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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는 나를 곤경에서 구했다

글/대륙대법제자 백련

[밍후이왕] 나는 1983년에 결혼했다. 결혼 후 나는 유아독존(唯我獨尊)적인 성품으로 모든 일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위주로 생활했다. 그래도 남편은 이런 나를 어린애를 대하듯이 내가 하자는 대로 들어주고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다. 내가 돼지고기 비개를 먹지 않겠다고 하면 남편은 살코기만을 다져 만두를 만들어 주었으며, 심지어 나에게 따뜻한 세숫물까지 받아다 주고 발 씻을 물까지 가져다가 내발을 따뜻한 물에 담가주었다. 이러니 집안에서 내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동쪽을 가리키면 감히 누구도 서쪽으로 가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개성이 매우 강한데 내 생각에 좀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양보라는 것은 없었다.

한 번은 시삼촌에게 부탁하여 무슨 일을 맡겼는데 그 일이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나는 시삼촌 집으로 찾아가서 시삼촌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책임추궁을 했다. 삼촌은 직장에서 높은 직위에 있는 상급자로 누구도 감히 그에게 그렇게 대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그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한 것이다. 시삼촌은 화가 치밀어 갑자기 얼굴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후 나를 보면 외면했는데 나의 이런 성격은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성격은 치밀한 면도 있다. 계산을 정확하게 하고 능숙하게 뒷거래도 하는 등등 장사수완도 있었다. 내 성품과 성격이 이렇게 지독한데 마땅히 내 마음대로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꼭 반대였다. 나는 하루도 편안하게 산 적이 없었다.

1983년에 결혼한 이후 1994년까지 꼭 10년간 나는 습관성 유산으로 고통을 받다가 간신히 1년 뒤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불면증으로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담이 작아져서 무슨 일을 하든지 겁부터 나고 허튼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되자 자주 병가를 내어 병원을 찾게 되니 1년에 약값만 해도 몇 천 위안이 들었다. 날이 갈수록 몸이 약해지면서 온 몸이 병이었다. 신우신염, B형 간염, 위궤양, 장염, 빈혈(헤모글로빈 부족) 등등의 병으로 온몸은 항상 나른하고 무기력해지면서 몸이 마르고 얼굴이 노랬다. 한 때 75kg이나 나가던 건장한 몸이 45kg으로 변해버렸다. 용하다는 한의사와 양의사를 모두 찾았고 심지어 점쟁이와 무당을 찾아가 빌고 향을 피우고 부적을 붙이는 등 온갖 좋다는 약과 방법을 모두 동원해 보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오장육부의 기능이 모두 훼손되어 기름기 있는 음식은 아예 먹지를 못 했고 죽과 찐빵조차도 먹으면 소화가 안 되었다.

한 번은 갑자기 족발이 먹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무심코 조금 먹고는 온통 소동이 벌어졌다. 9일간을 침대에 누워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배통은 탱탱하여 마치 돌덩이 같았다. 복부는 이처럼 탱탱한데도 설사는 여전하여 정말로 사람으로서 감당키가 어려운 지경이었다.

병치료를 위해 대법에 들어와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1994년 10월 우연히 동료로부터 “그의 형님이 뇌혈전에 걸렸는데 몇 사람이 권하여 정저우(鄭州)에서 개최된 파룬궁(法輪功) 사부님의 강의를 듣고 일체의 병이 낫고 정상으로 돌아와 걷기도 하고 뛰기까지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나는 듣고 나서 그냥 웃으며 “그렇게 신기한가? 정말로 신이 있는가?”라고 말했을 뿐이다.

어느 날 동생네 집에 놀러 갔다가 나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힘들어하는 걸 보고 “집 근처에 기공을 하는 곳이 있는데 배우는 비용이 20위안이니 한 번 해 보면 어떻겠나?”하고 말했다. 나는 그때 마작을 하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잘 걷지도 못하는데 연공은 무슨 연공?” 그 얼마 후에 친한 친구가 나에게 파룬궁을 권했다. 그녀는 “파룬궁은 불가대법이고 병이 있으면 병을 치료하고 병이 없으면 건강해 진다”고 말했다. 그 말은 오히려 내 귀에 들어왔다. 그런데 직장인 공장에서는 경영개혁을 하기 때문에 이제는 약값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1년에 몇 천 위안이나 되는 약값을 내가 직접 마련해야 되는데 얼마나 힘든 일인가! 듣건대 파룬궁 수련은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고 파룬궁을 수련해 보기로 했다.

점심 휴식시간에 동료의 집에서 연공동작을 배웠다. 하루에 한 동작씩 배웠다. 7일간을 배웠는데 의외로 설사를 하지 않았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변이 정상적으로 나왔다. 실험삼아 길거리에서 돼지기름으로 조리한 국수인 저유면(豬油麵) 한 그릇을 사 먹었다. 하하… 모두 소화되었다! ‘어, 설마, 파룬궁이 정말로 이렇게 신기한가?’ 그길로 나는 동료에게 책을 빌렸다. 그는 무슨 관찰이나 하는 것처럼 나를 몇 번이나 쳐다보고 또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우물쭈물하더니 “나도 책 한 권밖에 없어요. 당신이 그 책을 봐도 이해할 수 있을는지…?”하며 주저했다. 나는 반드시 빌리는 것이며 그 책을 다 보고 나서 온전하게 돌려주겠다고 확신의 말을 했다. 파룬궁 책을 빌려가지고 집에 돌아와 단숨에 읽었다. 감촉이 컸다. 단번에 자신이 젊어서 병을 얻게 된 원인이 ‘매우 지독하고, 이기적이고 그리고 매우 총명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날 책을 돌려줄 때 그는 깔보는 듯이 나를 향해 “다 보았어요?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요?”하고 물었다. 나는 두어 마디 말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어서 다만 “나에게 이 책은 좋은 사람으로 되라는 것이에요. 이것은 일반인이 쓴 글이 아니에요. 이것은 성인(聖人)이 쓴 것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날 외계인을 대하듯이 반나절이나 쳐다보고 열심히 풍자를 해가며 “당신도 성인을 알아요?”라고 말했다.

법을 얻고 나서 돌이켜보니 다른 사람이 나를 얕본다고 해서 탓할 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때 나는 머리를 쥐어짜면서 오직 명리에만 파고들었으니, 도(道)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아닌가!

드디어 나는 1994년 10월 22일 법을 얻었다! 나는 대법책을 읽어본 후 수련은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개인의 이익을 담담하게 보아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관용하고 성실해야 하며 선해야 하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시는 이전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는 제사공장에서 근무하는데 내 임무는 누에고치 고르기다. 고치 중에 불량품을 골라내어 저울에 무게를 다는 일이다. 일한 만큼 임금을 받는다. 전에는 고치를 고를 때 돈을 더 벌기 위해 아무렇게나 마구 고르면서 심지어 좋은 고치도 불량품으로 골라내어 무게를 늘려 돈을 더 받기도 했었다. 그런 행동은 나뿐만이 아니었으니 자연히 공장은 경영상 손실이 컸다. 그러나 파룬궁을 연마하고 나서부터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려면 열심히 정직하게 골라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진지한 마음으로 일을 하니 손놀림이 차분해지고 받는 돈도 적어졌다. 하지만 공장은 경영손실이 적고, 또 내 마음은 편안했다.

나는 법을 배울수록 부끄러운 느낌이 든다. 과거 장사를 할 때 높은 이윤을 도모하기 위해 뒷거래까지 했는데, 친정집 산의 목재를 그냥 가져다가 시내에 내다 팔았다. 공짜로 가져다가 비싼 값으로 팔면서 불량목재를 보통목재로, 보통목재는 고급목재로 해서 비싸게 팔아 이익을 냈다. 나는 능변으로 상대방을 홀리면서 둥근 것을 납작하게 말하고 납작한 것을 둥글게도 말했다. 또 다른 사람과 함께 팔면서 이익은 내가 챙겨 상대방은 돈을 적게 벌거나 손해를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 다른 사람에게 내 돈을 계산하여 세도록 하고는 스스로 자신이 똑똑하고 총명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멍청한 짓이 아닌가! 사람 계산이 하늘 계산보다 못한데. 나 혼자 그런 계산을 하다하다 결국 온몸에 병이 오고 하루하루 매우 고통스러웠다. 너무 고통스러워 어린 아들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면 정말 죽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고까지 했었다.

일단 나 자신이 이 전에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며 진정으로 좋은 사람으로 될 때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신체를 청리해 주셨다. 토·일요일 집에서 휴식할 때 설사를 했는데 검붉은 피와 고름이 섞인 배설물이 배출됐는데 냄새가 지독하고 두려울 정도로 오한이 들어 벌벌 떨었다. 월요일이 되니 모든 것이 좋아져서 가볍게 출근했다. 10년의 위궤양이 약 한 알 먹지 않고 한 번에 청리가 되었다. 현재 어느 정도 좋아졌는가? 남편의 말로는 내가 “돌을 먹어도 소화를 시킬 수 있다”라고 했다.

이 전에는 출근도 못 하고 집에 틀어박혀 갓 시집온 아씨처럼 무엇도 하지 않고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매일 30여 리의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 하고 있고, 퇴근해서 양손에 물 한 통씩을 들고 6층집을 오르내리는데 단숨에 1층에서 6층까지 올라가고 쉬지도 않고 청소하고 식사준비를 하고 세탁을 하고… . 무슨 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 또 대법을 얻었으니 무슨 고생도 다 할 수 있다.

남편이 악보 중에서 각성하다

1999년 ‘7.20’후 장쩌민은 중공(중국공산당)과 한패거리가 되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나쁜 짓을 했다. 한동안 먹구름이 뒤덮이며 날조된 유언비어가 난무하며 대법을 비방하는 악행이 천지를 뒤덮었다. 이때 남편이 미혹되었는데, 더구나 현지 공안과 악경(사악한 경찰)들이 도처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만행이 자행되자 남편은 더욱 놀랐다. 남편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내가 집에만 들어오면 매일 나에게 파룬궁을 연마하지 말라고 강요하며 다투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나를 설득하면서 내가 수련만 포기하면 내가 처음 시집왔을 때처럼 나를 돌봐주겠다며 심지어 침대에 올려놓고 먹여주겠다 … 등의 감언이설로 나를 감화시키려 들었다.(내가 연공 후 신체가 좋아지자, 남편은 나리마님으로 변해 집안일은 일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요구대로 응하지 않았다. 그것이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인가! 남편은 순한 설득이 통하지 않으니 이제는 강경책을 썼다. 마작을 하다가 괜한 화를 내고, 대법책과 연공비디오 테이프를 집어던지고 심지어 사부님을 욕하고 대법을 욕하고, 나를 ‘반혁명 반당분자’라고 욕을 하고 핍박 하면서 이혼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불법이다”라고 경고하고 “대법에 악행을 하면 보응이 있다”고 했다. 남편은 가슴을 두드리고 침을 튀기며 “보응? 나는 보응이 두렵지 않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불법? 당신이 재주가 있으면 내가 보는 앞에서 급수탑으로 날아올라 봐라!”하며 폭력적 억지를 부리는 모습이 꼭 공산사당의 건달 모습을 빼 닮은 그대로였다.

한 번은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냄비그릇을 거실바닥에 내동댕이쳐 음식물이 온통 바닥에 흩어졌으나 내가 그런 걸 무시하자, 곧바로 도끼를 가져다가 나의 발등을 찍겠다고 위협했다.

나는 그대로 청원하러 가고 진상을 알리러 갔다. 대법이 없었다면 나의 목숨은 벌써 없었다. ‘이렇게 좋은 법을 어떻게 중공의 소인배가 망칠 수 있겠는가!’

2000년 말 나는 파출소 악경에게 납치당해 매달린 채 심하게 맞았다. 맥주병처럼 굵은 몽둥이로 나에게 매질을 했는데 그 몽둥이가 부러졌다. 때릴 때“퉁퉁”하는 소리가 났으나 나는 아픈 느낌이 없었다. 악경은 나를 때리고 때리다가 나중에는 힘이 빠지자 나를 유치장에 감금했다. 그렇게 감금된 후 1년이 지났다. 남편은 수차례 나를 핍박하며 이혼하자고 했다. 나는 그것이 그의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동의하지 않았다.

2001년 8월 간수소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피골이 상접하게 말라 있어 전혀 사람모양새가 아니고 바로 하나의 골격일 뿐이었다. 175cm 키에 웅크리고 누운 모습이 꼭 고양이 모습 같았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공군출신이라 신체가 원래부터 건장했었는데 현재는 이런 모습이니… .

그의 형제들은 그렇게 변해버린 그를 안고 울었다. 남편은 늑막염에 걸렸는데 폐가 3/2나 썩고 폐에 수포가 생겨 호흡이 곤란하고 간 기능도 좋지 않아 당장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야 할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내가 남편의 형제들에게 거듭해서 남편의 상황을 물어보자, “즉시 수술을 한다면 보증하고 8개월은 살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지 수술비를 마련해서 수술을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그 말을 듣고는 “그 정도의 병이라면 나는 수술도 받지 않고 치료도 받지 않겠다. 그렇게 한다면 몸도 잃고 재산도 모두 잃고 만다”며 치료를 거부했다.

나는 ‘그러면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남편에게 정말 어떻게 하려느냐고 물었다. 그 때 남편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어떻게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다. 당신도 과거에 병 때문에 죽느니 사느니 했으나 약을 먹지도 않고 낫지 않았는가? 그러니 나도 약을 먹지 않겠다.” 나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당신의 그것은 병이 아니고 업을 많이 지어서 그렇다. 하늘부터 땅까지 욕을 하다가….” 그러자 남편도 자신이 사부님에 대해 대법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한 결과라는 것을 알고 진심으로 깨우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녹음강의를 듣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 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외웠다.

며칠 지난 후 남편이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여러 번 남편을 살펴보고는 “피부의 색깔이 검사할 때와 전혀 다르다고 하면서 또 사람이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마음속으로 대법에 대해 탄복했다. 그 후부터 남편은 나의 대법수련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내가 자료를 배포하면 그는 감춰주며 보살펴줘서 9평을 배포하고 션윈을 전하는데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한 번은 큰 눈이 내릴 때 남편이 직장 내 쓰레기더미에서 9평 한 권을 주어 눈에 젖은 그걸 깨끗이 닦은 다음 가슴에 품고 있다가 직접 보도원 손에 넘겨주었다.(그는 군부대에서 근무) 지도원은 두려운 마음에 혀를 내밀며 남편에게 “신변 안전에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남편은 대법을 지지한 후 복을 받아 신체가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업무실적도 좋아져서 상사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 그도 신이 자신을 도와준다고 말한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한다

초등학교 학생인 아들이 점심시간에 낮잠을 자다가 이층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머리를 나무상자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선생님이 급히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해 보니 일급 뇌진탕이라고 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놀랐다. 남편은 아들에게로 가면서 너무 놀란 나머지 제대로 걸음을 옮기지도 못했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끝장이다. 이제는 끝장이다.’하고 두려운 생각을 했다. 나는 즉시 사부님 법상 앞에 꿇어앉아 아들을 구해달라고 청했다. 아들이 입원해 있는 시 의료원으로 급히 가보니 아들이 응급실에 누워 있는데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하여 얼굴에 혈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정신은 혼미하여 계속 졸면서 음식물을 먹지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의사의 말로는 “우선 한 달 간 병원에 입원시켜 지켜보면서 정밀 검사와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아들은 완전하게 완쾌됐다. 병실에서 뛰고 노는 모습을 본 의사는 기이한 현상이라고 했다. 아들은 빨리 퇴원하여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아들은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항상 좋은 성적이어서 결석을 오래 하게 되면 수학성적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학교로 돌아간 후 선생님은 아들이 뇌진탕 후유증이 염려되어 뇌의 반응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평소와 다름없이 답안을 작성했다. 120점 만점에 117점을 받았다. 그래도 선생님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는지 걱정된 표정으로 기적이라고 하면서 “나도 매우 놀랐다. 아들의 입원비와 약값을 학교에서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나의 제부도 이 학교의 선생님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학교 측의 치료비 제안을 거절했다.

그때 보온밥통으로 아들에게 밥을 가져다주었다. 보온밥통은 겉은 플라스틱 이고 안은 유리로 된 제품이다. 아들이 보온밥통에 들고 입에 가깝게 대고 수저로 밥을 먹고 있었다. 순간 갑자기 “펑”하는 큰 소리와 함께 보온밥통 속 유리통이 폭발되면서 유리조각파편이 아들의 얼굴을 덮쳤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다급하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셔!” 나는 즉시 종이로 아들의 얼굴을 닦아주었는데 아들의 얼굴과 눈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고 멀쩡했다.

아들이 중학교를 다닐 때 다리에 혹이 생겼다. 삼촌은 수술을 하라고 권했지만 아들은 듣지 않았다. 이제 아들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공산사악은 그런 아들을 가만두지 않았었다. 그것들의 박해가 미친 듯이 가해지자 나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으며, 그곳에서 납치되어 1년간을 감금당했다. 이 때 악인들은 아들에게 엄마에 대한 육친의 정을 이용하여 아들을 미혹시켰던 것이다. 그것들은 온갖 박해를 가하며 모자의 상봉을 막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된 것은 엄마가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에 조성된 결과라고 비판적인 세뇌를 했다. 그리고는 아들을 핍박하며 무슨 물건을 사용하게 하면서 무슨 대회에 나가 대법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도록 했던 것이다. 아들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그런 나쁜 짓을 하여 보응을 받게 된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삼촌이 수술을 받으라고 권해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은 밍후이왕에 ‘정중성명’을 발표하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러자 피고름이 흘러내린 후 염증 부위에 딱지가 지면서 좋아졌다. 아들은 다시 한 번 대법의 초상적인 사건을 견증하게 된 것이다.

또 한 번은 우리 가족이 남동생의 농업용 차를 타고(앞에 6명이 탈 수 있고 뒤는 짐칸이다) 산골에서 시내로 나가는 참이었다. 산 비탈길을 오를 때 거의 다 올라가서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차문이 열려 나와 여동생, 조카 3명이 모두 높은 차위에서 밖으로 떨어지며 공처럼 산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내 머리는 아래로 향하여 차바퀴와 몇 센티미터 정도 가깝게 놓여 위험천만이었다. 아들이 차에서 울부짖으며 엄마를 불렀다. “아! 엄마” 남동생은 놀라 혼이 나간 것 같았다. 우리가 죽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동생만 무릎을 좀 다쳐 약간의 약을 발랐을 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동생들이 모두 “우리는 오늘 큰 언니의 사부님 덕에 살았다! 큰 언니의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셨어!”하고 감격해서 말했다.

은혜를 입었다. 대법 중에서 유익하고 신기했던 일들을 모두 말하자면 정말로 사흘 밤낮을 해도 모자랄 것이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사부님의 구도에 감사합니다!

문장발표 : 2012년 8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8/26/2619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