그녀는 말했다. “나 스스로 걸어볼게요.” 과연 아내는 내 손을 잡고 천천히 3층으로 올라갔다. 이는 과거에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정말로 기적이 발생했다. 오랫동안 병으로 침대생활을 하던 사람이 스스로 걸어서 층계를 걸어 올라갔다! 정말로 기적이었다!
이튿날 오전 아내는 아래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동료가 있는 걸 보고 다급히 계단손잡이를 붙잡고 층계를 내려갔다. 흥분되고 감격돼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는 사부님께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임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또 ‘파룬궁’ 책을 보고 또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다. 그 후 며칠간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 가르친 몇 가지 공법을 아내는 매일 견지하여 연공했다. 처음에는 의자에 앉아 연공했고 나중에는 천천히 일어나서 연공했으며 나중에는 서서 전반 공법을 연마했다.
며칠간의 학습반 휴식시간이 되면 나는 늘 사부님께 달려가 아내의 매일 같이 건강이 회복되는 상황을 보고했다. 사부님께서는 듣고 매우 기뻐하셨고 때때로 그날 신체를 청리할 몇 가지 동작의 명칭과 작용을 알려주셨다. “그 손으로 내리치는 장법은 뢰공장(雷公掌)입니다.”, “손바닥으로 치면 감전된 느낌입니다.” 대수술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전혀 그렇게 큰 수술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일찍 연공했다면 진작 나았을 겁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는 재삼 당부했다. “연공을 견지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세요!” 사부님의 간곡한 타이름은 우리 내심에 비할 바 없는 따뜻함을 느끼게 했고 늘 사존의 자비로운 사랑 속에 있게 했다.
학습반이 끝난 후 아내는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고 점차 두 다리에 힘이 생겼으며 한 달 뒤 시장에 나가 채소를 살 수 있었다. 천천히 공을 배우는 시간 외에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나중에 7월에 사부님께서 2번째로 다롄에 오셔서 학습반을 꾸릴 때 기타 수련생과 함께 공공버스를 타고 걸어서 비행장에 나가 사부님을 맞이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함이로다.
5. 소중한 기억
사부님께서 아내의 신체를 청리하실 때부터 현재까지 17년 세월이 흘렀다. 마침 오늘은 사부님의 탄신 60주년이며 또 세계 파룬따파의 날이다. 이 모든 것이 눈앞에 선한데 그중 소중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하겠다.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우리는 사부님의 지식이 매우 넓고 깊다는 것을 느꼈다. 말씀이 그렇게 심오했으나 알기 쉬웠고 매우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비교적 심오한 원자핵 구조를 이야기하실 때 때때로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셨고 눈은 앞좌석에 앉은 우리를 보고 계셨다. 마치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는 지를 묻는 것 같았다. “맞는가?” 완전히 일종 상호작용하는 교습 방식이었다. 사존께서는 그렇게 겸손하고 평화롭고 친절하셨다.
첫날 강의가 끝난 후 우리가 침대식 의자를 거둬 차에 싣고 돌아가면서 밖을 보니 사부님께서 실무자들을 이끌고 걸어서 초대소(招待所)로 가고 계셨다. 조금의 형식도 차리지 않으시고 또 매우 소박하셨다. 이는 줄곧 깊이 우리를 감동시켜왔다.
학습반이 거의 끝나갈 때 길에서 나는 사부님께 여쭸다. “이후에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사부님을 찾으려면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사부님께서는 즉시 가슴 쪽에 있는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면서 말씀하셨다. “만일 기회가 돼 베이징에 오게 되면 이 주소로 찾아오세요.”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들 노 부부네 집에 거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펜으로 명함 뒤에 그들의 이름을 적으셨다.
1995년 가을 나는 베이징 청화대학 학술회의에 참가한 후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주소대로 찾아갔다. 그때 사부님께서 타 지역에서 순회 학습반을 열어 설법하셨기에 나는 사부님을 뵙지 못했다. 우주비행기술사업에 종사하는 지식인 노부부가 나를 맞이했다. 그러면서 사부님에 관한 많은 일을 소개했는데 깊은 교육을 받았다. 나중에 그들은 사부님께서 전에 거처했던 방문을 열어보였다. 대략 10평방미터 공간에 나무침대 하나, 책상에 탁상 등이 하나 있었고 그리고 큰 책장이 있었다. 장식이 매우 간단하고 정결했다. 거기에서 사부님께서 매우 검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하심을 알게 됐다. 그들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사부님은 겸손하고 온화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시끄러움을 주기를 원하지 않으며 옷마저 당신 스스로 빨았으며, 우리 부부의 생활에 영향주지 않으려고 밤에 글을 쓰실 때 언제나 탁상 등을 켰습니다.”
두 번째로 학습반에 참가하기 전에 사부님께서는 타 지역에서 장거리 전화로 파룬궁 다롄 소장에게 우리 집 아내의 건강상태가 어떤지 방문하라고 하셨다. 그날 오후 나는 6시에야 집에 도착했다. 가오(高) 소장과 몇 명이 아파트 출입문 화단 주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도 그날따라 물건을 사러 외출했었다. 아내가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 돌아오는 것을 보고 가오 소장은 기쁘게 달려가 인사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것을 직접 보았군요. 확실히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음을 증명할 수 있겠군요! 더욱 중요한 것은 사부님과 대법의 신기함을 확실히 실증하게 됐네요!”, “여기서 한 시간 동안 기다릴만했네요!” 우리도 사부님께서 제자에 대한 깊은 관심을 느꼈다! 제자에게 직접 신체를 청리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 수련생의 건강이 어떤지 걱정하고 계셨다.
사부님, 수고하셨습니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문장발표: 2011년 6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7/2419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