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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1993, 1999, 2011, 생명의 3차례 비약(2)

글/ 종언(鍾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97년 2월에 발표한 ‘불성무루’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집착과 관념, 여기에 명, 리, 정 등을 포함해 모두 자아에 적재해 있고 특히 99년 정법수련 이후 더욱더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인식했다. 비록 입으로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지만 무엇이 자아인가? 나는 이것마저 진정으로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면 또 어떻게 진정으로 철저히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본문 작자

(전편에 이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점차 현지 수련생 중에서 나쁜 사람으로 변해 완전히 떨어졌다.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없었고 자주 교란을 받았다. 내 친척과 수련생을 포함해 누구도 나를 도와주려는 생각만 하면 그는 즉시 박해를 받거나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동시에 내가 작은 나쁜 일을 하면 즉시 소문이 온 시에 퍼졌다. 어느 때부터 수련생들은 나를 담론하는 과정에서 언어와 표정에서 마치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았는데 사오(邪悟)한 사람과 반대로 나아간 사람을 포함한다. 그들은 은근히 내가 그들의 디딤돌로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련생들은 무의식중에 가장 수련을 못해도 ‘그 녀석’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우리 여기에서 어떤 수련생은 내가 이미 수련생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에게 선포했다. 그들은 내가 언제부터 수련생이 아니라는 구체적인 시간도 정했다. 어떤 수련생은 “그를 상관하지 마세요. 그는 이미 어느 때부터 수련을 하지 않았어요.” 이후에 나는 깨달았는데 그들이 이렇게 나를 말하는 원인은 다른 공간의 자신이 이미 완전히 땅바닥에 떨어져 돌 속에 파묻혔기 때문이다.

한번은 내가 한 수련생 집에 갔을 때 그는 나에게 생수를 한 컵을 떠서 책상 위에 놓았다. 그는 내 앞에 앉아 자비롭게 나에게 오랫동안 권했다. 내가 그가 떠준 물만 먹고 무슨 반응이 없자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당신은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내 기억 중에 한 수련생은 이전에 다른 사람을 피해 나를 정원에 불러놓고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자비를 내서 권하는 것일 뿐이야. 당신 같은 사람은 지옥에 가야 해!” 그때도 나는 머리를 숙이고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때 내가 낮에 집에 있으면 음침하고 혼탁한 지옥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몸둘 바를 몰랐고 수련생 집에 가서 만약 사부님 법상을 보면 놀라서 손발을 어디에 놓을지 몰랐으며 대법책 마저 감히 보지 못하고 자신이 너무 더러워 보이고 대법을 수련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책을 펼치면 사부님 법상 사진이 있는 앞부분을 넘기고 직접 내용을 보았다. 그때 나는 전혀 사부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늘 다른 수련생들은 자비의 선심(善心)으로 와서 나를 도와주었는데 그들은 목적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93년부터 학습반에 참가한 노제자이고, 이전에 보도원도 해본 적이 있으며, 법을 실증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한 노수련생이고, 이전에 많은 사람을 인도해 법을 얻게 하고 수련생을 인도해 생사를 내려놓게 한 옛 수련생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심하게 타락해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때로 그들은 나를 데리고 법공부팀에 참가하며 함께 거실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나는 읽을 때 꼭 틀리게 읽거나 글자를 빼놓고 읽는다. 하지만 법공부팀에 참가하면 잠시 한동안 정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고난은 커서 속세의 일에 시달리고 채무에 시달려 법공부를 늘 끝까지 견지하지 못했다. 얼마가지 않아 나는 또 태만하게 됐다.

내가 장기간 이런 고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어떤 수련생은 각종 방법을 찾아 나를 도와주었다. 예를 들면 차를 태워 나를 데리고 다른 도시에 일부 3가지 일을 잘하는 수련생 집에 찾아갔다. 한번은 우리가 한 수련생의 집에 머물렀다. 그들은 함께 법공부를 하고 수련체험을 말해 내가 정진하는 것을 격려했다. 다음날 새벽 3:50분 그들은 나를 깨워 연공을 했다. 나는 이미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혼미한 상태에서 함께 옥상에서 동공(動功)을 하는데 동작도 틀리게 했다. 연공 후 지방 수련생은 동행한 수련생에게 왜 말도 없이 신수련생을 여기에 데려왔냐고 말했다. 이 말이 내 귀에 전해지자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내가 매일 이렇게 보내도 필경 수련한지 12년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신수련생’이라는 느낌을 주었을까? 마땅히 나를 노수련생으로 생각해야 되는데!

또 한 번 그들은 나에게 어떻게 진상을 알리는지 알려주기 위해 나를 데리고 거리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그 중 한 아주머니는 매일 100여명을 퇴출시킬 수 있었다. 그들의 법공부팀은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몇만 명을 퇴출시켰다. 그들은 그 아주머니를 따르라고 했다. 나는 직접 그 아주머니가 반 시간 내에 20여명을 퇴출시킨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멍해졌다. 나는 근본적으로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아주머니는 사람을 퇴출시킬 때 말투가 소박하고 그가 몇 마디 말하면 상대방은 눈깜박하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고 또 몇 마디 하면 머리를 끄덕이며 삼퇴 퇴출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 생활환경에 돌아오면 또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사부님은 ‘전법륜’ 제1강에서 말씀하셨다. “이상이 연공(煉功)해도 공이 자라지 않는 두 가지 원인이다: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고서는 수련할 수 없으며, 안으로 수련하지 않아 心性(씬씽)이 수련되지 않으면 공이 자라지 않는다. 바로 이 두 가지 원인이다.” 이 법리를 틀어쥐고 수련하지 않은 결과 연공이 마치 체조를 하는 느낌이고 거기에 머물러 있자 정말로 정진하기 힘들었다!

이후에 국내에서 더욱 먼 지역에서 온 수련생, 그리고 밍후이왕에서 수련을 잘하고 진상을 알리는 일을 잘한다고 보도된 적이 있는 이름 있는 대법 노제자도 왔다. 그들은 심지어 나와 함께 생활하고 법공부하며 함께 연공했다. 당연히 그 기간 나는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진정으로 그런 고난을 초월할 수 없었고 새로운 수련상태로 돌아가 수련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미 고난에 시달리고 각종 일이 많으며 법공부 시간이 적고 연공시간도 보장할 수 없으며 시간도 안정적이지 않고 심지어 자주 연공을 하지 못하고 법공부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년 나는 늘 자신이 대법의 정체노정에 뒤떨어진 느낌이 똑똑히 들었다. 나는 자주 전 세계 모든 대법제자 중에 자신이 가장 뒤떨어진 한 무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심지어 자신의 우주체계가 아마 이미 산산조각 나고 불완전해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전에 수련이 즐겁고 순정한 느낌을 받았으며 또 고생스럽고 무기력한 느낌도 받았다. 이전에 시시각각 정법노정에 뒤따르는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있지만 자신을 승화시키려 해도 제고할 수 없는 방황과 무기력함도 느꼈다. 나는 수련의 즐거움과 슬픔, 방황과 확고함, 무기력과 통쾌함을 깊이 깨닫게 됐다. 나는 거의 완전히 대법의 전파, 대법의 홍전, 대법제자의 고난과 대법 부흥의 휘황함을 겪었고, 대법제자의 순정, 바른 믿음, 바른 승화, 사오자의 파괴, 중생구도의 자비, 떨어져 내려간 고통, 나쁜 일을 한 후의 보응, 대법을 멀리한 후의 고독과 고통 등등 정반(正反)의 두 방면을 모두 겪었다.

하지만 수련에서는 언제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기적이 발생한다. 얼마 전 정말로 바로 기적이 발생했다.

2개월 전인 7월, 정말로 법공부를 해서 자신을 돌파하지 못하는 극도의 고통을 맛보고 10년간 웃어본 적이 없는 내가, 90년대 함께 수련해 고도의 점오상태에 도달한 한 수련생을 만났다. 그는 내 수련상태를 알고 나의 고통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시간을 들여 나에게 자신이 인식한 주원신(主元神)과 자아 및 관념과 집착이 어떻게 우리 생명을 통제하는 지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생명의 윤회에서 자아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등등을 말해주었다. 내가 듣고 3일째 되던 날 법공부하는 장애가 많이 제거됐고 나는 다시 수련해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제부터 나는 다시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무엇이 자아인지, 무엇이 선천적 본인인지 알게 됐다. “당신 자신은 선천적인 자기 자신으로서 불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물을 인식할 때 흔히 일종 관념이 형성되기 쉬운데, 이런 관념은 자기가 아니다.”(전법륜2-불성)

이전에 나는 자신이 12년간 수련한 것을 보지 못했는데 지금이야말로 알게 됐다. 내 이 일생의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신의 명, 이, 정, 생사를 내려놓는 지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을 초월해야 하는지의 문제였다. 나는 선천적으로 정이 담담하고 명리도 어느 때 내려놓았는지 없고 생사를 내려놓는 것은 더욱 쉽다. 나는 선천적으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죽는 것이 뭐 그리 두려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 나는 정이 매우 담담했다. 성장과정에서 정이 생기지 않도록 나에게 단일한 생활환경이 배치됐으며 어려서부터 교정에서 생활했다. 자라서 내가 인사(人事)를 알게 된 후 집에서 늘 이사를 했다. 한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고 게다가 외지인의 말투는 새로운 생활환경에 어울리지 않았는데 조금 적응하면 또 이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전에 대뇌가 잠겨 있어 그리 총명하지 않고 공부하기 싫어했으며 책을 보기 싫어하고 거의 취미가 없었으며 친구도 없고 자주 혼자 지냈다. 수련의 길에 들어선 93년부터 99년까지 내가 수련한 내용은 주로 명, 이, 정과 자신을 씻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련하기 매우 쉬웠으며 보아도 보지 못한 듯 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며 마음에 두지 않은 수련상태에 매우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99년 생사를 내려놓는 고험도 나로 말하면 너무나 쉬웠다. 그리고 수련 이후 나는 죽음의 관념이 없었다. 생사를 내려놓는 개념마저 나로서 너무나 희미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99년 이후 십여년 간 내 수련은 완전히 떨어졌는가. 사부님께서는 97년 2월에 발표한 ‘불성무루’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집착과 관념, 여기에 명, 리, 정 등을 포함해 모두 자아에 적재해 있고 특히 99년 정법수련 이후 더욱더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인식했다. 비록 입으로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지만 무엇이 자아인가? 나는 이것마저 진정으로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면 또 어떻게 진정으로 철저히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우리가 완전히 명, 이, 정과 생사를 내려놓은 경지에서 또 위로 수련하려면 자아를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것을 해내지 못하자 우주특성 요소와 어긋나게 됐던 것이다.

99년 전 나는 정욕에 넘어지지 않았고 명리에 넘어지지 않았으며 생사고험에 넘어지지 않았지만 ‘자아’에 넘어졌다. 나는 근본적으로 뿌리에서부터 자신을 내려놓지 못했고 게다가 자아는 우리 모든 집착의 근원이다!

(계속)

문장발표: 2011년 11월 23일
문장분류: 제8회 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23/2488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