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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는 어디에서나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다그쳐야 한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나는 베이징 딸집에 출산을 기다리는 딸과 갓 태어날 아이를 돌보러 왔다.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해야 하는가는 내가 당시에 직면한 난제였다. 어려운 것은 첫째는 시간이 대량으로 점용당하고 집안일이 끝없이 많은 것이며 둘째는 진상자료가 없어서 밍후이 소식을 볼 수 없었고 현지 대법제자와 접촉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베이징 주민구역은 관리가 치밀해 감시카메라와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을 사방에서 볼 수 있으며, 넷째는 사위 집 가족들은 대법진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등등이었다. 이 모두는 내가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아주 큰 장애와 방해를 조성했다.

나는 1995년에 운좋게 법을 얻은 대법제자인데 법을 얻은 후 줄곧 확고하게 대법을 수련하는 길에서 걸어왔다. 위대하신 사부님의 끊임없는 보살핌 하에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대법자료를 전달했으며 컴퓨터를 배워 가정 자료점을 만들고 협조했다. 자신의 수련환경은 점점 여유가 있게 됐고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이미 압력을 느낄 수 없었다.

베이징에 온 후 전체 환경에 변화가 발생했다. 딸집에서 내가 밍후이왕에 오르려 하자 딸은 “어머니 안 됩니다. 베이징은 인터넷 관리가 엄해서 만약 조사해 낸다면 우리 밥그릇도 없게 돼요”라고 했다. 딸과 사위는 모두 공안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딸은 이미 퇴당했고 대법에 대해서도 일정한 인식이 있지만 필경 속인은 자기의 이익을 더욱 많이 고려하게 된다. 내가 그의 시부모에게 진상을 얘기하려고 하자 그는 또 “됐어요. 믿지 않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원래 이 시간동안 딸을 돌보기에 바빴기에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해 마음이 워낙 초조하고 안달이 났는데 이 말을 듣자 화가 확 치밀어 올랐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데 그럼 난 여기에 있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했다. 이를 빌어 딸에게 화풀이하고 딸 앞에서 위세를 부렸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아주 정진했지만 세 가지 일을 잘못해 쉽게 화를 내는 것은 사실 위사위아의 대 폭로였다. 일에 부딪히면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밖으로 찾았는데 실은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하고 진정한 선을 수련해내지 못한 것이다. 자기의 뜻과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일에 부딪히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지난 후에 잘못된 것임을 알았는데 이때는 법을 학습했다. 법은 나로 하여금 평정을 되찾게 했는데 나는 여기에서 세 가지 일을 하는데 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난도가 있기 때문에 대법제자가 와서 하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속인들이 두 손 들어 찬성을 하면서 일제히 지지를 한다면 이는 법정인간이며 대법제자가 와서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선 자신이 속인 중에서의 배역에 대해 잘 연출해 대법제자의 진실, 선량, 참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시에 각종 교란에 흔들리지 않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베이징에 올 때 가져온 일부 진상자료, CD, 호신부도 모두 다 배포해 나는 손으로 써서 진상 스티커를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 곳을 찾아 헤매는 고향 수련생하고 연계했는데 그도 베이징 현지 수련생하고 연계가 없었기 때문에 진상자료도 없었고 효과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없었다. 또 한 수련생은 베이징에 와서 딸이 아이 낳는 것을 돌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각 지역 설법 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환경이 변했지만 대법제자의 사명은 변하지 않았고 누구도 환경이 개변되었다하여 대법제자의 사명과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정황은 나로 하여금 꼭 내가 수련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2004년부터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랐다.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수련생이 손에 손을 잡고 가르쳐서 비로소 인터넷, 다운로드, 편집, 편집 배열, 프린터, 포토샵 그림편집, CD굽기, 시스템설치를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배운 기능은 지금 마침 용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대법제자의 사명은 어디에 있던지 모두 시간을 다그쳐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어렵든지 자료점을 세우는 것을 즉시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자신과 수련생에게 사람을 구도하는 진상자료를 제공해 주기 위해서다.

대법제자는 어디에 있든지 모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하물며 가족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는 내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잘하려고 노력했지만 대법제자는 또한 마땅히 자기의 권리와 이익을 옹호해야 하지 원칙 없이 속인의 모든 요구에 타협해서는 안 된다. 나는 자녀하고 매주 적어도 하루는 휴일을 가지겠다고 협상했고 시간은 내가 관리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됩니다. 이틀 쉬세요. 휴식을 더 잘하기 위해 이 이틀은 여기에 있지 말고 우리 집에 가 계셔요.(딸은 아이를 낳으려고 잠시 시댁에 와 있었는데 자기 집은 비워두고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금요일 저녁에 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오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두 손으로 허스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러한 조건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우선 중관촌 IT성에 가서 프린터, CD굽기 기계와 여러 가지 소모품을 구매했다. 우선 2009년 션윈 CD를 굽고 CD포장지를 프린트 했으며 또 ‘우리는 미래에게 알려 준다’를 3치(약 9cm) 되는 작은 DVD로 편집했다.(이런 종류의 CD는 베이징지역에서 배포하기 쉽다) 한편으로 작고 정교해 놓기가 쉽고 다른 한편으로 컴퓨터가 있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자료를 다 만든 후 각각 두 수련생에게 보내주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격려해 주셨는데 나로 하여금 가부좌를 할 때 활짝 핀 작은 꽃을 보게 하셨다.

일요일에 돌아갈 때 일부 진상CD를 갖고 거주 지역 주위에 있는 그런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가져다주었다. 대법제자는 어디에 가든지 모두 그곳 중생을 구도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매주 이렇게 세 곳에 다니면서 바빴고 특히 주말에는 세 사람이 한 주 진상을 얘기할 때 사용할 진상자료를 만들어야 하고 동시에 법학습과 발정념도 될수록 지체하지 말아야 했다. 배가 고프면 라면 한 그릇으로 때웠고 저녁마다 3시간 남짓만 잠을 잤다. 피곤하지 않고 고달프지 않았으며 오로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주 착실하다고 느꼈다. 앞 단락 시간의 그러한 초조하고 불안하며 하늘에도 땅에도 닿아 있지 않는 그러한 감각은 완전히 사라졌는데 나는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가 진정으로 가져야 할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2010년 5월 중순, 딸 가족은 자기의 거처로 돌아가 가정부를 청하려 했는데 내 직책은 아이를 돌보는 것이었다. 이러면 내 자료점은 어떻게 운행되는가? 이 일을 그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되는데 여기는 필경 사악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반드시 이지적이고 명석하며 지혜롭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도하는 큰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나는 딸과 의논해 매주 하루는 보모와 아이를 할머니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의논했는데 왜냐하면 아이를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나도 편안하게 하루 휴식하고 싶었지만 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아이가 너무 작아 밖에 하루 나가는 것이 아주 어려우며 어른과 아이가 모두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딸과 사위는 모두 고령으로서 결혼 여러 해 지난 후 아이가 생겨 지나치게 아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래도 동의를 했다. 나는 속으로 딸에게 “아이야, 너는 공짜로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내 이 작은 꽃은 지금까지 여전히 피고 있었고 더욱이 이번 해 초에 나는 수시로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셔서 사악의 봉쇄를 돌파할 수 있게 해주셨는데 속인에게서 체현되는 것은 아이들이 더는 내가 밍후이왕에 오르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이다. 몇 년 동안 2009, 2010, 2011년 션윈 공연, ‘9평공산당’ 작은 CD, ‘우리는 미래에게 알린다(我們告訴未來)’,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 ‘정치에서 나오다’ 등 VCD, DVD를 대량으로 구웠다. 게다가 진상지폐, 선행을 권하는 편지 등등을 썼는데 이러한 자료를 여러 크고 작은 매장, 슈퍼마켓, 주민, 길옆에 세워진 여러 차량에 나누어 주었다.

기억하건대 작년 설쯤 어느 하루, 한 장의 ‘9평’CD를 고급승용차 바람막이 유리 앞에 놓았다. 머리를 돌려 보니 안에 있던 사람이 마침 나를 보고 있었는데 차안에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놀라면서 조금 당황했다. 즉시 일념을 내보냈는데 안에 있는 사람을 정지시켜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든 모두 나를 박해하지 못하며 내가 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바른 일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정정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갔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집에 돌아갔다. 또 한 번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는 것을 체현했다.

며칠 전 나는 부근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면서 진상 화폐를 사용하려 했다. 큰 방에 사람이 꽉 찬 것을 보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았고 모여서 함께 ‘홍가(紅歌-공산당 찬양가)’를 부르고 있었다. 속으로 ‘이 사당(邪黨)은 또 사람을 해치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물어보았는데 사회구역에서 조직한 것으로 매일 여기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속으로 좀 창피했는데 내 주위에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모른 채 사당을 따라 바보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이는 무덤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깨달으면 금산을 주어도 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대법제자 어깨 위에 있는 부담이 얼마나 무거우며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꼈다. 처음으로 이렇게 깊이 사부님께서 왜 이토록 대법제자에게 사람을 구해라, 사람을 구해라, 사람을 구해라 라고 신신당부하시는지 깊이 느끼게 됐다. 사악도 분초를 다투어 지옥으로 사람을 이끌고 가는데 수련생은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문장발표: 2012년 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2/26/2534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