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망]사부님이 ‘더 정진하자’에서 “최후의 시각이 오기 전에 구도해야 할 중생의 숫자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대법제자 일부분이 아직 따라오지 못했는데, 이것이 바로 아직 최후의 이 일을 완성할 수 없는 관건 원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중생을 구도하는 동시에 뒤쳐진 동수들을 찾아 그들을 도와 제고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조사 정법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사부님이 원하시는 일이다.
전에 나는 특히 ‘전화’한 동수와 접촉하는 것을 싫어했다. 박해가 가장 고조에 이르렀을 때 누가 ‘전화’했다는 소리만 들어도 ‘그들과 접촉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사실 속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칠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그들이 가서 공안국에 나의 행방을 말할까봐 두려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자신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고려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다른 공간에서 보면 흑색물질이다. 이 흑색물질을 모두 ‘전화’한 동수에게 밀어버려 그들의 상태가 더 나쁘게 되었다,
수련생은 왜 ‘전화’하였는가? 주로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근본적인 집착심을 버리지 못했고 아직 마음속에 풀지 못한 매듭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 마음속의 매듭을 풀어주고 법리에서 제고해 주며 사악이 그들에게 주입한 ‘전화가 옳다’는 그릇된 생각을 타파하게 해주어야 한다, 사람이 여러 해 동안 대법에서 수련하여 생명의 근본은 대법이 좋은 것을 알고 있지만 잠시 사악에 빈틈을 보였던 것이다. 누가 진실로 ‘전화’하고 싶겠는가? 대부분 수련생은 ‘전화’한 후 통곡한다. 그들의 생명의 근원이 진실로 흐느낀다. 우리가 ‘전화’했다는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을 배척한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사악이 좋아하지 않겠는가? 사악이 ‘동수도 당신의 전화를 승인하는데 수련해서 뭘 하나?’라고 말할 것이다.
사부님이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설법’에서 ‘홍대한 관용’의 법리를 말씀하셨다. 우리는 왜 관용으로 수련생을 대할 수 없는가? 그들은 전에 우리의 동수였고 현재 사악에 빈틈을 보였으나 우리는 책임이 있어 대자비심으로 수련생을 도와 빨리 돌아오게 해야 한다. 사부님이 기다리고 있는 수련생은 이런 동수다. 우리는 뒤쳐진 수련생을 정념으로 대하여 그들로 빨리 제고해 올라오게 해야만 사부님이 원하는 것을 원용하는 것이다.
며칠 전 나는 ‘전화’한 수련생을 보러 갔다. 감옥에서 금방 나온 수련생이 그 동수의 상태가 좋지 않고 벌써 ‘전화’되였다며 만나러 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상관하지 않아. 대법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어’라고 말했다.
수련생을 만나고 보니 소문에 들은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 수련생은 밍후이망의 소식이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당시 오류가 있는 자료를 인쇄하여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은 당신이 대법을 의심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몇 년 동안 대법을 배웠는데 한마디도 나쁜 말이 없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매체의 소식이 100%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밍후이망은 사회상의 모든 매체보다 정확도가 높아 백분의 99가 정확하다. 하지만 대법매체의 개별 뉴스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대법을 의심하면 안된다. 대법은 우리의 가슴속에 뿌리를 박지 않았는가? 나는 당신의 전화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녀와 4시간을 교류하자 그녀는 대법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대법이 좋다는데 ‘전화’한 것은 무조건 옳지 않다’고 말하자 그녀도 나의 말을 받아드렸다.
그녀에게 다시 수련하라고 하자 그녀는 집에 ‘전법륜’도 있고 밍후이망도 올라갈 수 있고 게다가 각 방면의 압력이 커 잠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의 수련생이 질책하지 않지만 자신의 생각을 감히 동수들에게 말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이번 교류를 통해 그녀가 다시 수련의 길에 돌아오게 하지 못하였지만 언젠가는 꼭 돌아오리라 믿는다.
그녀의 집에서 돌아온 후 많이 고민했다. 우리가 뒤쳐진 수련생을 도울 때 정념이 족해야 하고 대자비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첫 번째는 그들을 원망하지 말고 선한 마음으로 그들 마음속의 매듭을 풀어주고 사악의 기만과 거짓을 폭로하고 대법제자의 자비를 보게 하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고 법에서 자신을 바로 잡고 되돌아오게 해야 한다. 두 번째는 동수 간에 수구를 해야 하며 누가 전화했다든가 혹은 누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하여 상황을 악화시키면 안된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의 진실한 생각을 감히 말할 수 없으며 동수들이 깔볼까봐 두려워하므로 그들의 매듭을 풀어주기 어렵다. 세 번째는 그들과 교류할 때 정념이 족해야 하며 이미 ‘전화’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며 사상 속에 ‘전화’개념마저 지워버려야 한다. 우리는 자비의 홍대한 장에서 일체 옳지 못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야 한다.
사부님이 ‘조사정법’이란 한 마디는 호언장담이거나 거짓되고 과장되며 헛된 말(假大空)이 아니다. “무엇을 조사정법(助師正法)이라고 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강대한 정념으로 뒤쳐진 수련생을 대하고 사부님이 원하는것을 원용하며 진정으로 조사정법의 대법제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의 체험으로 부당한 점은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2011년 6월 18일
문장분류: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18/2426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