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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邪悟)자가 현재까지 시장이 있는데 대한 약간의 사고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공 깡패 집단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후, 사악한 세력은 각종 수단을 이용해 대법제자의 바른 믿음을 박해하고, 이익, 인정, 고문 등 수단으로 대법제자 수련의 확고한 정념을 와해시키려고 망상했다. 사악이 채택한 박해 수단 중 가장 사악한 것은 세뇌반이다. 어떤 대법제자는 집착 때문에 마음을 어기고 ‘삼서’를 썼다. 그러나 일단 사악의 환경을 떠난 후 그들은 매우 빨리 자신이 사악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엄정성명을 발표한 후 수련 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사악한 세뇌반에서 일부 사오한 사람은 오히려 계속 비뚤어진 이치를 포기하지 않고, 그들 중 일부는 비록 ‘엄중성명’을 발표했지만 마음속에는 자신의 근본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사오를 내려놓지 않는데 이것은 바로 그들이 사악한 구세력에게 잡힌 약점으로서 구세력은 사상과 행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다. 이 사오한 사람들은 자신이 대법에 대해 거대한 죄업을 지었다는 것을 알지만 용기가 없어 시인하지 않고 오히려 각종 그릇된 주장에 잠겨 온갖 방법을 다해 자신을 회피한다.

두려운 마음 때문에 이 사오한 사람들은 지금껏 걸어 나와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는 속으로 뛰어들지 않고 집에 숨어 일부 인터넷 논단에 빠져 있는데, 이런 논단은 특무와 사악이 통제한다. 그들은 그 가상적인 마당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수련환경’을 되찾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제멋대로 지껄이고 골목소식을 전한다. 개별적으로 천목이 열려 볼 수 있는 사람도 그 중에 섞여 오늘은 이 사람의 전생은 누구누구이며, 내일은 또 다른 사람과 이전의 친척이라고 말한다. ‘오빠’,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 매우 친근하다. 갑자기 자신이 이전에 어느 대단한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을 듣고 사오할 때 ‘자심생마’가 또 팽창했다. 해체된 ‘청심’ 논단에는 바로 일부 이러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청심’ 논단이 해체된 후 이 사람들은 자리가 없어 도처에 가서 새롭게 모일 장소를 찾았다. 사부님께서는 ‘각성하라’ 중에서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사람 마음이 귀신을 불러온다.”

지금 일부 사오한 사람도 기타 대법제자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뿐만 아니라 진상을 알리는 활동과 항목 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여전히 뿌리에서 자신의 엄중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 늘 일부 관건 시각에 나와 그들의 그런 비정상인 것을 발표하는데 집착과 사람마음이 많은 수련생을 아주 미혹시킬 수 있는 비뚤어진 이치이다. 그러나 어떤 연공장, 혹은 어떤 항목 소조에서 이런 사람은 일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다. 이런 사오 된 비뚤어진 이치를 내려놓지 못하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던 사람이 천천히 연공장이나 진상을 알리는 항목에서 책임자의 의견을 좌우지하기 시작하며, 심지어 진상을 알리는 항목을 마땅히 어떠어떠하게 해야 한다고 직접 결정한다. 이런 현상은 사람을 매우 우려하게 한다.

사오된 이치를 품고 내려놓지 못하고 내심 깊은 곳에서 참회하지 않는 사람을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사오한 원인을 돌이켜 보는 것도 무방하다.

1. 사람을 수호하고 법을 수호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TV방송 삽입은 국가 법률을 위반했고 좋은 사람의 행위가 아니다.” 사악은 바로 이 두 가지 말로 일부 사람을 전향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사람이 되려하는 것이지 수련자가 아니다. 수호하는 것은 속인이며 근본상 우주 정사대결의 기점에서 문제를 보지 않는다. 중생을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속세에서 사악의 거짓말에 미혹된다.

설령 사람 이 한 층의 이치에서 말하더라도 삽입방송은 선천적인 언론권을 행사한 것이고 거짓말을 타파하는 것이며 민중의 알 권리를 수호하는 것으로 이것은 덕행이 있는 정의로운 행동이다. 중공 사당이 매체를 강점해 거짓말을 퍼뜨리는 것이야 말로 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옛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에게는 충의(忠義)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사오자들이 우리들을 구도하는 사부님을 배반하는데 어디에 약간의 충이라도 있는가? 좋은 것을 비뚤어진 이치로 대하고, 바른 것이 비방을 당했을 때 진상을 밝히지 않고 정의를 수호하지 않는데 어디에 약간의 의(義)라도 있는가?

“당신은 사부님에 대한 집착, 대법에 대한 집착, 수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 말을 듣고 정법시기 수련과 개인수련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혼란스럽게 된다. 자신의 득실에 집착하고 자신의 원만에 집착하고 시간에 집착하는 등등, 사악은 이 모두를 이용해 수련인이 이미 수련을 잘한 기초를 와해시킨다.

설령 개인수련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법문의 수련하는 제자라도 사부님과 사부님의 법에 대해 매우 존경하며 사부님에 대해 온 몸과 마음으로 신봉하고 수련에 대해 모두 극히 엄숙하다. 어디에 ‘사부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다’란 이런 후안무치한 말이 있는가?

“자신을 찾아라, 당신이 보라 당신이 한 일이 가족, 직장과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번거로움을 가져 왔는가?” 수련생의 선량함을 이용해 좋은 사람과 정사대결의 개념을 헛갈리게 한다. 결국 당신이 사람의 이치를 수호하는가, 아니면 대법을 수호하는 지를 본다.

사람의 이치에서 말하면 사당(邪黨)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것이며 중공이 가정, 직장에 번거로움을 가져온 것이다. 소위 법을 집행한다는 사람들이 법을 집행하지 않고 범법하는데 그들은 토비(土匪)와 같다.

“속인상태에 부합되게 수련해야 하며, 속인이 당신을 이해하게 해야 한다.” 사람마음이 매우 무거운 많은 수련생들은 자신의 두려움을 덮어 감추기 위해, 물의 흐름에 따라 배를 밀듯 사오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포기하며 법을 실증하는 것을 포기한다. 진수제자는 만약 속인이 우리와 같고, 속인이 모두 수련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모두 거짓말에 미혹되지 않고 대법을 인정하며, 모두 그렇게 바르면 이 세계는 모두 신의 세계이고 정법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세간에 온 목적은 그 미혹된 중생을 각성시키고 그들을 구도하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진상을 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사람의 도리는 충신(忠信)을 말하는 것이고, 양심 있는 속인은 충의지사를 존경한다. 믿음을 저버린 사람은 좋은 사람마저도 아니며, 양심 있는 속인도 이러한 사람을 경멸한다.

“당신이 이렇게 바른데 속인이 어떻게 당신들을 받아들이겠는가? 당신들이 이러면 매우 이기적이다.” 많은 수련인들은 속인이 자신에 대한 인식과 견해에 대해 특별히 중시한다. 하지만 속인은 사실 공산사교에게 세뇌 당했다. 그들의 사상은 사악이 주입한 비(非) 이념으로 이 세계를 대한다. 대법제자의 바른 표현은 생활 중, 업무 중과 진상을 알리는 중에 있으며 이것은 바로 속인에게 하나의 선택을 주는 것이다.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대법제자의 ‘바른’면을 대면해 사람들은 모두 염을 움직이는데 선념 아니면 악념이다. 이것도 바로 사악과 구세력이 틈을 타는 것이다.

양심이 있는 어떠한 속인도 모두 정인군자를 존경하며, 변덕스럽고 도덕이 낮은 소인배를 경멸한다.

2. 직접 밍후이왕을 헐뜯고 사부님을 헐뜯는다

“밍후이왕 보도는 문제가 있고 사실에 부합되지 않으니 믿으면 안 된다.” 사악의 전향인원은 수련생이 수련과 법리를 투철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밍후이왕을 헐뜯고 대법제자의 바른 믿음을 와해시킨다.

밍후이왕의 보도는 진실을 근본으로 하며, 중공이 소식을 봉쇄한 정황 하에 온 힘을 다해 진실한 소식을 확인하고 독자에 대해 책임진다. 중공 사당의 매체야 말로 거짓말을 퍼뜨리는 대변인이다.

가짜 경문을 전파하고 사부님의 설법을 헐뜯는다. 더욱이 사오자는 사람마음의 부추김에 기꺼이 중공 특무에게 이용당하기를 원하며, 가짜 경문을 전파하고 심지어 사부님의 설법을 비방하고 수련생의 바른 믿음을 와해하려고 꾀하며,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는 일을 교란하는데 그 죄업이 커서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3. 자신의 인식에 집착하고 자신이 깨달은 것이 높다고 인식하며 자심생마한다

원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이미 사오한 사람이 “당신은 이미 원만했다”고 알려주면 이런 사람은 수련을 포기한다. 사실 수련을 시작할 때 구하는 마음을 품었다. 고험 앞에서 이 마음은 이미 법을 얻은 사람을 망쳐버렸다.

스승을 배반한 자는 지옥에 떨어지는데 어떻게 원만을 말할 수 있겠는가?

‘고층차’의 이치를 체득하는 것을 추구하고, 착오적으로 사악이 대법제자를 파멸시키는 사악한 그릇된 주장을 ‘고층차’의 깨달음이라 여기고 따라서 정념정행을 포기한다. 예를 들면 ‘전향’을 ‘철저히 집착을 다 버리는 것’으로 말하고 사악과의 ‘타협’을 ‘걸어 나오다’로 말하는 등등이다. 이렇게 사오한 사람은 모두 개인의 ‘나는 깨달았다’에 집착하며, 심지어 자신의 터무니없는 생각을 수련의 실질로 여긴다. 자심생마의 혹사 하에 ‘더욱 높은 층차’를 추구하기 위해, 사악은 황당무계한 이상한 논리로 이 사람의 마음을 공격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식이 높다고 여기는데 그런 사상은 사실 모두 사악이 이 사람 공간장을 공격한 후 그들에게 억지로 채운 것이다. 가련한 것은 그들은 대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가늠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그 그릇된 주장이 모두 자신이 ‘높고 깊은’ 경지에 들어선 후 깨달은 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이 사람들이 이런 거짓말을 접수한 이유는 결코 이 거짓말들이 ‘층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거짓말이 그들의 두려운 마음과 집착에 부합되며, 자신이 사부님을 배반한 구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일을 하고 또 교활하게 구실을 찾아 덮어 감추어 죄에 엄중한 죄를 더했다.

그럴 듯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는 것을 이용하고, 에둘러 왔다갔다 돌며 생트집으로 수련생을 속인다. 일체 개념을 슬쩍 바꿔 빙빙 도는 분쟁은 모두 수련생의 사유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이며, 타인에게 자신이 ‘깨달은’ 소위 ‘더욱 높은 층차의 법리’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황당한 주장을 퍼뜨리는 사람은 종종 말솜씨가 매우 뛰어나며 말하는 중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를 사용하며, 심지어 그들 자신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의 사오한 언론(言論)을 ‘더욱 높은 층차의 법리’라고 인식한다. 때문에 그들은 매우 진실하게 표현하며 심지어 진심으로 기타 대법제자도 그들의 소위 ‘더욱 높은 층차의 법리’를 받아들이기를 희망한다. 사실 그들 자신도 자신이 일찍이 이미 수련하지 않고 사악한 구세력에 이용당해 대법제자의 바른 믿음을 파괴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사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기만하고 남도 속이는 것이고, 나쁜 일을 해서 양심이 불안하며, 자신에게 구실을 찾아 자신을 속이고 마비시키며 또 다시 다른 사람까지 속인다.

자신의 인식에 집착하고 자신의 고만한 인식을 내려놓지 못하며 심지어 사부님 말씀도 듣지 않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반대로 이해하고, 또 이렇게 반대로 이해하는 것이 모든 대법제자에 대한 ‘고험’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오자는 지금껏 진실하게 착실히 수련하지 않기 때문에 관을 넘는 중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개변하지 않고 자신의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변이되고 발전해 마지막에는 비뚤게 해석하고 잘못 이해한 사부님 말씀으로 자신이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죄가 너무 커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교활한 사람마음에 불과하며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며 자신의 범죄를 덮어 감추려는 구실을 찾는데 불과하다.

그러나 일단 사오한 사람은 되돌아오기 매우 어려운데, 구세력이 일찍이 이 사람들을 도태하려고 계획했기 때문이다. 사악을 배치해 이런 사람을 전향하는 것도 구세력이 이 사람을 없애려고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사람이 사오되면 구세력은 전문적으로 이들의 황당무계한 인식을 강화해 이런 사람은 점점 자신의 인식이 옳고 ‘고층차의 법리’라고 인식한다. 일단 사오한 후, 수련인의 신체(神體)는 철저히 녹아버리고, 그 다음 신체는 마의 모양으로 탈바꿈한 것을 이전에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보았다. 그들 사람의 일면은 사당에게 왜곡되어 이미 정신이 흐리멍덩하다.

진수제자가 그들의 사오 언론을 지적하면 그 정신이 혼미한 사람은 대단히 화를 내면서 자신을 공평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신을 마치 역사상 ‘종교 재판소’에서 처벌당한 사람으로 느끼며 정신정오(正信正悟)한 대법제자를 배척하고 거부한다. 더욱 심한 자는 감옥 안팎에서 자신의 왜곡된 사설(邪說)을 선전하고 설명하는데 목적은 자신이 옳고 ‘더욱 고명한 법리’를 장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그 진정한 결과는 바로 대법제자의 바른 믿음에 엄중히 영향 주며 사악의 지시가 없어도 오히려 수련생을 ‘전향’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신 수련생, 법공부가 깊지 못한 수련생에게 마의 작용을 일으키고 그들의 사오 되고 왜곡된 이치는 심지어 일부 사람의 바른 믿음을 파멸할 수도 있다. 자신이 심연으로 갈 뿐만 아니라 다른 수련생도 일보에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데려간다.

사오(邪悟)한 사람은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자신과 같은 사오한 사람들과 뭉치는 것이다. 자신의 작은 울타리에서 다른 대법제자의 나쁜 말을 하는데 그들은 동병상련이기에 상대방의 사오 된 그릇된 주장을 서로 지지한다. 그들은 또 자신의 억지와 그릇된 주장을 사람들이 다 보는데 감히 내놓지 못하는데, 그들 배후의 통제요소는 그 그릇된 주장이 모두 진수 대법제자의 정념정행에 의해 폭로되며 진정한 법리에 의해 해체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대법제자가 수련을 잘했지 여부는 입으로 ‘법리’를 얼마나 말했는지에 달리지 않고 오직 심성만 본다. 심성은 오직 고험 중에서, 마난 중에서 비로소 진정으로 체현된다.

아래 밍후이 문장은 사람마음으로 법을 이해하는 것이 사오를 조성하는 근본 원인이며 사오자가 사람을 해치는 원인을 매우 잘 말했다.

“당신이 그 사오자를 보라. 말하는 것이 하나하나 사리에 들어맞고, 마치 이론이 또 매우 완전하고 심지어 그럴듯하게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모두 사람의 이치로 법리를 해석하고 따라서 사람마음이 심한 수련생을 기만한다. 사오자가 한 말이 얼마나 법에서 많이 말하든지를 막론하고, 안팎이 전부 사람의 이해다. 당신이 여전히 사람마음이 있을 때 공명을 일으키며 당신은 그것의 포로가 되고 그를 따라 사오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 ‘사람의 이해’는 사실 나쁜 사람의 이해, 혹은 사람마음의 이해이며 정상사회의 좋은 사람 역시 그들과 같지 않다. 사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두려운 마음과 집착을 위해 구실을 찾고 귀를 막은 채 방울을 훔치는 격이다.

역사가 오늘까지 걸어왔고 사악의 박해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으며 그 사오자가 바른 길로 되돌아 올 기회는 이미 매우 적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기만당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해를 가장 많이 입은 사람은 바로 법공부가 깊지 않은 사람이거나 신 수련생이다. 사오자는 옳은 것 같지만 실은 옳지 않은 논조가 있다. 하지만 수련생 중에서 아직도 일부분 사람들은 착실히 수련하지 않고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이 있다. 진정으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되려면 오직 한 갈래 길인데 그것은 바로 착실히 수련하는 것이다.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에 진리에 대한, 수련에 대한 체득이 안으로부터 밖에까지 진수자를 철저하게 개변하게 만든다. 만약 제자마다 모두 진정으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착실히 수련하면 사오한 사람도 시장이 없어지고 대법 수련자의 환경은 비로소 순수해진다. 큰 파도가 모래를 이니 진짜 금이 아니면 반드시 걸러낸다. 마난을 경과하고 걸어 나와야 진정으로 우주 중생이 존경하고 우러러 볼 가치가 있다.

문장발표: 2011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7/2487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