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역시 정념을 말해보자

글/따렌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우리 고장 대법제자 여럿이 단체 법 공부할 때 현지 치보주임(治保主任)과 경찰 한 명이 소란을 피웠다. 사후에 수련생들이 이 일을 교류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물었더니 수련생은 그 경찰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른다고 하였는데, 그때 두려워서 감히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다. 일의 경과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바로 ‘두려운 마음’, ‘정념이 없었다.’이다. 한 수련생이 그 수련생에게 정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한나절이나 생각하고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며칠 전에 수련생 2명이 한 시골 마을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잠복 경찰 3명에게 잡혔는데, 그중 한 수련생이 경찰에게 직접 진상을 알렸다. 그녀는 “나는 진작부터 당신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당신들에게서 박해를 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으니 당신들에게 진상을 말해야겠다. 당신들은 경찰로서 마땅히 국민의 합법적인 권리를 수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며, 선념에 입각하여 사람을 구할 뿐 그 어떤 법률도 어기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박해하라고 명령을 내린 소수 집권자, 그들이야말로 법을 어긴 것이다……. 당신들은 복장이 다를 뿐, 당신들 역시 사람으로서 똑같이 형제자매가 있고 똑같이 우리가 구도해야 할 대상이다…….”라고 했다. 나중에 장자석(藏字石)으로부터 천멸중공까지 이야기하였다. 결국, 세 경찰은 모두 탈당하고 나서 “가십시오. 우리는 당신들이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말을 잘합니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아직 배포하지 못한 소책자가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다. 수련생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았으며, 시간이 아주 긴박하여 이것만 가지고 급히 왔다고 하자 세 경찰은 갔다.

나는 그 무슨 평론을 하고자 하지 않는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한 부의 대법을 수련하면서 무엇이 정념이고 무엇이 사람 마음인지, 이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수련생으로서 우리는 누구를 높이 치켜세우려고도 하지 않고, 또한 누구를 낮추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저 법리상에서 교류하고자 할 뿐이다. 기왕 두려운 마음이 나왔으니 우리 이 두려운 마음을 말해 보기로 하자. 왜 두려운가? 무엇이 두려운가? 실은 말하자면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이 두려움을 말하자면, 바로 중공이 정권을 건립한 이래 각종 운동을 통하여, 사람을 다스리는 각종 수단을 통하여 사람을 두렵게 하였던 것이며, 이 십몇 년 동안의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 중에서 더욱 강화된 것이다. 중공의 통치는 폭력과 거짓말에 따르는바, 폭력의 목적은 바로 당신더러 그것을 두려워하게 하려는 것이고, 거짓말은 단지 폭력의 윤활제로서 사람을 미혹시키는 데 쓰일 뿐이다. 대법제자에게는 대법이 있어 미혹을 깰 수 있으므로 거짓말에 미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폭력은 대법제자 앞에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것이다. 특히 이 몇 년 사이 대법제자가 박해로 죽게 되고, 불구가 되고, 판결을 받고, 노동교양을 당하는 일이 속속 벌어짐으로써 이 두려움도 점차 강화되었다. 그러므로 사람 마음의 각도에서 말한다면 나는 수련생들의 두려워하는 마음이 잘 이해된다.

방금 나는 두려움을 이야기했는데, 지금 무엇이 두려운가를 다시 한번 말하고자 한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이 두렵고, 불구가 두렵고, 판결이 두려우며, 노동교양이 두렵고, 자신의 생활이 영향받을까 봐 두려우며, 자신의 행복한 생활이 파괴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저 이럴 뿐이다. 그렇다면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편안하고, 즐겁고, 건강하게 백 살까지 오래 사는 것인가? 이는 속인이 추구하는 것인데 이 한 점은 대법제자마다 모두 명백하리라 생각한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무얼 요구하는가? 사부님께서는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에서 “그에게 어떻게 수련하도록 하겠는가에 관해서는, 다만 선(善)을 권할 수 있을 뿐이며 무슨 특수한 방법이 없다. 무엇을 요구하는가는 사람 자신이 결정한다.”라고 말씀하였다. 그렇다, 무엇을 요구하는가는 우리 자신이 결정한다. 가령 우리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해치는 것들도 영원히 우리를 멀리할 것이다. 특히 병업의 가상에 시달리는 수련생은 자신의 뿌리를 파 본다면 틀림없이 건강에 대한 추구와 집착이 있을 것인데, 당신이 자신의 건강에 주의를 돌리지 않으면 또 어디에서 ‘병’이 오겠는가? 가령 속인 생활에 대한 추구와 미련이 없다면 속인의 층차 면에서 악인의 탄압과 박해가 또 어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무엇이 정념인가?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2’의 ‘역시 두 세 마디를 말하다’에서 “우주진리(宇宙眞理)에 대하여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는 정념(正念)은 선량한 대법제자의 반석같이 확고한 금강지체(金剛之體)를 구성했으며, 일체 사악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케 했고, 방사(放射)해 낸 진리의 빛은 일체 생명의 바르지 못한 사상 요소를 해체시켰다. 얼마만큼 강한 정념(正念)이 있으면 그만큼 큰 위력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법제자의 정념이란 바로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라고 여긴다. 이 신념이 얼마만큼 강하면 그만한 위력이 있으며, 당신이 대법제자는 병이 없다고 확고히 믿는다면 병마의 가상이 당신의 몸에 오르지 못할 것이며, 당신이 대법 중에서 수련 성취한 금강불괴의 신체는 악인이 어떤 수단을 취하든지 모두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확고히 믿는다면 악인은 정말로 당신에 대해 어쩔 방법이 없을 것이며, 정법 중에서 악인이 어떻게 허장성세하든지 모두 소용없고 사부님이 결정하신다는 것을 확고히 믿는다면 정말로 위험이 사라지고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 반대로 만약 당신이 자신에게는 정념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자신이 대법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이 없음을 승인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이 역시 바로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근본 구실이다. 그들은 바로 대법 중에서 그럭저럭 지내려는 사람을 찾아내어 정리해버리려 한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건대 진수하는 대법제자로서 우리에게는 정말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대법 중에서 우리의 정념을 닦아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비로소 우리가 최후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아울러 자신의 사전 대원을 완수할 수 있는 근본 보증이다.

최근 한동안 신변에 많은 일이 발생했는데, 어떤 수련생은 구세력에게 끌려가 인체를 잃었고, 또 어떤 수련생은 병업 가상의 시달림이 엄청나게 심각하며, 또 어떤 수련생은 악한 사람과 흉악한 경찰에게 소란당하고, 또 어떤 수련생은 경제상 엄중한 박해를 당하고 있으며……. 이런 일을 같은 수련생이며 정체의 일원인 우리더러 보게 하고 듣게 한 데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수련해야 할 요소가 있다. 나는 우리의 어느 방면에서 구세력에게 틈탈 기회를 주었는가를 생각했다. 법 공부를 마치고 이 일에 대해 수련생과 교류하였는데 수련생의 한 마디가 나를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바로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지 않고, 자신을 참답게 수련하지 않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우리더러 안으로 찾고 안으로 찾으라고 재삼 경고하셨는데 자신은 왜 중시하지 못했을까. 명백해져 돌이켜 생각하니 나는 좀 두려웠다. 사오한 사람들을 보니 표면상으로는 서로 같은 데가 없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같았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은 것인데, 말은 잘하지만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지 않고 이렇게 깨닫고 저렇게 깨달으며, 방패막이를 한다. 법은 우리의 착실한 수련을 지도하는 것이지 우리더러 방패막이하는 데 쓰라는 것이 아니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 (홍음-착실한 수련) 여기까지 쓰고 나자 나는 정념에 대하여 또 새로운 인식이 있게 되었다. 그것은 믿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대법에 따라 해야 하며, 해낼 수 있어야만 비로소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최후일수록 수련의 엄숙성을 더 느끼게 된다. 법을 얻은 초기에는 사람 마음이 지금보다 더 많았지만, 오직 법 공부를 하기만 하면 제고되었다. 지금은 다르다. 세 가지 일을 다 하지만 무슨 진전이 없는 것 같다. 그러므로 예전 방식대로 해서는 이젠 안 된다. 사람 마음을 발견하면 반드시 잡아 쥐고 닦아버려야 한다. 이를테면 두려운 마음이라든가, 사심이라든가,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라든가 하는 등등으로서 어느 한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 때문에 지치고, 얽매이고 마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상은 최근에 나타난 일부 문제를 겨냥한 자그마한 소감으로, 수련생과 교류하고자 한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3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3/7/2538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