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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超常)’이야말로 정상이다

글/대륙대법제자 우헌(宇軒)

[밍후이왕] 우리는 모두 ‘사람과 신의 일념지차’를 알지만 오히려 매우 많이 ‘신’이 되지 못한다. 뼛속 깊이 형성된 이치가 선천적 본성을 가로막아 이로 인해 선천적 본능을 억제했다. ‘인(人)’의 염두가 우리를 사람 상태로 끌어당기고 자연히 대법수련의 초상(超常)함을 체현해 내지 못하게 한다.

‘초상함’의 나타남은 요구의 높고 낮음에 따른다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좋고 나쁨은 일념(一念)에서 나온다.”(전법륜) 마치 한 학생과 같이 100점을 받기를 매우 바라는데 그는 이것을 위해 노력해 아마도 100점을 맞을 수도 있다. 만약 그가 100점을 맞을 생각이 없거나 오직 합격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는 아마 합격에도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또 예를 하나 들면 한 수련생이 생활방면에서 먹고 마실 것만 있으면 된다고 인식하면 그는 줄곧 생활이 넉넉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법을 배우는 것은 복이 있다고 확고히 믿으면 그러면 그는 아마도 업무가 느슨해지고 오히려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심지어 하늘에서 떡이 떨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직장에서 갑자기 많은 월급을 추가 지급하든지 혹은 의외로 큰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다) 나를 놓고 말하더라도 나는 정식 일자리가 없고 장기간 집에서 학생들에게 영어 과외를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업무가 힘들지 않지만 공부를 가르치는 효과가 매우 좋고 수입도 괜찮다고 여긴다. 정말 내가 예상한 것처럼 과외를 받는 학생들이 많지도 적지도 않으며, 나는 매우 열심히 가르쳐 학생들의 성적은 거의 우수하고, 수입도 재직교사가 버는 것보다 더욱 많으며, 또 여가에 세 가지 일을 할 시간이 충분해 수련생들이 모두 부러워한다.

이 방면 인식에서 우리는 되도록 일의 결과를 더욱 좋게 설정하는 것이 좋다. 필경 우리의 높은 표준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제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며, 엄격한 심성요구를 기초로 한다. 결과가 좋을수록 세인들이 대법의 초상함을 점점 깨닫고 구도중생에 점점 유리하다. 일의 좋은 결과는 또 우리가 대법을 확고히 믿는 것을 촉진한다.

때때로 ‘초상함’의 나타남은 또 ‘믿음(信)’의 정도에 달렸는데 절충하지 않는 믿음이 결과가 더욱 좋다. 마치 그 사부를 따라 술 주전자에 뛰어든 수도인처럼 그의 사부가 무엇이라 말하든 그는 모두 믿었다. 바로 사부님 말씀을 깊이 신뢰하고 의심하지 않기에 그는 비로소 더욱 아름다운 것을 목격했다. 예를 들면 나는 일상생활 중에도 늘 ‘신념(神念)’을 움직였고 매우 많은 일에서 기묘한 효과를 얻었다. 구체적으로 일을 하기 전에 나는 먼저 대법으로 가늠하고 일단 일이 마땅히 어떠한 결과라고 확정하면 전혀 의심을 하지 않기에 결국 일은 내가 예견한 것처럼 그렇게 된다. 어떤 일은 속인이 보기에 전혀 불가능하지만 나는 해냈고 속인도 나를 높게 보며 이 때문에 대법에 대해 더욱 존중한다. 간혹 수련생도 모두 놀랍게 여기는데 나는 바로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인식한다. 대법제자는 인간 세상을 걷는 신이며 특별히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닌, 오직 매우 평범한 염두로 일을 해도 속인보다 효율이 좋고 결과도 좋다.

예를 들자. 현지 경찰이 호구가 없다는 이유로 늘 나를 괴롭혔는데 나는 호구를 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는 외지 호구라서 반드시 먼저 가옥 증서를 해야만 호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집은 여러 번 거래를 해서 다섯 번째 만에 나에게 판 것이다. 사당(邪黨) 부서에 따르면 나는 반드시 다섯 번 거래세(交易税) 1만여 위안을 먼저 내야 비로소 가옥 증서를 처리할 권리가 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강도 논리다, 나는 내지 않겠다!’ 그 결과 매우 쉽게 가옥 증서 주인을 찾았는데 그는 첫 번째 집 주인이었다. 우리는 매매 협상에 서명했고 나는 이로 인해 1만 위안을 절약했다.

그러나 주택 관리국에 도착하니 번거로움이 또 발생했다. 나의 이 가옥 증서는 집 주인 이름과 서류가 부합되지 않았다. 그들 규정에 따르면 이것은 내가 사사로이 증서를 고친 것으로 되기에 처리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비록 필적을 대조한 후 그들도 내가 고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벌금을 내야하며 조목에 따라 일을 처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즉시 일념을 정했다. ‘무슨 생억지인가? 벌금을 내지 않아도 가옥 증서는 처리해야겠다!’ 그 결과 기적이 나타났다. 그날 오후 업무자가 나를 보고 한 번 왔다가라고 전화를 했다. 나를 보자마자 그들은 서로 앞다투어 내가 운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노 국장이 퇴직 수속을 갓 처리해 오늘 마지막으로 일을 보러 왔다가 이 일을 보게 됐다. 국장은 “퇴직했으니 마침내 공산당의 지배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럼 관례를 깨고 덕을 쌓자. 백성에게 ‘특별상’을 주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내가 당첨됐고, 벌금을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옥 증서를 처리하는 비용도 규정 정액보다 몇 배나 특혜를 받았다. 수련생은 신기하다고 말했고 속인은 더욱 흠모해마지 않았으며 모두 내가 파룬궁을 배워 복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외지 수련생을 구출할 때 만난 일을 말해보자. 요즈음 나는 모 지방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에게 권선(勸善) 문자메시지를 보내는데 보내는 과정에서 사악에게 갑자기 내 휴대폰 카드를 봉쇄당했다. 어쩔 수 없어 집으로 갈 때 갑자기 생각했다. ‘너희가 나의 카드를 봉쇄하면 나는 너의 감시 프로그램을 봉쇄해 버릴 것이다. 나는 너의 도적눈을 차단해 버리겠다!’ 그리하여 ‘차단’공능으로 사악을 대체했고, 결국 몇 분 후 휴대폰을 다시 켜니 기적이 발생했다. 금방까지 소비했던 휴대폰 카드인데 또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것의 봉쇄를 승인했다면 수련생 구출을 잠시 미루어 놓았을 것이고 그러면 사악이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우 많을 때, 우리가 소극적으로 방임하고 인위적으로 마땅히 잘할 수 있는 일을 사람의 평범함에 확정시킨다. 어떤 수련생은 일을 하는 것이 속인 수준을 초월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의식(衣食) 방면도 매우 곤란하고 속인이 냉대하는 대상이 됐다. 만약 자신 환경의 좋고 나쁨에 명확한 요구가 없고, 심지어 생각도 하지 않으며, 확신도 없으면 어찌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할 수 있겠는가.

사실 초상함의 나타남은 법을 실증하는 일에서만 체현되는 것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각 방면에서도 체현된다. 개인적인 체득이다. 법을 배우는 자체가 복이 있는 것이고 또 심성표준의 제고를 덧붙이면 대법제자는 매우 많은 방면에서 모두 출중하다. 가정조건 혹은 업무 환경을 막론하고 최저한도로 속인 중에서 비교적 좋다. 당연히 우리가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데 이것은 대법의 위덕이며 우리는 오직 자신 환경에 대해 명확한 의식을 귀정(歸正)하고 제고해야 하며 오직 자연히 체현하면 된다. 대법제자는 비교적 좋은 물질 환경이 있을 것이며 이 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우리가 인식상에서 소홀히 하여 조성된 것이다.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다’(전법륜), 비교적 높은 심성을 가지면 비교적 좋은 물질 환경이 있다. 만약 심성이 늘 높은 표준에 도달하면 상응된 물질 환경도 비교적 평온하고 비교적 좋고, ‘사람’에게 종종 초상적인 것이 우리 여기에서 정상이 된다. 여기에는 우리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을 고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인들에게 자연히 대법의 초상함을 나타내며, 이로 인해 구도중생을 더욱 잘할 수 있다.

대법제자가 사람의 감수와 상태를 정상으로 여기면 사람에서 신에 이르기까지의 변화과정을 연장하게 된다. 대법제자는 마땅히 신념(神念)이 늘 있어야 하고 신의 염두가 자기 사유의 주도적인 형식이 되어야 한다. 또 최대한도로 속인 상태에 부합해 수련해야 하고 또 일체 번잡한 사물 중에서 자연히 대법수련의 독특함을 나타내야 한다. 생활환경이든 일을 하는 효과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속인보다 많이 낫다. 초상함이 나타나는 정도도 수련자가 대법에 대한 인식과 동화 정도를 체현하는데 왜냐하면 우리 ‘초상’의 기점은 법을 펼쳐 보이는 것과 실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장발표: 2011년 11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22/2496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