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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소굴에서 걸어 나온 수련생에 대한 교류

글 /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구세력은 모든 대법제자들에게 한 세트의 것을 배치했다. 만약 우리가 법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설치한 ‘이른바 파괴적으로 대법(大法)을 검증하는'(정진요지2-예언참고) 거대한 관, 거대한 난 중에서 제고해야 한다. 여기에는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고 부정하는 과정에서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대법제자의 위덕이 없다.

최근 몇 년간 대륙에서는 끊임없이 불법 수감된 대법제자가 마귀의 소굴을 벗어난 사례가 있었다. 오래 전, 헤이룽장 다칭감옥과 선양 룽산교도소에 불법 수감된 장중과 가오룽룽은 온갖 역경을 딛고 여러 차례 탈출한 적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진정 법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납치된 후 박해로 사망했다. 고통스러운 교훈이다.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예를 들어 교류하고자 한다. 현재 교도소에서 걸어 나온 수련생과 그 신변의 수련생이 그 동안의 수련노정을 소중히 하고 구세력의 배치를 함께 부정하며, 얼마 남지 않은 정법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기 바란다.

헤이룽장 다칭 대법제자 장중은 2002년 4월에 납치당했다.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은 그는 다칭교도소에 불법 수감된 후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고 사부님과 국내외 대법제자의 도움으로 2004년 7월 23일 마귀의 소굴을 탈출했다. 장중은 비록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여전히 구세력의 또 다른 배치 속에 있었다.

그간의 박해로 피골이 상접했던 장중은 초상적인 대법의 힘으로 신속히 건강을 회복했고 곧바로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나섰다. 그러나 정체 협조 과정에서 그의 사람 마음이 올라왔다. 그는 성 내 각 지역 수련생의 요청으로 빈번히 ‘법회’에 참석했다. (일찍이 그는 사부님의 배치로 남방의 친구 회사에서 근무했었다. 그러나 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 명을 제거하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칭으로 돌아왔다) 그는 초상적인 힘으로 사악의 육체적 박해를 극복해 건강을 되찾았지만 오히려 대법제자들의 ‘박수와 칭찬’의 고험을 넘기지 못했다.

장중의 인식은 여전히 개인수련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발표한 수련심득은 모두 자신이 어떻게 박해를 견정하게 승인하지 않았는가 였다. 이는 모두 박해를 승인한 가운데 자신의 인식을 말한 것이었고 그 속에는 3가지 일을 잘해 사람을 구한 내용은 없었다. 많은 수련생은 그를 숭배하며 추종했다. 그 역시 구세력이 확대한 가상 속에서 성 전체의 협조를 통해 전 중국과 세계 규모의 정체형성을 제기하며 환희심을 과시했다. 사부님께서 ‘우려할 만한 위험한 현상'(사부님 평어-사람의 마음을 제거하자) 문장을 발표하셨음에도 그 자신과 많은 수련생들은 여전히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각지를 순회하며 교류회를 열었다. 결국 장중은 2006년 하얼빈에서 체포됐고 박해로 사망했다.

1999년 7월 이후, 구세력은 오래 전 자신들이 배치한 소위 대법제자에 대해 고험을 시작했다. 그것들은 대법제자에 대해 ‘경제를 파탄시키고 명예를 실추시키며 육체를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대법제자도 박해를 반대하는 가운데 개인수련 단계에서 정법수련 단계로 들어갔다. 지난 십여 년간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는 박해를 반대하는 중에서 교도소와 노교소(노동교양소)는 우리의 수련과 제고의 장소가 아니며,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어떻게 바른 길을 걸을 것인가에 대한 중요성을 점점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법제자들은 현 시기의 수련은 개인의 제고와 원만이 목적이 아니며, 사전서약을 완성해 대궁을 구하고 대원만을 성취하는 것이 우리가 여기에 온 진정한 목적임을 차츰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법제자의 근본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사악의 박해로 피 흘리고 고통 받는 중에서의 견정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더욱 속인 식의 영웅은 필요하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제도하는 신을, 사람이 박해하는 이런 일이 더는 있을 수 없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과 같은 이러한 일은 절대로 다시 나타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속인 여기에서 수련의 길을 어떻게 잘 걷는가는 지극히 중요하다.” 예수가 박해받은 이유는 구(舊)우주 생명의 변이된 관념과 큰 지혜를 담을 수 없는 낡은 법리의 한계 때문이었다. 조사정법 하는 대법도(大法徒)는 소위 사악의 고험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 대법제자가 마귀의 소굴에 갇힌 것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관념이 있고 오랜 역사 속에 배치된 복잡한 요소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마귀의 소굴에서 뛰쳐나온 수련생이 만약 법에서 이 일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설령 몸은 자유를 얻었을지라도 구세력이 배치한 무형의 정신적 감옥을 진정으로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만약 이로 인해 수련생 자신이 스스로를 견정하고 위대하며 대단하다면서, 부지불식 중에 그것들의 고험을 승인한다면, 이는 극히 위험하다. 사악은 그 과시심과 환희심을 확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파룬따파 수련은 속인사회 중에서 한 갈래 대도무형의 길을 걷는 것이다. 법은 우리에게 속인 속에서 생활하면서 일과 수련의 관계를 바로 잡고, 그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사람들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마귀의 소굴에서 뛰쳐나온 수련생은 즉시 자연스럽게 생활하며 일하는 과정에서 평온하게 사람을 구하는 정법수련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

“미래에는, 즉 당신들이 열어놓을 미래에는, 바로 이곳에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을 마련해 놓을 것이다! 당신들이 오늘날 한 일체는, 바로 속인의 일을 하면서도 수련을 할 수 있는, 미래에 참조할 실제 예인 것이다. 당신들이 극단으로 나간다면 당신들은 바로 이 한 갈래의 길을 파괴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 당신은 얼마든지 당당하게 사회에서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 또 수련을 한다면 수련인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표준, 원만에 이르러야 할 표준에 부족함이 없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의 사람에게 바로 이런 한 갈래 길을 열어놓기 때문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부족한 점은 수련생이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12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21/2508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