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악의 장시간 박해 중에서 세간의 변이된 각종 저급적인 것들의 오염, 그리고 이익의 유혹에 직면해 어떤 수련생은 지난 몇 년 동안 적지 않은 일을 했지만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하고 자신의 수련을 늦춘 까닭으로 이런 세속적인 것들에 따라 줄곧 아래로 내려갔다.
어떤 사람은 대부분 정력을 세간의 명리를 추구하고, 속인과 허세를 비기며, 가정의 안정을 위해, 자식들이 장래 잘살게 하기 위해 등등 이런 방면에 쓰고 있다. 자신이 인간 중에서의 추구를 수련 위에 놓고 가정이나 자식을 위해 바쁘게 지내며, 심지어 몇 달씩 법공부를 하지 않고 수련하지 않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인과 혼동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1, 2년간 모두 수련에 안착하지 않고 늘 명예, 이익, 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수련생들은 평소에 법공부가 깊지 못해 튼튼한 기초를 닦지 못했기 때문에 대법의 소중함과 수련이 만고에도 만나기 어려운 것이고 이 기연이 얻기 쉽지 않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아주 어렵다. 장시간 박해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박해가 종결될 날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세간의 각양각색의 유혹에 끌려갔고, 어떤 사람은 물결치는 대로 표류하며 잘 먹고 잘 놀아야만 마음이 통쾌하다고 여긴다. 겉으로 보건대 그들은 여전히 수련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법의 요구와는 이미 너무도 멀어졌다.
어떤 노수련생은 자신에게 일정한 퇴직금이 있다면서 수련은 희망이 없다고 여기며 날마다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살고 더 복을 누릴까 계획하고, 어떻게 만년에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겠는가에만 마음을 쓰고 있다. 어떤 이는 날마다 마작을 하며 놀거나 속인 중의 기타 오락과 건강 활동에 참여한다. 어떤 이는 남편이나 아내가 세상을 뜬 후 혼자 사는 고독감을 면하려고 다른 대상을 찾아 깨가 쏟아지게 살고 있다. 비록 그들은 여전히 법공부를 하고 또 대법이 좋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오히려 법공부와 수련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모른다.
또 어떤 수련생은 자기 자식들이 앞으로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거대한 심혈을 아끼지 않고 쏟는다. 어떤 사람은 온갖 방법을 다해 자식들에게 생업을 마련해 주려고 돈을 얼마를 쓰든 아까워하지 않는다. 또 어떤 농촌 수련생은 가정이 그다지 부유하지 못하면서도, 본래 몇 만 위안을 들여 집을 지었고 그래도 보통 농촌 수준보다는 낮지 않지만 기어코 잘 사는 티를 내려고 십 몇 만, 몇 십 만을 들여 규모가 큰 집을 짓고 몇 만 위안의 빚을 지고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어 빚을 갚는다. 강렬한 집착을 놓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수련에 인위적으로 곤란과 손실을 조성했다.
어느 시의 한 여 수련생은 몇 년 동안 협조 사업을 하다가 이후에 박해를 당하자 더는 협조 사업을 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이 수련생은 정력과 시간을 줄곧 장사에 쏟아 붓고, 자신의 법공부와 수련을 홀시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수련을 견지한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정진하지 않는다. 어떤 수련생은 그녀가 협조 사업에 일정한 능력이 있다고 여겨 그녀가 정체적으로 정법 홍류 속으로 용해되어 대법 사업을 맡아서 할 것을 바라면서 교류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말했다. “나는 장래 아이가 쓸 돈을 벌어 놓은 다음 다시 대법 일을 하겠어요.” 그런데 이 수련생이 갑자기 세상을 뜰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그녀는 아이에게 돈을 얼마 남겨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잘 수련하지 못했고 대법에도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하늘에 있는 수련생의 영혼을 생각하면 그 후회와 고통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보다도 몇 배나 더 괴로울지 모를 일이다!
법에서 우리 모두 알다시피 대법제자라면 마땅히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하고 누구에 대해서나 모두 좋게 대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자신의 혈육에 대해서도 책임을 다 해야 한다. 노인을 공양하고 어린이를 부양하며 학교에 보내 공부시키고 취업, 결혼하는데 모두 신경을 쓰는 것이 필요하며 또한 경제 방면의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법의 표준으로 이런 것을 가늠해야 하고 척도가 있어야 하며 정에 좌우지 당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수련에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으로 그들을 좋게 하지 못할 것이며 만약 혈육 정 때문에 자신의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것이 교란 당한다면 혈육에게도 아주 불리하게 될 것이다. 사실 진정으로 자신의 수련을 잘하는 것만이 비로소 혈육의 최대의 복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이 한 점에 대해 마땅히 근본적으로 청성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각지설법7-2006년 캐나다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아마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나는 가정 일을 잘하는 것이 바로 수련이다. 부모형제들 우리가 더욱 친밀하면 된다’라고. 당신은 또 새로운 집착으로 들어갔고 극단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지만 오히려 지나칠 수 없다. 지나치기만 하면 또 집착이다.”
어떤 수련생은 줄곧 자신의 가정과 혈육정을 아주 중하게 보는데, 이 일체가 자신에게 속하며 세간에서 자신이 의탁하는 곳이라고 여긴다. 어떤 수련생은 몇 년 동안 적지 않은 일을 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에게 이 일체를 내려놓으라고 하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대법을 위해 생명을 바치라고 한다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이는 대법수련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야기된 것이다. 대법 수련은 직지인심으로 물질 이익과 생사 등 방면에 대한 집착을 닦아버리라는 것이지 기어코 세간에서의 물질과 생명 자체를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물론, 수련은 한 걸음 한 걸음씩 표준에 도달하는 것으로서 단번에 모든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자신에 대해, 대법에 대해 마땅히 충족한 믿음이 있어야만 최종적으로 법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다.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하려면 여전히 근본적으로 신사신법해야 한다.
바른 방면에서 본다면, 12년이나 되는 기나긴 반(反)박해 가운데서 수많은 대법제자들은 한 차례 또 한 차례 피의 교훈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수련의 길을 귀정했다. 법공부에 노력하고 안으로 수련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성숙으로 걸어갔고, 갈수록 앞으로 놓인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알게 됐으며, 갈수록 자신의 조사정법과 중생구도의 책임과 사명을 인식하게 됐고, 이에 대해 얼떨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아울러 각자 책임을 자발적으로 감당하게 됐다. 지금 중국 대륙에서 이런 수련생들이 이젠 대법제자의 주류로 되어 정말로 조사정법 가운데서 세간의 일체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
최후에 이를수록 사존께서는 법을 갈수록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천상의 변화, 세인의 태도 모두가 사존께서 말씀하신 일체를 실증하고 있으며, 이 일체 역시 모두가 사존의 장악 속에서 변화하고 있다. 또한 보다 많은 수련생들이 사존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사에 집착이 없는 그런 정도에 도달했고, 따라서 매 한 발자국도 모두 사존의 요구에 따라 하면서 자신을 완전히 법속에 용해시켰고 생명을 자신의 책임과 사명 속에 용해시켰다.
갈수록 많은 수련생들 역시 모두 자신이 오늘 세간에서 소유하고 있는 일체 모두는 대법을 위한 것임을 아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므로, 시시각각 법을 위해 쓸 준비가 되어 있다. 어느 수련생은 말하기를, 법을 실증하는 중에 만약 자신의 목숨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자신은 추호의 주저도 없이 지불할 것이라고 했다(물론 대법은 우리가 생명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지 않지만 이렇듯 확고한 신사신법의 마음은 우주를 놀라게 할 수 있다). 수련생들은 자신의 일체는 모두 사존과 대법이 준 것이며 이런 것을 법속으로 돌려야만 비로소 보다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그의 진정한 의의를 체현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러한 대법제자는 그야말로 뭇신들을 탄복시키고 중생을 기쁘게 하며 사악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우리는 깊은 곳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사존께서 정법하러 오시지 않았다면 인류는 진작 훼멸로 갔을 것인데 오늘 우리 대법제자가 아직도 있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우리가 세간에서 소유하고 있는 그 일체가 있을 수 있겠는가? 누가 아직도 이곳에서 집착을 부여잡고 놓지 않을 수 있는가? 누가 아직도 생사를 내려놓지 못해 구차스럽게 삶을 연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대법의 자원은 무엇을 하는데 쓰는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이 몇 년 동안 조사정법과 중생구도를 하는데 쓰게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법의 자원은 사회에서 사람을 구하고 구제하는 물자와도 같은 것으로서 이런 물자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 문제와 관계되는 것으로서 만약 누가 감히 사람을 구하고 구제하는 물자를 사사로이 옮겨 쓰거나 자기 소유로 만든다면 틀림없이 법의 추궁과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대법제자가 오늘날 소유하고 있는 일체를 모두 자신의 물건이라고 보면서 줄곧 속인 생활을 누리는데 쓰고 가정과 혈육에게 쓴다면(정상적인 생활과 자신이 마땅히 다 해야 할 의무는 제외) 여러 정도에서 대법의 자원을 점용한 것이 아닌가? 위험 속에 처한 중생을 위해 생각하지 않고, 무량한 중생의 목숨을 구하는 것과 관계되는 물자를 자기 소유로 만든다면 천법을 범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늘이 성취한 공적을 자신의 것이라 말하는 것이고(貪天之功), 하늘의 재산을 삼키는 것이 아닌가(吞天之財)?
사존께서는 초기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으로 수련 성취하라.”(정진요지-불성무루). 그럼 오늘날 정법은 곧 종료되려 하고 사존께서는 우리의 수련과 원만을 위해 이미 그렇게 많은 법을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마땅히 냉정하게 자신은 법의 요구와 아직도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대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존께서는 ‘무엇이 대법제자인가’에서 말씀하셨다. “사부는 오늘 여러분에게 좀 중하게 이야기했는데, 역시 여러분들이 각성(警醒)하게 하려고 한다. 당신들이 세인을 구도함에 있어 그들이 깨어나게 하고 그들을 구도하려면, 당신들 자신 역시 깨어나야만 하고 또한 깨우쳐야만 한다. 일만 많이 하다 보니 자신의 수련을 잊어버렸는데, 이것도 안 되지 않는가. 당신들은 수련인이다. 이 말은 당신의 과거, 예전 한 때, 혹은 당신의 표현에 대해 하는 말이 아니며, 이 말은 당신의 본질, 당신 생명의 의의, 당신이 진 책임, 당신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이래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한 대법제자이다.”
사존의 설법으로부터 나는 깨달았는바,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생명과 조사정법과 중생구도의 책임, 사명을 함께 용해 관통시켜 우리의 자비, 선량한 본성이 보다 큰 작용을 발휘하게 하며, 책임을 자신의 목숨과도 같이 보아야 한다. 오늘 우리가 감당한 책임은 우리 자신의 제고와 승화를 비롯한 것이며, 세간에서의 우리 생명의 진정한 의의는 바로 조사정법과 중생구도에 쓰는 것으로서 이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대법제자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책임과 사명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장래는 바로 자신 생명의 영원한 손해가 될 것이다.
수련생들과 공동 격려하고, 서로 소중히 여기며 우리의 막바지 길을 잘 걸어가기 바란다. 자신의 생명에 유감을 남기지 말라.
현 단계에서 개인이 깨달은 것으로서 부족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0/19/2480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