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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ㅣ용맹정진 조사정법(2)

글/ 광둥 징렌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후에 사부님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손으로 받들어 올려 나에게 모두 보여주었다. 너무 아름답고, 또 천녀가 꽃을 뿌리는데 내가 수련해서 부처로 되고 사부님이 말씀하신대로 “큰 성취 이루고 돌아오니 뭇 신들이 맞이해 주네”(감개(感慨)) 그 층차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듣지 않고 보지 않으며 사부님의 표정만 본다. 사부님은 나를 보고 자꾸 눈물을 흘린다. 다른 공간은 노래며 춤이며 모두 웃음을 띤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웃지 않으셨다. 사부님께서는 왜 웃지 않으실까 하고 생각하였다.

— 본문 중에서

(용맹정진 조사정법(1)에 이어서 계속)

더욱 높이 수련

대법수련은 어렵지 않다. 집착심만 찾으면 수련하기 쉽다. ‘96년 추석 때 법을 얻었는데 ‘97년 추석 때 나는 사부님께 “추석은 원만하는 날입니다. 저는 원만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신경문 ‘시간과의 대화’를 읽고 사상부담이 커서 눈물만 났고 사부님 보고도 눈물이 났다. 자신이 사람도 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생생세세 그 많은 업을 지었고 ‘수호(水滸)’에서 진짜 사람을 죽였으며 이 생에 낙태를 하였고 쥐도 죽였고 많은 생명을 죽였다.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어떻게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을까?

후에 사부님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손으로 받들어 올려 나에게 모두 보여주셨다. 너무 아름답고, 또 천녀가 꽃을 뿌리는데 내가 수련해서 부처로 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큰 성취 이루고 돌아오니 뭇 신들이 맞이해 주네”(감개(感慨)) 그 층차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듣지 않고 보지 않으며 사부님의 표정만 본다. 사부님은 나를 보고 자꾸 눈물을 흘리신다. 다른 공간은 노래며 춤이며 모두 웃음을 띤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웃지 않으셨다. 사부님께서는 왜 웃지 않으실까 하고 생각하였다. 후에 사부님이 “너는 육신이 영원할 것이다. 삼계에서 윤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고개를 숙여 보니 정말로 卍(만)이 하나 있다. “사부님, 더 높이 수련하겠습니다!” “그럼 신이 될 것이다” 사부님은 늘 반대로 말씀 하신다. “업이 크니 수련하지 말지.” “다른 공간에서 보면 그 부처와 여래도 사람 중에서 온 것이 아닙니까? 힘들지 않으니 높이 수련하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그럼 그렇게 해주마.”라고 하셨다. 단번에 떨어져 내려와 나는 다시 수련하였다. 수련에 미혹된 것처럼 수련하기를 좋아한다.

다시 수련

우리의 수련과정은 기억되며 없어지지 않는다. 전에 내가 어떻게 수련했는지 알며 지금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대법수련은 직지인심이고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다. 수련 중에 사부님은 나에게 공능을 열어주고 일부 광경을 보게 하였으며 모두 자신의 집착심을 찾는 것이다.

나의 호기심이 커서 여기저기 다 돌아다녀 본다. 이것도 집착심이다. 예를 들면 다른 공간에 많은 큰 눈을 보고 “나는 사부님의 큰 눈을 보지 못했어요. 사부님은 많은 큰 눈이 있을 겁니다.” 사부님은 내 옆에 앉으시고 나를 바라보았다. 많은 눈을 보았다. “사부님, 보이지 않아요. 이것은 집착심입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면 모두 보여주는데 본 후 집착심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삼화취정(三花聚顶)을 보게 하였는데 한 송이는 녹색이고 한 송이는 등색이며, 또 한 송이는 연한 황색이다. 돌고 또 돌고 보고 또 보고 너무 아름다웠다. 문득 생각났다. “아, 사부님, 보는데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나 자신이 수련해 내면 얼마나 좋을까?”

사부님이 다른 공간에서 감당하시다

사부님의 신경문 “시간과의 대화”를 읽고 나는 슬피 울었다. 아직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법을 얻지 못했을까? 홍법을 해야 한다. 어떻게 법을 얻지 못한다고 할까? 마음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다. 사실 다른 공간에서 모두 나에게 대단하다고 한다. 진짜로 무서운 것이 없다. 구세력의 법리도 알지 못한다. 무슨 물건이 와서 사부님을 해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기에 ‘7.20’이후 천안문에 갔을 때 하늘에 물었다.

한번은 다른 공간에서 사부님을 도처로 찾아 다녔다. 연분이 있으면 찾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 밧줄에 묶여 있고 부(負)의 생명이 사부님께 채찍질하여 옷이 다 찢어졌다. 나는 울며 채찍을 빼앗아 꺾어 버리고 그 사람을 꾸짖었다. 그러자 사부님은 “묶어서 꿇어앉게 해.”라고 하셨다. 나를 꽁꽁 묶어 무릎을 꿇게 했다. 사부님은 “여기서 천천히 반성해 보거라” 하셨다. 사부님은 자비하시어 우리를 위해 업을 감당하시므로 우리는 업을 적게 감당하는 것이고 진정한 고생은 사부님이 하시는 것이다. 사부님이 고생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負)의 생명은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만 한다. 사부님은 우리를 제도하기 위해 반드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의 신들도 이렇게 크게 감당하기 매우 힘들 것이다. 오직 사부님만이 이런 능력이 있어 중생을 위해 감당하신다. “사부님, 제가 틀렸습니다. 이제부터 다른 사람의 채찍을 빼앗지 않겠습니다.” 말하면서 울었다.

후에 또 이것을 보았는데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는 계속 볼 수가 없었다. 많은 사부님의 꿍선(功身)이 우리를 위해 감당하고 계신다. 사부님의 법신은 많고 많아 모두 우리를 위하여 감당하고 계신다. 보기면 하면 나는 눈물만 흘렸다. 후에 사부님은 장연법(障眼法)을 사용하여 보이지 않게 하셨다. 생각나기만 하면 울고 싶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고생하려 할 것인가?

큰 담력(天膽)

1999년 ‘4.25’이후 형세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법이 공격당하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가고 어떤 사람은……. 등등이다. 사부님도 나에게 알려 주셨다. 나는 그 날을 기다리며 수감되어 박해를 해체시키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이것은 우리가 업을 져서 조성된 겁난이라고만 생각하며 ‘정법수련’의 개념이 없었다.

‘7.20’이후 네 차례나 북경에 가서 거의 일 년 남짓 머무르며 열 몇 차례 붙잡혔다. 나는 매일 천안문에 가서 연공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매번 나 혼자만 남았다. 다른 사람이 붙잡혀 가는 것을 보고 “왜 나를 잡지 않는가”하고 물었다. 북경에 머물 때 중난하이에 가서 장××와 UN 사무총장아난을 찾아갔다. 나는 강××를 기소하려 했는데 협조하는 수련생이 없었다.

사실 사부님은 나에게 이렇게 많은 마난을 배치해 주지 않았다. 내가 북경에서 붙잡힐 때 집착심을 내려놓으면 이런 마난이 없어져 언제나 풀려났다. 그때 나는 고생을 해야 하고 소업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사부님에 대한 사람 마음이 많고 우리가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자신에게 마난을 가중시켰다. 당시 사악이 날뛸 때 북경에서 그렇게 태연한 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큰 간담을 주셨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북경에 가다

‘99년 ‘4.25’ 때는 몰라서 가지 않았다. 알면 갔었을 것이다. 99년 ‘7,20’후 시(市)정부, 성(省)정부에도 다 갔다. ‘7.20’때 광둥 광저우에 갔었고, 이튿날 북경으로 갔다. 광둥에서는 ‘상방(上訪-청원)’을 할 수 없었다. 어디에서든 모두 사람을 붙잡았다. 나는 파룬 휘장을 달고 북경에 갔다. 그때 나는 대법이 박해당하고 사부님이 우리에게 남겨놓으신 단체연공환경이 파괴되어서는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편지를 써서 각 정부에 알렸고, 이름이 알려져 집 전화도 도청을 당했다.

북경에 가서는 다른 대법제자를 찾아 함께 천안문광장에 가려고 했다. 수련생들을 찾지 못해 공원에 가서 연공을 하였다. 수련생이 내가 연공하는 것을 보면 찾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상관하는 사람이 없어 몇 도시를 돌며 법을 실증했다. 선전(深圳)의 집을 팔아 십여 만 위안(약 천여 만원)이 있었다.

처음으로 붙잡히다

후에 광저우로 돌아가 백운산에서 수련생들과 함께 교류를 하였다. 나는 자신의 체험을 말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길이 있고 나와서 법을 실증해야 하고 속인에게 파룬궁은 좋다고 알려야 한다고 했다. 내가 전화를 걸어 수련생과 같이 단체연공을 하자고 하였다. ‘7.20’이후 우리 집 전화는 감시를 당했다. 나는 파출소에 잡혀갔다. 나에게 ‘보증서’를 쓰고 연공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앉아서 그들에게 “내가 어찌 진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파룬따파는 반드시 이긴다.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 볼 없다.” 그 때 쟁투심이 있었다. 경찰은 무엇을 쓰겠냐고 물었다. 나는 높은 의자에 앉아 파룬따파는 어떻게 좋은가를 쓰려 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교대로 자면서 나를 지켰다. 밤새 잠을 자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대단하다. 우리는 몇 사람이 교대했는데 당신은 왜 졸지도 않는가? 나는 “홍법 하는 자료를 작성하는데 어찌 졸리겠는가?” 하였다.

내가 붙잡힌 후 어머니는 나와 연락하였던 수련생과 전화 통화를 하여 그들에게 연공하러 가지 말라고 하였다. 경찰은 한 사람이 연공하러 가면 나를 붙잡겠다고 하였다. 그 결과 이튿날 한 사람도 연공하러 간 사람이 없어 경찰은 나를 놔주었다.

북경에 가서 장XX를 찾다.

1999년 8월, 장××가 파룬궁을 박해하였다는 것을 듣고 (전에 이런 개념이 없었다) 다시 북경 중난하이에 가서 그를 찾아 기소하려 했다. 기차에서 편지를 작성하고 내리자마자 택시를 불러 중난하이로 향했다. 기사는 당신은 파룬궁을 하는 사람인데 거기에 감시카메라가 있어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에게 멀리 나를 세워주면 되지 않는가 하고 말했다. 기사는 나를 중난하이로부터 멀리 내려줄테니 내가 걸어가면 된다고 하였다.

중난하이 정문에 가서 정문을 지키는 군인에게 나는 대법제자인데 장××를 찾는다고 하였다. 사복 경찰을 한 사람이 보더니 손을 저으며 장××가 없다고 답했다. 나는 기다린다고 하였다. 사복 경찰이 나를 데리고 장××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였다. 그는 선전 먼데서 와 아직 밥도 먹지 않으니 먼저 뭘 좀 먹어야 한다고 하며 나를 봉고차에 태웠다. 가고 보니 파출소였다.

그들은 나를 묶고 대법책을 다 가져갔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후에 나를 수용소에 가두었는데 크기가 농구장만 하였다. 그때 수용소에 바보가 하나 있었는데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하고 처량하게 외쳤다. 이곳은 대법제자가 머물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 ‘사부님, 제가 틀렸습니다. 사악(邪惡)에게 협조하지 않아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고는 나는 울지 않았다.

이곳은 대부분 깡패들을 가두는 곳이었는데 파룬궁 수련생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파룬궁, 이쪽으로 오세요.”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수련생과 함께 있었다. 거기서 단체로 연공하고 법공부를 하여 나는 기뻤다. 우리는 함께 장××를 기소할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이징 주재 선전사무처 사무장이 와서 나를 데려갔다.

신기하게 베이징주재 선전사무처에서 도망가다

베이징주재 선전사무처에서는 한 사람씩 한 방에 가두었는데 나는 도망칠 생각만 하였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와서 나를 붙잡아 갔다. 나는 왜 이런데 있을까? 나는 장××이 있는 곳에 가서 기소해야 한다. 그는 우리 파룬궁을 해치러 왔다. 그들은 “당신은 갈 수 없어. 당신은 우리를 생각해 줘야 한다. 우리는 월급을 삭감 당한다.”고 말했다. 나를 그 방에 끌어다 놓았다. 나는 가부좌 하였다. 밤에 사람들이 없어 조용해졌다. 문을 열고 보니 어두워서 계단이 보이지 않고 길이 보이지 않아 방으로 되돌아갔다.

“사부님, 문을 만질 수 없어요. 나는 여기에 있을 수 없어요. 나는 기소하러 갈 것 입니다.” 후에 두리번거리리다가 창문을 보고는 창문을 열고 (3층 정도로 추정) 에어콘을 밟고 “사부님 저 내려갑니다.”하고 손을 놓았다. 1초도 걸리지 않아 내려갔다. 내려가 보니 이곳은 정원인데 문에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다. 정원은 담이 높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걸상이 하나 있었다. 걸상을 밟고 정원을 나가려 할 때 갑자기 자물쇠가 “땅”하며 자동으로 열렸다. “아,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문을 열고 도망갔다.

나는 파룬 휘장을 걸고 5급호텔에 왔다. 여기에서는 외국인들이 파룬궁을 말하고 있었고 또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 투숙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신분증이 없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해서 신분증을 몰수당했다고 말했다. 또 장××를 찾아 기소하러 왔으며 그들이 나의 책과 모든 것을 몰수하였다고 했다. 거기서 말하고 또 말하고 하여 호텔의 사람들은 내가 시끄럽게 할까봐 방을 하나 주었다. 방에 들어와 목욕을 하려고 옷을 보았는데 옷이 깨끗하고 먼지 하나 없었다. 다른 공간을 왔는지 깨끗하였다. (중난하이에 가기 위해 하얀 바지를 입었다.)

방을 구하다

천안문에 가서 대법제자를 찾아 장XX를 기소하려 했지만 수련생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많은 수련생을 불렀다. 5급호텔에서 돈이 많이 들어 “사부님, 저는 저렴한 여관에 머물겠습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원명원근처에서 여관을 하나 찾았다. 여관에 가서 나는 그들에게 신분증은 없고 파룬궁을 수련하니 경찰이 나를 해치고 신분증을 몰수해 갔다고 말했다. 여관 사람은 듣고 “머물고 싶으면 머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많은 사람이 여기에 올 것이니 한 층을 예약하겠습니다.”고 말했다. 나는 전화를 걸어 많은 사람을 불렀다. 많은 사람이 왔는데, 한 층도 모자라 또 한 층을 예약했다. 두려운 마음이 없으니 일이 순리롭다.

나에게 무선호출기가 있었는데 외지 수련생이 나에게 호출하면 나는 기차역에 가서 한 무리 한 무리 데려왔다. 몇 개월 안 된 한 아이가 있었는데 앉을 수는 있지만 아직 걸을 줄 모르는데 데려왔다. 연공할 때 아기를 중간에 두고 둥글게 앉아 연공했다.

(계속)

(밍후이왕 제8회 대륙대법제자 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1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10/2488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