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화인 해시의 문장을 읽고 –
글/ 원리(文理)
[밍후이왕] 나는 ‘사회가 진정으로 특별히 관심을 두어야 할 일’라는 밍후이왕의 외부 평론을 읽고 깊게 감명받았다. 이 문장은 내가 최근 늘 탄식하는 문제를 건드려놓았다. 왜 사람들은 파룬궁이 박해받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못 본 체하는가? 수많은 대법제자가 속인의 뉴스에 열중하고 속인에게 의지하고 속인의 관념에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다는 등의 수련문제를 제외하고는, 확실히 최근 몇 년간 불공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국내 인터넷의 여론은 일방적인 비난과, 관원들의 부패와 백성을 마구 짓밟는 데 대한 반항의 함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흉수를 징벌하고 약자를 도우라고 외치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의 정의감이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파룬궁이 박해받는 거대한 불행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다. 국제사회 역시 그러하다. 인권과 자유 수호를 사명으로 여기는 서방 주류사회 역시 고의로 모르는 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차이가 난단 말인가? 마치 화인 해시의 말처럼 파룬궁은 사람들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많이 받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중국 대륙의 ‘리강(李刚) 사건’, ‘포산(佛山)의 쏘웨웨(小悦悦) 사건’, ‘철도부가 기관차를 파묻은 사건’ 등이 발생하였을 때 인터넷에서 민중의 분노를 보면서 나는 늘 생각했다. 파룬궁이 당한 박해가 그런 일보다 참혹하지 않단 말인가? 왜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는가? 그때 그들의 정의와 양심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파룬궁에 대한 상해는 국민에 대한 상해가 아니란 말인가?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인성에 대한 파괴가 아니란 말인가? 박해의 참혹한 정도와 반박해(反迫害) 정신, 파룬궁이 겪어온 것과 부여한 것 모두는 다른 개인과 단체와는 비할 바가 안 된다! 파룬궁이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는 말도 안 된다. 여러 해 동안 파룬궁의 진상은 전해지지 않은 곳이 없다. 물론 사악한 당이 파룬궁을 최고등급의 장벽으로 삼고 정보교류를 막은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중국 민중은 왕리쥔(王立军) 사건에서 지혜와 용기로 봉쇄를 제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보았다. 시각장애인 변호사 사건에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었는데, 마치 ‘6.4’ 이후 처음으로 중공의 사악을 목격한 듯하다. 저명한 정치 평론가의 말을 보기로 하자. “천광청(陈光诚)의 탈출은 전 세계 매체의 광범위한 보도를 유발하였으며, 중공의 열악한 인권형상을 전 세계에 드러내는 전례 없는 상황을 조성하였다.” 비록 이 말이 편파적이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파룬궁이 겪는 고난이 더욱 가중되고 광범위해지며 파룬궁의 굴복하지 않는 반박해 정신이 천지를 널리 관통하여도, 국제사회가 이 시각장애인 변호사에게보다 파룬궁 박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는 점을 증명하였다.(물론 이것은 파룬궁이 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의 반박해는 단지 인간의 정의와 양심을 외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받는 것을 도외시하는 것은 중공의 사악한 수법과 관련된다. 중국 민중과 국제사회 모두 중공 사악한 당의 수법에 속았다고 봐야 한다.
파룬궁은 13년간 반박해의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파룬궁을 무슨 요괴로 보는 초기의 인식에서 ‘정치를 한다’라는 현재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의 잘못된 인식은 중공 사악한 당의 세뇌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해 초기에 매체들이 천지를 뒤덮을 듯이 파룬궁에 대해 요언을 날조하고 먹칠하였으며, 모든 사람이 파룬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를 표시해야만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으며, 문화혁명식의 고압과 공포 중에서 자기도 모르게 중공의 해적선에 납치되어버린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의 끊임없는 진상 알리기와 주변의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사람들은 파룬궁이 누명을 쓰고 재난을 당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파룬궁 수련생들이 그들에게 악당의 해적선을 떠나라고 권하면 ‘정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중공이 파룬궁을 먹칠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사악한 것이 곧 ‘1400 예(例)’와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사건”인데, 민중의 증오를 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파룬궁을 피하면서 자신에게 불행이 미칠까 봐 두려워하게 하니, 파룬궁 수련생들이 잔인무도한 박해를 받는 것에 어찌 관심을 두려고 하겠는가? 파룬궁이란 말을 꺼내기만 하면 사람들은 즉시 중공이 파룬궁을 모독한 ‘배를 가르고 파룬을 찾는다’, ‘약을 먹지 못하게 한다’ 등등 ‘x교’설을 연상하면서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를 인정하고 감성적으로 파룬궁의 일체 진상을 거절하는 것이다.
중공의 거짓말이 폭로되자 다른 독한 수단이 작용을 일으켰다. 즉 파룬궁이 ‘3퇴’를 권하는 것을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모독한다. 사람들은 중공 정치의 공포를 깊이 알고 있으며, 중공에 의해 ‘정치를 한다’는 대상으로 정해지면 무자비한 타격을 받게 되고 소외당하는 대상이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당 문화에 젖은 사상은 또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면서 정치는 멀리한다. 그러므로 ‘정치를 한다’라는 것은 파룬궁 진상을 깊이 이해하는 데 또 하나의 장벽이 되었다.
그런데 서방사회는 이번 시각장애인 변호사 사건에서, 중공이 경제적 이익을 미끼로 미국으로 하여금 사악한 정치와 타협하게 하여 건국의 근본을 위배하게 하고, 양심으로 정의를 굳게 지키지 못하게 하였음을 보게 되었다. 미국 역시 중공 사악한 당의 수법에 속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공은 사악한 말과 이익으로 사람들을 파룬궁과 격리시켰는데,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에 관심을 둘 때 곧 암흑의 수렁에 빠지게 되어, 정신의 파괴가 더욱 두려운 일이라는 것과 인류가 생존을 의지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파괴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진정한 재난이다.
하지만 하늘은 사람들을 후하게 대하여 사람에게 사악을 분명하게 인식할 기회를 다시 한 번 주었다. 국제사회는 이번 천광청 사건에서 인권가치에 대한 신념이 이익보다 경시되는 결과를 보았는데, 이는 경종을 크게 울린 것으로서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 중국 대륙 네티즌들의 끊임없는 비난과, 폭정에 맞서는 함성을 통해 진상을 알게 된 민중이 자신들의 불행을 조성한 폭정에 대해 얼마나 분개하는가를 볼 수 있고, 또 세상사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사람들은 머지않아 중공의 사악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일단 그들도 마찬가지로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가 그들이 생존을 의지하는 근본을 상해했다는 것과, 자신들이 중공에 오랫동안 우롱당하고 기만당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면 그들은 또 얼마나 분노하겠는가?
우리 대법제자는 정말 더욱 순정무사(純正無私)해야 하며, 더욱 심혈을 기울여 파룬궁의 일을 잘 알려야 한다. 진상이 점점 분명하게 밝혀짐에 따라 ‘사회가 진정으로 특별히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의 작자 해시처럼 각성한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의 용기와 도덕의식이 철저하게 회복될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정법이 요구하는 전 국민 반박해의 물결이 닥쳐올 것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장완성: 2012년 5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11/2571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