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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대법 중에서 자신을 바로 잡다

글/몬트리올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대법 중에서 17년 동안 수련한 노 제자다. 중국대륙에서 4년 동안 평화롭게 수련하는 개인 수련단계를 지난 후 중국대륙에서 근 2년 동안 사악이 가장 미친 듯이 대법을 박해하는 수련환경도 겪었으며, 해외에서 11년 동안 정법시기의 수련도 겪었다. 이 17년 동안의 수련 과정 중에서 대법수련의 휘황한 체험을 겪었으며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되어 신성한 사명을 부여받은 영광에 감동되기도 했다. 동시에 사람 마음에 집착하여 고통스럽게 헤맸던 때도 있었고 집착에 빠져 중생을 구도하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준 적도 있으며 또 주위의 수련생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때도 있다. 여기에서 내가 마음의 상처를 주었던 수련생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오늘 법회를 빌어 모두가 자신의 수련 경력을 회고하며 부족한 점을 찾아내어 대법 중에서 자신을 바로 잡고 조사정법을 더욱 잘하여 중생 구도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1995년 중국대륙에서 법을 얻었다. 사부님께서 92년부터 공개적으로 법을 전하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법을 너무 늦게 얻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떨쳐 일어나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라고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법을 얻은 첫 날부터 혹서엄한(酷暑嚴寒)이든지 바람 불고 눈이 오든지를 막론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이면 연공장으로 가서 연공을 했고, 저녁이나 공휴일에는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다. 아침에 다른 사람이 정공(靜功)을 1시간 연마하면 나는 2시간 연마했고, 다른 사람이 아침 5시에 가서 연공을 하면 나는 새벽 3시에 연공장으로 가서 연공을 했다. 법공부와 연공 연마를 견지하면서 비교적 실수(實修)를 하겠다고 노력했는데, 언제 어디서나 대법의 요구대로 하겠다는 수련의 자세를 견지했다. 98년부터 99년간에 법 공부를 집중적이고 대량적으로 했다. 어떤 때는 하루에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다 읽은 적도 있다. 그러므로 후일 조사정법하며 중생을 구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초를 닦은 것이다.

나는 2001년 캐나다에 처음 온 후 해외 수련환경에 익숙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해외 수련생들은 너무 산만하여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조그마한 고생도 견디어내지 못하고 수련생들 간에 정이 너무 많고 또 집착심도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순결을 지킨다(潔身自好).’라고 하는 이른바 이런 마음으로 그들 수련생들과 별로 내왕도 하지 않았다. 다만 법 공부, 홍법, 반박해 활동 등에는 참가를 했는데 교류할 때는 내가 인식한 법리만을 말하고 다른 수련생과 대립하거나 충돌하는 것을 피했다. 깊은 마음속에 자신이 수련을 잘했다는 것을 실증하려는 마음, 동시에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심(私心)과 집착심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혼자서 수련의 기초를 잘 닦았으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튼튼하게 걸으면서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었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을 깔보는 마음마저 생겼다. 그러니 늘 자신의 표준으로 수련생들을 가늠하고 나 자신의 관념으로 문제를 보았기 때문에 수련생을 알아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집착심이 나오자 심성도 따라 내려갔다.

해외의 수련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점차 나 자신에 대한 요구도 느슨해져 자신이 큰일에서 문제를 법에서 찾는다는 것에만 만족하고 장기적으로 자신의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근본적인 집착심은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더구나 협조인이 된 후에는 자신의 수련을 중시하던 데로부터 다른 수련생의 수련을 보는 것으로 변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법을 위해 책임지고 수련생을 위해 책임진다는 마음에서 자주 수련생의 부족한 점만을 보게 되는 단계로 변화되고 발전했다. 표현은 수련생을 위해 조급해하는 마음으로 수련생을 원망했는데 심지어 수련생을 질책하며 수구(修口)에 주의하지 않아 무의식중에 수련생 마음에 큰 상처를 주기까지 했다. 사부님께서 ‘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안으로 찾으라는, 이러한 말을 나는 이미 특별히 명백하고 특별히 똑똑하게 말했는데(웃음), 그러나 이 일을 중시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라고 하신 가르침을 잊어버렸다. 이 방면에서의 나의 교훈은 아주 많았다. 특히 모순에 부딪쳤을 때 언제나 밖을 향해 찾기를 좋아했고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다.

한 시기에는 법 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모모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문제가 나오면 나는 맘속으로 ‘모모 수련생 그(그녀)는 바로 이와 같은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하거나 ‘누구누구는 바로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다.’라는 등 자꾸 다른 사람에 대해서만 연관을 지어 생각을 떠올린다. 모순에 부딪쳤을 때 스스로 안을 향해 찾을 줄 몰랐고 자신을 연마할 줄 몰랐으며 늘 자신의 방법이 옳고 자신이 한 말이 도리가 있다고 변명했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중에서 “내 생각에, 대법제자 당신들 앞에 놓인 길은 오직 착실하게 수련하는 길 뿐이며 다른 길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한 번 또 한 번 나를 점화시켜주셨으며 심지어 내 주위에 있는 수련생을 안배해주셔서 나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실수(實修)인가를 알게 해 주셨다.

법 중에서 조건 없이 안을 향해 찾고 선심을 연마해내다

나는 2004년부터 현 지역 협조인으로 됐으며 2007년부터 따지웬의 판매를 책임지기 시작했다. 이 두 개의 항목은 나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하여 매일 수련생과 함께 있게 됐다. 자연적으로 심성의 마찰과 고험이 끊이지 않았으며 늘 구체적인 일을 처리해야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무슨 일이든지 맡은 일은 책임지고 해야 하는 습관이 양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속인 중에서는 일을 잘 마치고 나면 늘 칭찬을 받았었는데, ‘이 대법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내가 이렇게 잘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수련 중에 내가 제고하는 데에 방해가 됐다. 사실 이른바 책임진다는 것은 바로 내 관념에 따라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였으니 속인의 기본 관념으로 시비를 가린 것이었다. 장기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빠지게 되어 수련하여 제고할 수 있는 요소를 소홀히 했다. 표현은 선심이 부족했고 선의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 수련생은 꼭 잘못했으나 나 자신은 아주 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실 자아(自我)에 집착하는 한 가지 표현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제자를 대하셨다. 한 번 또 한 번 수련생을 이용하셔서 내 앞에서 어떻게 선의로 수련생을 이해하고 수련생을 선하게 대하고 심지어 억울함을 당했을 때는 어떻게 수련생을 대해야 되는지의 시범을 보여주셨다. 하루는 내가 한 수련생을 인터뷰하는데 다른 한 수련생이 그녀를 오해했던 사건과 관련된 수련과정을 말하는 것을 듣고 감동했다. 그녀가 겪었던 일의 과정을 들으면서 사실 나는 맘속으로 그 오해를 한 수련생에 대해 불평하는 마음부터 올라왔으나 당사자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변명할 생각도 없었으며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오해하려면 오해하라.’고 생각했는데 후에 ‘수련생이 왜, 나를 오해 하는가, 이건 반드시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고 생각하며 나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나는 이 수련생의 말을 듣고 아주 감동되고 계발되어 그 후부터 나도 무슨 일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 안을 향해 찾으면서 단맛을 봤으나 습관적인 것은 정말로 고치기가 어려웠다. 항상 돌발 사건에 대해 즉시 안을 향해 찾지 못하고, 사람의 기점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시비로 쟁론하면서 해결하려고 들었다. 사후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고 서야 후회했다.

내가 좋은 습관을 만들지 못하는 걸 보신 사부님께서는 또 내게 좋은 습관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셨다. 내가 일하는 곳에 새로 수련생이 한 사람 왔는데, 그녀는 일하는 과정에서 무엇이든지 잘못되었을 때는 항상 “이건 내 자신의 문제이다.”라고 말했으며 그런 말을 반복해서 했는데 마치 나에게 들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 중에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무엇이든 모두 사람의 집착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무엇이든 모두 수련 중 사람에게 장애가 될 수 있다(20년 설법).” “만약 당신이 안으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침 당신이 난관을 넘기고 새로운 상태로 진입하는 기회이다(2008년 뉴욕법회 설법).”라고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잘 수련한 수련생의 한 면을 이용하셔서 나에게 집착심을 인식하도록 하신 후 사람 마음의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내 주위에 수련한 지 얼마 안 된 한 젊은 수련생이 나타났다. 그녀의 순진함, 그녀의 선은 내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언제나 선한 마음으로 수련생을 생각하고 수련생을 대했으며 협조가 필요할 수련생을 보면 그녀는 자발적으로 그 수련생과 교류하여 방법을 찾아 도왔는데 이처럼 그녀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낙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를 통해 나의 위사위아인 근본적인 집착심을 봤는데 그 많은 집착심으로 나 자신의 수련을 방해하고 수련생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녀는 나에게 수련생을 도와주고 수련생과 교류하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부끄러운 마음으로 얼굴에 진땀이 났다. 협조인, 보도원으로서 이것은 나의 책임이 아닌가.

나에게는 수련생을 생각하는 마음, 수련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점차적으로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볼 수 있게 되자 주위환경도 자연적으로 변화가 됐고 중생을 구도하는 마음도 더욱 확고하게 됐다. 누구를 보든지 다 고생스럽게 보이고 수련하는 수련생의 마난, 집착 중의 고통 등을 볼 수 있었으며 다시는 수련생의 집착심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수련생을 원망하지 않았다. 진상을 모르고 생활 속에서 고통스럽게 헤매는 속인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이 잠시 진상을 모르거나 대법제자를 오해하는 것에 대해 다시는 따지지 않았으며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수련하지 않는 집안 식구나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욱 선하고 자비로운 마음이 생겼으며,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않고 지지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찾을 줄 알았다.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해 그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진상을 명백하게 알 수 있도록 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내 몸을 통해 명백하게 진상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며 내 몸을 통해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니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다.’라고 생각했다. 집안 식구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나를 존중하지 않을 때 나는 따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선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나의 체면, 감수, 자존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사명은 바로 당신들을 구하는 것이다. 억만 년의 기다림, 천 년의 윤회를 통해 우리가 대법홍전(洪傳) 시기에 한 가족이 됐으니 이것은 얼마나 큰 인연인가. 무슨 기연, 구세력의 안배이든지를 막론하고 당신들은 모두 법을 위해 온 생명이므로 나는 당신들을 구하겠다. 철저히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겠다.’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항상 불편한 심기를 보이면서 말만 하면 화를 냈던 남편도 최근 말하는 어조가 부드럽고 이치 있게 변했다.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체득하게 되었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轉法輪).”

뼈에 사무치는 듯이 집착심을 없애고 다른 사람이 말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을 내려놓다

몇 년래 가장 큰 도전은 바로 따지웬의 광고를 수주하는 것이었는데 중국 사람으로부터 광고를 따내기가 특히 어려웠다. 사람의 요소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악의 방해 요소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나 혼자 중국인 시장을 맡았었다. 그때 사악은 지금처럼 완화된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본사에서조차 나에게 아무런 압박감도 주지 않은 채 “그곳에서 무슨 실적을 바라지 않으니 다만 그곳을 견지하고 있으면 된다.”라고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자신에게 압력을 주었다. ‘나는 이곳의 중생을 구도하러 온 것이다. 잘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곳에서의 사악의 방해는 아주 심해서 처음 몇 년간은 정말 일을 하기가 아주 어려워서 많은 것을 감당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

후에 또 다른 중국 사람이 와서 함께 영업했는데 두 사람의 협조가 매우 중요했다. 나누어 하든지 함께 하든지 다 심성의 고험이 있었고 거기에서 자신의 집착심이 모두 폭로됐다. 이익지심, 쟁투지심, 비교하는 마음,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다른 사람이 말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 다른 사람에게 불신당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 특히 억울함을 당하는 마음 등등, 거기에서 두 사람의 성격이 아주 달라 전세에서 맺은 무슨 원한 혹은 무슨 역사적인 연원과 원한이 있는지 서로의 협조가 아주 힘들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협조가 안 된다는 생각에 절망감을 느꼈다. 그 후 따지웬에서 계속 직원을 보내 인원이 증가되자 모든 요소가 상대적으로 복잡하게 됐으며 이런 속에서 자신은 정에 빠져들어 정 속에서 뒤죽박죽의 형세가 됐다. 아주 많은 마음이 함께 뒤섞여 정말로 힘들었다.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대략 1년간은 고생스럽게 헤맸지만 오히려 실적은 뒷걸음질쳤다. 영업실적이 내려가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였다. 나는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주위 수련생들의 정념이 부족하고 장이 나쁘다.”라고 원망만 했다. 심지어 다른 한 수련생을 미워하기까지 하는 그런 원인 때문에 중국인 시장의 수련생과 모순이 생겼다. 심성이 나빠져서 실적이 내려갔는데도 나는 더욱 그 수련생을 미워했고, 정말로 아주 속으로부터 미워했다. 후에 정황을 알고 나서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 수련생에게 그때 나의 상태를 알려주자 얼마의 기간이 지나서부터 사무실의 환경은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1년의 시간은 차마 돌이켜볼 수 없는 고통스러운 나날의 체험이었다. 처음에 나는 수련생과 합작하기 싫었다. 나의 사심은 속으로 ‘지금 형세가 좋아졌고 사부님께서 따지웬에게 설법하신 후 시장도 열렸다. 게다가 몇 년 동안 나 혼자서 중국인 시장을 그렇게 힘들게 기반을 닦아놓았는데 누가 나의 그런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손해를 볼까 봐 걱정하는 마음,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하는 마음 등이 이렇게 한동안 지속됐다. 끊임없이 법 공부를 하여 점차적으로 제고는 됐지만 근본적으로 개변되지 못했다. 속으로는 명확히 집착심을 내려놔야 제고되고 시장의 영업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명리를 잃고 얻음을 따지지 않으며 자신을 강제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자극하면 심성을 지키지 못했다. 하루는 모순이 격화됐을 때 ‘끝내 명예와 이익을 내려놓겠다.’라고 결심을 하고 그런 집착심을 정말로 내려놓았을 때 고통스러운 씌우개가 나를 덮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의 경문을 외우면서 션윈의 노래를 부르며 정념을 강화시켜 첫 난관을 넘었다.

업을 만들면 소업해야 한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대략 반시간이나 아주 심하게 말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은 정말로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나는 수련생의 사무실 문 입구에 서서 몸을 기댄 채 들었는데 힘이 빠져 무어라고 대꾸할 힘조차 없어서 넘어질 지경이었다. 며칠 전에 법 공부를 많이 한 덕분에 점차 그녀의 질책은 오히려 듣기 좋게 되어 그 수련생이 지적한 것들을 모두 기억해 두었다. 틀리게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반박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 수련생은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격화됐으나 나는 들을수록 편안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을 그대로 내려놓을 수 있는 기쁨을 체득했다. 이번의 체험이 있은 후 작은 고험들이 끊임없이 다가왔다. 말만 들으면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는 그런 심한 말을 듣고도 화내지 않았으며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사부님께서 끝없는 대법의 위력으로 나를 도와 완고한 큰 산을 없애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지금 우리는 이미 모든 은혜와 원한을 화해로 풀었고, 우리는 이미 아주 좋게 협조할 수 있으며 침착하게 중생을 구도하는 길을 걷고 있다. 작은 파동이 있거나 방해가 되는 사람의 마음이 나타나도 나는 똑똑히 그건 나 자신의 요소로 생각하는데 만약 내가 사심과 잡생각 없이 내 마음이 끌려가지 않으면 모순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들이 한 법을 실증하는 이러한 일들 중에서 어떤 구체적인 일들에 부딪혔든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 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이고 아무리 큰 고통이라고 여기든지,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고,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해 올라오게 할 수 있다.” (2008년 뉴욕법회 설법)라고 가르쳐 주셨다.

사존의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위해 은혜와 원한을 화해시켜주셨습니다. 제자에게 중생을 구도하는 신성한 사명을 주셔서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개인수련의 얕은 체득이다. 부적절한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2년 캐나다법회 발언고)

문장발표: 2012년 9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9/4/2623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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