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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나는 법의 내포를 볼 수 없는가?

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야야(雅雅)는 진수하는 젊은 수련생으로 최근에는 관광지의 진상 알리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다른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쟁투심의 사람 마음으로 일을 급히 성사시키려는 표현이 나타나게 되어 결과는 속인들이 진상을 듣고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표현된 내용이 대립적인 반감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대법을 비방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하는 걸 보고 괴로웠다고 말했는데, 나는 야야가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겪은 상황과 관련하여 언급을 하려고 한다.

야야가 말하기를 “나는 이런 정황을 보고 매우 괴로웠다.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이곳에서 진상을 알리도록 하신 것은 우리에게 스스로 자신을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수련생들은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을 밀어 낸 것이다.”그는 진상을 하는 전 과정 중에 계속 발정념을 했다고 말했다.

야야는 또 자신이 직접 겪은 한 사례를 들어 말했는데 “속인 세 명이 다가와서 ‘매국적인 행동이다!’고 큰 소리로 욕을 해대고 또 한 사람은 ‘야야를 바다에 던져버리겠다!’며 위협적인 행패를 부렸다. 그래도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상대방에게 ‘당신이 함부로 나에게 욕을 해도 나는 수양이 높기 때문에 당신을 욕하지 않는다.’라고 상대방에게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이 그 말을 듣자마자 더욱 성이 나서 ‘너, 교육을 받았댔어?’하며 길길이 뛰었다.”고 전하며, 계속해서 “당시 너무 억울했다. 나는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심태도 평온했는데 무엇 때문에 상대방은 나에게 그렇게 대하는가? 그건, 이 속인의 배후에 사악의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야야는 또 세 번째 사례를 들었다. “무슨 문제에 부딪쳤을 때 법리가 비교적 분명한 수련생과 교류하면 기분이 맑고 상쾌하며 눈앞이 환하게 밝아진다. 이런 수련생은 평소에 법 공부를 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의 배후에 있는 깊은 내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고 말하고 “무엇 때문에 나는 법의 배후의 내포를 볼 수 없는가?”라고 하면서 몹시 괴로워했다.

어떤 수련생이 교류를 하며 야야에 대해 말한다. “야야는 법의 내포를 볼 수가 없다고 했는데, 다른 수련생들이 법의 내포를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 엄격하게 요구하며 시시각각 안으로 찾고 또 무조건 안을 향해 찾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야, 당신도 그렇게 하는가? 전반 매 서술과정에서 거의 당신이 말했다. 그러나 그 중 한 마디도 안을 향해 찾은 것은 없지 않은가? 모두 ‘다른 수련생들이 어떻게 수련을 제대로 못했다. 속인의 배후에 어떻게 사령의 요소가 많다. 오직 야야 스스로만 가장 좋고 모두 맞다.’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수련생의 말을 듣고 난 야야는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안을 향해 찾아야하는가? 내가 보기에 다른 사람의 잘못인데.”

그러자 그 수련생이 계속해서 말했다. “제일 처음 사례에서 다른 수련생들의 부족한 점을 발견했을 때 야야는 스스로 안을 향해 ‘내가 이런 걸 보았으니 나 자신의 잘못된 점은 무엇인가, 나는 버릴 것이 없는가?’를 찾아보는 게 아니라, 다른 수련생이 어떻게 좋지 않다고만 원망했다. 결국 법 공부는 자신을 수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련생을 판단하고 원망하기 위해 그 이유를 찾은 것이 아닌가. 결국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 구실을 찾은 것이다. 보기에 그 중에서 오직 한 마디 말만은 안을 향해 찾은 것 같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곳에서 진상을 알리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자신을 수련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안을 찾는 대상인 ‘우리는’ 분명하게 자신을 포함하지 않고 자신 이 외의 다른 수련생을 말한 것이다.”

“두 번째 사례에서도 속인이 자기를 욕할 때 우선 생각한 것은 법 실증이 아니고 자아를 실증한 것이다 .‘나는 수양 있는 사람이기에 일반적인 속인과는 같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맞지 않다. ‘나는 대법을 배웠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때려도 맞받아치지 말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고 요구하셨다.(전법륜) 그러므로 나는 당신처럼 할 수 없다. 나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자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어야 했다.”

진정한 수련자가 되려면 우선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무조건 안을 향해 찾아야 하고 정념으로 문제를 보아야 한다. “당신이 문제를 볼 때, 당신은 다시는 그것 속에 빠져서 보지 말아야 하며 당신은 이 구체적인 문제 속에서 그 일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이 문제에서 뛰쳐나와 관찰하고 관찰해야 하며 그것이 眞(쩐)·善(싼)·忍(런)에 부합 하는가 부합하지 않는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수련을 잘한 사람 혹은 신(神), 보살이 와서 이 일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 이처럼 생각하고 정념(正念)이 나오면 당신은 곧 알 수 있다.”(미국법회 설법, 뉴욕좌담회 설법) 당신이 안을 향해 찾을 수 없을 때 사부님의 이 법을 생각해야한다. 만약 여기에 서 있는 것이 야야가 아니고 하나의 신, 하나의 보살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 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야야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말을 했다. 그렇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련생이 그렇게 선명하게 사람의 집착심을 보였을 것이며, 속인들이 그렇게 쟁투하는 표현을 나타냈을 것이겠는가? 그럼 누구의 잘못인가? 그래도 “나 자신이 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아 잘못된 것이며, 이로 인해 이 일체가 내 앞에 나타날 수 있었구나!”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라고 지적하셨다.(홍음3 –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야야 자신은 이미 밖을 향해 찾은 상태라 발정념 동작은 있었지만 발한 것은 정념이 아니다. 오직 진정하게 안을 향해 찾으면 자신에게 존재한 문제를 찾을 수 있으며, 그 다음 어떻게 하기만 하면 된다. 사부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틀어짐이 생기고, 다른 사람과 틀어지고, 주위의 일체가 모두 잘 되어가지 않는 것 같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긴장이 생겼다. 이때 스스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당신이 자신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아주면 일체가 평온해지고 또 꼬인 것이 풀어짐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스위스법회 설법) 자신이 정말 무조건 안을 향해 찾는다면 매우 신기한 기적도 종종 발생하므로 모든 상유심생(相由心生)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첫 사례의 경우에서 우리는 수련생을 자비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문제를 보았다면 적합한 기회에 선의로 지적을 해 준다면 그 수련생이 승화해 올라올 수 있다고 믿는다.

두 번째 사례에서, 우리는 “사람마다 불성이 있다”고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람의 정념과 선념(善念)을 계발하여 이 생명을 구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모두 우리가 안에서 찾고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이 아닌가? 일하는 과정에 진선인(眞善忍) 원칙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일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 마음도 지니지 않아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 이다.(홍음 – 도 중에서)

그럼 두 가지 사실 중에서 야야는 모두 안에서 찾지 못하고, 다만 밖에서 수련생의 부족한 점만 보았으며, 밖에서 속인의 것이 아닌 것을 찾았다. 그러므로 일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심성의 제고와 승화를 얻지 못했으니 최저한도로 이 문제에서 자신을 수련하지 못한 것이며, 아직도 원래의 경지와 층차에 머물러 있는데 어떻게 법 배후의 상응한 내포 혹은 더욱 높은 법리를 볼 수 있겠는가?

야야는 법 공부와 교류를 통해 자신의 수련과정 중에 발생한 문제를 보아낼 수 있어서 기뻤으며, 이후 어떻게 더욱 잘하여 자신의 사명과 서약을 완성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문장발표: 2012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8/10/2613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