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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상 ‘집’에 대한 집착심을 수련해 버리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잠깐 차를 타고 출장을 떠났다. 마치 아쉬워서 떠나기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내일이면 집으로 곧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다만 잠깐 집을 떠난 것이다. 이때 갑자기 일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약 정법이, 출장 갈 때 종결되면 어떻게 하지? 내심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이렇게 생각하니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어찌 이런 생각이 있을까? 무의식중에 왜 정법이 마땅히 집에 있을 때 종결한다고 굳게 믿는가?

다음날 단체법공부를 할 때 이 마음은 아직 가물가물했다. 함께 법공부를 하는 수련생 중 한 분은 다른 수련생 집에 묵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집’의 개념이 수련생의 생활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가? 정법이, 만약 묵고 있는 수련생 집에서 종결되면 그 ‘집’이 없는 수련생은 세간 중에서 생활도 동시에 함께 종결된다. 그러면 자신의 내심의 이 ‘집’은 또 어떤 의의가 있는가? 왜 이런 아쉬워하는 느낌이 있는가? 버릴 수 없는 것은 또 무엇인가? ‘집’ 내부 장식인가? 수련하는 그윽한 환경인가? 검소한 생활? 수련생 아내? 아니면 자식? 이 일체에 다 집착하지 않는다면 또 무슨 마음이 작용을 일으키는가?

‘정(情)’, 바로 ‘정’이다. ‘집’에 대한 ‘정’이다. 오직 ‘집’에 있어야만 비로소 안전하다고 느낀다. ‘집’이야 비로소 풍랑을 피하는 항구이고 ‘집’이야 비로소 귀착점이며 ‘집’이야말로 비로소 자신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선 ‘전법륜’에서 “일부 사람들은 바로 이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버렸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세간의 ‘집’을 수련 과정 중의 집으로 여기고 또한 이런 ‘집’에 대한 집착을 반본귀진의 법리를 포함했다고 인정했다. 그러기에 장기간 수련 중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종 관념이 형성됐는데 스스로 느끼기 어렵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수련생을 보고 그들에게 가정의 따스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경제가 어려운 수련생을 보고는 그들의 생활이 어렵다고 느낀다. 정법의 시간은 갈수록 적어진다. 나의 집착심은 아직 이렇게 깊이 숨겨져 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선 이런 기회를 이용하셔서 나의 집착심을 점오해 주셨다. 바로 나의 ‘집’에 대한 정을 제거해 주시려는 것이다!

그 수련생의 처지, 그 수련생의 생활을 생각하며 갑자기 이 일념에서 철저히 깨달은 느낌이다. 단번에 ‘집’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인간의 ‘집’은 수련인에게 무슨 실제적인 의의가 없다. 이 ‘집’은 다만 수련인이 휴식하는 하나의 장소다. 세간 중에서 ‘가정’을 유지하는 일종 형식이다. ‘집에 있다.’, ‘집을 떠난다.’는 다만 수련과정 중에 속인 사회에 부합되는 일종 상태다. ‘집’에 대한 정을 내려놓자 마음도 단번에 ‘집’에 대한 구속에서 해탈해 나왔다.

물론 ‘집’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음이 결코 우리가 가족을 관심하지 않거나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인식인데 부당한 점은 수련생이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7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5/2598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