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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후이 법회]한 특수대원의 수련

글/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11월 10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들 안녕하십니까!

매번 법회 문장을 볼 때마다 나는 아주 많은 교훈을 얻으면서 감탄했다. 막상 나자신이 수련을 잘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감히 법회에 나의 경력을 적어낼 엄두를 못냈다. 동수들의 이와 관련된 교류 문장을 보고 매 수련생에게 모두 섬광이 있고 사부님께서는 각각의 제자마다 모두 아끼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 역시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법회에 참가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련 형식이다.

1, 법을 얻다

1996년, 나는 부대에서 특수대원으로 있었다. 연말에 망년회를 하러 베이징으로 출장을 갔다가 음식점에서 우연히 다른 한 부대의 전우를 만났다. 여관에 돌아온 후 그는 나에게 파룬궁을 소개하면서 연공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함께 거리를 걸으며 몸이 둥둥 떠 있는 감각에 형용할 수 없이 기뻤다. 이튿날 그 지역의 노 수련생이 나를 데리고 보도원 집으로 갔다. 보도원의 남편은 나에게 “이 공은 정말로 좋아요. 당신도 이공을 연마하세요.”라고 말하는 그 간절한 언어에 나는 감동했다.

나는 사부님의 지난(济南) 설법 비디오를 하루를 넘기면서 한 번 다 보고난 후 파룬궁을 배우려고 다짐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연공장으로 갔을 때 단체 연공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단지 노 수련생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풍모에 나는 탄복했다. 연공장에서 노 수련생들은 나에게 열심히 연공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베이징을 떠나면서 나는 《전법륜》책을 가지고 부대로 돌아갔다. 부대에서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가장 먼저 큰 보따리에 있던 가짜 기공 자료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갓 부대에서 따라온 아내는 나의 행동에 아주 의아해 하면서 짐을 꾸린 뒤 회사에 가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이 몇 년 동안 기공을 배우면서 그렇게 많은 공력을 지출했는데 한마디로 팽개치는 것을 보니 너무나 의지력이 없어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을래요.”하고 말했다. 이것이 나의 수련 노정에서 가장 먼저 봉착한 난관이었다.

2, 실속 있게 수련

1997년 상반년, 아주 빠듯한 군사 훈련을 앞두고 나는 아침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연공을 보장했다. 그 당시에는 법 공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기에 법 공부에는 그다지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다. 반년 후 베이징 동수들이 《정진요지》,《전법륜2》,《대원만법》과 동수들의 수련 이야기를 보내왔다. 나는 대법 수련에서 제 1위가 법공부와 심성 제고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수들의 수련 이야기, 대법 수련생들의 진실함, 생동한 체험, 수련생들의 신체 정화, 심성이 승화된 후 초상적인 공능들을 보고서야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련이라는 것을 인식한 후 뒤떨어진 나자신을 승화하기에 노력했다.

나는 일체 가능한 시간을 이용하여 법공부와 설법 비디오를 보았다. 대법은 미신을 타파하였다. 법 공부를 통하여 대법 법리의 내함을 한층 한 층씩 깨닫게 되였으며 인간세상의 많은 의문 부호들이 하나하나씩 제거되었다. 인생, 생명, 우주의 진상, 진리, 모두가 대법 중에 있었다. 법광은 인생의 고난을 제거했으며 곤혹과 아득함에서 나의 생명에 밝은 빛을 안겨 줬으며 반본 귀진의 법선에 오를 수 있게 하였다.

나는 사부님의 경문《진수》에 감동해 바로 외웠다. 일상 사업, 생활 중에서 언제나 “쩐, 싼, 런”에 동화하려 하면서 명, 리, 정을 내려놓았다. 점차적으로 명, 리에 대한 집착에서 담담해졌다. 속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이 불안정한 구름으로 변하였다. 정의 뿌리는 바로 사(私)였다. 예전에는 민감하고, 속이 좁은 편이었는데 지금을 활달하고, 태연하고, 침착해졌다. 속인과의 차이점은 모순이 갈수록 적어졌으며, 선한 마음으로 행동하다 보니 친구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매일 그렇게 힘들고 지쳐도 언제나 마음만은 유쾌했다. 더는 사람과의 번거로움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법 공부, 연공, 심성수련에만 몰두했다.

나는 병업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는데 매일 가부좌를 하는 과정은 아주 큰 난관이었다. 반년 후에야 능히 40분 동안 다리를 편안하게 놓을 수 있었다. 한 시기 소업의 힘이 아주 컸다. 왼쪽 발톱에서 고름이 나왔는데 신체를 정화해 준 것이었다. 한 번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30분 가부좌를 하게 하였는데 결인한 두 손에서 파룬이 돌아 마치 전동기처럼 두 손이 마비 되였다.

업무차 나는 매년 한 달씩은 요양을 했다. 그 곳에 도착하면 나는 바로 그 부근의 연공 장소를 찾아 그들과 함께 연공, 법 공부, 교류를 했다. 몸이 부대에 있었으므로 봉폐된 환경 중에서 나는 줄곧 홀로 수련하였기에 단체 법 공부, 연공, 교류의 기회를 아주 진귀하게 여겼다. 우연히 만난 동수들과 친인처럼 거리낌없이 오늘까지 걸어 왔는데 잊을 수 없다.

나는 박해 전 3년 동안 실속있게 수련했다. 97년, 98년 2년 동안 부직으로 동기생들과 함께 두 차례 새로 들어온 신병들의 훈련을 담당하는 게 힘들었다. 이 업무는 세심해야 하며 또 안전에 대해 엄격했고 아래 위로의 책임이 아주 무거웠다. 복잡한 환경은 심성 수련에서의 좋은 기회였다. 나는 자신을 내려놓고 무조건 정직의 업무를 돕고 지지해야 했다. 정직은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편이였다. 제때에 그를 대신해 충돌을 완화하고 해체하여 주동적으로 원용해야 했다. 강남의 7-8월의 더위는 정말이지 참기 어려웠다. 마침 우리의 훈련이 고봉에 올랐을 때였다. 여러 가지 훈련과목의 차이점이 너무 컸다. 어떤 항목은 신체에 부담이 너무 많았고 또 위험했다. 많은 교원들은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훈련을 계획한 참모에게 “힘들면 나에게 맡기세요.”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법리를 생각했다. 그 어떠한 환경 중에서도 모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큰 인내력으로 능히 고생 중에서 고생을 이겨내야 했다. 다른 회사로 옮길 때 우리와 함께 근무하던 한 정치가가 나에게 “나는 당신이 근무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모습에 아주 탄복했네.”하고 말했다. 이 역시 상부하부 모두 한결같이 평가한 것이다. 나는 연속 2년간 전 교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모 군의 일급 선진으로 승급했다.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법 공부 중에서 한 층의 법리가 나타날 때는 마음이 청정하고, 아주 미묘하여 잠에서 마치 자신이 고무풍선마냥 한층 한 층씩 올라가는 것 같았다. 생명의 내원은 법이다. 대법을 수련하여 반본귀진 하는 것은 정말로 생명의 최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3, 비바람

99년 “4.25”에서 상서롭지 못한 예감이 들었는데 “7.20”후부터 사악들이 하늘을 뒤덮을 듯 덮쳤다. 이들의 악독한 거짓말은 세인들을 기만할 수 있었지만 진정으로 수련하는 대법제자는 미혹 시킬 수 없었다. 당시 환경은 압력이 아주 컸으므로 나에게 진정한 마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감촉했다. 나는 조용히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관례대로라면 사당이 매번 운동을 일으킬 때는 군대는 모두 엄밀한 통제하에 세뇌를 당해야 했다. 사악에게 굴복 하느냐 아니면 떳떳하게 사부님과 대법을 수호하는가 하는 중대한 선택을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과 대법이 우매 당하고 있는데 제자로서 마치 타조가 머리를 모래 불에 파묻은 듯 모르는 척 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다른 지역의 동수한테 전화를 하고서야 많은 동수들이 베이징으로 호법하러 갔음을 알게 되었다. 2달 동안 나는 속인 중에서 뛰쳐나와 떳떳하게 대법제자라는 것을 밝히고 대법 수련을 견결히 견지하려고 결정했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의 업무는 사당들이 정치적으로 요구하는 게 아주 엄밀했다. 경험에 의하면 나자신에게 미끄럼질 쳐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하게 될지 몰랐고 가정, 아내, 역시 미지수였다. 나의 선택은 오직 사부님과 대법뿐이었다. 박해가 시작된 후 아내와 가족은 줄곧 저기압 이었다. 나의 속마음을 아내한테 말했을 때 아내는 조급한 나머지 당황하며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했다. 아내는 우리 가정이 금방 무너지는 것만 같아 눈물을 흘리면서 나의 수련을 막으려했지만 나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아내는 정오에 치명적으로 타격하기 위해 수면제 한 병 복용하는 것으로 나에게 압력을 가했다. 한 발 물러서는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계시고 대법이 있는 한 아내에게 그 무슨 좋지 못한 일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아내에게 물을 먹인 후 정신울 차리게 하였다. 저녁에 나는 상급의 정치 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나는 파룬궁 수련생”이라고 알려줬다. 그는 당신이 “농담하는 것이지요.” 하고 말했다. 나는 정중하게 “진실입니다.”하고 대답했다. 10분후 정치 위원회에서 사람이 왔고, 몇 분 후에는 사부의 정치 위원회(师部)의 보위 과에서 나를 데리고 갔다.

사부의 정치위원회 응접실로 들어갔을 때 사부와 연대본부(团部)의 주요 정치공작 인원들과 보위과 직원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소파에 앉자 정사대전의 화살이 걸려 있었다. 한쪽은 10명의 전문 능란한 사당의 정치 공작 인원들이고, 다른 한쪽은 나 젊은 대법제자였다. 그들은 돌아가며 유혹과 협박으로 나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들의 이유는 3가지였다. 첫 번째 사당 당원으로서 당신은 마땅히 사당과 일치해야 한다. 두 번째,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국가와 부대에서 당신을 육성하느라고 몇 년간 거액을 투자했고, 당신 역시 오늘까지 걸어온 노정이 쉽지 않았는데 왜 자신의 전도를 회멸시키려고 하는가? 셋째, 부대에 대한 영향, 가정과 친인을 위해 고려해야지 자기 고집만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목적은 오직 하나, 나로 하여금 사당에게 굴복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첫째, 사부님은 억울하다. 대법의 좋은 것을 나는 친히 경력하였다. 두 번째, 나의 파룬궁 수련은 “쩐, 싼, 런”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서 개변할 수 없다. 하루 밤의 치열한 교전에서 그들은 나를 움직이지 못했다. 대법은 나에게 지혜를 열어주었고 그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그날 밤은 잊혀지지 않는 9월 20일이었다.

새날이 밝자 한 대의 승용차 앞자리에 정치 공작원 1명이 앉았고 뒷좌석에는 보위 간사 2명이 나를 중간에 앉히고 병영을 떠났다. 4시간의 노정을 거쳐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 유류창고(油库)에 도착했다.

이 모든 배치에 나는 자유를 잃은(软禁) 몸으로 하루종일 다른 사람의 감시를 당해야 했다. 출근 시간이면 질문하고, 기록하고, 손도장을 찍게 하였다. 이 기간 나는 대법의 법리, 자신이 법을 얻은 후의 수련과정, 체험들을 사실대로 그들에게 이야기 했다. 사부의 정치 위원회(师部) 본부 군정의 우두머리들이 끊임없이 모두 와서 공작하였지만 모두 그들이 대법을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부동한 정도에서 진상을 요해하였기에 다만 자신들로선 어쩔 수 없다고 표시할 뿐이었다. 하루는 한 보위 간사가 나에게 말했다. “대대장인 당신이 친히 화장실 청소를 하다니 아주 탄복했어요. 당신한테 너무 고집을 부리지 말라고 권하고 싶어요. 이 사람들은 수단이 아주 악랄하므로 무슨 일을 못하겠어요. 나는 직접 그들이 여름에 사람을 철 초롱 안에 가두어 놓고 또 저녁에는 고의적으로 전기 다마를 켜놓아 모기한테 물리게 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들의 말에 의하면 당신을 정신 병원에 보낸다고 했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라고 했다. 나는 “고마워요. 그러나 두렵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10일이 지난 후 연금당한 지점에서 부대 부근의 한 유류창고로 돌아갔다. 한 반의 사병은 나에게 사악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를 전화시키려고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이에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놓고 볼 때 이들이 어떤 수단으로 변화시키려 하든지를 막론하고 겨냥한 것은 바로 사람의 명, 리, 정이었다. 대법제자는 속인 중에서 걸어 나온 깨달은 생명이다. 사람이 집착하는 것을 수련인은 바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나는 모두 알 수 있지만 내가 명백하다는 것은 그들은 알 수 없다. 나에게 제일 곤란한 것은 자유를 잃은 몸이었다. 법 공부, 연공을 할 수 없고, 동수들과의 교류는 더욱 불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되도록 사부님의 법으로 정념을 견정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사악들은 고향에서 머리가 백발이 된 아버지를 모셔왔다. 나는 독자이고, 열 몇 살부터 집을 떠났다. 내가 떠난 후 마을 어른들이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향이 되었다. 오늘 부친이 천리 길을 마다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도리어 세상사는 변했다. 부친을 만나는 순간 마음이 시큼했다. 즉각 친정에 대한 정의 관을 넘어야 한다고 의식했다. 부친은 비교적 이지적이었다. 나에게서 대법의 법리와 나의 공작, 위인 등에 대한 상세한 상황을 간곡하게 하소연하는 말을 들은 부친은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한다고 평가했다. 부친은 “네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데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위에는 노인이 있고 아래에 있는 어린이에게는 네가 떠받들 수 있는 기둥이다. 사람은 그래도 현실을 보아야 한다. 부친은 중공의 사악함을 알고 있지만 도리어 눈앞에 직면한 곤경에서는 어찌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매일 아이를 보낸 후 자전거를 타고 유류창고로 왔다. 갑자기 아내가 정신을 잃었다. 나의 몸이 다향에 있다 보니 모두가 생소했다. 거대한 압력 앞에 허약해진 아내는 비참해졌다. 아내는 자전거를 타거나 거리를 다녀도 늘 정신이 흐리터분하여 겨우 교통사고를 면하는 신세였다.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두 달이 지났다. 시간이 하루하루 연장되면서 나 자신이 아주 견정하다고 인정했는데 여전히 관을 넘지 못했다. 자신에게 아직 그 무슨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있는지 안에서 찾았다. 찾기 직전 외지 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가지 소식이 나로 하여금 고험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결속될 것이라는, 시간에 대한 집착, 원만에 대한 집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원만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나는 도리어 어떻게 하면 원만할 수 있는가에 현혹되어 잘 못된 길에 들어섰던 것이다. 사오는 수련을 포기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혹시 이 일념이 사악에게 공간을 주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다른 한 원인은 아내가 과연 견딜 수 있을 까 걱정했던 것이었다. 정말로 이 일보를 걸어 나온 후 나타났던 일들에서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줄곧 연말에 나에게 직접 전업을 선포하기 전까지 연금(软禁)되었다. 그것들에게 나는 선진인물이었다. 당신들은 진리를 믿는 것을 보고 더는 공제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바로 죄인으로 만들어 의지를 모욕하고 절망에 빠뜨린다. 이것이 바로 중공 사당이다.

몇 년 후, 나는 압력에 대응해 걸어 나온 것이 잘 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걸어 나온 기점이 바르지 못한데 있었다. 그것은 원만을 추구하고 법을 실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개인 수련의 기점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돌파하지 못하였으므로 아내에 대한 정과 속인 중의 혼인에 대한 정이 구세력에게 미친 듯이 박해할 수 있는 조건으로 되었음을 깨달았다.

4, 정념으로 마굴에서 나오다

나중에 전업하여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중공의 몇 년간 정치 박해, 공포, 세뇌가 가족에게까지 닿아 있었다. 사당의 박해 당하는 일을 겪은 사람들은 감히 사당을 질책하지 못했고, 도리어 사당을 따라 가족을 질책했다. 나의 가족 환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한 단락 시간 사악한 사당의 새빨간 거짓 비난은 거의 없는 곳이 없었다. 비록 법 공부, 연공을 하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었다. 항상 나 자신이 수련인임을 잊지 않았다.

2000년 국영기업체에서 나 같은 이런 전업 인재를 필요로 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우리 회사에서 한 노년 동수와 한 사무실에서 일하게끔 안배해 주셨다. 나는 마침내 《전법륜》을 보게 되었다. 마치 잃어버렸던 어린 아이가 친인을 만난 것 같았다. 수련생이 제작한 대법자료를 보고 1년 동안 대법이 박해를 당한 것과 국내외의 대법제자들이 일체를 내려놓고 대법을 수호한 장거들을 보고 마음이 안정 되었다. 수련생은 나를 위하여 엄정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마침내 법 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회사에서 한창 법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아내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대법책과 자료를 보고 일순간 얼굴색이 확 변했다. 오후 집으로 돌아간 아내는 나에게 이혼을 하자며 이 집에서 나가라고 나를 쫒으면서 화풀이로 유리컵을 들어 나의 머리를 내리쳤다. 유리컵이 머리에 부딪치는 순간 부셔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웬 걸 별로 아프지도 않았고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위하여 이 일체를 감당하셨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는데 저녁에 아내와 아이들이 회사로 나를 데릴러 왔다. 그녀는 나의 신앙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법 제자들은 모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고 박해 정지를 호소하고 있다. 나도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해야 하였다.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 조작이 방송된 후 우리 지역의 대법제자들은 즉각 엄정성명으로 분신자살 사건은 절대로 파룬궁 수련생이 한 짓이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내가 고향으로 갈 때 노년 동수들은 두터운 눈길을 밟으면서 엄정성명을 나에게 가져왔다. 점심 휴식 시간과 퇴근길에 나는 이 엄정성명을 가가호의 우편함과 자전거 광주리 안에 넣었다. 그해에 나의 집에서 집수리를 하였기에 나는 매일 현장으로 갔다.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사당의 거짓말을 폭로하여 우리 집을 수리하는 일꾼들은 진상을 알게 되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하오!”라고 쓴 스티커와 한 장으로 만든 진상자료를 전화 청, 전선대, 공원 등 장소에 붙였다. 진상하여 법을 실증하는 노정에서 나는 기회가 있으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였다.

2001년 여름 나는 이북 지역에서 아주 간고한 사업을 맡았다. 망년회때 사람들이 잔을 들고 경축하였지만 나는 이 기회를 빌어 야경이 눈에 확 들어오는 곳에 한 장 한 장의 대법진상 스티커를 붙였다. 연말에 회사에서는 나와 한 동료에게 사람이 적은 지역에 수금하도록 출장을 보냈다. 우리가 간 곳은 가능하게 1-2개월이 걸릴 수도 있으므로 아예 그 지역 성시에 여관을 잡았다. 우리의 일은 상대방 회사에 갔다 오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없었다. 그 기회를 빌어 나는 낮에는 여관에서 법공부하고 저녁에는 나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휴대한 자료가 모두 없어지면 또 금황색 스티커를 구매하여 그 위에 붉은색으로 글을 쓰면 색상이 아주 선명한 새로운 진상 자료가 만들어 졌다. 그리고 소책자를 구매하여 복사지로 몇 층 겹친 후 자신이 직접 진상 시가(诗歌), 또는 장씨(江氏) 유망집단의 거짓말 폭로 등을 편집했다. 그 이튿날 진상은 바로 큰 거리와 작은 골목 마다 나타났다. 북쪽의 겨울 저녁은 아주 추웠다. 매번 진상하러 대략 1시간 넘게 걸어 다니다 보면 몸에서 열이 났다.

어느 날 오후 거리에서 갑자기 몇몇 젊은이들한테 납치되어 공안 국으로 압송된 후 간수 소에 감금 되었다. 높은 담 벽엔 전기 철조망이 설치 되었고 층층이 철문이 있었는데 범인들의 얼굴 모두 험상 궂었다. 감방 작은방에 들어갔을 때에 한 범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들어 왔어요?” 나는 “파룬궁”을 연공한다고 했다. 그는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연공 하는가?”고 물었다. 나는 “파룬궁은 좋아서”하고 대답했는데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호된 주먹이 나의 얼굴에 날아왔다. 그는 계속 물었다. “계속 파룬궁이 좋다고 하겠는가?” 나는 “좋습니다.”하고 말했더니 그는 더는 때리지 않았다. 범인들은 이상한 눈길로 외지에서 온 나를 눈여겨 보았다. 간수는 나의 다운재킷과 솜옷을 강제로 바꾸어 갔다. 저녁에 범인들 중에 끼워서 한 범인과 함께 이불을 덮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제자는 이 관을 어떻게 넘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그 이튿날 간수소에서 불법 심문 당했는데 범인들도 아주 흉악했다. 나는 한편 대응하고 한편 대처할 것을 생각했다. 오후 동료가 이불과 군대 외투를 가져왔다. 저녁에 나는 판자 밑에 물이 흐르는 한쪽 옆 조용한 곳에 누웠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먼저 두 가지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나는 법을 외울 수 있는 대로 외우고 외우지 못하면 되도록 회억하면서 법을 사부로 모시고 정념 정행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안에서 찾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부딪치는 일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심성에서 사악이 나를 박해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했다.

3일후 나는 자신이 진상하는 기점이 순정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예전의 잘못 들어섰던 것을 미봉하려고 할 때 자료에서 각 지역 동수들이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한 장거를 보고 동수에게 탄복한 나머지 부러워 한 마음에서 허영심, 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사악에게 공간을 주어 박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던 것이다. 속인의 이 한 층 안전 환절에서 누락된 것이다. 자료 중에서 많은 동수들의 정념으로 마굴에서 탈출한 사실을 보았다. 나는 여기가 대법제자 있을 곳이 아니므로 마땅히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이 감옥에 있어 법 공부를 할 수 없고 자유로이 진상할 수 없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 여러분이 모두 이렇게 한다면 환경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만약 한 수련자가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생사의 염두를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악은 틀림없이 두려워한다.”(《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생사를 내려놓는다면 당신은 바로 神이며 생사를 내려놓지 못한다면 당신은 바로 사람이다. 바로 이 구별이다.”(《미국법회설법》〈뉴욕법회설법〉)

나는 일념이 견정했다. 만약 내가 정말로 생사를 놓는다면 바로 정념으로 나갈 수 있다. 그 이튿날부터 나는 세 가지 일을 했다. 첫째, 사악의 어떠한 지시에도 배합하지 않았다. 죄인의 옷을 입지 않았고, 감옥의 규정을 외우지 않았으며,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손도장을 찍지 않았다. 두 번째, 금식 항의, 무조건 즉각 석방 요구, 진상한 것이 잘못이 없으며, 더욱 죄를 범하지 않았다. 세 번째, 고도로 되는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했다.

처음에 경찰과 범인은 나처럼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모두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그렇게 견결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마음을 견결히 움직이지 않고 사악의 지령을 거절하면서 말한 대로 시행했다. 이에 경찰은 나에게 다만 말로 공포를 놓았을 뿐 움직이지 못했다. 범인을 나에게 번호 있는 옷을 입히려고 손을 썼다. 그리고 내가 발정념 하는 것을 위의 사부 정치 위원회에 신고했다. 법인들의 무리함에 직면하여 내가 주동적으로 그들을 선하게 대해 주었을 때 그들의 태도는 조금씩 변했다.

금식 3일째 되는 날, 범인들이 보았을 때 진짜였다. 경찰들이 왔을 때 이들은 주동적으로 내가 밥도 안 먹고 물도 마시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배가 고픈 느낌이 그렇게 선명하지 않았는데 입이 심하게 말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돗물로 입가심을 하였는데 너무나 넘기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고 수련은 엄숙하다. 다른 공간의 사악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나는 바로 밭아 버렸다. 한 범인 두목이 다른 사람을 상해한 관계로 형벌을 주려고 할 때 이들은 문화 수준 관계로 잘 쓰지 못했으므로 내가 도와 소송 자료를 써 주었다. 그는 아주 감격해 했다. 금식하는 기간 그들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들은 나에게 “당신이 갓 들어 왔을 때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봤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하고, 대법의 아름다음, 사악의 거짓말 폭로하였더니 이들은 화제에 흥취를 가지고 모두 빙 둘러 앉아 들었다. 한 범인은 야밤까지 나의 진상을 들었다. 나는 나중에 “파룬따파 하오!”를 기억하면 능히 앞으로 겁 난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줬더니 그는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경찰의 물음에 나는 대답을 거절하고 다만 진상을 했다. 한번은 어느 경찰과 오전 내내 이야기를 했다. 4-5일 지나서 간수소에서는 나에게 물을 주입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하면서 주사바늘을 뽑았더니 이들 몇 명이 나를 누르고 한 병의 포도당을 놓았다. 하루 또 지나서 공안국장이 한 무리의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나의 신체를 검사했다. 나는 사부님께 나의 신체에 증상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청을 드렸다. 그런데 결과 나의 신체는 반대로 아주 좋았다. 이들은 깜짝 놀랐다. 한 범인의 가족이 고기 속 만두를 가져왔다. 밥을 가지고 온 사람이 나한테 “당신 식사하세요, 당신의 가족이 빠른 시일에 당신을 데려 갈 것예요.”하고 말했다. 범인들도 손을 흔들어 나와 함께 얻기 힘든 맛있는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사악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바로 “당신들 빨리 드세요.”하고 말했다. 저녁에 잠자리에서 어슴푸레 꿈을 꾸었는데 어렸을 때 나와 몇 명 친구들이 아름다운 초원에서 놀았다. 무슨 유희인가고? 물었다. 금식, 며칠 되었지? 7일, 하고 나는 잠에서 깼다. 아마 사부님께서 더욱 견정한 신심을 가지게끔 점화해 준 것 같았다.

8일째 되는 날 부친과 우리 회사 보위 처장이 정말로 왔다. 감옥을 떠날 때 범인들이 나와 고별할 때 보내는 눈빛이 색다르게 보였다. 나는 그들과 고별하면서 내가 당신들에게 한 말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동료가 나에게 “본래 그들이 당신을 마산쟈(马三家) 노교소에 보내어 노교 2년을 시키려고 계획했지만 당신이 안에서 한번 떠들썩 할까봐 두려웠던 거예요. 그들은 주동적으로 회사와 가족에 데려가라고 연락했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항상 제자를 보호한 것이고 제자의 정념정행이 사악을 해체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5, 수련 환경을 개척한 후 진상으로 중생구도

반년 후, 나는 한 외지의 민영(民营) 회사와 연결하여 상황을 설명했더니 총담당자가 오라고 했다. 담장자를 만난 후 그는 “이미 왔으니 큰형과 잘 배합하여 돈을 많이 벌면 무엇보다도 났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나는 이 회사의 직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대법제자의 순정이 이 회사의 공간 마당에 주입 되었다. 그 이듬해 사장한테 경제 문제가 있다고 어떤 사람이 고발하여 사장이 1년 감금 되었다. 그때 나는 회사에서 위아래로 보편적인 인정을 받았다. 나는 점차적으로 대법제자의 신분을 공개했다. 사장의 안건은 후에 별로 개의치 않았으므로 나오게 되었다. 사장은 나온 후 나에게 “당신이 이 1년 동안 한 모든 일에 감사를 표시하는 동시에 나는 신앙자유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 1년간 그는 한 대법제자와 함께 한방에 감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사장은 진상을 알았고 또《전법륜》을 두 번이나 읽었다. 그는 “이 책이 정말로 좋다”고 말했다.

8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회사 업무에서 주력으로 일정한 직무를 감당하고 있으며, 위아래로 가장 신임을 받고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되었다. 한 번은 회사의 부총재한테 진상을 하여 3퇴를 시키면서 그녀의 시어머니도 수련인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초 그녀는 나의 상황을 시어머니한테 알려줬던 것이다. 시어머니는 “너의 회사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주 큰 복이다.”고 말했다고 했다.

8년간의 사실이 증명했다. 사부님께서는 한 사람이 연공하면 전 가족이 수익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한 사람이 연공하여 전 회사가 수익하였다. 우리의 항업은 안전이 제일 위이다. 똑같은 다른 회사에서는 안전 문제에서 매년마다 무슨 일이 나타났지만 우리 회사만은 안전에서 평온했다. 두 번이나 중대한 상황에서 위험했지만 모두 무사히 넘어갔다.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신기하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8년 동안 회사의 작업 질량, 안전, 시장, 효율이 전에 비하여 아주 좋았다.

물론 세간의 일체는 모두 수련인이 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의 사명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1), 밍후이왕에 들어가면 자신이 바로 자료점이다

동수들의 밍후이왕에서 다운받는 자료를 보고 나도 바로 밍후이왕으로 들어갔다. 2005년 집에서 테스크톱 컴퓨터를 구매하고 광대역(廣帶域)을 설치한 후 인터넷에 들어가는 것을 배웠다. 수련생이 자유문(自由门), 무계(无界), 인터넷 돌파 소프트웨워 클릭, 밍후이왕 클릭을 하였을 때 신들이 오래전부터 이미 밍후이왕에 나타난 것을 보고 눈앞이 환했고 마음이 아주 청성했다. 사부님과 신경문, 동수들의 교류 문장 진상자료 전부 완비되어 있었다. 구세력 인소의 간격으로 고향의 동수들과는 많이 친숙하지 못했으며 또 거리가 멀어 제때에 교류하기 힘들었다. 밍후이왕에 등록하면 전 세계 대법제자의 집에 들어선 감을 방불케 하였다. 여기는 신의 세계로서 일체는 모두 순정한 광망을 발출하여 법회도 매일 모두 열렸다. 매번 여기로 들어오기만 하면 모두 단번에 정화되어 자신을 바로잡은 느낌이었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한 이 명당에 감격 되었고, 밍후이 동수들의 거대한 지출과 모든 밍후이왕을 지지하는 동수들에게 감사했다.

《0으로부터 시작한 자료점 사용 기술책》을 다운 받았다. 교정에 따라 하나하나 배웠다.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제작한 한 장의 자료가 프린터에서 나왔을 때 너무나 격동 되었다. 《밍후이주보》, 진상 소책자, 퇴당 소책 등 하나하나의 정밀한 자료가 모두 나왔다. 겨울에 회사에 일거리가 없어서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출근할 사람, 학교로 갈 사람 모두 보내고나면 홀로 집에서 인터넷에서 다운받고, 복사하여,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까지 조용히 진행 되었다. 개개 대법제자는 모두 자기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는 대법 자료를 아주 소중히 여기므로 자료를 되도록 좋은 것으로 선택했다. 제작이 정결하고 규범화하여 대법의 아름다음과 장엄함을 체현했다. 배포 위치는 신중해야 하며 깨끗하고 안전한 곳을 선택하여 세인들로 하여금 대법자료를 존중하고 소중이 여길 수 있게 해야 하며 그들에게 업을 짓게 해서는 안 된다. 전반 과정은 법을 위해 책임지고 중생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

나는 해마다 절반 이상은 외출했다. 지점은 기본상 고정 되었다. 2006년 나는 노트북 한 대를 구매하여 어디로 가든지 휴대했다. 밍후이왕은 어디로 가든지 마음대로 볼 수 있어 언제나 정체 속에 있었다. 출장가면 복사가 불편했으므로 ,《비바람 속에서 천지를 행하다》、《9평공산당》CD 진상 자료를 만들어 세인들의 집 문 앞에 놓았다.

사부님의 제자라면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원용하기에 노력해야 한다. 오직 하겠다고 생각하고 가서 하기만 하면 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이 갈 길을 이미 펼쳐놓았으며 성사할 수 있게끔 능력을 부여했다.

(2), 3퇴를 권하여 연분 있는 사람을 구도

늘 출장을 다녔으므로 차에 앉은 기회가 비교적 많았다. 나는 함께 동행 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3퇴를 권하는 것이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에게 진상함에 교란이 비교적 적었다. 제일 처음으로 2006년부터 3퇴를 권하였는데 성공했다. 집에서, 회사로 가는 중, 열차의 침대에서 두 칭따오(青岛)의 젊은 청년과 이야기 나누면서 대법의 진상을 알렸다. 그중 한 사람은 “내가 자료를 보았는데 파룬궁은 좋은 것이다.”고 말했다. 나는 이어서 그들에게 《9평》을 주었다. 나중에 그들은 장자석(藏字石), 천멸중공 등도 모두 인정했다. 이때 그 중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한테 눈길을 보냈는데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근본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는 단원, 소선대에 가입했었다. 나는 “당신을 도와 인터넷에서 퇴출시켜 줄 수 있으니 퇴출하여 평안을 보존하세요.”하고 말했다. 그는 자기의 필명을 알려줬다. 이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당신도 퇴출하세요?”하고 말했더니 그도 역시 필명으로 퇴출했다. 제일 처음으로 3퇴를 권하여 성공하고나니 마음은 비록 온정 되지 못했지만 별로 힘들지 않다고 생각 되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고무하고 계셨다. “나는 당신을 도와 퇴출시켜 줄게요. 평안을 보존 하세요.”하고 말했더니 그는 자기의 필명으로 퇴출했다.

한 번은 기차의 하단 침대 맞은편에 앉은 한 남성에게 진상하여 3퇴를 권했다. 그의 위에 있는 중간층 침대에 있는 여사는 그들과 일행 이었는데 줄곧 나를 도왔다. 한 젊은이가 부근에 앉았는데 우리가 말하는 진상을 모두 들었다. 그들은 내릴 시간에 되어 짐을 가지고 차문 앞으로 가고 있었다. 여사는 조급한 나머지 나에게 빨리 가서 저 젊은이한테 퇴출시키라고 하면서 더는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차문 앞까지 좇아갔다. 젊은이는 순리롭게 단원, 소선대에서 퇴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사는 바로 동수였다. 수련생은 사람을 구도하는 나를 보고 자신의 부족함에 자책감을 느꼈다. 차가 종점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로 갔다. 몸을 돌려 그 수련생을 보았을 때 그 수련생은 거기에 선채로 나를 향해 두 손을 합장하고 있었다. 나는 손에 짐을 든 채로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또 한 번 안링린(安岭林)구의 거리에서 한 공사를 하는 차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앞으로 가서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며 진상하여 3퇴를 권했는데 당시에는 퇴출하지 않았다. 그의 담당자가 와서 그 이튿날 그에게 보낼 션윈 만회와 진상 CD를 예약했다. 그 이튿날 거리는 조용했다. 되돌아 갈 때 림엄(林业)국의 여공이 거리 어구에 한가하게 서 있는 모양을 보고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그녀에게 사업상황 그녀의 생활난에 동정을 표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당의 부패함과 대법의 진상, 《9평》을 알려주고 핸드폰에서 장자석(藏字石) 사진과 집의 자전거 바퀴위에 핀 우담바라 꽃 사진을 보여 주면서 한 시간 넘게 진상을 했다. 진상을 들은 그녀는 흔쾌히 소선대에서 퇴출했다. 그 이튿날 그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할 때 한 남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그녀를 마중 나왔다. 물어 보았더니 직장 동료로 함께 여기 관람을 온 것이라고 했다. 그들을 데리고 돌면서 만남은 바로 연분으로서 이 남성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람을 끝난 후 나는 그에게 “나는 파룬궁 수련생입니다. 파룬궁은 좋습니다. 중공이 무함하고 박해한 것입니다. 중공은 너무나 악독하다. 선악에는 모두 보응이 있다. 하늘에서는 중공을 멸하려고 한다. 당, 단, 소선대에 들었다면 퇴출해야만 평안을 보존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는 단원에 들었다. 나는 “내가 당신을 도와 퇴출시켜줄까요?”하고 물었더니 그는 된다고 대답했다. 기연은 순간이었다.

3퇴를 권하여 사람을 구하는 것은 순리로울 때도 있고 순리롭지 않을 때도 있었다. 2008년 봄 임무를 맡고 떠나면서 운전연습을 하였다. 자동차운전학원 차는 지금 있는 집 담 밖에서 오고가고 있다. 보행으로 20분이면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6명의 학생이 한 팀으로 차 한대에 하나의 코치가 있는데 서로 순환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연습하면 나머지 5명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예전에 운정연습할 때의 경험을 이용하여 주동적으로 한 팀의 사람들을 도왔다. 다른 사람이 연습하면 나는 옆에서 보아 주고 제시하면서 지휘하여 함께 분석하고 교류했다.

내가 머리를 들어보니 모두들 따라했다. 한 팀에 6명의 학생이 아주 빨리 하나의 정체를 이루어 함께 서로 돕고 서로 사양하면서 마치 형제자매 같아 다른 팀에서는 아주 부러워했다. 매일 함께 있으니 진상하여 3퇴를 권함이 아주 편리했다. 이 팀에서는 모두 진상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3명은 퇴출했고 두 명은 가입하지 않았으니 퇴출할 필요가 없었다. 코치도 퇴출했다. 다른 팀의 동학들과 코치도 3퇴를 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 CD를 주어 집으로 가지고 가서 가족에게 보이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 한 쌍의 커플이 등록했다. 나는 그들에게 3퇴를 권했고 젊은 남성을 가입하지 않았고, 여자는 단, 소선대에 가입했는데 나에게 도와서 퇴출해 줄 것을 부탁했다. 나중에 그들은 또 두 번이나 “당신 잊지 마세요.”하고 부탁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자동차 운전학원으로 가면서 거리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나는 할머니 집의 상황을 물었는데 아이들 집으로 간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대법 진상을 말했을 때 할머니는 이웃에서 그에게 알려 이미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사당의 조직에 가입한 적이 없었다. 나는 “파룬따파 하오”를 늘 염하면 신체가 건강하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할머니는 아주 기뻐하면서 당신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점심 때 돌아 가다가 거리에서 할머니와 일남일녀 두 젊은이를 만났다. 아주 공교롭게 할머니의 아이에게 3퇴를 권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그들을 향해 “당신들은 집으로 갑니까?”하고 물었다. 그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당에 가입했어요? 퇴출하여 평안을 보존하세요.”하고 말했다. 젊은 여자는 아주 화난 기색으로 “당신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얼굴에 난감한 기색을 띄우고 있었으며 나는 그 자리를 떴다.

사부님께서는 “특히 박해 이후의 이러한 해에 당신들이 한 법을 실증하는 이러한 일들 중에서 어떤 구체적인 일들에 부딪쳤든 간에,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 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2008뉴욕법회설법》)

나는 안에서 자신의 문제를 찾았다. 할머니가 진상을 알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대한 진상을 대체할 수 없다. 내가 진상을 하지 않고 바로 3퇴를 권하였기에 진상을 모르는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도리어 그들에게 업을 짓게 하였다.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이 교훈을 반드시 섭취해야 한다.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구도 받은 사람 역시 진상을 말하고 있다. 한 임업구역에 있는 기사는 사람이 아주 선량하였다. 진상을 알고 3퇴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그의 친척친우한테 3퇴를 권했다. 그 이듬해에 그는 열 몇 명의 3퇴 명단을 가지고 왔다. 한 농장에 우리에게 밥해주던 큰누나가 있었는데 아주 선양하고 대범하였다. 그녀는 인연으로 3퇴한 후 그가 받은 진상 CD, 션윈 만회 CD를 그녀의 언니들에게 보여주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 이듬해에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의 체중이 단번에 12근 줄었다. 그녀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한테 당신이 파룬궁을 하는가,”고 묻는다고 했다. 3년이 지난 뒤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나에게 “내가 작년에 그에게 양식국에 연결하여 종자호에 쌀 판로를 알려준 관계로 한해 겨울에 17만원이나 수익을 얻었다고 했다. 이것이 그에게 대법이 좋다고 이야기한 장례”라고 말했다. 지금은 이미《전법륜》을 보고 있으며 수확이 아주 크다.

진상하여 3퇴를 권하고 법 공부 하는 것은 기초이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정념이 바르게 하여 자신에 대한 장애를 적게 하려면 발정념을 중요시해야 한다.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행동, 언행에서 대법제자의 진실하고, 선량하면서, 남을 위하는 자비의 심태, 부드러운 언어로 진상을 하면서 도리를 알려줘야 한다. 세인들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면 구도는 사부님, 대법이 하고 있다. 대법제자는 대법의 한 입자이다. 경계상 본신은 높은 위치에 있다. 세인과 속인은 구도하는 것과 구도 받는 것과의 관계로서 오직 선을 행하고 쟁론하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좋지 않는 물질이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퇴출하던 퇴출하지 않던 마찬가지로 자비로 대해야 한다. 선의 에너지 마당으로 사악을 해체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3), 정체의 힘

줄곧 나는 동수들과 마찬가지로 단체 법 공부와 교류, 법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는 환경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 실현되었다.

갓 전업했을 때 동수의 소개로 회사 부근에 있는 한 노년 여 수련생을 알게 되었다. 매번 사부님의 설법, 《밍후이주간》등 자료를 아줌마 수련생이 모두 나에게 남겨 놓아 나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수련생은 신체 상황이 좋지 않아 행동이 불편했다. 나중에 외지에서 사업할 때 나는 이 수련생을 도와, 격려하여 이러한 상태를 돌파하게끔 하기 위하여 되도록 그녀를 방문할 생각이 간절했다. 밍후이왕에 들어갈 때면 이 방면에서의 교류 문장을 많이 본 후 그녀와 법에서 교류하려고 했다. 처음으로 교류한 내용은 문제에 봉착하면 안에서 찾는 것이었다. 나중에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체 대법제자가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교란하는 인소는 모두 사부님께서는 안배한 것이 아니고 모두 구세력이 박해하기 위해 배치한 것이다. 때문에 반드시 무조건 부정하고 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지금 그녀가 가능하게 지난날 구세력과 그 어떤 예약을 맺었을 수 있으므로 마땅히 폐지해야 한다.

금년 봄 외출하기 전에야 동수 집으로 갔다. 이 동수와 그의 가족은 모두 당신이 마땅히 왔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는 나를 깨우치게 했다. 동수 지간의 간단한 교류가 다른 공간의 에너지 마당을 강하게 할 수 있는데 바로 정체이다. 간수소에서 금식으로 반박해 할 때 한 여 수련생이 일찍 금식으로 반박해에서 마굴을 벗어난 사실이 생각났다. 나는 속으로 묵묵히 그녀에게 가지했다. 순간 뒤 잔등에서 하나의 열기가 흘렀다. 나는 허스로 감사를 표시했다.

2007년 나는 장기간 제때에 본 지역 동수들과 정체를 이루지 못한 것이 사부님께서 안배한 것이 아니고 구세력 인소가 조성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법 수련의 기점에서 볼 때 파괴 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고 나는 발정념으로 제거했다. 나중에 협조인이 와서 나를 데리고 부근에 있는 한 노년 동수의 집으로 간 후 정체에 참가할 수 있었다.

작년에 예전에 알았던 두 명의 부부 수련생이 사악에게 납치돼 세뇌 반에서 박해를 당했다. 나올 때 두 명이 모두 사오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동수들이 가서 도와줬다. 어느 날 오후 내가 갓 도착했을 때 또 부근의 농촌에서 네 명의 여 수련생이 왔는데 어떤 수련생은 발언하고 교류하였고, 어떤 이는 조용히 발정념을 하였다. 조용한 한 순간 나는 갑자기 4명의 수련생이 모두 아주 크고 위엄 있는 신으로서 매 한마디 말, 매 일념 모두가 사악이 제거되는 느낌 이었다.

마지막 말

14년의 수련 노정에서 사부님께서는 항상 무량한 자비로 보호해 주셨고, 동수들은 나에게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동수들과 함께 서로 노력하련다.

“오랜 기간 꾸준히 견지해 오면서, 끊임없이 정진하는 그것이 비로소 진짜 정진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하자면 정말로 어렵다. 때문에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고 한다.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밍후이왕제7기중국대륙대법제자수련체험교류회)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10/12/3/121751p.html)

문장발표 : 2010년 11월 10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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