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 안녕하세요!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파룬따파가 널리 전해진 20주년, 나는 수련 시기가이 짧지만 ‘세계 파룬따파의 날’ 기념일에 사부님의 제도에 대한 감사와 저 나름의 작은 승화를 보고하고 싶습니다.
대법을 만나 여러 가지 체험을 하다
나는 2006년 가을에 대법을 만났다. 권유받은 대로 매일 2시간 연공과 1시간 법학습을 하기로 했다. 아침 8시부터 밤 6시는 출근해 일을 하기 때문에 3시간 수련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궁리했다. 일하러 나오기 전에 동공 1시간을 하고, 출근 전철 노선을 바꿔 우회하지만 앉을 수 있어서 편도 30분 법학습. 퇴근해 돌아와 정공을 1시간 했다. 주말에도 다른 일에 쫓겼지만 3시간의 법학습과 연공을 유지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여러 가지 나타났다.
먼저, 가부좌다. 나는 몸이 매우 딱딱하고 겨우 결가부좌를 할 수 있는 정도여서 1시간 가부좌가 상당히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부좌를 시작하자 붉은 빛기둥이 위로부터 머리에 내려 왔다. 기분이 좋아서 눈물이 나왔다. 그것이 20분 정도 계속 됐다. 그 여운으로 1시간 연공이 가능했다. 다음날도 같은 상황이 3일간 계속 되어 이것으로 1시간 가부좌 습관이 생겼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식욕이 없어지고 위가 답답한 느낌이었지만 위장이 정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장이 약하고 감기가 쉽게 걸렸기 때문에 약이나 건강식품이 필요했지만 책에 쓰여 있는 무병 상태가 됐다고 생각해 자연스럽게 약이나 건강식품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 후 상당한 양의 출혈이 두 차례 있었지만 놀라지 않았다.
수련 전에는 술을 마셨지만 ‘전법륜’의 “나는 전문 업무 연계를 위해 밖에서 사업하는 것으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라는 곳을 읽었을 때, 나는 일이 아니라 취미로 마시고 있으니 그만둘까라는 일념이 나오자마자 술을 마실 수 없게 됐다. 업무상 무리하게 맥주를 권유받아 조금 마시면 머릿속이 빙빙 돌고 심장은 두근두근 했으며 손가락 끝이 찌릿찌릿 했다. 정말로 마실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라고 실감했다.
1개월 정도 지나자 전일(專一) 문제에 부딪쳤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와 함께 불교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법을 만나기 수개월 전부터 이미 그 불교 종파에서는 정과를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아닌 것을 알았지만 버리지 못했는데 책에 쓰인 대로 이대로 적당히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1개월 사이에 일어난 것은 모두 현실로 ‘전법륜’은 지금까지의 불교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수수께끼를 밝혀냈다. 고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책 속의 사부님 사진을 향해 “수십 년간 배운 불교는 모두 버립니다. 머릿속에 있는 불교 기억은 모두 지워 주셔도 좋습니다. 지금부터는 사부님께서 법 중에서 사용하신 법밖에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 그리고 불교 책은 팔 수 있는 것은 팔고 나머지는 버렸다. 공부하려고 만든 불교 공책도 부모님의 유품인 염주도 모두 버렸다.
새해가 되고 또 하나의 전일 문제가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타계하신 뒤 나에게 불교 지도를 하고 있던 전(前) 거사에게 “지금부터는 파룬따파로 정과를 얻기 위해서 수련하므로, 불교는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그 사람은 때릴듯 덤벼들었지만 내가 단호하게 단언하고 고함쳐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에 “그 평정한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라고만 말하고 떠났다. 책 속 사부님 사진에 “넘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보고했다.
“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인생행로를 개변해 줄 수 있으며”(전법륜)대로 바뀌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타계한 부모님이 맡겨서 전 거사 곁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대법 수련을 시작해 10개월이 지났을 때 그 사람이 대법을 매도하고 신변 위협까지 하자 거기에서 나왔다. 내 명의였던 고급 외제차 2대도 모두 버릴 생각이었다. 이러한 처리를 끝낸 후 함께 수련을 시작하던 지금 남편과 결혼하게 되어 내 향후 인생은 수련을 위한 것이 됐다. 시부모님도 연공을 매일 하고 우리들이 대법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이해하고 협력해 주었다. 정말로 사부님의 안배에 감사의 말씀을 이루 다 할 수 없다.
대법의 뛰어남을 전하다
단기간에 몸이 정화되어 무병 상태가 되고 정신도 안정된 등등, 친구나 지인들에게 대법의 뛰어남을 전했다. 사부님 경문에 상대방 집착에 맞춰 진상을 알린다고 쓰여 있었으므로 신경질적인 사람에게는 화내지 않고 안정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밝게 즐거운 듯 대법 체험을 이야기하면 모두 흥미를 갖는 것 같다. 그리고 전단지나 책을 건네주거나 연공장으로 이끌거나 했다.
한 달에 한 번 가는 미용실도 대법을 전하는 좋은 환경이었다. 미용사는 보통 말을 건네기에 건강이야기로부터 “나는 어깨가 뭉치지 않습니다”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라는 체험담을 말해 파룬따파를 소개했다. 여러 사람에게 전단지 전달을 위해 다니는 미용실을 바꾸었던 적도 있었다.
언젠가 여행지에서 한 가족을 만났다. 인사 정도는 했다만 좀처럼 대화가 안 됐다. 차 속에서는 거의 지쳐 자고 있었고 이대로 인연이 엇갈려 버릴 것 같아 무척 유감스러웠다. 하지만 이것은 자비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 마음 속에서 ‘사부님, 기회가 필요합니다’라는 일념이 나왔는데 앞좌석에 앉아 있던 모친이 갑자기 뒤돌아보며 여러 가지 말을 걸어 왔다. 건강 이야기로부터 기공 이야기가 나와 상대가 “어떤 기공을 하고 있죠?”라고 묻자 전단지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꼭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법공부
나는 ‘전법륜’을 몇 번 읽고 경문을 읽기로 했다. 일본어 책이 만들어 있지 않고 인터넷에만 있었다. 수련을 시작했을 무렵 컴퓨터에서 읽으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정진요지가 책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연공장에서 한 수련자가 싱글벙글 하면서 대만에서 인쇄된 작은 정진요지를 손에 들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이것 읽을래요?” 나는 눈이 동그랗게 되어 “어떻게 알았죠?”라면서 받았다.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돼 있는 사부님의 모든 경문을 읽기로 하고 컴퓨터에서 다운로드 받아 인쇄해 소책자로 만들어 오래된 것부터 순서대로 최신 경문까지 읽었다. 지금은 6주째가 됐다. ‘전법륜’과 마찬가지로 읽을 때마다 이해가 다르다. 첫 번째에 경문을 읽을 때는 밖에서 읽지 않았다. 왜냐하면, 훌륭함과 감동, 자비를 느껴 눈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하철 안에서 어려워 보이는 책을 눈물을 흘리면서 읽고 있으면 이상해 보이기 때문이다.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2시간 연공과 법학습을 유지하면 심신 모두 상태가 좋다. 수련상태가 좋을 때는 내 앞길이 똑바로, 활짝 열린 것 같은 느낌이다. 방해하는 작은 돌도 없는 듯한 감각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염색물이 눈 안에 있어 일상생활 속에서 안정되어 있던 마음 속에 작은 물결이 이는 감각이 있다. 뭔가 조금 이상한 느낌이랄까. 2시간 연공하고 있지만 집중하지 않거나 법학습 중에 잡념이 일어난다. 이때는 심성 제고가 필요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학습 하도록 자신을 타이르곤 한다.
천국악단에 참가하다
2007년, 일본에서도 천국악단을 결성되어 참가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대법 활동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일본인 수련자가 적어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음악이라면 언어 장벽도 없고 약간의 악기 경험도 있었으므로 남편과 함께 색소폰에 참가하기로 했다. 하는 이상 적당히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둘이서 근처 뮤직 스쿨에 다니면서 기초부터 배우기로 했다.
2008년 4월부터 퍼레이드에 참가하게 됐다. 국내에서 활동을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수련생로부터 그 해 7월 사이판 활동에 초대받았다. 일본인은 비자가 필요없지만 중국 국적은 힘들다고 들었다. 이러한 사정이라면 우리의 유리함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이판은 일본과 인연이 깊은 곳이므로 꼭 참가하고 싶었다. 이것이 해외 활동의 시작이었다.
사이판에서는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를 했다. 많은 단원은 대만 천국악단에서 왔고 일본에서는 수십 명이었다. 대만 단원의 연주를 들으니 자신과의 차이를 크게 느꼈다.확실히 일본의 천국악단은 결성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대만과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2008년 사이판 퍼레이드에서 우리팀 출발은 뒤쪽이었다. 대기 시간이 길고 도로에 아직 선 채로 계속 기다렸지만 대만 단원은 똑바로 서서 앞을 향한 자세를 계속 취했다. 제복을 입은 때부터 홍법이 된다. 관객은 보고 있는 것이며 이런 모습을 보면 훌륭한 악단이라고 인정할 것이다. 그들 연주도 정말로 훌륭해 우리도 천국악단 단원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퍼레이드 후 천국악단 교류회는 한층 더 감동을 주었다. 각 사람의 상황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지만 대법을 만난 체험을 정말로 즐겁고 기쁘게 발표했다. 또 이런 교류회에 꼭 참가하고 싶었다.
다음에 서울에서의 교류회와 퍼레이드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퍼레이드가 출발한 공원이 매우 넓어서 택시를 타고 집합장소와는 반대 지점에서 내려 버렸다. 근처를 찾으면서 이동하자 공원에서 큰 음악과 디스크 쟈키 목소리 사이에 아주 희미하게 연공 음악이 들렸다. 환청일지도 몰랐지만 이것은 반드시 나를 이끌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해 연공 음악이 나는 쪽으로 악기를 안고 달려갔다. 겨우 연공하는 사람들과 집합해 있는 천국악단을 찾아냈다. 사부님의 인도에 감사드리며 우리는 퍼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었다.
2006년 ‘로스앤젤레스시 법회에서의 설법’에 천국악단의 위력이 쓰여 있다. “악단이 연주할 때 방출하는 에너지는 상당히 크다. 에너지의 방출이든지 아니면 당신 목소리의 방출이든지 또는 음악이나 음표(音符) 자체든지 막론하고, 모두 법을 실증하고 에너지를 방사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연주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일순간에, 주위를 깨끗하게 한다.” 이런 훌륭한 활동에 참가할 수 있어 행복하다.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이 악단에 참가한 수련자는 연주 때, 자기 자신도 매우 감동하고, 신성함을 느끼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읽었을 때, 퍼레이드에 나오는 순간 눈물이 나오는 이유가 신성함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았다.
2008년 11월 이후 홍콩 퍼레이드에는 가능한 참가했다. 중국 본토이기도 하고 정화해야 할 장소의 최전선임을 느꼈다. 길가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사람들이 천국악단의 연주에 빠져들었다. 행진 시간은 최저 2시간 반으로, 길 때는 5시간일 때도 있었다.
인도에서의 천국악단 활동 참가
천국악단 활동에서 한층 더 향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2009년 9월 인도 활동이었다. 인도에서 아시아 천국악단이 활동하고 있는 것은 조금 알고 있었지만, 참가 요청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참가하고 싶은 정도였다. 그러던 중 9월 하순에 인도의 캘커타, 나그프르, 뭄바이에서 각종 축제에 참가해 퍼레이드를 하는 것을 알고 가기로 했다. 일본에서 참가하는 단원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들었지만 아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둔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련자답지 않았다. 남편과 상의해 인도에서의 활동에 참가하기로 했다. 아마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각오하고 갔다. 다행히도 칸사이 지역에서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천국악단 단원이 참가해 통역의 도움을 받았다.
인도 활동은 정말로 대단했다. 캘커타에 도착한 3일간 불교사원 숙소에 머물렀다. 모두 수련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에어콘이 없어도,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아도 아무도 불만으로 느끼지 않았다. 더워서 땀을 흘리면서 침대(내 자리만 천정에 선풍기가 고장났다)에 누웠을 때도 ‘수련이니까 참자’라고 생각하면 잠들었다. 수면 시간도 2, 3시간밖에 되지 않았으며 어둠 속에 각자 일어나 연공했다.
활동은 아침부터 밤까지 였다. 여러 곳에 가서 퍼레이드를 하거나 고정 장소에서 연주를 반복했다. 인도는 어디를 가도 대단한 사람이 많다. 밤의 연주 때 관객은 몸이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 있었지만 눈을 빛내며 듣는 모습에 열심히 연주하자는 생각뿐이었다. 더운 날씨에서의 퍼레이드는 괴로운 경우가 자주 있었다. 곡 사이 행진에서 ‘수련, 수련’이라고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걸었다. 사부님의 가지가 없으면 쓰러졌을 지도 모른다. 마치 영원히 계속되는 것 같은 퍼레이드였지만 길가에서 나이든 여성이 합장하면서 듣고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천목이 열린 인도의 보통 사람이 우리 천국악단을 다른 차원에서 보면 불도신(佛, 道, 神)이 함께 있다며 “당신들은 훌륭하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사를 입은 대승려들도 미소를 지으면서 합장하고 있었다.
인도에서의 일주일 간 홍법활동은 각종 체험과 제고를 위한 훌륭할 기회를 주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인도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보안검색을 받을 때 검사관이 색소폰 상자를 열라고 말했다. 왜 그럴까라고 생각하며 열자 여기에서 불어 달라는 것이었다. ‘건물 안이고 많은 사람이 수화물 검사를 하고 있는데…’라고 조금 망설였지만 주위 사람도 싱글벙글 웃고 있어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의 팡파레 부분을 불었다. 큰 소리가 울리자 모두 매우 기뻐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나중에 왜 1곡 전부를 불지 않았을까 라며 매우 후회했다. 만난 사람 모두에게 법을 전할 기회인데 유감스러웠다. 퍼레이드를 하는 것만이 활동이 아니라 모든 때에 홍법 기회가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인도 활동을 끝내고 뭄바이에서 방콕 경유로 홍콩으로 갔다. 이번 홍콩은 국경절 퍼레이드이라서 홍콩섬에서 진행됐다. 도중에 몇 번이나 방해가 있었다. 중국 영사관 앞에서는 ‘파룬따파 하오’를 연속으로 여러 번 연주했다. 끝날 무렵에는 밤이 어두워졌는데 최초의 5시간 퍼레이드였다. 대만 천국악단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게다가 무거운 색소폰이었다. 나에게도 색소폰은 무거운데 작은 몸으로 연주하며 행진하는 모습에는 격려를 받았다. 퍼레이드를 끝내고 별로 피로가 없는 것이 이상했다. 대법제자가 하나가 되니 에너지가 강하고 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해외 활동으로 사부님의 안배를 느끼다
우리는 유리한 조건을 살려 활동을 했다. 일본 여권은 확실히 해외로 나가는데 적합하다. 번거로운 비자 신청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2010년에 12회, 2011년에 15회 해외 활동에 참가했다. 사부님의 안배인 것이 틀림없다. 해외 활동이 한번 끝나고 귀국해 곧바로 다른 나라에 가는 일도 몇 번 있었다. 날짜가 겹치기 때문에 다음 해외 활동을 그만둘까 남편과 이야기하면 지원할테니 꼭 참가하라는 이야기를 해외 수련생로부터 듣게 된다.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해 가기로 결정한 활동이 인도네시아의 스라바야였다. 2010년에 자카르타, 발리섬, 수마트라섬을 3번 갔으므로 2011년 스라바야 참가를 망설였던 것이다.
퍼레이드 전날에 연습을 했는데 왠지 지금까지와 달리 조화롭지 못했다. 당일도 집합이 흩어졌다. 대열을 정돈해 연주를 시작했지만 경찰이 중지시켜 출발할 수 없게 되고 경찰관이 선두 단원에게 폭력을 가해 연주를 중지시켰다. 천국악단 단원이 경찰관에 맞아 다치다니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인도네시아 천국악단 이외는 해산을 당하고 대만 지휘자와 싱가포르 지휘자, 현지 수련생이 경찰에 연행됐다. 호텔로 돌아와 모두 모여 발정념과 법학습을 반복했다. 이런 방해는 처음이지만 모두 일체가 되어 교란을 제거함을 체험했다. 밤에는 모든 사람이 돌아와 안도했다. 이 경찰의 폭동은 민간 방송국 텔레비전 카메라에 찍혀 사건화됐다. 이 사건을 지휘한 경찰관 간부 그날로 실직했다. 즉시 보응이 나타나 대법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스라바야에서 귀국하는 다음날에 홍콩 퍼레이드가 결정돼 대만 수련생과 교류하다가 “홍콩 퍼레이드에 참가합시다”라는 말을 들었다. 일본에서 홍콩을 경유해 스라바야에 왔지만 돌아가는 항공편으로 홍콩 경유는 할 수 없었다. 다시 일본에 돌아가서 나리타에서 다시 홍콩에 오면 늦게 된다. 티켓 카운터에서 협상했다. 홍콩에서 내려 다시 일본행 티켓을 사겠다고 말하자 직원이 발권해주었다. 간단하다고 생각하고 티켓을 손에 넣자 안쪽에서 상사인 듯한 사람이 나와 안 된다며 티켓을 몰수하려 했다. 티켓을 다시 샀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그는 잠시 그 발권한 티켓을 응시하고 OK라고 말하며 건네주었다. 있을 수 없는 일에 놀라면서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안배에 다시 감사드렸다. 대법에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경문에 있지만 정념을 갖고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면 길이 열린다.
천국악단 해외 활동에서의 체험이나 교류를 통해 한층 더 제고할 필요성을 느꼈다. 많은 감동도 있고 함께 정진하는 훌륭함도 알았다. 이러한 실천으로 얻은 것은 보물과 같이 소중한 것이다.
생활 속에서의 제고
해외 활동은 한번 활동 기간이 짧기 때문에 힘들어도 분발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날의 일상 중에서의 수련이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서 잘할 수 있도록 유의해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을 2시간 하고, ‘전법륜’을 한 강 읽고 짜투리 시간에 경문을 읽도록 해 수련자임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상의 작은 일에도 수련자답게 대응하려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염색독인 이 세상에 매일 있으면 역시 형식적으로 되거나 오염을 받아 정체(停滯)하는 면을 느낀다. 그러한 때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 밍후이왕의 수련체험이다. 중국 본토 수련자가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나 정진해 제고해 나가는 이야기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가르쳐 주어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새롭게 해준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도 많아 자신이 수련을 시작했을 무렵 정열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맺음말
눈 깜짝할 순간에 6년 세월이 지나갔다. 아직 사부님께서 해주신 것에 부응할 수 있는 수련은 아니지만 시간을 소중히 하고 용맹정진을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싶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문장발표: 2012년 6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10/2579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