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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마난을 돌파하고 신의 길에서 대법수련을 견지하다

글/둥베이 대법제자 (란란서술 동료수련자 대필)

[밍후이왕] 내가 돌아오자 남편은 심리적으로 매우 감동되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후 이 집은 깨끗하게 청리되어 원래의 집안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도 생활하는 중에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 많았으며 또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그의 몸은 한동안 매우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런 그가 다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어느 누구의 권고도 듣지 않았다. 그는 “당신들 연공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너무나 고생스럽다. 밤중에 가부좌하여 발정념을 하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공을 하는 등 수련활동을 하면서 술과 담배는 금지하고 있으니……. 나는 감당하기 힘들어서 연공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 후부터 그는 법공부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뇌혈전이 도졌는데 온갖 치료를 했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의 손을 꼭 잡고 한참동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안다. ‘나이 60이 되지도 않았는데 딸은 감옥에 들어갔고 아들도 이혼 당하는 등 집안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것에 대해 면목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얼마나 원통했으면, 눈을 감지 못했을까! 그는 안간힘을 다하여 나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요. 내가 당신에게 미안하하구만!” 나는 “당신은 그만 하세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빨리 가서 다음 생에 법을 얻으세요.” 하고 말했다. 그는 대답했다. “다음 생엔 꼭 당신의 말대로 할 것이요.”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돌아갔다.”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들 안녕 하십니까!

나는 둥베이 한 시골에 사는 61살의 대법제자다. 휘청거리면서 걸어온 수련의 길, 이미 15년이 되었다. 이 기간 법을 얻은 기쁨으로 박해를 당해도 견강할 수 있었고, 사악에게 시달리는 고난을 당할 때도 사부님의 보호 속에서 무한한 광명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달고, 쓰고, 시고, 맵고, 짠 다섯 가지를 모두 맛보았다. 그동안의 수련 노정을 회억해 보면 사부님께서 늘 곁에서 저를 보호해 주셨으므로 가능했다. 사부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망망한 세간의 미혹 속에서 방황하던 나에게 예전의 신성한 연분으로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의 손을 잡아끌어 주셨다. 나는 참다운 법공부를 통하여 수련은 엄숙하며 신성한 것으로서 바로 부단히 자신의 마음의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체험했다. 대법은 무한하며 대도무형으로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제자가 사부님에 대한 견정한 믿음 이었다. 오늘 나는 나의 수련과정을 간단하게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들과 함께 교류하고자 한다.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지적과 도움을 청하며 사부님의 정법노정에 따라 용맹정진하여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련다!

1. 달갑게 천상에서 내려와 법을 얻고 홍법하면서 부근 마을을 한 바퀴 돌다

1996년 말 어느 날, 딸이 큰 도시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10여일 후에 돌아왔는데 손에 한 권의 눈부신 보배의 책을 가지고 와서 “어머니, 저 이번에 뭐했는지 알아요? 9일 동안 파룬궁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았고,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배웠어요. 이 책은 천서(天書)로서 제일 높은 층의 불법이에요!” 하고 말했다. 아들도 역시 “나도 누나 친구 집에서 이 책을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어머니도 한번 보세요.”하고 말했다. 나는 두 손으로 보배책인 ‘전법륜(轉法輪)’을 받아 첫 장을 펼쳤는데 바로 사부님 법상이 나타났다. 나는 한참 동안 사부님을 바라보았다. 일찍이 어디에서 뵈었던 분 같았으나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익숙하고 친절한 감을 느꼈다. 잠시도 지체할 수가 없어서 ‘논어(論語)’부터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 후 보배의 책을 가슴에 꼭 껴안고 있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보배가 하늘에서 떨어져 이렇게 내 품안에 있다니, 정말로 그 기쁨을 형언할 길이 없었다. 마음 속으로 ‘나는 찾았다! 나는 찾았다!’고 외치고는 계속해서 단숨에 전법륜 (轉法輪)을 읽기 시작했다. 밥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모두 까맣게 잊고 오직 책만 읽었다. 그 때 온 몸이 후끈후끈했다. 남편과 아들, 딸은 나를 보고 마치 어린애 같다고 하면서 누구도 나를 건드리거나 간섭하지 않았다.

전법륜(轉法輪)을 읽는 과정 중에서 온 몸의 병이 가뭇없이 사라지다.

우리 집은 기쁨으로 넘쳐났다. 그런데 남편은 좋아하는 다배를 피우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했다. 술은 먹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가정용 전자제품 고장수리 기술을 배우려고 했으나 아직 실천을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장 남편과 아들은 법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딸이 하는 법공부에 대해서는 그들은 적극 지지해 주었다. 나와 딸은 이미 법을 얻었으니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다른 사람들이 법을 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상의했다. 딸은 “도시에는 연공장소와 단체 법공부팀이 있어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우리도 연공장소와 단체 법공부팀을 만들면 되겠네. 우리 집에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네!”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 거리에 방 한 칸을 세를 얻어 의류점을 차리고 수련의 연락지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옷을 만들 줄 아는 두 사람을 고용했는데 그들은 모두 예전에 다른 기공을 배운 적이 있는 사란들이었다. 그러나 세를 얻은 가게가 협소하여 재봉틀은 모두 우리 집으로 옮겨왔다. 딸이 재단해 놓은 옷을 집으로 가지고 오면 나와 두 명의 직원이 옷을 만들었는데 작업을 각자 분담해서 하다 보니 일은 순조롭게 잘 되어갔고, 그들 두 여인들도 아주 빠른 시일에 대법제자로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법공부팀이 만들어졌다.

우리들은 아침 일찍 나가서 연공했고 낮에는 일하면서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저녁에는 함께 법공부를 했다. 우리의 법공부팀은 아주 빨리 발전했다. 얼마가지 않아 12, 13명으로 늘어났다. 우리 마을의 단체 법공부와 연공장소는 이렇게 형성되었다.

우리 지역에 금방 결혼한 한 쌍의 어린 신혼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파룬궁(法輪功)을 배워 신체를 단련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해 왔다. 딸은 기뻐하면서 “당신 두 분은 근기가 좋아요, 연분이 닿았어요. 사부님께서 당신들에게 이곳을 찾아오도록 점화를 주신 겁니다. 사부님께서 당신들을 관할하고 계시니 당신들은 우선 이 책을 보세요.” 하고 말했다. 그들은 전법륜(轉法輪)을 다 읽은 후 이구동성으로 “이 책이 바로 우리가 찾으려고 했던 법이예요.” 하고는 즉각 책을 구입하겠다고 하며 법공부팀에 참가했다. 이 한 쌍의 부부는 모두 우리 지역 현에 있는 공장에 출근했는데, 낮에는 출근하고 아침 저녁 연공과 법공부에 참석했다.

우리 마을은 이렇게 법을 얻었지만, 다른 마을에서는 아직 법을 얻지 못했다. 딸은 여러 곳의 동료들과 연결하여 대법을 널리 알렸다. 우리 법공부팀에서는 어떻게 나가서 홍법할 것인가를 교류했는데 모두들 부근 마을에 있는 자신들의 친척 친우에게 먼저 알린 후 도시의 수련생들처럼 연합하여 여러 마을로 다니면서 단체 연공을 하며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했다.

우리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라고 쓴 현수막을 만들었고, 딸은 도시의 수련생들을 불러 ‘파룬도형’을 걸게하여 하나의 자전거 대오를 만들어 인근 마을들을 순회하며 대법을 알렸다. 인근 마을에 찾아가서 친척 친우들과 연계하여 그들의 집 문 앞에 현수막과 파룬도형을 걸어놓고, 단체 연공을 하며 자신들이 그동안 수련을 통해 얻은 내용을 말해 주며 대법을 널리 알렸다. 매주 토요일 한 번씩 나갔다. 우리 단체 법공부팀은 처음 12~13명에서 눈사람 구르듯이 점점 커갔다. 인근 마을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던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또 다른 마을로 홍법을 하러 다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과연 맺은 연분대로 깨달을 수 있는 자들인지라, 잇따라 모여와 입도(入道)하여 법(法)을 얻는구나.”(정진요지- 깨달음) 2년 동안 30리 안팎에 위치한 인근 마을과 소재지에는 모두 연공장소가 건립되었고 법공부팀도 모두 성립되었다. 따라서 보도원도 모두 지정 되어있었다.

딸은 자연히 우리지역의 보도원이 되었다. 다른 마을과 지역의 수련생들은 늘 딸의 의류점포에 와서 교류하였으며, 그들은 딸이 성에서 가져온 사부님의 신경문과 기타 자료들을 가지고 갔다. 딸은 성의 수련생들과 연결하고 있으므로 다른 지역에 보도소를 건립하면 직접 성의 보도소와 서로 연결하도록 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딸이 다른 마을의 보도소를 위해 직접 도시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각 현의 보도소에서도 직접 자료점을 건립하여 각 마을의 보도원들이 현의 보도소와 연결하도록 했다. 이처럼 날이 갈수록 대법을 널리 알리는데 기세가 드높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대법 수련생으로 되었다. 나와 딸은 또 시에서 개최한 ‘만 명의 수련심득 교류회’에 참석했는데 정말로 언어로는 우리들의 기쁨과 행복을 나타낼 수 없었으며 그 절경은 장관이었다!

2. 반박해에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음이 견정불이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이 온 하늘을 뒤덮을 듯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수련인을 놓고 보면 청천벽력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지역의 많은 보도원들이 불법 납치되어 감금되었다. 딸도 몇 번이나 납치되어 구류를 당했지만 굳세게 사악에게 대항하며 그들의 의도대로 협조해 주지 않았으며, 그 때마다 모두 정념으로 마굴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러는 와중에서 결국 법공부팀은 모두 해산되었다. 딸은 현의 각 지역 수련생들과 연합하여 도처에 진상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어느 날은 밤중을 이용하여 현의 소재지 거리 양편 가로수와 전신주에 모두 족자를 걸었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딸은 납치되었으며, 억울하게 12년 형의 판결을 받고 성의 여자감옥에 감금되었다.

이렇게 딸이 박해를 당하게 되자 나는 주동적으로 인근 수련생들과 연결하여 함께 법공부하며 진상을 알렸다. 2001년 나도 불법 납치당해 2년 간을 노동교양소에 감금당했다. 딸은 10년이 넘도록 감옥에 감금되어 온갖 혹형을 당하면서도 오직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면서 그들에게 협조 하지 않았고 또 ‘전화’ 하지도 않았으며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악경(사악한 경찰)이 어떤 위협을 가하거나 유혹하거나를 막론하고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으며 역시 ‘전화’ 하지 않았고 어떠한 강제 노역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속에는 오직 ‘사부님과 법이 있으므로 누구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 라는 것을 믿었다. 나는 온 종일 ‘논어와 홍음’을 외웠다. 누가 심사를 하든지 간에 나는 모두 협조하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입을 열기만하면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부님, 저를 나가게 해 주세요. 여기는 제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저는 나가서 홍법하고 진상을 알려야 합니다.’ (그당시는 발정념을 몰랐고 ‘3퇴’도 없었다) 악경들이 강제 노동을 시키면 “나는 죄가 없으니 범죄자가 아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으로 납치 해와, 연공도 못하게 하면서 그 무슨 당신들을 위하여 일을 하라고 하는데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연공을 하지 못하게 되자 바로 신체가 좋지 않았다. 나 자신이 자신을 관할 할 수도 없단 말인가!

그들은 노동교양소 담당 의사로 하여금 나의 혈압을 측정하게 했다. 그 결과 수치가 높은 혈압이 220이고, 맥박은 120차 정도 되었다. 사실 나는 원래 저혈압이었는데 이번의 수치로 보아 사부님께서 고혈압으로 연화하셔서 저를 보호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이들은 감히 나에게 더 이상 노동을 시키지 못했으며 오히려 내가 졸도할까 두려워했다. 휴식 시간이 되면 나는 바로 창문 앞에서, 주어 온 연필 토막과 재떨이를 이용해 창문 밖의 산봉우리를 그렸다. 완성된 작품을 모두에게 보여 주었더니 보기가 좋다고 하면서 담배 재떨이와 연필 토막들을 찾아 주며 계속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나에 대해서는 노동교양소 악경들도 무슨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면 나는 바로 진상을 말하는데 “당신도 여자고 나도 여자예요, 나는 당신의 어머니와 연령이 비슷해요. 당신은 집에 가서 당신 모친에게 물어봐요. 여자의 일생을 어떻게 지나 왔는가를? 당신이 나한테 잘 대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모친도 당신들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나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근본적으로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자 나중에 그들은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더라도 웃으면서 지나쳐 버렸다.

2002년 7월 나의 신체는 갑자기 좋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었고 음식도 먹을 수 없었으며 잠도 잘 수 없었는데, 마치 어느 때건 돌아갈 것 같은 위험한 징조 같았다. 노동교양소 측에서 두려워한 나머지 노교 기한이 아직 반년이 남았는데도 앞당겨 집으로 보냈다.

3. 박해는 나의 집을 망쳐놓았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 안팎은 난장판이었으며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편은 방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내가 돌아오자 반가운 마음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으나, 절반은 누웠고 절반은 앉은 상태로 나를 보고 실실 웃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말은 한 마디도 못했다. 아들이 옆에서 “아빠가 중풍에 걸렸는데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다보니 이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며느리가 보이지 않아 물어봤더니, 가정이 자립활 수 없어 형편이 어렵게 되고 더 이상 집안의 희망이 보이지 않자 며느리가 이혼을 제기하고 집까지 모두 팔아 돈을 갖고 가버렸다.“고 아들이 말했다.

나는 ‘이 집안이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가?’ 머리를 번쩍 들고 사부님 법상을(집에 법상과 대법책은 남편과 아들이 잘 보관해 두었음) 쳐다보았다. 그 찬란한 금빛 광채 속에서 사부님께서는 저를 보시면서 웃고 계셨다!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 한 두려울 것이 무엇이랴!’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사부님께 감사한 마음의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즉시 일어나 주방을 둘러보았는데 먹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전화로 남동생에게 내가 돌아왔다고 알리고 쌀과 채소를 가져 오라고 부탁했다. 20여 리길 남동생은 트랙터를 몰고 금방 도착했다. 오빠 큰 올케 남동생 여동생 또 조카아이들까지 모두 10여명이 왔다. 큰 올케와 동생들은 우리 집의 꼴을 보고 모두 울었다. 남동생은 “여러 번 전화를 했으나 그 때 마다 모두 통화가 안 됐는데 이렇게 힘들게 지내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요!” 하고 말했다. 전화기를 보니 위에는 먼지가 두텁게 한층 깔려 있었다. 전화요금을 내지 못해 전화가 오래 전부터 끊기어 있어서 전화기 수신 신호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내가 방금 이 전화기로 전화를 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통화가 되었을까? 이것은 사부님께서 전화가 통하도록 연결 해 주신 것이 아닌가!’ 이때 남동생이 “누나 얼굴색이 아주 좋아요. 몸도 아주 좋아 보이고!” 하고 말했다. 나는 깨달았다. ‘며칠만 더 늦게 왔더라도 이 집은 완전히 날아갔을 것이다. 사악들은 이 기회를 틈타서 이 집을 훼멸하는 것이 대법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망상한 것이 아닌가? 맞아! 사부님께서 때마침 나로 하여금 돌아오게 만들어 주셔서 이 집을 구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게 맡기신 임무이니 반드시 잘 완성해야 한다.’ 하고 생각했다. 사악의 일체 배치를 물리치고 나니 나의 몸에는 한 가닥의 뜨거운 것이 흐르는 감을 느꼈다. 식사를 하고 나니 나의 정신 상태는 아주 좋았다. 남편의 얼굴을 닦아주고 밥도 먹여 주었다. 남편은 나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나는 오빠 남동생 모두들에게 “나 혼자 능히 집안문제를 처리할 수 있으니 모두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동생이 나에게 용돈을 남겨놓고 그들은 모두 돌아갔다. 나는 남편의 머리를 깎아 주고 몸도 닦아 준 후 옷을 갈아입히려고 옷을 찾는데, 이불과 요는 말할 것도 없고, 마루와 벽까지 모두 오줌에 푹 젖어있어서 습하고 냄새가 지독했다.

나는 그와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염했으며 시간이 나는 대로 그에게 ‘전법륜(轉法輪)을 읽어 주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내심 크게 감동되었다. 보름이 지난 후 집은 모두 깨끗하게 청리되어 원래의 집 모습으로 돌아왔다. 남편도 능히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조그마한 일은 나를 도와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한 동안 이렇게 몸이 좋아지자 다시 담배를 피우고 술까지 마시기 시작했다. 무슨 말로 만류를 해도 모두 듣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당신들 연공인은 너무나 고생을 하오. 밤중에 가부좌하여 발정념을 하고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연공을 하며 저녁 늦게까지도 수련을 하면서도 담배도 못 피우고 술도 마시지 않으니, 나는 힘들어서 더는 연공할 수 없어요.” 그는 그 후부터 다시는 법공부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뇌혈전이 재발했다. 여러가지 치료를 하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나중에 그는 나의 손을 잡고 한참 나를 쳐다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가 마음 속으로 ‘나이 60살도 되기 전 딸은 감옥에 감금되었고, 아들은 이혼 당했으니 이 집에서는 나의 면목이 서지 않는다.’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얼마나 원통하였으면 눈을 감지 못하고 있겠는가! 그는 안간힘을 다해서 나에게 “당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나를 원망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한테 너무 미안해요!” 하고 말했다. 나는 “당신은 그만 하세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기억하고 빨리 전생하여 법을 얻으세요.” 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내생에는 반드시 당신의 말대로 할 거예요.” 말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돌아갔다.

아마 그의 ‘주원신’은 명백해졌을 것이다. 나는 그가 “아침에 도를 알았다면, 저녁에 죽어도 원이 없다.”는 것처럼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남편이 세상을 뜨자 친척 친우들의 도움으로 간단하게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옥중에 있는 딸에게는 알리지 못했다. 장례를 치른 후 친척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니 저녁에는 두 모자밖에 남지 않았다. 참으로 쓸쓸했다. 예전의 큰 집은 이혼한 며느리가 팔아먹었고 남은 것이라곤 휑하고 쓸쓸한 작은 집에 모자 단 둘뿐이니. 우리는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아버지를 잃었고 처는 없어졌고 누나는 아직도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 등등을 생각하며 아들은 울음보를 터트려 그치지 않았다. 이때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 (홍음 -마음고생)이런 사부님의 말씀이 나의 머릿속에서 맴을 돌았다. 나는 머리를 번쩍 쳐들고 사부님의 법상을 바라보니 금빛이 찬란하게 비치고 있었다. 즉시 사부님 법상에 향을 올리고 두 손 모아 높은 목소리로 “사부님 안심 하십시오! 사부님께서 저를 믿으시고 때마침 제가 돌아와 이 가정과 집을 구하게 하셨으니, 저는 반드시 잘 수련하여 사악한 마를 물리치고 대법을 널리 알리면서 절대로 사부님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머리를 돌려 아들에게 “정신을 차려라!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는 한 두려울 게 무엇이냐! 아직은 내가 너를 보살필 수 있으니 우리가 이 관을 넘기만 하면 바로 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열릴 것이다!” 하고 타일렀다.

4. 실속 있게 수련하는 것이 대법의 근본

예전에 우리 집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았다. 남편은 미장공, 나와 아들은 의류점을 경영하여 가정의 경제형편은 비교적 좋았다. 그러나 이렇게 단번에 의류점포가 날아나고, 남편이 죽었으며, 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은 아무런 일거리도 없었다. 심지어 농사지을 땅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아들은 가정용 전기용품 수리공 일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그럴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 집이 있다. 비록 옛날 집이여서 비좁기는 해도 앞뒤 울안이 아주 넓어서 채소를 심으면 5, 6명이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당시 나는 50여 살이었는데 밖에서 땔나무를 주어 어깨에 짊어지고 왔어도 힘든 줄 몰랐다. 우리는 겨울의 월동 준비를 위하여 땔나무를 많이 장만했다.

한 친척이 가정용 전기수리를 하고 있어서 아들을 부탁했더니, 먹고 재워 주며 기술을 가르쳐 줄 수는 있으나, 월급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은 그곳으로 기술을 배우러 가게 되었고 나는 나대로 혼자서 밥벌이를 하면서 살았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법공부, 연공, 발정념, 진상 알리기 등 3가지 일을 시작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원래 알고 있던 보도원들 중 어떤 사람은 박해 당했고, 어떤 사람은 집을 떠나 떠돌이 신세가 되어서 좀처럼 어느 누구와도 연결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나 혼자서 ‘전법륜(轉法輪)’과 ‘7.20’ 이후의 사부님 경문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내가 홀로 힘들어 할 때 딸의 친구 부모(80)가 200여 리나 되는 도시에서 나를 보러 왔다. 그가 ‘7.20’ 이후의 사부님의 경문과 관련 자료들을 가지고 왔었다. 정말로 오랜 가뭄에 단비가 내린 것이 아닌가! 마치 친인을 만난 것처럼 기뻤다. 나는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신경문과 자료들을 가슴에 꼭 껴안고, 사부님께서 나에 대한 관심과 정심(精心)의 안배를 해 주신데 대해 너무나 감동 되었다. 교류를 통하여 알게 되었는데 이 두 노년 수련생들도 역시 몇 번의 박해를 당한 경력이 있으며 그들의 딸도 역시 여자 감옥에 감금되어 박해를 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현의 수련생들과의 연결이 될 때까지 매월 한 번씩 자료를 보내 주겠다고 말했는데 그들의 이러한 배려하는 마음은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였다.

금년에 80세 되는 동료 수련자가 매월 200여리 밖에서 엄동설한 추위와 무더운 여름, 바람 불고 비가 오는 날이라도 지체 없이 나에게 자료를 보내 주었다. 나에게 용기를 주어 나의 정신 상태가 두 배로 상승 되었다. 예를 들면 내가 굶더라도, 목이 말라도 주야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불면불휴(不眠不休)의 고행을 해서라도 그동안 지체한 시간을 보충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반복해서 사부님의 경문을 읽었는데 특히 그 중에서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북미순회 설법, 도항’ 등이 나로 하여금 통찰력을 갖게 하였으며, 방향이 명확하여 신심이 더욱 충만 되게 하였다. 나는 법공부를 더 많이 하여 사부님의 정법노정에 바짝 따라 붙어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용맹정진 하면서 실속 있게 수련하였다.

법공부는 나로 하여금 진일보 수련의 엄숙성을 깨닫게 했고, ‘대법제자는 신의 길로 가는 것으로서 오직 세간에서 고생하고 실속 있게 수련해야만 속인의 마음을 버리고 속인에서 뛰쳐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직 법공부를 잘해야만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고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으며,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나는 이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것을 견지해야 했다. 이렇게 나는 수련 중에서 봉착되는 매 하나의 고생, 쾌락, 난은 모두 사부님께서 나를 고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법의 기점에서 법을 사부님으로 삼고 수련인의 심태를 보존하면서 한 차례 한 차례씩 돌파구를 뚫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상승했다.

처음 한 해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믐날 저녁식사를 한 후 방안에 멍하니 앉아서 마음속으로 ‘아직 무엇이 부족 하지?’ 하고 생각해 보니 마음이 아주 허황했다. 아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바로 나의 옆에 와서 “어머니, 설을 쇠게 됐는데 기뻐하셔야죠. 누나가 없으면 내가 옆에 있잖아요. 나는 이미 그런대로 기술을 배웠으니, 설이 지난 후에 나 혼자서 가정용 전자제품 수리점을 꾸릴 수 있을 거예요. 돈 많이 벌어서 효도 하면서 반드시 어머니가 위축되지 않게 해 드릴게요!” 하고 말했다. 20몇 살밖에 안 된 아들의 성숙된 이 말을 들은 나는 한편 기쁘고 한편 마음이 시큼했다.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 아직 일할 수 있어. 나는 수련을 잘하지 못하여 너의 아빠를 구하지 못했고 또 너의 그 작은 가정조차도 보호하지 못하여 사부님께 근심을 끼치게 해 드렸으니 정말로 미안하구나! 우리 집 뿐만 아니라 박해 당한 모든 수련생들의 가족들도 모두 우리처럼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지 못 하게 되었는데 사부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힘드시겠느냐. 모두 사부님의 자식들이다! 나는 지금 자식 중 딸 하나가 내 곁에 없다고 생각할 따름이지만, 사부님께서 감당하시는 마음은 얼마나 크실까! 모두 우리가 수련을 잘 하지 못하여 사부님께 부담을 드린 것이다. 나는 오히려 사부님께 미안할 뿐이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밖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리더니, 한 쌍의 부부 수련생이 들어왔다.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하여 면목을 다 잃었다.” 고 하면서 그들은 나에게 한 포대의 밀가루. 한 통의 기름, 또 고기와 여러 종류의 채소와 과일 그리고 현금 500 위안 까지 가지고 왔다. 나는 “당신들 이,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하고 말했다. 그들은 “당신께서는 아직 말하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께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당신에게 보내라고 하신 겁니다. 우리 둘은 부부직장인으로 모두 월급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경제적인 수입원이 없지 않습니까? 이 첫 설을 맞으면서, 반드시 아드님과 함께 잘 보내셔야죠. 속인들이 우리를 비웃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며, 사부님께서도 안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서 합장하고 사부님의 관심에 감사의 표시를 올렸다. 그들은 줄곧 나를 도와 만두를 다 빚어놓고 돌아갔다. 나는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면서 큰 목소리로 “사부님 감사 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다. “나는 그들이 가져 온 물건은 모두 받았으나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현금만은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

몇 년의 노력을 거쳐 사부님께서는 나의 손목을 잡고 매 일보를 이끌어 주셔서, 하는 일마다 모두 순리로웠으며, 넘어야 할 관으로 비록 고생을 했지만 능히 넘을 수 있어 마음속으로 너무나 달콤했다. 예전에 함께 수련했던 두 명의 수련생을 찾아서 현의 수련생들과 연결할 수 있었으며, 우리는 매주 제때에 관련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고 우리 집에서 늘 몇 명 수련생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왕래했다.

아들도 기술을 다 배웠다. 아들은 그 어떤 기술적인 명성은 없지만, 그러나 사부님의 보호 하에 자립할 수 있었다. 현재 컴퓨터, 텔레비전 등 가전용품 수리에 비교적 정통하다. 몇 년간 얼마의 돈도 모였는데 작년 가을 아들이 직접 집 안 밖을 새롭게 수리하면서 방을 세 칸을 늘려 만들어 모자가 각자 방 한 칸씩을 차지하게 되었고 누나에게 줄 방도 마련해 두었다. 또 한 칸은 남겨놓았는데 그 곳은 법당으로, 오직 사부님 법상을 공양하는 자리도 만들었다. 우리 집에 와본 수련생들과 친구들은 모두 “정말로 대단하네! 이 집을 수리하니 마치 아파트와 별 다름 없네!” 하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아들은 이 집에 가정용전자제품 수리점을 차렸다. 마을 사람들의 작고 간단한 수리정도는 아예 돈을 받지 않았다. 수리점을 꾸린 후 그의 동창이나 친구들의 왕래가 비교적 많아졌다. 우리는 수련생들과 우리 집에서 교류하므로 해서 하나의 편리한 조건을 만든 것이다. 우리들이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일을 처리 했으므로 우리들의 행위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감동 시켰으며 역시 많은 사람들이 구도되었다. 모두 내가 파룬궁을 연공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우리 집의 상황도 잘 알고 있어서 우리 모자 둘은 이 마을에서 평가가 비교적 좋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왕래하기를 즐겼다.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지하였으므로 우리는 이미 하나의 비교적 느슨한 수련 환경을 창조했다. 이런 환경은 나와 수련생들이 함께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정진실수(精進實修) 하는데 촉진 작용이 되었다.

최근 아들에게 좋은 아가씨를 소개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주 빨리 작은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마침 어느 한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막다른 곳에서도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하는 것과 같았다.

세간풍파 다 경험해 보며 인정에 마음이 상했어도 행운으로 주불 만나 속세를 간파하니 진귀하도다 법을 만나 수련한지 15년 항상 사존께 의지하며 사부님 법을 믿고 재 정진하여 서둘러 많은 사람 구했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나의 수련 과정의 내용을 마치려고 하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한다.

(밍후이왕 제8기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체험교류)

문장발표 : 2011년 11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10/ 248914.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