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에게는 이 제목이 크게 와 닿는다. 나는 글을 잘 쓸 줄 모르지만 오래 전부터 줄곧 내 가슴 속에는 이에 대한 생각과 감수를 가지고 있었기에 오늘 한 번 써 보려고 한다.
나는 어떤 수련생이 파룬도형을 자기 컴퓨터의 바탕 화면으로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현재 중국대륙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무엇이 존경(敬重)이고 무엇이 존중(尊重)인지, 공경(敬仰)의구체적인 표현형식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좋은 것은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인데, 파룬도형이 좋고, 위력이 있으며 보기 좋으니 자기 컴퓨터의 바탕화면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이 소모품 등을 구입하는 것을 도와주는데, 그 수련생이 몹시 수고하고 있고, 자신도 아주 수고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사 일과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구별하지 않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왜냐하면 내가 그에게 소모품을 사주었고, 내가 그에게 어떠어떠한 것을 주었기 때문에,현재 나의 집에 일이 있거나 수련 중에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그가 나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때는 수련을 잊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은 당연히 마음을 폭로하고 안으로 찾아 일체 집착심을 버릴 기회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일반인들이 예의상 주고 받는 방식으로 수련의 기회를 대신하였다. 이 일에서 수련의 길을 걷지 않았다.
또 하나는 당신 자신이 능력이 있어 보이므로 그가 가지고 있는 이것저것들을 내 것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법을 실증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은 자신이 일하는데 편리하고자 하는 것으로, 표면적인 이유의 배후에는 복잡한 마음이 덮어 감추어져 있다.) 마치 상대방에게 어떤 생각이 있고 생명은 어떤 상태인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중국대륙의 부모가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와, 대륙사람이 외국인을 보는 습관을 연상하게 된다)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데, 반년동안 한 수련생을 위하여 6차례나 프로그램을 설치해 주었다. 그 후 그녀는 다른 수련생의 프로그램과 다른 것을 알게 되자 다른 수련생더러 다시 프로그램을 설치해 달라고 하였고, 한참 쓰다가 불편하니 또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만약 밍후이왕에 접속하지 못하면 내가 다시 설치해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정말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 어디에 문제가 있으면 이 프로그램을 설치해 준 사람을 찾아가라고 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절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법을 실증하는 일을 거절하면 안 되며, 이것은 일이 바라는 바와 반대로 가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 어떤 수련생들은 서로 간에 정진을 촉진하고 법 중에서 자신의 역량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편의’를 봐주고 있다. 나는 대법제자는 모두 대단한 생명으로서 마땅히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 방면으로서 이것은 각자 수련의 기회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우연한 것이 없듯이, 여기서는 오직 사악한 공산당 문화의 잘못된 사상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존중’이 무엇인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과 시비가 벌어지면 ‘진선인(真善忍)’을 이용해서 말하라고 한다. (나는 이것이 일반인들 사이의 ‘벼락에 맞아 죽는다’는 맹세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 당신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그러나 그는 이것이 그리 엄중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확실히 세가지 일에 노력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관념을 아직 개변하지 못했다.
나는 부부사이에 ‘손님 대하듯 존경하라’는 문장을 보았던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았다. 우주의 생명은 모두 같지 않다. 모두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다. 그러나 꼭 그 층차의 법에 부합되는 생명이어야 한다. 부부 및 가족 간의 관계에 관해서는 고대(古代)의 사례 중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신이 사람에게 전해준 것이며 사람에게 정상적인 생활 상태를 정해준 것이다. 그것은 진실하게 서로 존중하며 사상에서부터 언행에 이르기까지 안팎이 일치하고 언행이 일치하는 것으로서 표면상의 친절과 겸손이 아니다. 우리가 옛 사람들의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이를 단지 옛 이야기로만 여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부님의 설법에 따르면, 나는 부부생활이 후대를 번식하는 정상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부부생활은 욕망에 불과하며 신이 사람에게 준 아들딸을 낳고 기르는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다.
내가 남편에게 부부사이에 손님 대하듯 서로 존중하자고 말했을 때, (이것은 내가 오래 전부터 생각한 문제였다) 그는 나를 보면서 놀라워했다. 어떻게 하면 완전히 법에 동화될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사악한 공산당 문화 중에서 생명 간에 서로 마음대로 상처주면서 가족이라서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공경’은 현대인이 가져야할 상태이다. 이것은 생명이 마땅히 서로 존중하는 정상적인 상태이다. 법이 만든 생명은 생명이 미시적으로부터 줄곧 인류의 가장 표면에 이르기까지 모두그 층차의 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신을 믿지 않는다. 소유욕, 지배욕 등이 너무 강렬하여 언제나 자신의 염원에서 출발하며 각종 구실과 방법을 대어 자신을 만족시키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처리를 하며 법이 만든 생명 본래 각자가 사회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연결과 관계에 따르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앞에서나 뒤에서나 마찬가지로서, 집 안 사람에게, 부부 사이에, 자녀에게, 지배 권력을 소유한 사람은 타인에게 근본적으로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한다”는 말은 지키기 힘든 구호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정(情)’중의 이기적인 것이 최대로 확대되어서, 가능하면 일체는 자신을 위해 사용해야 하고 일체는 자신이 지배해야 하며 일체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현대인의 이기적이며 정(情)에 의한 각종 표현방식이 범람하여 정말 재앙을 부를 지경이다. 그러므로 대다수 현대인(특히 중국대륙의 사람)은 생명을 존중할 줄 모르고 더더욱 법을 존경할 줄 모른다.
몇 년의 수련을 통해 나는 온 천지에 모두 눈이 있다는 것을 진실로 느끼게 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경외하는 느낌이 들어서 집에서도 옷차림이나 언행을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 한번은 정공(静功)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식구들에 대한 ‘감정’을 화목하게 되돌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정신을 다른데 팔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나는 신이다”라는 다급한 한마디 말이 나타났다. 나는 즉시 청성해졌다. 천천히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생명 간에 서로 존중하는 상태가 정말로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런 변이된 나쁜 물질은 정말로 짐 이며, 그것들을 짊어지면 정말로 힘들어진다.
사실 이는 모두 내가 수련 중에 겪은 자신에 대한 체득이다. 후에 법 중에서 조금씩 억제하고 바로잡았다. 오늘 날 대법제자는 이렇게 복잡한 환경에서, 구세력이 일부러 이렇게 어지럽게 만든 사회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고 중생을 구도하기에 법 중에서 자신을 청성하게 하고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하며, 일반사회를 따라 가면 안 된다. 이것은 확실히 어렵긴 하지만, 이것도 우리의 선택이며 생명의 가장 큰 영광이며 행복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우리는 사부님의 정법시기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 논제를 생각했지만 시간도 없고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였지만 간단하지 않고 비교적 어수선하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감사합니다!
문장발표:2011년 9월 28일
문장분류: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9/28/-2472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