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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반 박해를 지지하고 기업가가 수련으로 들어 오다

글/ 대륙대법제자

1,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덕을 본다.

[밍후이왕 2011년 10월 7일] 생생세세의 윤회는 대법의 구도를 기다린 것이다. 나는 3개월 수련한 신 수련생이다. 밍후이에 나와 아내가 법을 실증한 이야기로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996년 나는 26세였다. 비록 젊은이지만 현지에서 좀 이름이 있는 기업가였다. 의외로 우리 집은 돈은 갈수록 많아 졌는데 아내의 병은 갈수록깊어 갔다. 그는심한 심장병으로도처에 의사를 찾아 다녔으나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친구가 아내에게 파룬궁 수련을 한번 배워보라면서 소개를 해주었다. 아내가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아내의 심장병은 거짓말같이 나았다. 우리 가족은 너무나 기뻤고 덕분에 예전의 화목함을 되찾게 되었다.

아내는파룬궁 수련을 하고 나서 더욱 현명하고 정숙해졌으며부모에게 효도하고 수십 명의 가족을 잘 대하여 우리 가족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목격하도록 했다. 십여 년간 아내는 대법을 수련하며 대부분의 정력, 재력을 모두 법을 실증하는데 투입하였고 사부님은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다 주셨다. 우리의 부모들은 모두 8, 90여세이지만 생활을 자립할 수 있고눈도 밝고 잘 들린다. 오늘 우리 부모들은 70여세인 노년 수련생이 농사일을 하는 것을 보고 그들도 대법수련에 들어섰다. 나의 두 딸도 파룬궁 수련을 지지하며 그도 엄마처럼 우리집에 입주하고 있는 수련생들에게잘 대해준다. 나는 1999년 7월 20전에 아내가 홍법하는 것을 지지하여 돈과 승용차를 지원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불광의 아름다음을 경험했다.

2, 아내의 반박해를 지지하다

중공사당이 파룬궁을 탄압한 뒤 우리집은 유리걸식하는 대법제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되어 가장 많을 때는 나의 공장마저도 수련생들로 꽉 찼다. 가장 많을 때 70여명이여서 아내는 수련생들의 입주를 해결하느라 바빴다. 어떤 수련생은 한 가족이 모두우리 집에 입주하고 있었다. 홍색공포의 환경에서 나도 아내를 지지하여 집에서 대형 교류회를 했는데한번은 교류회 때 큰 비를 무릅쓰고 집으로 가는 도중 한 수련생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집에서 법회를 한다고 알리고 그를 차에 실고 집 문 앞에 왔다. 나는 대문이 잠겨있어 비를 맞으며 가서 어떻게 문을 열지 하고 생각하는데 놀랍게도 차가 문 앞에 다다른 순간 꼭 잠겼던 대문이 저절로 열렸다. 나는 사부님께서 문을 열어주셨음을 깨달았다. 그때로부터 나는 더욱 확실하게 아내의 편이 되어대법을 도왔다.

일전에 아내는 밤중에 납치당했는데 나는현지 악경(흉악한 경찰)과 맞서 싸웠다. 나는 박해에 참여한 악경에게 ‘당신들은 나와 말할 때 먼저 차에서 내려 나에게 경례를 하고 당신의 신분증을 보여라. 나의 아내는 마음대로 잡을 사람이아니다. 그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당신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정중히 알렸다. 비록 당시 속인의 용기지만 사악을 놀라게 했다.

십여 년간 악경은 나의 아내를 납치하고 우리 집 돈을 강탈하려고 했다. 나와 아내는 정념으로 줄곧 그들이 성사하지 못하게 했고 악경은 돈을 얻어 가지지 못하였지만 그렇게 발광하지 않았다. 나는 평상시 아무리 바빠도 아내가 차가필요할 때는 먼저 쓰도록 하였다. 나와 아내는 사악의 눈앞에서 소모품을 구입하여 진상자료를 만들고 자료를 날랐다. 언젠가 나와 아내가 한 박스의 자료를 차에 실고 수련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는데 뜻밖에 그 곳을 지키고 있던 악경에게 발견되었다. 악경은 나의 차를 쫓아 왔다. 아내는 산골짝으로 운전하라고 말했다. 나는 아내가 두려워 자료를 산골짝에다 버리려고 그러나 하여 나는 힘들게 만든 것을 버릴 수 없으니 당신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때 쫓아오던 악경은 돌아갔다.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가 가장 심할 때 어떤 수련생 가족은 대법제자를 감히 자신의 집에머물지못하게 하였다. 한 여 수련생은 그의 남편이 불법강금 당하여 수련생의 집에 가서 피했는데 그들은 너무 두려워 낮에 창문도 열지 못했다. 나중에 수련생의 소개로 나의 공장에 와서 일하고 나중에 또그에게우리 집 두 아이를 돌봐 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에게 월급을 주었고 그도 우리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었으며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할 수 있었다. 마치 한 가족이 된 기분이었다. 구정에 나는 그의 아들을 데려다 그들 모자와 만나게되었다. 이 수련생은 남편이 평안히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바로 형기가 만기되기 반년 전 그는 남편이 위독하다는 통지를 받았다. 나와 아내는 수련생과 함께 그의 남편을 보러갔다. 그의 남편은 맞아서 말이 아니었는데 숨소리가 너무나 미약하였다.

나는너무나 분노하여 큰 소리로 ‘어떻게 사람을 이토록 매질할 수 있는가?하고말했다.그 때 병원 복도에 5-60명의 악경이 서있었기 때문에수련생의 가족은 분해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묵묵히 눈물만 흘렸다. 나의 소리를 들고 한 악경이 불편해하며 누가 때렸는가? 때린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나에게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나는 가족이 아니면 오겠는가? 고 말했다. 나는 이 수련생이 박해당해 죽는 것을 직접 봤다. 한 행복한 가정은 이렇게 깨졌다. 나는 그때 속인이었다.

12년간 나는 차를 운전하며 아내와 함께 조사정법 했다. 빙천설지이든 큰 비가 내리든 나는 진수 대법제자들과함께 했으며 나도 모르게 나의 마음은 대법 속으로젖어 들었다. 수련생들은 모두 나를 존중했다. 이 과정 중 나도 늘 그들의 교류회에 참여했으며 많은 수련생들이 생명으로 대법을 수호하는 것을 보았다.

3, 수련으로 들어와 위덕을 쌓다

2011년 6월 나는 한 수련생이 격려하여 5조 공법을 연마했다. 수년 간 나는 사부님의 설법만 들고 게을러 아침 일찍 연공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진정 수련하는 대법제자가 되고 싶었다.

연공을 며칠 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말하기를 “우리 앞에 인삼과 나무가 있는데 위에 붉은 인삼과가 주렁주렁 달렸어요. 나는 십여 년 수련하고 당신은 금방 수련했는데 당신과 나는 동등한 층차에 있어요.” 라고 했다. 나는 비록 금방 수련을 하지만 십여 년 내가 한 좋은 일을 사부님과 많은 신들은 다 기억하여 내가 수련하지 않으면 장래 복보를 얻지만 내가 수련하면 대법제자의 위덕을 쌓는다고 깨달았다. 나는 진정 잘 수련하고 이 억만년의 기다림을 어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삼계에 들어서면 머리를 말끔히 씻어 아무것도 모르며 이 십악독세에서 그래도즐거워한다. 자기가 하세하여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을 알게 되면 그것이야 말로 꿈속에서 깨는 것이다. 십여 년간 한 속인으로 대법을 실증한 일을 생각하면 정말 후회가 된다. 일찍 수련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나는 나와 같은 경력이 있는 대법제자 가족들이 수련하여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신 수련생의 저그마한 개달음이니 많은 노 수련생들이 시정하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10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0/7/2475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