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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의 위엄, 정념의 힘

글/연변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이다. 법을 얻기 전에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으나 수련 이후 매우 빨리 몸이 가벼워졌고 정말로 심신의 건강을 얻어 심정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장×× 소인배가 질투심으로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했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을 박해했다. 그때 나는 중앙의 지도자들이 실정을 몰라서 그런 줄 알고 베이징으로 찾아가 그들에게 “우리는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하는데, 나라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운 점은 있어도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다. 당신들의 탄압은 뭔가 착오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는 점을 알려주려고 했다. 그래서 1999년 말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으며 그때 그곳에서 중공(중국공산당)에 불법 납치되어 1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나는 2000년 말 재차 베이징으로 갔고 다시 납치되어 또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주타이 노동교양소에 감금당했다. 주타이 노동교양소는 사악한 검은 소굴로 이름났는데 그들은 대법제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했다. 강제로 전향시키려 할 때(사람마다 태도표시를 하게 했다) 그들은 감금된 소대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나를 제일 먼저 호출을 하여 불려갔다. 한 곳으로 끌려가 보니 책상 위에 열 몇 개의 고압 전기몽둥이와 플라스틱 몽둥이가 준비돼 있었는데 그 몽둥이 끝은 톱날 모양이었다.(대법제자들을 고문할 때 그 톱날몽둥이로 겨드랑이나 대퇴부를 때리는데 살을 파고들고 뼈까지 파고들어간다.) 또 전기선의 껍질을 벗겨 만든 특수한 채찍도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위로부터 엄하게 닥달하라는 명령이 있으니 모두 전향해야 된다.” 하고 엄포를 놓았다. 나는 그들에게 “나는 전향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네가 보기에 이 고문 도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보통사람도 감당하기 힘들다. 당신은 우리가 발로 걷어차기만 해도 당신의 눈알이 빠져나올 것이다.(그들은 모두 특수훈련을 이수했다) 지금부터 너에게 3분 동안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 하고 위협을 했다.

그때 나는 놀랐으나 즉시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사부님이 말씀하셨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 (전법륜 轉法輪) 나의 말이 끝나자 나도 놀랐다. 그가 제 정신을 차렸는지, 나에게 “당신은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나중에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돌아가면서 생각해 보았다. ‘이는 정말 대법의 위력이고 사부님의 위덕이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관할하신다. 우리가 오직 법에 있다면 넘지 못할 고비가 없다.’ 그 때 거의 모든 대법제자들은 잔혹한 고문을 당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는 계속 발정념을 했으나 그런 그들을 제지시킬 수가 없었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잠시 주춤할 때 귓가에서 “그들을 고소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그들을 고소할지를 몰랐다. 후에 아마 사부님께서 또 나한테 지혜를 주신 것 같다. 나는 고소장을 쓸 생각을 했다. 나는 경찰에게 종이와 펜을 요구하면서 “당신들을 고소할 고소장을 쓸 것이다.”라 했다. 그들이 말하기를 “감히 우리를 고소하겠다고? 당신의 이 태도는 정부와 맞서는 것이다. 당신은 정말 살아있는 호랑이의 이빨을 빼려드는군, 간덩이가 하늘보다도 더 크구나!” 하고 비아냥거리고 또 윽박질렀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고 다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우리 방 책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주변에는 경찰들이 둘러서서 내가 무슨 내용을 쓰는지 눈여겨보고 있었다. 거의 2시간정도를 썼는데 그들은 계속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다 쓰고 나서 눈이 피곤해 똑똑히 볼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불러서 다시 베껴 정서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고소장을 베껴 정서를 한 사람은 중학교 교사 수련생이다. 그는 나에게 정말로 고소장을 잘 썼다고 했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이며 고소장을 써 본적이 없다. 그러나 그날은 모르는 글자도 다 쓸 수 있었는데 정말로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열어주신 것이다. 그 교사 수련생이 다 베껴 쓰고 나자, 나는 고소장을 편지봉투에 넣은 후 밀봉하지 않은 채 대대장한테 건네주며 “당신들도 이 고소장을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나를 대신해서 이걸 보내주어야 합니다. 머리 석자 위에 신령이 있으며 다른 공간 곳곳에 모두 신불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이걸 우송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모두 알게 됩니다.” 대대장은 “꼭 당신을 대신해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후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결국 그 고소장은 노동교양소 문밖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또 하루가 지났다. 나는 생각하기를 ‘이미 그들을 고소했으니, 나는 그들이 벌인 나쁜 짓을 그곳의 수감자들에게 알려 사악을 진감시켜야겠다.’ 고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또 노동교양소의 모든 경찰과 수감자들에게 알리는 공개편지를 써서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들이 내가 쓴 글을 보고나서 지도원이 나를 찾아왔다. 그 지도원은 나에게 “당신은 이곳에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당신을 다른 곳으로 보내주지요. 그곳에서는 탄압도 없고 당신을 박해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고비를 넘겼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 후 나는 ‘소년 교양대대’로 옮겨졌고, 그곳의 경찰은 아이들에게 나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이곳에서 뭘 하고 싶어 하면 뭘 하게 해야 한다. 눕거나 앉거나 다 괜찮다. 그리고 너희들은 저 사람한테서 사람이 되는 이치를 잘 배워야 한다.” 하고 말하고, 나를 향해 “아이들이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세요.” 하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소년 교양대대에서 두 달 동안을 머물렀고 그때 그들의 소위 전향도 거의 끝났다. 어느 날 그 지도원이 나를 찾아와 원래의 대대로 복귀시켰다.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서 그동안 대법제자 한 명이 구타로 사망한 것을 알았다. 그들은 또 일부 견정한 대법제자를 작은 감방에 가두고 계속하여 은밀하게 잔혹한 고문 박해를 가했다. 어느 날 작은 감방의 박해 소식을 전해 듣고 그곳의 정황을 알 수 있었다. 수련생들은 작은 감방에 갇힌 수련생을 구출하기로 결심을 하고, 소장을 만나 장기적으로 작은 감방에 갇혀 박해를 당하는 일을 제기하며 만일 이런 박해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그 엄중한 후과에 대해 노동교양소 측에서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 노동교양소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대대의 모든 대법제자를 한 곳에 집결시키고 우리를 위한 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했다. 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어 몇 발짝 간격으로 한 사람씩 도열해 섰다. 그들은 우리를 모두 큰 방으로 몰아넣었다. 어떤 대법제자가 문어귀에서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소장이 그에게 큰 소리로 들어가라고 호통을 쳤으나 그는 들어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소장은 그를 쫓아냈다. 이때 나도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며칠 지나면 노동교양처분 기간이 만료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될 터인데 잘못하다가 형기라도 연장되면 어쩌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그러나 곧 이 일에서 나는 반드시 나서서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하나의 정체로서 단지 나 개인만을 생각할 수 없으며 무사무아, 선타후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나도 이 회의 내용을 듣고 싶지 않으니 나도 나가겠다.” 그러자 잇따라 또 다른 한 대법제자가 일어나서 엄하게 그들을 질책했다.(동시에 다른 몇 명의 수련생도 일어났다.) 기타 대법제자는 모두 묵묵히 발정념을 했다. 여러 사람의 협조와 강대한 정념으로 소장의 얼굴은 화가 나서 창백해졌으며 스스로 이치에서 졌음을 알고 즉시 회의를 해산한다고 선언했다.

며칠 뒤 나는 형기가 끝나 집에 돌아오게 됐다. 그날 아침 7시도 안 돼 경찰은 나를 석방시켰다. 내가 노동교양소 문을 나서니 아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2시간 동안 걸었다. 그 때 우리 지역의 ‘610’ 요원이 우리 뒤를 쫓아왔다. 그 ‘610’ 요원은 자기가 노동교양소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를 석방시켰다고 노동교양소 관계자를 질책을 했다. 그러자 노동교양소 담당자가 “우리는 그런 걸 관계하지 않는다. 기한이 되면 석방시킨다.” 하고 답변을 했다.

2009년 자신의 집착을 놓지 못하여 나와 아내(수련생)는 모순이 생겼다. 그러나 안을 향하여 찾지 않고 안을 향하여 수련하지 않아 구세력한테 틈을 주어 고향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모함을 당하여 또 2년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나는 간수소에서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반성해 보았다. 이 침통한 교훈은 모두 법을 이탈하여 일을 하려는 마음에서 조성된 것이었다. 나는 노동교양소로 보내지는 길에서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를 외쳤다. 노동교양소에 도착할 때까지 외쳤다. 나는 도착해서 즉시 작은 감방에 감금됐다. 그곳에는 이미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매일 아침 4시부터 밤 11시까지 나무판대기 침대에 앉아 있게 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때리거나 욕을 했다. 목적은 핍박으로 전향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거의 3개월간 그곳에 갇혀있었다. 이때 노동교양소의 모든 사람들은 탄복했고 그들은 우리에게 이부자리를 깔아주고 방석을 주었다. 그때 우리 엉덩이 양쪽은 검은 자주색으로 변해 살이 다 죽어있었다. 우리 둘은 그곳에서 매일 ‘논어’와 ‘홍음’을 외웠고 또 일반 노동교양 수감자들과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해주었다. 그 뒤로 환경은 점차 느슨해졌다.

2011년 6월 성의 썩은 귀신인 ‘610’ 고(高) 모 일행은 노동교양소로 찾아와 직접 견정한 대법제자를 전향시키려 했다. 그들은 나를 첫 번째로 불러냈다.. 나는 같은 호실의 다른 수련생에게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정념을 멈추지 말고 발정념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방으로 끌려가 보니 두 줄의 긴 의자에 경찰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고 모라는 자와 그 일행들도 있었는데 방안에는 모두 경찰들이었고 카메라 촬영도 준비돼 있었다. 그때 나는 정념이 매우 족하여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자 즉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들은 전향시키려 왔는가?” 그러자 610 고 모라는 자가 거짓말을 했다. “우리는 당신을 전향시키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황을 파악하러 왔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전법륜(轉法輪)’을 읽은 적이 있는 가?” 하고 물었다. 그는 읽은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계속하여 그에게 “진선인(眞善忍)이 좋다는 걸 아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가식적으로 말했다. “알고 있다. 나는 진선인이 좋다는 점을 인정한다. 나도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더니 그는 나에게 경문 몇 단락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또 ‘전법륜(轉法輪)’을 읽어주었다. 나는 즉시 그를 제지시켰다. 나는 그를 향해 “당신은 읽지 말라!”고 했다.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하며 내가 주동적으로 반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나는 그에게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법공부를 하지 못해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당신이 글자를 빼거나 보태도 나는 알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나는 곧 가짜 경문을 들은 셈이 된다. 나의 사유도 그러면 흐트러지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당신과 낮은 층차의 것을 말하고 싶지 않다. 무슨 참으면 고요해질 것이며, 물러서면 다른 경지이며, 착한 일을 하라든지, 이러한 것을 당신과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당신한테 진선인(眞善忍)을 말해야겠다. 진선인은 우주의 특성이며 그는 우주 만사만물을 성취시키는 일종의 특성이며 만사만물에 모두 진선인의 특성이 들어있다. 진선인 특성이 없다면 일체는 모두 해체될 것이며 일체 물질의 내원은 사수(死水)이다. 우주특성으로 만사만물이 이뤄졌다. 우리는 진선인을 믿는데 당신들이 우리를 탄압하고 박해한다면 당신은 곧 진선인을 박해한 것으로 그러면 만사만물은 곧 해체될 것이다. 만일 지구가 해체된다면 당신은 어디로 갈 것인가…” 나의 말이 끝나자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가 말하기를 “당신에게 탄복한다. 당신은 어디에서 이런 것을 가져왔는가, 나는 더는 당신을 고험할 수가 없다. 나는 당신을 전향시킬 수 없다. 중국의 노동교양소를 다 다녀봤고 ××××도 전향시켰는데 오늘 당신 손에 패하게 되었구나.” 하고 말했다. 내가 다시 말하기를 “당신에게 조금 높게 말해주지. 당신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전향시켰다고 하는데 사실 그들이 정말로 전향되었겠는가? 바로 공산사령과 중공사당, 흑수와 썩은 귀신, 난신이 결탁해 직접 대법제자의 두뇌를 봉폐하고 그리고 당신들이 그들에게 가짜경문을 주어 대법제자에게 보게 해서 그들의 사유가 흐트러지게 했다. 당신들이 탄압한 것은 흐리멍덩해진 그들한테서 받아낸 보증이다. 그들이 명백해져 집에 돌아가면 또 대법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하고 말해 주었다. 나는 단지 초등학교 4학년 정도를 다닌 문화의 수준이고 10년의 세월을 노동교양소와 감옥에서 보내 법공부를 얼마 하지 못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지혜는 열렸다. 사실 610 요원이 패한 것은 나의 손에서가 아니라 사부님의 손에 패한 것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점오를 주셨고 가지해 주셨으며 지혜를 주신 것이다.

이 일이 지나서 얼마 안 돼 나는 엄관대대에서 생산대대로 옮겨졌다. 이곳은 관리가 엄하지 않고 사람도 많았다. 우리 방에는 몇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있어 함께 교류하고 법을 외웠다. 어떤 때 연공도 했고 나는 밤중에 일어나 연공을 하기도 했다. 바오쟈는 연공을 하지 못하게 했으나 나는 듣지 않았고 당직 수감자가 경찰에게 보고했다. 지도원(노동교양소 경찰)이 찾아와 어젯밤에 연공했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정념이 매우 강했다. “그렇다. 연공했다.” 지도원이 말했다. “노동교양소에서 연공해서는 안 된다.” 나는 “경(經)은 마음을 닦고 / 공(功)은 몸을 연마하네 / 훗날 원만하여 / 쩐싼런(眞善忍)이 함께 하리라”(홍음-동화) 지도원은 듣고 웃었다. “그럼 당신은 연공하도록 하세요. 다른 사람은 안 되나 할아버지는 괜찮습니다.” 하여 나는 매일 밤 1시에 일어나 동공과 정공을 연마하고 발정념을 했다. 어떤 때 바오쟈는 내가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고 나를 깨워 연공하게 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의 법 위력이 정말로 대단함을 느꼈다.

비록 생산대대에 있었으나 나는 일을 하지 않았고 매일 법을 외우고 발정념하고 연공하는 외에 복도에서 걸어 다니는 일이었다. 기회가 되면 대대장, 지도원, 경찰을 찾아 진상을 알리고 마음속의 말을 했다. 그들과 대화는 모두 나의 수련에서의 일들과 대법에서 어떻게 수혜를 얻었는가 하는 것들이었다. 또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선악에는 응보가 있으며 반드시 바른 길을 걸으며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라.”고 말해 주었다.

노동교양소 규정에 의하면 나이가 있고 몸이 좋지 않은 경우 노동교양 기한에서 절반이 넘으면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지도원한테 나와 같은 경우 집에 돌아갈 수 있냐고 물었다. 지도원은 고려해볼 것이라 했다. 며칠 지나 그들은 나에게 보석으로 출옥하는 수속을 밟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관리과장과 부과장이 나를 찾아와 대담을 했다. 그들은 나에게 집에 돌아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나에게 “집에 돌아가는 일을 누가 결정 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때 나는 사람의 관념이 움직여 “당신들이 결정하는 것이니 잘 봐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뒤로 2개월을 기다렸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는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갑자기 그 생각이 틀렸음을 생각해냈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이 결정하시는 것인데, 어찌 노동교양소가 결정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위치를 뒤바꿔 놓은 것이 아닌가?’ 내가 문제의 근원을 찾자 관리과장이 또 찾아와서 물었다. 이어서 계속 기타 경찰들이 찾아와 “당신이 집에 돌아가는 일을 누가 결정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늘 정정당당하게 “우리의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며 사부님께서 나더러 집에 돌아가라고 하시면 나는 돌아갈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대대에는 3개 대대장이 있는데 생산을 책임진 대대장과는 접촉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돌아오기 전날 생산대 대대장이 생산 작업장으로 나를 불렀다. 작업장은 노동교양소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며 유리로 격리됐다. 남북으로 두 개의 큰 작업장이 있으며 양쪽에 모두 각각 하나의 대대가 있었다. 창고작업장도 역시 유리로 격리됐다. 대대장은 나에게 창고 침대에 앉으라고 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연고가 없는 일이 없는데, 이곳에 불려오게 됨은 법을 실증하기 위함이다.’ 나는 곧 단수 입장하고 발정념을 했다. 그때 간사(干事)가 찾아와 “맞은편이 모두 유리창이라 모두 똑똑히 볼 수 있는데 당신이 이곳에서 발정념을 하면 되겠는가.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곳에 흑수와 난귀가 너무나 많다. 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 사람을 교란할 것이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정 그렇다면 돌아앉아 벽을 보고 발정념을 하라.”고 했다. 나는 “안 된다. 맞은편 대대의 작업 현장이 있으니 반드시 그들을 향하여 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곧 다른 교양경찰을 찾아 나를 단속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 교양경찰은 진상을 알고 있어 당장 나를 어떻게 하지는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 생산대대 대대장이 들어왔다. 그는 내가 입장하고 발정념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이 늙은이는 봐주면 봐줄수록 더 한다!”고 하면서 곧 나를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어찌할 방법이 없자 바오쟈를 불러 데리고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돌아가면서 생각하기를 ‘내가 대법을 실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도해야 한다.’ 이튿날 나는 시간을 내어 생산대대장을 찾아갔다. 그는 나에게 반 시간 동안을 외쳐댔다. 나중에 조용해졌고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이튿날 오후 지도원이 왔다. 음료수 2박스를 가져와 우리 대대 모든 노동교양소에 수감된 사람들과 함께 파티를 열었다.(사실은 나를 위한 환송회였다.) 그가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대법제자이다. 당신들은 마땅히 이 할아버지를 따라 배워야 한다. 당신들이 보라, 이 할아버지는 줄곧 전향하지 않았어도 잘 보낼 수 있었고 진상도 알렸고 대법도 실증했다. …” 나는 아마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어 나를 고무 격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지도원은 나를 불러 “내가 당신을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모릅니다.” “이미 당신 아들한테 통지해 당신을 마중 오게 했습니다. 일체 수속절차를 다 밟아놓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다그쳐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자신을 하루빨리 제고시켰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 나는 아내(수련생)와 함께 진상자료를 배부하고 아내는 또 인터넷을 개통해 가정 자료점을 꾸리려 했다. 아내의 문화수준이 낮아 책임을 다 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져 걱정을 했는데 아내는 신심이 가득했다. 자료점을 세우려면 경제적으로도 뒷받침이 돼야 하고 관련 기술이 있는 수련생의 도움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자료점을 세웠다. 진상 소책자, 스티커, 션윈 공연 CD 등을 모두 제작해낼 수 있었다. 이 모두는 사부님의 가호로 맺어진 과실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모순도 적잖았다. 법공부를 통하여 안을 향해 찾아야 함을 알고 있으나 모순이 발생하면 나는 여전히 아내에게 안을 향해 찾으라 했고, 그러면 아내는 나를 보고 안을 향해 찾으라고 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사부님의 말씀을 장난스럽게 인용을 하며 말하는 등 늘 엄숙하게 수련을 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하여 많은 개변이 됐다. 법공부를 통하여 인식이 진일보 되어 이제는 반드시 대면하여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도 신경문에서 걸어 나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도하라고 언급하셨다. 우리는 곧 걸어 나와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기로 결정했다. 현재 우리는 오전에 법공부하고 점심때에 발정념하고 오후에 진상을 알린 후 밤에는 진상자료를 제작한다. 시간배치가 매우 긴박하지만 매일 10~20여명을 구도할 수 있다. 모두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우리 주변에 이끌어주셨고 많을 경우 삼사십 명, 오륙십 명을 삼퇴시킬 수 있었다. 한 번은 건설현장에서 동시에 몇 십 명을 삼퇴시켰다. 우리는 삼퇴시킨 후 꼭 작은 소책자와 CD를 건네주어 집에 돌아가서 자세히 보고 진일보로 진상을 알도록 했다. 어떤 때 경찰 혹은 사복경찰을 만나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삼퇴시킬 수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위험이 있었으나 안전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정당당하게 사람을 구도한다면 사악은 교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이며 수련의 이 길에서 사존께서 자비롭게 십몇 년의 세월을 가호해 주셨으니 써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나로 놓고 말하면 크게 넘어졌고 박해도 많이 당했으며 세 차례 노동교양처분, 한 차례 형사재판 판결을 받았다. 감옥과 노동교양소에서 9년의 세월을 보냈다. 정말 모두 써 낸다면 며칠 밤을 새워도 다 쓰지 못 할 것이다. 단지 몇 가지 사실만 간추려서 사부님께 보고 드린 것이다. 수련생들은 수련의 길에서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 바르지 않은 곳이 있으면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2년 5월 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4/2558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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