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한동안 수련생은 내가 법리가 뚜렷하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 법공부를 하려 할 때 갑자기 수련생이 먼저 한마디 했다. 어찌된 일인지 당신과 함께 법공부하면 머리에 잘 들어오는데 다른 사람과 하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는 대법 책을 펼치고 집중하여 법공부를 하려는 참인데 이 말을 듣고 즉시 나의 마음이 분산되었다. 나는 될수록 수련생의 말을 배척, 해체하고 그것이 작용을 하지 못하게 했다. 어렵게 제압하여 마음을 안정시키고 법공부를 한 글자씩 하기 시작했다.
법공부를 하고 나는 즉시 수련생과 이 일을 교류했다. 속인이 대법제자를 칭찬하는 그것은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한 것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대법제자 간에 서로 칭찬하는 말은 무슨 작용을 일으키는가? 단지 사람 마음뿐이다. 정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제고를 촉진하지 못하여 수련생의 칭찬은 다만 자신을 숭배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것이 사람 마음 등등이다. 동시에 상대방의 환희심, 과시심,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 자심생마 등등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수련생을 해치는 것과 같다. 수련생의 공간장에 물건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수련생을 칭찬하면 무슨 좋은 점이 있을까? 아래로 수련생을 끌어내리며 사람 마음을 부풀려 집착심을 불러일으키고 구세력에게 통제되어 꾀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정념이 아니라고 나는 느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말이 나오면 사람 마음이 움직여 사악에게 틈을 주게 된다. 사악이 생각한다. 당신은 그와 함께 있어야 법공부할 수 있다고 하고 다른 사람과 하면 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그것들은 그녀가 오지 못하게 하여 당신이 아직 법공부를 할 수 있는가를 본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박해를 불러오지 않았는가? 대법제자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은 모두 에너지가 있고 모두 자신의 공간장에서 작용을 일으킨다. 소위 생각과 행동이 그 어떤 것에 부합되면 즉시 어떠한 생명과 자동적으로 작용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우리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은 반드시 법에 부합되어야 하고 또 반드시 법리의 요구에 비로소 부합되어야 한다.
이전에 다른 언니와 법공부를 할 때 그녀는 내가 법을 잘 읽는다고 하고 읽는 것이 능숙하고 유창하며 틀리게 읽는 글자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녀는 그냥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후에 나는 명을 구하는 마음이 생기고 법을 읽은 때 긴장되며 틀리게 읽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읽었는지 근본적으로 몰랐다. 왜냐하면 마음을 집중하여 법을 읽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잘 읽을까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길어지면 알 수 있는바 함께 법공부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언니는 진상을 잘한다. 모두 속인의 집착에 따라 말한다. 보통 속인의 좋은 점을 말해 속인의 호감을 얻고 진상을 알리는데 복선을 깐다. 이렇게 많은 세인을 구했다. 그러나 만약 속인을 칭찬하는 그 방법을 대법제자에게 쓴다면 안 된다. 그러면 수련할 수 없게 된다. 서로 칭찬하며 부족한 점을 보지 못하고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수련하는가?
내가 관찰하는데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수련생은 다른 한 방면의 표현이 있다 수련생의 부족한 면을 보았을 때 종래로 정면에서 지적해 주지 않는다. 체면을 지키는 마음, 허영심, 부끄러워 말하지 않고 정면에서 좋은 말만 하고 억지로 대처하며 속인의 체면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수련생이 간 후 다른 수련생과 그 수련생의 부족한 점과 단점을 말하는 등등이다. 말을 바꾸면 바로 정면에서 수련생의 제고를 돕지 못하고 배후에서 얘기하고 수구를 하지 않아 업을 짓는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수련생 간에 진심으로 도움이 필요하며 서로 제고하고 수련생의 부족한 면을 보면 반드시 빨리 교류해야 한다. 다만 적당한 장소와 개별 교류를 채용하고 과정 중에 방식과 방법에 주의해야 하며 선한 마음과 말투로 해야 한다. 수련생은 당신의 진정성을 알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자신을 보며 안으로 찾을 것이다. 더욱 내심에서 당신에게 감사한다. 마지막에 정체제고, 정체승화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수련생 간에 신성한 법연이다. 대법제자는 수련생을 대할 때 절대로 전면에서 하는 말이 배후에서 한 말과 각각 다르면 안 된다. 그것은 당문화이다.
여기서 글로 적어내는 것은 정체제고를 위해서다. 부당한 점은 수련생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7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15/2602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