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 중에서 성숙 (1)
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동료 수련자 집에서 나와 먼 거리에 있는 여관을 향해 큰길을 걸으면서도 택시를 부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밤길에 합당한 여관을 찾아가느라고 몇 리 길을 무조건 걸을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10리나 되는 거리도 걸었다. 혹시 시간이 늦어지면 여관 문이 닫힐까 봐 뛰어갈 때도 있었다. 몇 년 동안 이렇게 자주 도시를 오고 갔지만 어떤 수련생도 나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금생금세에 다행히 대법제자로 되어 사부님과 함께 정법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모두 신성한 것인데 어떻게 고생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만약 고생을 두려워한다면 사부님을 따라 앞으로 전진 할 수 없다. 번잡한 세상에 독해되어 세간의 명리정에 생명이 부식되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두렵다.” – 본문 중에서.
자비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인터넷 법회를 통하여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중에서 자신이 수련한 일부 체험을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교류하고자 한다.
1. 법공부를 잘하고 심성 수련하여 대법에 동화되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大法弟子의 위대함은 당신들이 사부가 정법하는 시기와 함께 있으며 大法을 수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정진요지2 –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반드시 시시각각 대법을 수호하고 실증해야만 자신이 세간에 존재한다는 근본적인 의의를 알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몇 년간 나는 줄곧 자료점과 협조인 일을 하였다. 나중에 자료점이 많아짐에 따라 우리 자료점의 일이 많이 줄어들게 되어 몇 년 전처럼 그렇게 바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법은 자신의 수련에 대한 요구가 더욱 엄격했다.
몇 년 동안 나는 늘 법공부를 참답게 함을 견지했다. 오직 법공부를 잘해야만 자신의 수련을 보장할 수 있고 대법의 일을 잘할 수 있다. 비록 자료점의 일이 제일 바쁠 시기라 하더라도 틈을 내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는 것을 견지했다. 매일 법공부가 제일 좋은 상태에 도달했을 때에는 정말로 마디마디가 마음에 와 닿았는데 강대한 에너지가 법으로부터 들어와 온몸을 포용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설령 추운 겨울이라 해도 역시 몸과 마음이 훈훈하고 따뜻하여 아주 편안하였으며 법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그런 절실함을 느꼈다. 진정으로 법공부가 마음에 와 닿을 때는 무슨 일을 해야겠다고 하면 법이 곧바로 자신에게 점화 해 준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법공부를 하고 있을 때 법 중에서 나에게 ‘모모 지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점화해 주었다.’ 나는 다급히 그 모모 지역 수련생 집으로 갔다. 수련생은 나를 보자마자 기뻐하면서 “마침 잘 왔다.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하면서 “여기에 박해를 폭로한 문장이 있다.”라고 했다. 나는 그 문장을 정리한 후 즉시 밍후이왕에 보냈다. 이런 예는 많았지만, 더 말하지 않겠다. 오직 사부님을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법공부를 한다면 곧바로 이러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매번 법공부를 할 때마다 모두 이런 좋은 상태인 것은 아니다. 일이 많아 사람의 마음이 올라올 때면 역시 법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늘 되도록 이 좋지 못한 상태를 돌파했다. 왜냐하면, 나는 법공부는 형식에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만약 임무 완성으로 생각한다면 결과는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으면 바로 자신을 기만하는 것으로 된다.
나는 주로 ‘전법륜(轉法輪)’을 많이 공부하고 그 외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여러 번 참답게 공부했다. 더욱이 박해가 시작된 후의 모든 사부님의 설법은 우리에게 고난 속에서 어떻게 잘 걷고 바르게 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셨는데 모두 겨냥성이 있었다. 나는 되도록 법공부를 투철하게 하였으므로 이 시기 우리에게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해야만 여전히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사부님께서 명백하게 알려주신 것을 알 수 있었다. 매 한 단락 시기 나는 또 사부님의 경문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읽었으며 모든 설법을 공부하여 수련 중에서 편차가 적어지고 굽은 길을 적게 걸을 수 있었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하면 자신이 끊임없이 법에 동화되어 많은 집착심이 제거되는 동시에 틀림없이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정법 형세에 바싹 따를 수 있다.
2. 진실하게 신용을 지키며 수련생과의 연분을 소중히 여기다
‘동수’란 이 두 글자는 절대로 하나의 표면 층차에서만 부르는 간단한 호칭이 아니다. 특히 대법 수련 중에서 그 함의가 아주 깊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서로 잘 상응하고 협조하여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중생구도의 중대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무량무제한 중생의 생사존망과 관계되는 큰 대사이다.
나는 줄곧 수련생 간의 연분을 아주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고 진실하게 대하면서 일에 봉착하게 되면 먼저 법의 각도에서 먼저 수련생을 생각했다. 이것 때문에 나와 적지 않은 수련생 간에 서로의 믿음이 형성되어 사부님을 돕는 정법 중에서 정체가 아주 잘 이루어졌다. 몇 년간 나는 모두 진실한 마음에서 믿음으로 수련생들과 협조하여 법을 실증했다.
한 번은 우리 지역에서 정체적으로 협조해야 할 일이 생겼다. 당시 내가 도시에 없다 보니 한 수련생에게 도시에서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다른 수련생들에게 모두 알려주기로 했다. 약속한 날 오후 나는 당연히 그 수련생을 만나야 했는데 그날 따라 비가 억수로 퍼붓기 시작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그 도시까지 가는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비옷을 입고 자전거로 그 도시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60여 리 길인데 차로 가면 반시간 정도 걸리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3시간이 더 걸린다. 더구나 큰 비까지 퍼붓고 있으니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더 생각할 겨를이 없이 자전거 페달을 힘 있게 밟으며 달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반드시 제시간에 도착하여 모두의 일이 지체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대략 2리 정도 달렸을 때 뒤에 모 지역에서 도시로 가는 버스가 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냥 버스 기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별로 희망을 걸지 않았다. 그런데 그 버스는 내 옆을 지나서 가다가 반리나 되는 지점에서 멈추어 섰다. ‘그 버스는 장거리 주행을 하는데다가 비도 퍼붓고 또 나는 자전거도 있는데 어떻게 버스에 오를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을 했는데, 그 기사는 비를 맞으면서 밖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접근을 하자 “내가 보니 당신이었어요. 이렇게 큰비가 쏟아지는데 어떻게 당신을 태우지 않을 수 있어요.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차를 세우지 않았을 겁니다.” 하고 친절하게 말했다. 기사는 바삐 나의 자전거를 버스 뒤편 고리에 걸어 주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곧바로 버스에 올라 의자에 앉았는데 온몸에서 뜨거운 에너지가 흘렀다. 나는 남몰래 사부님의 고마우신 안배와 무량한 자비에 감탄하였다.
약속된 장소에 시간 안에 도착했다. 그러나 만나기로 한 수련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집은 여기서 3, 4리 거리가 되므로 반드시 제시간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오지 않았다. 나는 계속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으나 그는 오지 않았고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약속한 시간은 이미 많이 지났다. 나는 그가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 이런 큰비에 내가 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애초 계획했던 일은 하지 못 했지만, 마음은 아주 담담했다. 그러나 개인 수련에 대해서는 도리어 아주 성실하다고 느꼈다. 아주 많은 체험은 나로 하여금 더욱 수련자 간의 성실함과 믿음이 아주 귀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했다. 그 때문에 서로 성실하고 완벽한 믿음이 있어야만 견고하여 깰 수 없는 정체가 형성될 수 있으며 사부님을 돕는 정법노정에서 중생구도를 잘할 수 있는 것이다.
3. 백 분의 백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다
2001년부터 나는 바로 우리 지역의 자료점을 담당했는데 지금까지 10년이 되었다. 이 10년 동안의 풍랑 속에서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위덕을 체험한 것이 얼마인지 일일이 다 셀 수 없다.
자료점을 담당한 후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줄곧 마음속에서 나를 고험하는 것이었다. 하나는 ‘백 분의 백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체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생사를 내려놓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과 법을 믿는 문제에서 나는 종래로 사부님의 법에 대해 의심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설령 일부 설법에서 자신이 일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다고 해도 나는 자신에게 아직 그 높은 층차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잠시 이해할 수 없지만 앞으로 수련에서 제고되었을 때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번의 박해 중에서 압력이 얼마나 크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내심에서 모두 대법에 대한 믿음이 동요된 적이 없었다. 바로 백 분의 백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고 정념에 의거했다. 10년의 곤란 속에서 사부님의 미세한 것까지 보호 아래 나와 수련생들은 자료점에서 한 관 한 관씩 위험을 뚫고 줄곧 오늘까지 걸어왔다.
‘나 자신의 일체와 생사를 모두 내려놓을 수 있을는지?’ 처음 시작하여 나의 마음은 그렇게 견정하지 못 했다. 오직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필사적으로 뛰쳐나와 일종 강경하게 맞설 생각뿐이었는데 이것은 완전히 법에서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수련을 통해 점차 법 중에 승화되면서 정념이 갈수록 강해졌으며 여러 가지 집착과 두려운 마음이 갈수록 없어졌다. 한 번은 사악과 직면했는데 나에게는 근본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없었으므로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 하에 모두 담담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한 수련하는 사람이 능히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생사(生死)는 영원히 당신을 멀리 떠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부러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당신이 법속에서 이 일보로 수련되어야만 당신으로 하여금 이러한 생명이 되도록 할 것이다.(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언제나 중대한 고난과 위험한 환경에 봉착하게 되면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생사를 내려놓았는가?’ 하고. 그러면 ‘내려놓았다!’라고 대답한다. 많은 투쟁과 단련을 거쳐 대법을 성취했다. 나는 사상 중에서 근본적으로 구세력과 사악을 부정하고 나니 점차 생사의 개념이 없어졌고 또 박해당한다는 개념도 없어졌다. 나도 많은 대법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력하여 일보 일보로 대법에 동화되었으며 대법 역시 일보 일보 나를 성취시켰다. 나는 자신을 완전히 대법 중으로 용해시켜 정말로 담담하게 일체와 생사를 내려 놓을 수 있었으므로 거기에 또 그 무슨 두려울 것이 있는가? 마가 한 치 높으면 도는 만 자나 높다. 내가 사악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사악이 도리어 나를 무서워했다!
한 단락 시기 우리 지역의 사악들이 호구조사를 한다는 명분으로 대법제자에게 나쁜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 하루는 경찰이 내 집 문을 두드렸다. 나는 동요하지 않고 그들의 가상을 지켜보면서 장시간 발정념으로 사악의 교란을 제거했다. 밤중에 꿈을 꾸었는데 사악이 나에게 “더는 발정념을 하지 말아 달라”라고 애걸했다. 나는 사악에게 당하지 않고 계속하여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철저히 제거했다. 그 후 경찰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법을 위하고 자료점을 책임진 각도에서 나는 자신의 책임을 감히 느슨히 할 수 없으므로 일에 봉착하면 바로 발정념을 했다. 평시에는 특히 발정념을 더 중시했다. 발정념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 중의 하나로서 우리는 절대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의 사상이 우위를 점한다면 그럼 그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신의 사상과 사람의 정념이 우위를 점한다면 그는 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나는 ‘만약 우리가 사람의 관념을 섞어 대법을 대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바로 우리가 자신의 관념을 대법 위에 놓는 것으로 이는 사람의 논리와 자기를 실증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관념을 대법 위에 놓아서는 안 된다.‘라고 깨달았다. 그러면 법이 우리에게 신기를 나타나게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수련인의 정념으로 신의 각도에서 속인의 관념을 철저히 개변하고 100퍼센트 사부님과 법을 믿는다면 대법의 신기는 수시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 이러면 우리의 수련은 갈수록 더욱 견정해 질 수밖에 없다.
가끔 나는 ‘그 수련생을 만날지도 모른다.’ 혹은 ‘어떤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되면 바로 순정해야 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실 것을 청한다. 그러면 아주 많은 시기에 모두 꼭 알맞게 잘 마무리 될 수 있었다. 한 번은 한 수련생을 만나려고 생각하고는 무턱대고 다른 한 수련생의 집으로 가면서 ‘내가 만나려는 그 수련생이 그의 집에 와 있는지 보아야겠다.’ 생각했다. 그의 집으로 갔는데 내가 만나려고 했던 그 수련생이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제 왔는데 내일 당신에게 가려고 생각했다. 당신이 오늘 때마침 잘 왔다.”며 기뻐했다.
또 한 번은 수련생이 말하기를 “우리 지역에서 납치되었던 수련생 몇 명이 풀려났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 중의 한 수련생을 만나야겠다고 말했더니 그 수련생은 “그 수련생은 가족들이 그에게 아주 엄격하게 대하므로 우리가 가서 만나기 힘들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바로 사부님께 안배해 주실 것을 청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바로 그 수련생 집으로 갔다. 첫째는 그들이 박해 당한 원인을 알아야 했으며, 둘째는 사악을 폭로할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주저함도 없이 곧바로 그녀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나와서 문을 연 사람이 바로 그 수련생 본인이었다. 그녀는 가족들이 아주 엄격하게 대하며 감시하고 있는데 남편은 출근도 하지 않은 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지금 마침 남편이 자고 있어서 자신이 이렇게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대문 밖에서 반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일부 기본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대화를 마치고 떠날 때까지 그녀의 남편은 자고 있었다. 우리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가운데 정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순조로웠던 것이다. 순수하지 못한 목적이나 심태가 바르지 않았다면 이런 신기가 나타남은 불가능한 것이다.
4. 고생을 낙으로 삼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 진수’에서 “나는 오늘 또 큰 문을 열고 대법을 전수하여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다.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당신들은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당신은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98년에 법을 얻었으며 기회가 없어 사부님을 뵙지는 못했다. 하지만 사부님의 웅장하신 모습은 항상 나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사부님께서 천신만고의 고생을 다 겪으시면서 우리를 구하러 세간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에게 최고의 영광을 돌려 주셨는데 우리가 수련 중에서 겪는 고생은 너무나 하찮은 일이 아닌가? 10년간 사부님을 돕는 정법 중에서 나는 모진 시련을 겪었다. 가끔 고생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즉시 다른 분위기로 변한다. 금생금세에 자신이 능히 대법제자로 되어 사부님과 함께 정법을 하는 이 일체가 모두 얼마나 신성한 일인데 감히 고생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만약 고생을 두려워한다면 사부님을 따라 앞으로 갈 수 없으며 인간 세간에 파묻혀 세간의 명리정에 생명이 부식될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2008년 어느 날 나는 모 지역에서 자료점에 쓰는 물건을 가지고 우리 지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곳은 우리 고장과 60, 70리의 먼 거리에 있었다.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에 싣고 오기로 했다. 3개의 큰 상자를 자전거 뒤 안장에 묶어놓고 양옆에도 각각 하나씩 얹은 위에 또 하나 더 얹었다. 처음에는 60, 70리 길은 그렇게 멀지 않다고 여기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몇 리를 못 가서 넘어질 뻔하였는데 좀 힘이 들었다. 당시 나는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내려서 보니 바퀴는 이상 없이 팽팽했다. 중량이 많아서 힘든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갈수록 더욱 무거워지면서 어떤 물건에 걸려 당기는 느낌이었다. 너무 힘들어 두 다리가 시큰거리고 통증까지 왔다. 그래도 계속 있는 힘을 다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밀고 나갔다. 대략 20여 리 간 후 이미 완전히 지쳐 버렸다. 벌써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갈 길은 아직도 30여 리나 더 남아 있었다.
오늘 얼마나 힘들든지를 막론하고 힘을 내어 투숙할 수 있는 곳까지 가야 했다. ‘나는 속인이 아니고 수련자인데 요만한 고생이 다 무엇이냐?’ 하면서 속으로 자신을 격려했다. 하지만 몇 미터 못 가서 두 다리의 힘이 빠졌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밀면서 다리를 어느 정도 쉬게 한 후 다시 올라탔다. 이렇게 가다가 멈추다가 쉬다가 하면서 가게 되니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래서 목숨 걸고 앞으로 가보자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부님께 가지를 요청했다. 그리고 ‘홍음2-정념정행’을 외웠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거늘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으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 맘속으로 ‘다리는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이다. 아파도 앞으로 가야 한다.’ 이를 악물고 계속 힘을 다해 밀고 나갔다. 두 다리의 통증은 이미 어떻게 형용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컸다. 마음속으로 법을 외우면서 간 거리가 10리 정도는 되었으나 더 이상은 도저히 버틸 힘이 없어서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얼마를 갔다. 나중에는 ‘다리가 아픈 것은 고생을 낙으로 삼는 것이니 좋은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만약 사악의 교란이라면 나는 당신들을 절대로 승인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자마자 다리가 별로 아프지 않았다. 4, 5리의 거리가 남아있을 때 자전거가 금방 가벼워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누가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으로 집까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왔다. 다리도 더는 아프지 않았다. 나는 또 한 번 실천 중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라고 하신 ‘전법륜’의 법리를 체험한 것이다.
집에 도착하여 자전거 위의 물건을 내리고 자전거를 보관 장소에 옮겨 놓았다. 며칠 후 다시 자전거를 타려고 보았는데 자전거의 뒷바퀴 바람 넣는 곳의 마개와 바람을 차단하는 나사 등 부속품이 모두 없어지고 다만 바람구멍만 멀쩡히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 바퀴는 팽팽한 대로 있었다. 이때 나는 그날 사악이 나에게 교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십 근이나 되는 물건을 자전거에 싣고 또 장정 한 사람이 올라탔는데 바퀴의 바람막이 나사가 없는 상황에서 바람이 새서 바퀴는 즉시 찌그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랬다면 나에게 얼마나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다주었겠는가? 스스로 축하할 만한 것은 비록 내가 고생은 하였지만,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더욱 많은 난을 풀어 주셨다는 점이다.
(밍후이왕 제8기 중국대륙 대법제자수련심득교류회)
다음편 계속
문장발표 : 2011년 11원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13/2489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