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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진아를 수련해내고, 안으로 집착을 찾아내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 “바로 당신의 主元神(주왠선)을 제도하며 바로 당신 자신을 제도하는 바,”(시드니법회 설법) “수련이 잘 된 그 한 면은 격리됐기 때문이다.”(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만일 우리가 사부님의 말씀을 기억했다면 마땅히 이지적으로 진아(眞我)로 하여금 자비롭고 선량함이 주도적 작용을 발휘하게 해야 하지 자신의 어떤 사람의 마음을 은폐하려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의 마음이든지 모두 하늘로 갖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도항-미국서부법회 설법)

내가 걸어 나오는 과정에서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늘 수련하는 것은 자신의 주의식임을 명심했다. 성의를 다해 속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고 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가 마음에서 당당하고 이기적인 것이 없기에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또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았다. 많은 수련생들은 자신은 신이며 마땅히 사람과 같은 견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속인이 그들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들은 자기편을 박해하는 것만이 사악이고 너무 사악하다고 여겨 내심에서부터 그들을 소훼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은 악한 것이라 생각되며 정법의 구도 기점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우리는 언제나 평온한 심태를 유지해야 하며 나중에 자비로운 마음을 수련해내야 한다. “속인 층차보다 높은 사람은 속인을 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고 알려주었다.”(캐나다법회 설법) 그러므로 나는 속인과 어떤 간격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속인 중에서 수련하고 있고 속인의 심태가 바르지 않으면 바로 우리가 선심선의로 선행으로 개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자신을 제도하고 사람을 제도하는 과정이라고 깨달았다.

수련하는 사람은 마땅히 깨달음이 우선이고 닦음이 그 다음이다. 왜 그렇게 많은 수련생이 너무 쉽게 가상과 가짜 이치에 이끌려 가는가? 그 근원을 파보면 바로 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를 깨닫지 못했는데 어찌 행할 수 있겠는가? 또 일부 수련생은 입으로 자신은 대법제자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망나니 깡패에게 속고 있고 우롱당하고 있으며 그것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러한 탄압, 제약이 맞지 않음을 알고 있으나 이지와 능력으로 그것을 돌파하려 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게 되자 곧 극단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큰 법에서 수련한다면 마땅히 지혜를 닦아내야 하며 이렇게 큰 법을 지녔다면 마땅히 일체 간난신고와 위험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나 그때의 표현형식은 평화롭고 자비로워야 하며 평화와 자비의 배후에는 정법의 거대한 위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찰, 건달, 망나니가 베이징에 청원을 간 수련생에게 반드시 자신의 주소를 말하라고 하는데 그저 편리를 위해 박해에 협조한다. 그러나 한 수련생은 경찰에게 “나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지 파출소에서 거듭 나에게 베이징에 갈 것인지를 물었다. 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결국 이렇게 베이징에 왔다. 만일 내가 내 주소를 말하면 그 경찰도 직업을 잃게 되며 가도와 공안국도 모두 연루될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경찰들은 즉시 그를 석방했고 똑똑히 그에게 알려주었다. “돌아간 후 다시는 오지 말라…” 여기에서 우리는 정면적인 계발을 받을 수 있다. 노동교양소에서 파룬궁을 비판하고 혹은 사부님을 욕하라 요구할 때 한 수련생은 경찰에게 “사람더러 욕하라 가르침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만일 사람을 욕하는 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그럼 누가 나에게 욕을 가르쳐달라. 나는 곧 그를 욕하겠다. 나의 사부님을 욕함은 사부님을 속이고 조상을 멸하는 짓이다.” 그 결과 경찰은 얼굴에 기색을 잃었고 더는 공개적으로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거꾸로 된 형세에서 많은 사람은 나에게 확고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경지에서 대답했다. “내가 견지한 것은 ‘진선인(眞善忍)’ 이치이며 틀림이 없다. 나는 사람 됨됨이에 있어서 원칙은 확고하게 지킨다. 누가 감히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하여 진인(眞人)이 되려는 사람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 누가 감히 선심선의로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함을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누가 감히 사람으로서 대인지심(大忍之心)이 있음을 나쁘다고 할 수 있는가? 누구도 감히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럼 내가 견지하는 것은 바로 맞는 것이다. 누가 감히 사람으로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신의가 없는 사람을 사람의 근본이라 말할 수 있는가? 누구도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라면 무슨 일을 행함에 이름을 고치지 않을 것이며 언행일치로 안팎이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확고한 것은 잘못이 없다. 하늘이 제아무리 커도 이치보다 크지 못하며 오직 이치가 있다면 사람을 탄복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큰 법에서 만일 자신의 도(道)를 수련해내지 못했다면 실제로는 도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만약 도를 깨닫지 못했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맹목적일 것이다. 행동 중에 ‘연공인’, ‘수련자’, ‘대법제자’ 이런 명사를 이용하여 그 중에서 좋은 점을 건지려 하거나 원만을 구하는 마음을 은폐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강대한 집착을 품고 자신을 실증하고 있으며 법을 실증하고 있지 않다.

왜 관건시각이 되면 곧 사악에게 ‘전향’되는가? 수련을 중지하는가? 혹은 좋지 않은 심태를 품고 쇠뿔을 파고드는가? 바로 그들에게 실증할 ‘법’이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그렇게 큰 집착이 배후에서 시키고 있어 아무리 노력해 법공부해도 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망종하거나 무리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찌 일부 사람의 비뚤어진 이치와 삿된 설에 이끌려갈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현재와 장래를 막론하고 우리의 법을 혼란하게 하는 것은 오직 내부 제자일 뿐으로,”[정진요지-금강(金剛)]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 바른 이치에 밝지 못한 사람은 오직 사악의 의도에 따라 파룬궁을 모함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아무렇지 않은 것에서 시비를 따질 것이다. 무형 속에서 더욱 많은 좋은 사람이 대법을 알고 대법에 들어왔으며 그 속에서 일부 신의를 저버리고 세상을 속이는 가짜 군자를 감별해냈다. 그러나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 내부에서 산포된 가짜 이치는 중생으로 하여금 가려내기 매우 힘들게 한다. 게다가 반복적으로 ‘전향’되고 ‘돌아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세상 사람은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렇게 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빨리 종결되라! 빨리 종결되라!”라고 한다. 만일 우리 스스로 대법제자라 칭하는 사람들이 모두 확고하다면, 모두 바른 이치를 견지할 수 있다면, 모두 바른 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일찍이 정법은 종결됐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두려움이 없다면 당신을 두렵게 하는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만일 자신의 집착을 덮어놓지 않고 진정으로 그것을 제거한다면 곧 두려움이 없다. 아마 도를 깨달을 수 있으며 또한 지혜도 나오게 된다. 시시각각 수련하는 것은 우리의 주의식임을 명심해야 하며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전부를 가져가게 했으며 대문에 사람 마음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집착이 있으면 곧 누락이 있는 것이다. ‘은폐로 은폐하고 은폐해서는’ 안 된다. 어찌됐든 당신은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 우리는 참답게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그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다.”(전법륜) 심성과 도를 깨달음은 직접 연관된다. 진리 앞에서 누구도 자신을 은폐할 수 없으며 은폐했다면 단지 자신을 속일뿐이다. 부정적인 생명은 반복적으로 판을 뒤집기 마련이다. 진리 앞에서 중생은 모두 제 모습을 드러낸다. 오직 법에 동화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정(正)의 생명으로 될 수 있으며 비로소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이상은 수련생들과 함께 고무격려하려 함이다.

문장발표: 2012년 6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15/2589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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