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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실증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실증하는가’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요즘 ‘전법륜’을 배울 때와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을 배울 때 법리 뒤의 내포가 자주 나타난다. 심지어 책에 평범한 한마디 배후에 모 경지의 내포는 일단 전개되면 비할 바 없이 수승하고 현묘하고 진동하게 한다. 나는 이제야 ‘전법륜’ 중 매 글자는 모두 빛이 끝없고 아름답기가 비할 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매 한마디 글자는 비할 바 없이 거대하고 배후의 내포는 무한하게 홍대한 진상이고 현실이다.

예를 들면 이전에 나는 ‘불이법문’에 대한 인식은 바로 기타 종교 혹은 기공 책을 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어느 날 확 트이게 ‘불이법문’은 더욱 깊은 내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창세주에 대한 믿음은 유일한 것이고 절대적으로 엄숙하고 신성하며 완전히 철저히 일체 자신의 관념과 사상에 대한 집착심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미래 새로운 우주의 배치와 구조에 연관되며 비할 바 없이 엄숙한 일이다. 그리고 “전화가 오거나 다른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 당신은 즉시 가서 일을 보아도 되며 공을 거둘 필요가 없다”(전법륜)를 읽을 때 전에 나는 다만 평범한 한마디로 읽고 지나갔다.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할 때 이 한마디 배후에는 모 경지의 내포가 전개된다. 나는 눈에 확 트이게 우주대법은 정말로 홍대하고 상상할 수 없고 정교하고 오묘하다는 것을 알았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홍대하고 정교한 배치와 장악 중에 있고 정말로 현묘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런 것을 알고 나는 이전에 대법을 배울 때 나의 소위 ‘확고함’은 사실 바로 ‘위아위사’의 기초에서 건립된 것임을 알았다. 예를 들면 법공부를 할 때 자신을 ‘바로잡기’ 위해서 하고 그래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 중국대륙의 엄숙한 환경에서 박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법리를 깨달은 후 은근히 일종 환희심에 잠겨있었고 자신이 자신을 보기에도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일단 두려운 마음이 그렇게 강렬하지 않으면 즉시 일종 오만이나 쟁투심이 나타나며 ‘어떤 사악도 전부 소위 상관없는 물건이며 두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하는 과정에서 주변 환경이 점차 느슨해져 일종 성취감에 잠겨있고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기 싫고 이런 환경에 기대고 싶으며 심지어 이런 환경에서 ‘퇴직한 노인’처럼 지내려는 나태한 생각이 생긴다. 몇 년간 대법은 나에게 초상적인 지혜를 주어 속인의 직장환경에서 주변 동료들이 모두 나를 존경하고 탄복하며 언제나 칭찬하게 했다. 모두 내가 직장 중에서 정말로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선량하며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 삼퇴를 시켜 그들을 구했다고 인식했으므로 처음에 나는 자연히 이 일체를 받아들이고 모두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직원을 가르칠 때 그들에게 모두 정의와 선한 이치를 말하고 기업전체문화를 계획하고 각종 활동을 안배할 때 모두 전통문화를 기초로 했는데 이것은 모두 그들을 위해 사악의 당(黨)문화를 멀리 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일단 대법 진상을 알고 삼퇴를 하면 나와 생명의 장벽이 없어지고 나를 존경하게 된다.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하지만 현재 나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으로 이미 정법에 교란 작용을 한다. 바로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그는 부동한 층차에서 개공개오하여 조그마한 이치를 보았지만, 그는 사람을 제도하는 각자(覺者)와는 차이가 너무 크며 그는 아주 낮다. 그는 조그마한 이치를 발견했는데, 속인 중의 일부 일들은 잘못된 것임을 발견했으며, 그 역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좋은 일을 하라고 알려주고, 시작할 때에는 다른 종교를 반대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최후에 그를 신봉했고 그가 한 말에 이치가 있다고 여겼으며, 그런 다음 갈수록 그를 더 믿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고 종교를 숭배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이 이미 이런 두려운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발견했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마침내 후회하고 ‘자심생마’의 염두와 집착을 청리하기 시작했다.

모 정도에서 나는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신을 믿는 사람 중에 가장 낮은 층차에 있는 사람이고 몇 년을 수련했는데 언제나 ‘자신이 어떠어떠하다’ 위주로 문제를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에야 진정으로 ‘경사경법’의 진정한 함의를 알게 되고 법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우주 대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홍대한 내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어 보이고 자신이 우주대법 앞에서 정말로 보잘 것 없어 보였는데 정말로 겸손한 마음으로 도를 닦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이징에 사악을 도와 사오한 사람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데 참가해 밍후이왕에서 그녀의 악행과 핸드폰 번호를 폭로했다.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그녀가 그렇게 하지 말 것을 권했다. 그녀는 회신 메시지에 ‘사부(師父)를 ’사부(師付)로 썼다. 이 두 단어 사이는 천리나 차이가 난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사부’ 이 두 글자의 의의를 모르는데 사악의 압력 앞에 강대한 정념이 있을 수 있겠는가?

법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나는 천천히 알게 됐는데 중생은 모두 법을 위해 왔다. 주변 속인도 이전에 모두 신의 영예를 포기하고 사부님을 따라 이런 사악한 공간에 왔으며 생명의 본질상 그들은 사부님을 존경하고 대법을 존경한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했는데 만약 속인이 진상을 알고 우리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를 말하고 혹은 우리의 사부님을 존경하면 이것이야 말로 정확한 환경상태다! 나는 마땅히 더욱 깊이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해야 한다. 뒤돌아보면 전에 했던 일체는 정말로 너무나 천박하다. ‘법’을 실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는 것이지 ‘자신’이 아니다. 나는 대법 진상을 더욱 깊이 말해야 하며 진정으로 주변 속인이 대법 진상에 대해 더욱 정확한 인식이 있으면 좋겠다고 인식했다.

때로 어떤 수련생은 질투심이 강하고 법공부를 해서 알게 된 일부 이치로 주변 사람을 평가하며, 자신을 실속 있게 수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심리를 일종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내심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한수 높아 보이고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런저런 결점과 부족함을 원망하며, 언제나 자신의 경지에 만족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과 모순이 발생한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위해 우리를 위해 그렇게 거대한 상상할 수 없는 마난을 감당하셨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는 것은 모두 수승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위대한 조물주의 흉금인가! 우리는 아직 그런 질투심을 내려놓을 수 없는가? 그리고 중생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고 우리 주변 수련생과 세간의 중생은 근본적인 문제에서 어떤 모순도 있을 수 없다! 사부님의 ‘홍음3-번거로움’에서 “천지는 정법의 길을 막지 못하는데 다만 제자들의 사람 마음이 길을 막네”라고 하셨다. 나는 감촉이 깊다. 자신이 부끄럽고 자신이 잘못해 사부님께서 더욱 고생하셨다.

내가 이해한 것은 나로 말하면 가장 큰 선은 바로 경사경법이다. ‘무사무아’는 바로 전체 생명으로 사부님을 존경하고 사부님께 바치며 완전히 사부님께서 배치한 대로 하고 어느 때 어느 장소든지 다 사부님의 염원과 정법의 요구를 생각하며 완전히 사부님 요구대로 일체를 원용하고 완전히 사부님의 말씀대로 한다. 일사일념을 바로 그렇게 한다. 만약 진정으로 실속 있게 수련하지 않으면 대법의 더욱 깊은 내포와 사부님의 정법요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다. 그러면 이렇게 엄숙한 우주 정법 일에서 자신과 정법의 관계를 바로 잡기 힘들다. 그러면 이런 구세력의 강화된 마난에서 걸어 나오기 힘들고 진정으로 ‘법을 실증’하고 조사정법과 중생구도하기가 힘이 든다.

문장발표: 2012년 2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2/8/2528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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