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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은 위암환자, 오늘은 불로(不老)의 神話

글/ 하얼빈대법제자 효육(曉旭)

[밍후이왕] 나는 파룬따파 중에서 수련한지 이미 16년이 된다. 비바람 속에서 오늘까지 걸어오고 나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이 시각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사부님 감사합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이다.

나는 올해 53세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이 나이가 되면 얼굴색이 건강을 잃게 되어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피부는 건조해 광택이 없어지고 동작 역시 느려지면서 노년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얼굴에 화색이 도는 나에게는 이런 현상이 없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든 나를 보면 모두 젊다고 한다. 몇 년간 만나지 못했던 옛 동료 혹은 동창들도 모두 “너는 왜 늙지 않지?”라고 묻는다. 동갑인 남편은 나와 함께 거울을 보지 못한다. 자신이 너무 늙어서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리에 나가서 일을 본다든가, 물건을 살 때면 20대 건강한 아들마저도 내 걸음을 따르지 못하며 그 아이가 먼저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은 성명쌍수(性命雙修)하는 좋은 공법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 사상 경지가 높아질 뿐만 아니라 몸에 병이 없어져 온몸이 나는 듯 가볍고 젊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 나이를 말하면 모두 깜짝 놀라면서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진상을 명확히 알게 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건강한 내가 과거에 진짜 ‘병 주머니’였다는 것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다. 심장병, 뇌동맥경화, 기관지염, 풍습성 관절염, 뇌허혈 등 20여 종의 질병으로 온종일 약이 몸에서 떠나지 못했고 얼굴색은 누렇고 눈살은 늘 찌푸린 채 온 얼굴은 근심과 고통에 잠겨 있었다. 그때 나는 곳곳으로 다니면서 의사를 만나 약을 달라고 했다. 양약이 안 되면 한약을 한 솥 또 한 솥 달여 먹었다. 몇 년이 지나도 병이 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약물 부작용으로 신체는 갈수록 나빠졌다. 나는 오직 지치고 고통스러운 신체를 끌면서 겨우 살아갔다.

비가 새는 지붕은 밤새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없듯이, 1993년 나는 위장이 불편해 병원에 가서 검진했는데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질병의 고통은 내 성격을 대단히 좋지 않게 만들었는데 건드리기만 하면 불이 붙듯 화를 냈다. 위장병은 갈수록 심해져 병원에서는 수술해야 한다고 하는데 큰 목돈이 필요했고 뇌허혈 치료를 해야 하는데 약 한 병에 400위안(약 7만 원)이라고 했다. 관절염도 물리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거액의 돈은 나로 놓고 보면 너무나 무거운 부담이 되어 병을 계속 치료할 자신감조차 가질 수 없게 했다.

이렇게 방법이 없는 상황 하에서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로 했다. 신기한 것은 수련 후 매우 빨리 병이 다 나은 것이다. 사람들은 더는 내가 ‘약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고 더는 내가 병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없게 됐는데 마치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처럼 신체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겨울이 되면 공장안은 비교적 추워 동료는 모두 솜옷을 입고 솜신을 신지만 나는 내복을 입고 위에 작업복만 입으면 되고 신도 여름 구두를 신으면 됐다. 파룬궁을 수련한지 10여 년간 나는 모두 이렇게 지냈다. 동료는 모두 내가 이렇게 튼튼한 것을 부러워한다. 병이 없어 온몸이 가벼운 나는 더욱 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되어 온종일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유쾌한 나날을 보냈다.

1999년 장쩌민 깡패 집단이 파룬궁에 대해 참혹한 박해를 하기 시작했다. 하늘땅을 뒤덮듯 파룬궁에 대해 모욕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양심은 나로 하여금 침묵을 지킬 수 없게 했다. 나는 베이징에 가서 공정한 말을 하다가 납치돼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받았다. 그 후 파룬궁 수련을 견지해 여러 차례 간수소, 노동교양소, 세뇌반에 감금됐고 핍박으로 집을 떠나 유랑했다.

2003년부터 2004년 동안 회사 보위부는 ‘610’(파룬궁 탄압 기구)과 협조해 일하고 있는 나를 두 차례 불법적으로 납치해 세뇌반에(이른바 사상 전향 학교) 보내 참혹한 박해를 가했다. 나는 전기봉으로도 맞았고 발에 채이며 주먹에 얻어맞기도 했고, 장시간 두 침대 사이 꿇어앉아 수갑을 차고 몸이 눌려있기도 하는 등등 고통을 받았다. 극도의 고압력 박해 하에 나는 하마터면 미쳐버릴 뻔했다.

비록 이러했지만 나는 시종 파룬궁이 가르친 ‘진선인(眞善忍)’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면서 일에 부딪히면 타인을 생각했고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2006년 7월, 나는 일하다가 주의하지 않아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뇌출혈이 됐으며 뒷머리에 달걀만 한 혹이 생겼다. 병원에서는 입원해 24시간 지켜보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이후에 회사에서는 자발적으로 돈을 내서 나에게 신체검사를 하라고 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파룬궁을 수련한 지 10여 년간 나는 온몸의 병이 모두 없어지고 몸이 가뿐했다. 이 시기 진실한 체험은 나로 하여금 파룬따파는 반드시 내 신체를 건강하게 할 것이라고 확신했기에 회사 자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 사람들의 나의 이 행위를 이해하지 못했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넘어져 이렇게 됐는데 병원에 가서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나을 수 있겠냐고, 바보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일이 발생한 다음 날 이런 의혹은 경탄으로 바뀌었다. 병원에 하루도 입원하지 않고 약 한 알 먹지 않았는데 내 머리에 있던 혹이 기적적으로 없어졌고 기타 증세도 전부 소실됐던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사람들은 파룬따파의 초상(超常)함을 보았다.

내가 다친 후 회사에서는 나에게 ‘공상’으로 처리할 준비를 했다. 친척과 친구들은 나에게 ‘공상’ 처리를 받으라고 했다. 그러면 출근하지 않고도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단체 이익이었다. 상사는 처분을 받아야 하고 회사는 점수가 깎이고 직원들의 복지 대우도 영향을 받게 되므로 나는 회사 상사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공상’ 처리를 받지 않았다.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 이렇게 좋은 사람은 정말 찾기 어려워요. 오직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만이 비로소 이렇게 탐하지도 점유하지도 않고 공적인 일을 우선시하고 이기심이 없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생생한 사실은 신변의 모든 사람을 매우 놀라게 했는데 펼쳐져 나온 것은 대법의 아름다움과 파룬궁 수련생들의 풍채였는데 한 시기 회사에 미담으로 전해졌다.

문장완성: 2012년 9월 12일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9/12/2627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