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사오(邪悟)한 이에게 보내는 글
글/ 중국 대륙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내가 사오(邪悟)라는 늪에서 몸부림치며 나왔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은 말을 아직도 사오한 예전의 동수에게 하고 싶었던가.
대법이 방향 잃은 나의 마음을 열어주어 다시 새롭게 법공부 하게 되었을 때, 나는 갈수록 분명하게 의식하게 되었는바, 예전에 이른바 자신의 ‘전향’은 법리상의 ‘전향’이고, 인식을 제고하고 층차를 제고하는 것이지 정부에서 말하는 ‘전향’과는 같은 일이 아니라며 억지를 부리던 일은 얼마나 가소롭고 사람을 창피스럽게 하며 남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며 자아 회피한 일이었던가. 자아적인 집착과 더러운 사람마음을 얼마나 덮어 감추었던가.
이른바 ‘방교’(帮教, 중공을 도와 수련생을 전향시키는 사오한 수련생)란 실제로는 ‘법리 교류’라는 아름다운 허울을 쓰고 사악의 지배하에 법에 대해 죄를 짓고 위선으로 흉악한 몰골을 가린 것이며, 웃음을 듬뿍 담고 들고 온 한 사발의 독약이다. 어떻게 ‘법리 교류’를 하든지 사악의 이치가 어떻게 겉모양이 번지르르 하든지 나중에는 모두 사악의 ‘전향’ 공식에서 맴 돈 것으로서, 우리의 사람마음의 집착을 이용하여 사부님에 대한 우리의 바른 믿음을 파괴하고, 우리더러 사부님과 법에 대하여 사오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른바 ‘방교’를 하는 사오자는 더구나 ‘방교’형식 때문에 돌아오지 못할 길로 진일보 밀려가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형식의 소위 인식으로 ‘전향’되었든지 ‘전향’된 자가 얼마나 높은 이른바 법리를 깨달았다고 스스로 허풍 떨든지 사악은 모두 대법 수련자를 회멸하려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데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향’이란 모두 이 공식 위에 건립된 것이기 때문에 사부님과 대법에 대하여 모든 사오한 자의 최종 표현은 모두 똑같은 것으로서, 신사신법 하지 못하게 하고 사부님과 법을 존경하지 못하게 하며, 계통적으로 법공부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전향’된 자가 공동으로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치명적으로 사오한 곳이다.
다른 한 방면으로부터 말한다면, 우리는 내심으로부터 자신의 이른바 인식을 제고하고 층차를 제고하며 수련원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첫 자리에 놓는다. 자신의 이른바 ‘제고’를 위한다면서 사부님과 대법을 고려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부님의 명예를 희생하는 것마저도 달가워하는데, 사실 너무도 무지하고 광적으로 위사위아 하는 극치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전향’되었고 이 일보까지 오게 되었으며, 심지어 한 보 한 보 자심생마의 지경까지 와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게 된 까닭은 과거에 법공부, 실속 있게 수련하는 기초가 착실하지 못하고,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너무도 많이 감성적 인식에 머물러 있으면서 사람마음의 집착과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여 구세력이 틈을 타게 한 데 그 근원이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악독한 파괴성적인 검증 중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나는 사전에 모두 설법 중에서 당신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진정하고 실속 있게 수련하지 못하면 걸어 나오기란 아주 곤란한 것이다.”(『정진요지』)고 말씀하셨다. 사악의 이른바 고험에서 우리가 구세력에게 도태 된다면 대법 수련이란 이 비할 바 없이 진귀한 기연을 앓게 될 것이다.
사오한 이치에는 또 연막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는 데는 잘못이 없다. 잘못이라면, 사오한 이치를 ‘먼저 사람을 좋게 만든다’는 것을 이용하여 신에 대한 우리의 신성한 믿음을 부정하고 비웃으며, 우리가 가는 신의 길을 끊어버리려 하고, 수련이라는 그 박대 정심한 내포를 대체하려 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사람이 되는 진정한 함의를 뒤섞으려 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오한 자들은 속인의 사상경지에 있는 것에 만족하여 불교문화, 전통문화를 배우는 데 몰두하면서 스스로 인생의 참뜻을 찾았다고 여기고는 수련에서 안을 향해 찾고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는 것을 다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만 낮추며, 다만 좋은 사람이 되는 층차에만 멈추게 하여 사람이 되는 진정한 목적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진정한 집을 잊어버렸다. 사부님께서는 “하나의 좋은 사람이 되고 하나의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의 좋은 사람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최후에 하나의 초상적인 사람이 됨으로써 원만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캐나다법회설법』)고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법공부를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정화하였는바, 나는 이런 사오한 이치는 실속 있는 수련을 이탈하게 하는 독약이며, 사존님, 대법, 대법 수련자에 대한 악독한 중상이라는 것을 갈수록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것에 의해 사오하고 반대되는 이치에 독해된 ‘전향’한 자들은 이렇듯 비정상적이고 어리석어서 속인들이 말하는 ‘양심’조차 없으면서도 도리어 스스로는 높이 깨달았다고 여긴다. 슬프도다! 세상이 험악하다 한들 이보다 더 할까!
‘전향’하면 흔히 시비, 정사를 가르지 못하며 자신을 회피하기 위하여 무원칙적인 타협을 하고 사악에 영합한다. 아울러 위법하는 사람이나 사악의 표현에 대해서는 보고도 못 본 척하면서도 ‘안으로 찾는다’는 명목으로 사악을 종용하는 입장에 서 있는데, 구세력의 위사위아한 표현이다. 우리는 마치 이런 ‘전향’에 거세당하여 자아를 잃은 노비처럼 다른 사람 앞에서 머리 숙이고 허리 굽히는 데 습관이 되어 햇빛 아래 섰다 해도 자신의 가슴을 펴지 못하며, 속인의 이 층의 이치에 대해서도 도의적인 책임을 담당할 수 없고, 바른 요소에 대해서는 더욱 책임질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오한 자는 자심생마 하고서도 자신은 높이 깨달았다고 여기고 나를 층차가 낮다고 여긴다. 나는 무슨 층차의 고저를 말하지 말고 그저 바른 길을 걸으며, 설령 길이 얼마나 험악하더라도 설령 0에서 시작하더라도 설령 속죄하더라도 나는 “대법을 굳게 수련하며 스승을 따라”(『정진요지2』 「심자명」)갈 것이고, 치욕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대법의 바른 길로 회귀할 것인즉, 이것이 바로 나의 오늘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천 년에 정법을 얻지 못할지언정 하루라도 야호선(野狐禅)은 닦지 않는다.”(『전법륜』) 나는 드디어 이 진기(眞机)를 알게 되었다.
어떤 사오한 자는 자심생마 하고서도 자신은 높이 깨달았다고 여기고 나를 층차가 낮다고 여긴다. 나는 무슨 층차의 고저를 말하지 말고 그저 바른 길을 걸으며, 설령 길이 얼마나 험악하더라도 설령 0에서 시작하더라도 설령 속죄하더라도 나는 “대법을 굳게 수련하며 스승을 따라”(『정진요지2』 「심자명」)갈 것이고, 치욕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대법의 바른 길로 회귀할 것인즉, 이것이 바로 나의 오늘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천 년에 정법을 얻지 못할지언정 하루라도 야호선(野狐禅)은 닦지 않는다.”(『전법륜』) 나는 드디어 이 진기(眞机)를 알게 되었다.
사존님의 육십갑자 생신에 수련생들이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실 때의 진귀한 역사를 써 내어 공유한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나는 목이 마른 것처럼 한 편도 빼지 않고 다 읽어 보았고, 감동받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의 자비는 사람을 불가사의하게 한다. 나는 사오하고 ‘전향’한 그것은 그야말로 천당 가는 길이 놓였는데도 가지 않고 지옥으로 가는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眞ㆍ善ㆍ忍’이 놓여 있는데도 수련하지 않고 가짜(假), 사악(恶), 폭력(暴)과 상대하려 한다는 것임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나는 한 번 또 한 번 「사은송(師恩頌)」을 보면서 진감되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성결하고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사존님의 무한한 자비와 지혜를 영원히 간직하고, 용맹정진하는 것으로써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예전의 수련생들이여, 어서 돌아오라. 사부님께서 당신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대법수련이야 말로 우리 금생의 유일한 귀착점이다!
원문발표 : 2011년 5월 2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28/2415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