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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병업으로 인해 세상 뜨다”에서부터 다시 참답게 수련함을 말함

글/ 료닝(辽阳) 대법제자

〔명후이왕2011년 2월 5일〕최근 몇 년간 우리 지역에서 몇몇 수련생이 “병업”의 마난 형식으로 연이어 사망했는데, 아직도 병업 혹은 사람과 일의 모순과 마난 중에 처해 있는 동수들이 있다. 동수들은 사부님께서 정법을 하시기에 대법제자들은 조사 정법하며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위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정법이 말미에 처해 있는 지금에 와서도 우리는 아직 성숙하지 못 하였고, 중생을 구도한 수량은 몹시 부족 하다. 이것은 법 공부를 마음에 닿도록 하지 못하였고, 평소 참답게 수련하는데 중시를 돌리지 못 했으며, 정체 원용이 부족하여 그런 것이다. 아래는 법 공부 소조 동수들이 법에서 교류한 일부 인식이다.

1,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지 않고, 형식에 흐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법 공부는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염두(念頭)를 집중해서 배워야 하며, 진정하게 자신이 배워야 한다. “( 『오스틀리야 법회』)

자비한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구도 하신 후 신이 되게 하시고, 정법 수련의 길을 잘 걷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거듭 설법을 하시어, 법 공부를 잘하고, 법리를 명확히 알고 사람의 관념을 개변 하며, 위사로부터 무사, 위아로부터 위타, 점차적으로 새로운 우주의 각자 표준에 까지 성숙 되게 끔 하였다. 고층차의 법리를 모르면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없고 신을 향해 걸을 수 없다. 우리 지역 수련생들 중 일부 수련생들에게는 단체 법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개별적으로 법 공부를 하던 지를 막론하고 형식적인 현상이 존재 한다. 그 표현으로는 매일 한 강의 혹은 몇 강의 법 공부를 하는데 임무를 완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울러 읽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유창하다. 앞에 문구를 다 읽지 못 했는데 아래 문구의 내용을 안다(익숙하게 읽어서이다). 이처럼 다만 법 공부의 표면 형식만 중시할 뿐 마음에 닿도록 하지 않았다. 또 어떤 동수들은 『전법륜』을 매일 공부하지만 책 중의 명사와 각종 현상의 개념을 기억하지 못 한다 (평소에는 아주 똑똑히 기억하나 문제와 모순에 부딪치면 법으로 자신의 언행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근본 생각하지 못하는 동수도 있음), 편면적으로 “통독”에 집착하면서 마음속에 닿도록은 공부하지 않는다. 숙독할 때 주의식이 오직 “읽는다”에만 주의하는 것이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공부를 하지 않기에 그 글자만 읽을 뿐 그 뜻을 모른다. 그리하여 대법의 박대 정심한 내포에 대해서는 근본 담론할 수 조차 없다. 그리하여 글자를 틀리게 읽었더라도 모르면서 임의로 “더( 的 )” ” 러(了)”등 구두어를 가해 넣는데 엄숙하게 말하면 이는 법에 대한 불경이다. 이렇게 “법 공부”를 한다면 법리는 절대 펼쳐지지 않을 것 이다.

단체 법 공부는 사부님께서 남겨 놓으신 수련 형식이다. “좌담회라는 이런 형식으로, 여러분이 서로 교류(切磋)하고, 서로 담론하며, 서로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이렇게 할 것을 요구한다.”(『전법륜』) 법 공부를 한 후 동수들은 법에서 깨닫고 얻은 것을 서로 담론하면서 법에서 제고하여야 한다. 아울러 다만 어느 어느 날에 내가 어떤 일을 잘 못했는가만(혹은 반대로 다만 자신이 잘한 점의 표면 현상만 말 하는 것)말하면서 진정으로 마음 수련을 덮어 감추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보건대는 교류 같으나 실지로는 법에서 제고되는 것이 아니다.

동수들에게는 또 맹목적으로 숭배하면서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현상이 있었다. 예를 들면 “동수A가 법 공부를 잘 한다”라고 하기에 그 동수에게 동수A가 어떻게 법 공부를 잘 하는지 물었더니, 그 수련생은 대답하기를 “동수 A는『전법륜』을 암송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수A는 개인 수련과 정법 수련에 대한 시비가 분명하지 못 하여 평소 순리롭지 못한 일에 부딪치면 일률로 교란 박해라고 생각하면서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다. 『전법륜』의 박대정심에는 개인수련과 정법수련의 내포가 포함된 것으로 법 공부의 목적은 법리로 수련을 지도하기 위한 것이다. 법을 암송하였으나 법 중에서 수련하지 못하면 법 공부의 의의는 상실 되게 된다.

우리의 허다한 대법제자들은 본원(本源)이 아주 높은 것으로, 아주 높은 층차까지 돌파해야만 비로소 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법공부는 어느 하나의 층차의 법리에 멈춰 서지 말아야 하기에, 알심을 들여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개별적인 법공부 소조는 동수들이 개인 수련에서 문제가 존재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장기적으로 원칙 없이 관용을 베풀고 타협하면서 선의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모두가 너도 좋고 나도 좋다고 하면서 친절하게 지내면서 단체 법 공부를 교류, 서로 촉진하여 제고함을 장식품으로 간주하여 완전히 단체 법공부의 근본 목적을 위배한다.

2, 본 지역에서 나타난 몇 가지 사례를 교류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홍음』「착실하게 수련」)동수들은 법에 대조하여 안을 향해 찾았다. 2010년 “병업”으로 사망한 동수들을 거울로 삼아 그들의 정면 교훈을 섭취하면서 함께 교류하여 인식한 것이 참답게 수련하는 방면에서 우리들은 사부님의 요구와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모두들 너무 부끄러워 (얼굴에) 진땀을 흘리면서 “사부님의 자비한 고도에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매우 많은 동수들에게는 법에서 수련할 줄 모르며, 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고, 사람 마음에 집착하면서 장기간 내려 놓지 못했다. 그러므로 문제에 부딪치면 사람 생각을 사용할 뿐 정념을 사용하지 못하며, 일 자체의 상황에 따라 시비(是非)와 득실(得失)을 논하며, 사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며, 모순 중에서 네가 옳고 내가 그르다고 하면서 시비를 나눈다. 심지어 질투심으로 수련생을 배척한다. 이렇게 되어 고비마다 넘기지 못하여 계속 쌓이게 되어 후에는 비교적 큰 어려움과 고비로 되고, 심지어 고비가 너무 커서 넘지 못하는데까지 이르게 된다. 아래 몇 가지 사례만 말하겠다(그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교훈을 섭취하여 수련 중 더는 굽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다).

사례1: 2010년 “병업”으로 사망 한 동수 A는 생전에 법 공부, 중생구도, 자료 만들기 등 각 방면에서 골간 작용을 했다. 이렇게 훌륭한 수련생이 사망하고 또 매우 고통스럽게 죽어가서 동수들은 매우 가슴 아파했다. 그런데 법에서 안을 향해 찾아보면 갑 수련생은 법 공부를 마음에 닿도록 하지 않았기에 법리에서 똑똑하지 못했으며 참답게 수련함이 부족하고 무턱대고 대법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하면서 마음을 닦고 자신을 제고해야하는 가장 관건적인 일환을 중시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되니 우주의 특성이 당신을 제약하여 일부 방면에서 낡은 세력이 안배한 길을 걷게 되므로 사람의 신체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사례2: 2010년 사망한 동수 을은 법을 일찍 얻은 노 수련생이다. 그녀는 법공부에 매우 큰 힘을 기울여 사망 전『전법륜』을 몽땅 암송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료를 만들었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함에 더욱 약함을 보여 주지 않았다. 한 수련생이 그녀를 회억하면서 말하기를, 법 암송하는 면에서는 을동수와 비길 수 있는 수련생이 몇 명 안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참답게 수련하면서 안을 향해 찾으면서 자신을 제고함이 부족하므로 어려움과 고비에 부딪치면 친척 정을 내려놓지 못하면서 일 자체의 상황에 따라 시비(是非)와 득실(得失)을 논하였다고 하였다.

사례3: 병수련생은 법공부 중생 구도에 비교적 공력을 들였다. 그런데 가정을 원용하는 방면에서 잘 하지 못하여 사악이 틈을 타고 기어들어 왔던 것이다. 어느 한 번 전단지를 배포하다가 이웃에게 신고 당하게 되었다. 병 수련생은 도주하여 외지에서 의지 할 곳없이 유랑하면서 감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외지에서 아리바이트를 하고 세를 들어 살면서 생활 환경이 열악하고 간고했다. 수시로 거민 위원회의 주민등록증 검사를 받아야 했고 악경들의 소란 등 박해를 받았다. 동수 병은 몇 년간 비록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도 법과 사부님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여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고, 세 가지 일을 잘 하였다. 어느 한 번 법공부 중에 사부님의 점오를 받고 “나는 대법제자이기에 사부님이 안배한 길을 걸으면서 정념 정행해야하지 집을 떠나 유랑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정념이 나오자 십방 세계를 진동하여 병 수련생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일체 문제도 모두 순리롭게 해결 되었다. 정말 “하나의 완전히 법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움직일 수 없다.”(『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였다.

3, 정체 승화, 정체 제고

어느 진상 시디에 이런 한 마디가 있다. 중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주 중의 원시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서 우주의 규율을 완벽하게 하고, 대궁원용 불멸의 지혜법리를 창립하셨다. 일부 각자들은 사존님과 서약을 맺고, 하세 할 때 서로 타이르기를 만약 어느 누가 길을 잃게 되면 반드시 그를 깨우쳐 주며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 주자. 동수여, 하세 전의 그 서약을 잊지 말자. 현재 구세력은 우리들에게 거대한 고비와 난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전면적으로 그것들을 부정하고, 사부님께서 안배한 길을 걸어야 한다. 당신이 나를 끌어당기고, 내가 당신을 잡아당기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걸어 지나가야 한다.

우리 지역에는 노년 동수들이 비교적 많다. 그(그녀)들은 아직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도리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법 노정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연세가 많기에 또 생명 연속 문제가 존재하는데 그냥 한 상태에서 제자리걸음을 걷는다면 시간이 길어지면 매우 위험한 것이다.

어떤 동수들에게 병업 마난이 나타나는데, 사실 모두 다른 공간의 사악이 빈틈을 타고 들어 교란하고 훼멸시키는 것이다(구 우주의 생로병사), 이런 동수들은 용기를 잃지 말며, 기타 동수들은 질책하지 말고, 동수의 정념을 가지하여야 하며, 법에서 많이 교류 하여야 한다. 수련생을 도와 법에 대조하면서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대법 중에 놓고, 강대한 정념으로 그 고비를 넘게끔 해야 한다. “상유심성”의 법리를 알게끔 하며, 표면 현상을 통해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여, 자신의 상태를 개변하게 하며, 많게는 참답게 수련하는데 공력을 들이게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많은 일은 여러분이 협조를 잘 하면 더욱 좋을 것 이다. 나는 당신들이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 누가 좋고 누가 나쁘고, 누가 어떠어떠하다는 것에 신경을 적게 쓰고, 당신들의 정력을 전부 법을 실증하는데 쓰기를 희망한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다 협조할 수 있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 한다면 그것은 당신들의 위덕을 수립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고 의논할 때 신마저도 옳게 보지 않는다.”(『 각지 설법6』「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

사부님의 설법을 학습하니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나의 마음을 진동 했고 거대한 법리는 뼈속까지 스며들어 우리들이 신으로 수련하는 것을 저애하고 있는 사람의 것들을 백주에 폭로 시켰다. 수련의 길에서 우리들은 서로 짓밟으며 상처를 내지 말고 서로 부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장 쉽게 사악에 의해 끌려가게 되며 구세력이 동수들을 갈라 놓으려는 올가미에 걸리게 된다. 이상의 사람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신을 해할 뿐만 아니라 또 타인을 해치게 되며, 정체 의 힘을 분산 시키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들이 함께 조사 정법함에 있어서의 걸림돌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한 수련자가 부딪치게 되는 일체는 모두가 당신들의 수련, 원만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정진요지2』「대법은 원용한 것 이다」) 문제에 부딪쳤을 때 일 자체의 상황에 따라 시비(是非)와 득실(得失)을 논하면서 일의 출현을 우리 서로 매 개인의 마음을 향해 온다는 이 법리를 잊어버리고, 좋은 일을 나쁜 일로 간주 한다면 우리에게 심성을 제고할 좋은 기회를 주었으나 그 기회를 잃게 된다. 동수여, 사부님의 정법 노정은 그토록 긴박하므로 앞으로 더는 흐리멍덩하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법리를 귀 밖으로 스쳐 버리지 말고, 신속히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와 신으로 수련하라고 하신 사부님의 기대를 잘 기억해야 한다.

동수들과 협조에 관한 문제를 교류하여 다음과 같은 인식을 하게 되었다. 정체 협조에 관한 문제를 말하면, 어떤 동수들은 우선 정체의 협조인들이 응당 어떠어떠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도 옳은 것이다. 그러나 협조를 생각 할 때 우리 자신들도 협조인이니 응당 어떠어떠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 하였는가? 협조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이며, 협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수련하고 다른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 하는 것이며, 자신의 능력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자아를 수련하여 버리는 것이며, 법속에 용해되는 과정이다(우리는 모두 대법이 만들어 낸 생명이다). 협조하는 과정 중 펼쳐지는 것은 대법의 법리, 법력과 정체의 힘이므로 매 개인은 모두 자아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묵묵히 정체를 보충해야 한다. 상술한 것은 곧 필자가 이 문장을 쓴 목적으로서 다만 벽돌을 던져서 구슬을 끌어 들이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다고 하여도 시기상조한 것으로 아직 늦지 않기에 정체 승화, 정체 제고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자.

문장 완성: 2011년 2월 5일

문장 분류: 수련 마당문장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5/交流–由“病业离世”再谈实修-2356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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