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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내려놓아야만 경사경법 할 수 있다

글/산둥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지역 교류회에 참가한 후, 경사경법(敬師敬法) 문제는 정말 매우 엄숙한 문제라고 인식해 글로 적으니, 보다 많은 수련생들이 주의하기를 바란다.

1. 자아를 내려놓고 일에 부딪히면 우선 사부님을 생각하는 것도 경사경법

한 수련생과 부근의 현(縣)지역에 가서 교류하기로 약속했는데 당일 오전에 도착한 후 전화로 연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일을 협조하는 수련생의 핸드폰은 줄곧 꺼져 있었다. 우리는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느 정류소에서 내리는 것만 알고 있었고 정확한 장소는 몰랐다. 우리는 이에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며 사부님의 안배는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우리는 약속한 대로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우리는 뜻밖에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 수련생을 만났다. 그녀가 우리를 알아보고는 먼저 말을 걸었다. 그녀도 교류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그녀를 따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수련생의 집에 갔다. 우리가 도착하자 막 10시가 되었다. 협조인은 현지 수련생들에게 점심을 먹고 교류회에 참가하도록 통지했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수련생은 자신도 그날 왜 일찍 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부님께 감사합니다, 사부님의 안배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버스 정류소에서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을 겁니다.

이날 수련생들이 교류한 내용은 경사경법(敬師敬法)의 문제였다. 한 수련생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인용했다.

“하루는 하느님이 사탄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세간의 한 부자를 보고 있었는데 그는 아주 경건한 신도(信徒)였다. 사탄은 ‘당신의 신도가 당신을 믿는 이유는 당신이 그에게 그렇게 많은 좋은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느님은 사탄에게 그를 고험하도록 허락했다. 사탄이 손을 흔들자 그의 돈과 집이 모두 사라졌다. 그 신도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 일체는 주께서 제게 주신 것이니 가져가시려면 가져가십시오.’ 돈과 집이 사라진 후 아내도 도망갔다. 그러자 그는 ‘주님 감사합니다! 이 일체는 모두 주께서 제게 주신 것입니다. 가져가시려면 가져가십시오.’ 사탄이 또 손을 흔들자 그의 자손들이 모주 죽었다. 그는 여전히 ‘주님 감사합니다! 이 일체는 주께서 제게 주신 것이니 가져가시려면 가져가십시오.’ 사탄은 몹시 화를 내면서 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온몸에 옴(疥瘡)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주님 감사합니다! 제 생명은 주께서 주신 것이며 저의 일체는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그는 큰 부자에서 온몸이 옴투성이인 노인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주를 먼저 생각했다. 이 얼마나 큰 존경과 믿음인가! 나중에 하느님은 원래 있었던 일체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관건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지 생각이 움직이기만 하면 우선 자신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가장 미시적인 것에서부터 가장 거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만드셨으며 천상의 일체 정(正)과 부(負)의 생명, 심지어 구세력을 포함해 모두 사부님을 대할 때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공경함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우리 대법제자들은 사부님을 제 1위에 놓았는가? 평소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은 말하지 않더라도 일에 봉착했을 때 우리의 첫 일념이 사부님을 생각했는가?

‘전법륜’ 제6강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에서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드셨다.

“근기가 아주 좋은 한 사람이 있었는데, 정말로 쓸 만한 사람이어서, 나도 이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로 하여금 빨리 갚아버리고, 개공(開功)하게 하고자, 그의 난을 좀 크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뇌혈전에 걸린 증상과도 같이 거기에서 단번에 쓰러져, 움직일 수 없고 사지가 말을 잘 듣지 않는 것 같아 병원에 보내 응급치료를 했다. 그런 후 그는 병상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었다.”

“오늘 그가 만약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단번에 쓰러져 거기에서 죽었을지도 모르고, 영원히 반신불수가 되거나, 정말로 뇌혈전에 걸릴 수도 있다.”

“즉 말하여 사람은 제도하기가 그처럼 어렵다. 그를 위해 그렇게 많이 했건만, 그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 뇌혈전 증상에 대해 교류해보자. 어느 수련생이 병업(病業) 상태가 나타나 신체가 견디기 어려울 때면 마음속으로 ‘사부님 감사합니다, 제 몸은 사부님께서 내려 주신 것으로, 무슨 일이든 모두 사부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본래 이런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고 이런저런 증상이 나타나도 모두 좋은 일이며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관할하신다. 사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감당하신 것은 우리보다 몇 배나 많은지 모른다! 마음속으로 당연히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에서 뇌혈전의 예를 드셨다. 우리는 정말로 정념(正念)이 있어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우리 자신이 지은 업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며 사부님을 번거롭게 해드려선 안 된다고 한다. 우리가 사부님을 생각한다는 것이 꼭 사부님의 보호를 구하자는 것은 아니며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의 감수를 생각하지 말고 일체를 사부님께 맡기고 사부님께서 정하시게 한다는 말이다.

또 좀 귀에 거슬리는 예를 들어보자. 시장에서 활어(活魚)를 파는 속인은 하루에 적어도 몇 십 마리의 물고기를 죽인다. 칼로 비늘을 벗기면 물고기는 아파서 팔팔 뛴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생명을 죽이는데 또 일생일세가 있고 그렇다면 생생세세에 얼마나 많은 업을 짓겠는가? 자신이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우리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하시는 것이다. 사실 우리 매 사람의 업은 또 모두 우리의 연분과 관계가 있다. 마치 사부님께서 인간세상에서 우리와 인연을 맺을 때 “당신은 모두 나의 사람이다”고 말씀하신 것이 우리를 구도하기 위한 것처럼 우리가 뭇 신 혹은 생명과 인연(선한 인연과 악한 인연이 있다)을 맺은 것은 모두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한 수련생이 예를 들었다. 부부 두 사람이 대법제자인데 아이가 하나 있었다.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피부가 가려워서 자주 손으로 긁었다. 긁다보면 피가 나서 딱지가 생기고 또 긁어서 피가 나면 또 딱지가 생긴다. 아이는 고통스러워 울며불며 또 긁는다. 아이의 침대와 이불에는 전부 핏자국이 있었다. 부부는 정말로 방법이 없어 다른 수련생을 찾아가 교류했다. 그 수련생이 아이를 보고 장난처럼 말했다. “이 아이는 당신들의 아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면서 “당연히 우리 아이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수련생은 웃으면서 “사부님의 아이 같은데요.” 그러자 부부는 문득 크게 깨달았다.

사람이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위사(爲私)하다. 안으로 찾아 집착심을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우리의 사부님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우리의 일체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우주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가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집착심을 내려놓는 것이 제1위지만 첫 일념은 사부님을 공경해야 한다. 나중에 들으니 며칠 후 아이의 증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수련생은 또 다른 예를 들었다. 남녀 두 명의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데 갑자기 경찰이 나타났다. 경찰이 여자 수련생을 잡아가려 하자 남자 수련생이 안 된다면서 우리는 함께 왔으니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경찰은 남자 수련생에게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그냥 가라고 했다. 그가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자 수련생은 줄곧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몇 년 후 우연히 만나 이 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체포될 당시 무엇을 생각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여자 수련생은 “당시 나는 경찰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자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반면 남자 수련생은 “당시 내가 생각한 것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했다. 남자 수련생은 단번에 명백해졌는데 원래 그가 먼저 생각한 것이 사부님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간단하다. 구세력은 이번 마난을 이용해 대법제자를 고험하고 중생을 훼멸하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승인하지 않으시며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길 원하신다. 구세력은 사부님에 대해 존경하는 것으로 단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을 이용해 사부님을 생각하지 못하는 대법제자와 중생을 박해하고 이를 통해 그들이 보기에 대법제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을 도태시키고 박해에 참여한 생명을 훼멸하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일을 할 때 먼저 사부님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이는 사부님께 불경한 것이다. 사부님께마저 불경하다면 그럼 구세력의 박해에 구실이 있게 되며, 사부님께마저 불경하다면 설사 무슨 일을 성사했을지라도 뭇 신들 역시 탄복하지 않을 것이다.

한 수련생이 언급했던 석가모니의 이전의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과거에 연등고불(燃燈古佛)이 위에서 설법하는데 말을 하는 한편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그런데 그 아래 물웅덩이가 있었다. 이때 아래에서 법을 듣던 한 동자가 연등고불이 물을 밟지 않게 하려고 재빨리 자신의 상투를 풀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물 위에 펼쳐놓았다. 연등불이 동자의 머리카락을 밝고 지나간 후에 뒤돌아 동자에게 말했다. “네가 부처님께 경의를 표시했기 때문에 몇 억 겁 후에 석가모니로 성취할 것이다.”

사부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엿볼 수 있다. 여기까지 적으니 우리 대법제자가 쓴 문장이 생각나는데 우리가 보는 밍후이왕의 글은 이미 수정을 거친 것이다. 사부님의 신경문 ‘자심생마에 주의하라’에서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의 진정(進程)을 이끄는 것은 오로지 사부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일을 하여도 신이 업신여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우리가 일을 할 때 우선 생각한 것이 자신이거나 혹은 정신(正神)이라면 그것은 편차가 있는 것으로 매우 위험하다. 정신(正神)이 우리를 도와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부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선결조건이 없다면 정신(正神)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혹은 사부님의 동의가 없으면 신 역시 감히 도와줄 수 없으며 누가 했다면 그가 바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일체는 사부님께서 동의하신 것으로 전부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고 모두 사부님의 것이다. 우리는 대법제자로, 대법제자란 말만 들어도 자부심이 있고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옳다,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면 아주 영광이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바로 사부님의 제자이며 대법은 모두 사부님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은 모두 더욱 사부님의 것이다. 우리가 오래 전 일은 말하지 말고 수련을 시작한 초기부터 지금까지만 말한다 해도 그 어떤 일이건 사부님께서 평형을 잡아주지 않으셨다면 수련 중의 사람인 우리가 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2.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

밀라레빠부처의 수련 이야기를 말해보자. 모두 알다시피 밀라레빠부처는 수련에서 아주 많은 고생을 겪었다. 집을 지으면 또 부수고 또 지으면 또 부쉈고 많은 돌을 등짐으로 날라 등이 모두 문드러질 정도였다. 그럼 밀라레빠부처는 왜 이처럼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우리 모두 알다시피 사부님에 대한 그의 바른 믿음과 경의(敬意) 때문이다. 밀라레빠부처는 자신의 신(身), 구(口), 의(意)를 모두 사부님께 맡겼다고 했다. 신, 구, 의에 대해 나는 깊은 감수가 있다. 신(身)과 구(口)는 일단 말하지 않기로 하자. 신과 구는 모두 의(意)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니 이 의(意)를 말해보자. 의란 바로 우리의 사상을 말하는데 우리의 일사일념을 모두 사부님께 맡기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부님은 ‘청성’에서 “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구세력은 모든 대법제자에 대하여 그것들의 것을 한 세트 배치하였는데, 만약 대법제자가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바로 틀림없이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구세력은 실질상에서 바로 정법 중에서 대법제자가 능히 걸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와 시시각각 당신들을 동반하는 거대한 관(關), 거대한 난(難)을 겨냥한 것이다.”

구세력은 아주 세심하게 배치했는데 심지어 사람의 일사일념까지 모두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배치는 바로 사부님의 정법을 저애하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 말하고 일처리를 하는 것이 만약 사람의 생각으로 한다면 그럼 움직이는 것은 모두 구세력이 배치한 염두다.

가령 위에서 언급한 두 남녀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다 붙잡혔을 때 여자 수련생이 먼저 생각한 것은 발정념으로 경찰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만약 발정념이 경찰이 나를 잡지 못하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그럼 이것은 바로 자신을 먼저 생각한 것이지 사부님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을 구하는 이 일체는 실질적으로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며 진상을 듣는 사람이 명백해지는 것 역시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진상을 알려 중생에게 진상을 알릴뿐이다.

우리가 사람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자아를 내려놓고 중생과 대립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경찰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부님을 생각하면 사부님께서는 곧 우리의 주(主)가 되실 수 있고 이런 생명들을 구할 수 있다. 경찰 혹은 구세력 등의 생명이 대법제자를 붙잡지 않고 박해에 참여하지 않으면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중생이 구원받을 수 있는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가 사람 마음을 움직여 나는 오늘 순조롭게 진상을 알렸고, 오늘 심태가 좋아 몇 사람을 구했다고 하는데 모두 자아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 역시 구세력이 일찍이 배치한 것으로 당연히 구세력이 당신을 움직일 수 있고 사람을 이용해 당신을 박해할 수 있는데 바로 대법을 박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죄이며 박해에 참여한 그런 생명들은 구도받을 기회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는 사부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더욱 많이 구도하려 하시지 중생을 훼멸하려 하지 않으신다.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표면적인 사람에 대해 아주 선량하게 표현했다면 경찰 배후의 사악한 요소가 경찰을 지배하여 나쁜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구도할 뿐만 아니라 배후의 요소 역시 한 층의 생명인데 박해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사부님께 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안으로 찾는데 무엇을 찾는가? 바로 우리가 왜 첫 일념에 사부님을 생각하지 않고 왜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했는가? 왜 사람의 염두를 움직였는가? 찾는 것이다. 일체를 사부님의 말씀에 따르는 이것이 바로 선(善)이다. 이렇게 하면 중생과 대립하지 않으며 바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하는 것으로 사부님께서는 곧 하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의 정법에 장애가 되는데 바로 이렇게 엄중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한 수련생이 붙잡혔는데 간수소에서 연공을 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나더러 연공하라고 하셨으니 연공을 했다. 그러자 줄곧 연공이 끝날 때까지 관여하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그녀가 내가 연공하는데 경찰이 발견하면 어떻게 할까? 경찰이 연공하지 못하게 해도 나는 연공을 할 것이며 나는 어떠어떠하게 견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녀의 생각에 따라 연공을 하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을 움직이지 않았고 관여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렇게 다른 수련생들을 이끌어 함께 연공했다. 우리가 자아를 내려놓는다고 말하는데 자신의 염두를 내려놓고 심지어 우리의 생각마저 사부님께 맡긴다면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며 바로 사부님의 말씀만 듣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을 감수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수련하기 때문에 모두 가장 좋은 것으로 사부님의 배치에 따르고 자신의 생각을 섞지 말아야 한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대도는 극히 간단하고 극히 쉽다.”(대원만법-공법특징)

만약 수련생이 가족을 내려놓지 못하거나 어떤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일처리를 할 때 우리가 듣거나 보았다면 서로 일깨워 줘야 한다. 오직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사부님의 말씀만 들어야 한다. 일체는 우리가 사람 마음을 움직여 배치한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지 모른다. 만약 수련생에게 어떤 병업상태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면 우리가 꼭 찾아가서 그를 도와 배후의 사악요소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만 “수련생은 가장 좋으며 사부님께서 그를 대법제자로 선택하셨다. 그러니 사부님의 선택을 확고히 믿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는 병업의 가상을 감수하지 않으며 교란 여부도 생각하지 말며 그것에 이끌리지 않으면서 곧 사부님의 배치야말로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나더러 죽으라고 하시면 죽고 살라고 하시면 나는 3가지 일을 잘 할 것이다. 무엇이든 모두 사부님께 맡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정념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하면 사부님께서 일체를 선해(善解) 하실 수 있고 심지어 배후에 교란을 하려던 생명마저 사부님에 의해 선해 될 것이다.

많은 수련 사례를 일일이 들진 않겠다. 위에 이렇게 많이 말한 것은 사실 바로 경사경법의 문제이다. 만약 우리 모든 제자들이 모두 일체를 사부님께 맡긴다면 아마 보다 많은 사람을 구했을 것이며 어쩌면 법정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은 단지 개인이 현 단계에서 깨달은 것에 불과하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허스!

문장발표: 2011년 12월 3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30/2512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