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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 수심에 주의

글/ 칭위(清玉)

[밍후이왕] 최근 해외의 개별 수련생들이 늘 산의 소식을 즐겨 전한다. 예를 들면 어느 수련생이 어떠하다, 사부가 어느 수련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셨다, 자신이 전세에는 누구였다는 등등인데 엄중하게 현지의 수련을 교란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 한 것으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그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다.” “그러므로 씬싱 수련을 중히 여겨야만 당신의 공이 비로소 자랄 수 있으며, 층차가 비로소 제고될 수 있다.”(전법륜) 라고 하셨지 종래로 골목소식을 많이 장악하였다고 전세에 사람 중에서의 직위가 높고 곧 층차가 높은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모두 수련생이 집착심을 가지고 있어 사오한 것이다. 사람을 구도하는 각자는 주변 사람들을 직접 고층차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하늘에서 직접 이 사람을 맞아가는 것이 더욱 편리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람은 수련해야하며 씬씽도 그 층차에 도달하여야만 비로소 거기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사부님 곁에 있다 하더라도 모두 수련하여 올라가야 하지 않는가? 사실 사부님의 법은 책에서 이미 모두 이야기 하셨다.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 설법에서 모두 발표하셨고 사부님께서는 작은 범위에서는 큰 범위에서처럼 이렇게 설법하시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들 이런 골목 소식에 집착하여 얻는 것이 무엇인가?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여러 차례 이 점을 제기하셨다. “우리는 억을 넘는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는데 매 사람은 모두 다 여러분들처럼 오늘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있으며, 내가 당신들에게 한 명 한 명씩 상대로 말해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법을 전하였기에 나는 또 당신을 책임져야 한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수련하여 올라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채용하였으며, 당신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과 내가 당신들을 도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그 한부의 법속에 압축해 넣었는데 단지 당신 자신이 얻으려고 하는가 하지 않는가만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나를 보지 못하더라도 마땅히 법을 스승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서의 설법) 그렇다면 골목 소식에 집착하는 수련생들은 그때 왜 사부님께서 지면에 남겨 놓은 설법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반대로 골목에서 들은 것만이 편득(偏得)이고 듣지 못했다면 잃는다(失去)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사부님께서 위에서 하신 설법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부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미혹되어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모두 무슨 마음인가? 환희심, 사심, 과시심, 구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그 밖에 대법제자가 전세에 모두 일찍이 사부님을 따라 오천년 문명을 개창하였다. 어떤 수련생들은 늘 누구누구는 전생에 분명 사부님 신변의 무슨 무슨 사람이라고 즐겨 말하는데 모두 확실한 근거는 없음에도 흥미진진하게 말하면서 어떠어떠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자심생마가 아닌가. 그래 정말 누구였다고 한다면 수련하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사실 생생세세 다들 모두가 사부님의 친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하여 사부님과의 그런 신성한 연분을 장난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마치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전세의 신분은 모두 금세의 수련을 대체할 수 없고 다만 문화를 다졌을 뿐이며 그 배역을 당신이 연출할 수도 있고 그도 연출할 수 있다. 또 어떤 수련생은 반면(反面) 배역을 선택하여 연출하였다고 하여 그들이 금세 역시 대법에 대한 반면인가? 그런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사람 마음으로 이런 일들을 인식하여 우리의 수련을 가로 막게 해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는 모두 정과를 수련해 내야 하는 것이지 수련하여 속인 중의 그 무슨 황제의 친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또 다른 사람으로 전생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악비가 어렸을 때 집은 몹시 가난하였고 황제의 친척은 더구나 아니었다. 그렇다면 현재 사람 마음을 품고 어떻게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문화를 다진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정법인가? 사실 수련생들이 이 방면에 대한 인식은 아직까지도 매우 척박하다.

그 밖에 내면에서 아직도 이러한바 전세에는 누구였다는 것을 빌어 자신이 금생에 잘 수련 하지 않은 것을 회피하며 골목 소식으로 자신을 높이 추켜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모두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하는 것에 구실을 찾게 했고 이런 구실은 역으로 수련을 더욱 저애한다. 정말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남도 속인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내가 누구인지를 막론하고 사부님의 신변에 있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세 가지 일을 참답게 해야 한다. 정말로 수련하여 올라가야 하며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리라” ( 홍음-연귀 성과)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 중의 무엇에 집착한다면 다만 사람일 따름이다.

개인의 체험이다. 합당하지 못한데 대해 자비한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 완성: 2012년 5월 4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4/2566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