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밍후이법회] 그 해 나는 서른 한 살이었다

ㅡ 나는 사부님 가호 하에 12년 비바람 속에서 신의 길을 걸어왔다

글/ 간쑤성 대법제자 법연(法缘)

[밍후이왕] 악경은 나를 여섯 달 동안 나가지 못하게 했고 가족 동수와도 면회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저 날마다 법을 외우고 발정념 했다. 사악의 박해는 기세등등했다. 생사에 직면해 나는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유서 한 장을 써서 봉쇄를 돌파하고 내 동창에게 부쳐 보냈다. 편지에서 나는 먼저 대법이 널리 전해지고 있는 것과 아름다움을 말하고 다음에 자신의 감옥에서의 처지와 대법제자가 당하고 있는 각가지 박해를 쓰고는 동창에게 만약 내가 건물에서 뛰어 내렸다거나 자살 혹은 앓아서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건 틀림없이 악인의 박해로 죽은 것이니 유서를 내 부친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 해 나는 서른 한 살이었는데, 그러한 박해 환경에서 유서를 쓰게 되니 마음 한 구석엔 또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박해로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해서부터 나와 아내 수련생은 건설 현장에서 고된 막일도 했고, 찐빵 가게도 해 보고 노점을 벌려 보기도 했다. 지금은 작은 가게를 경영하고 있다. 비록 적지 않은 고생을 했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즐거웠고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후회 없는 우리의 선택이었다. 지금 우리의 장사는 아주 잘되고 있으며, 인연도 상당히 좋아 속인들이 매우 부러워한다. 나는 늘 세인에게 얘기해 준다. 이는 우리 온 집이 대법을 수련해서 얻은 복이라고.ㅡ 본문 중에서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전 세계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매일 밍후이왕에서 법회에 참가할 것을 격려하는 수련생들의 문장을 보고서 나는 비바람 속에서의 12년 동안에 너무 많은 수련 경력이 있기에 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자아를 실증하려는 것은 아니고 역사에게 위대한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는 어려운 구도와 고생, 대법의 위대함과 신기함, 사부님 은혜 속에 푹 잠기게 된 제자의 행복과 감격을 기록하려는데 있다.

난세에 법을 얻어 귀로에 오르다

나는 1996년의 어느 우연한 기회에 책 파는 노점에서 『전법륜』(수정본)을 얻었는데 단지 고심 박대한 기공법이라고만 느꼈을 뿐 그 때는 중시하지 않았고 그저 사업을 하느라 피로하기 그지없을 때만 꺼내서 보곤 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오성이 나빴던 까닭에 진일보 법을 배우지 않았고 그저 이 책은 사람을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아주 바르고 좋은 책이라고만 여겼다. 그래서 기공으로 여기고 연마하다 보니 ‘사흘 고기잡이하면 이틀을 그물 말리는 격’으로 대법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직장이 작은 시골에 있었던 까닭에 연공하는 수련생이 주변에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존께서는 대법과 나와의 만고지연을 소중이 여기시어 얼마 안 되어 내 아내를 시골로부터 도시로 전근시켰다. 이렇게 되어서야 나와 아내는 대법제자와 접촉할 기회가 있게 됐다. 1998년 8월, 나는 진정으로 대법을 인식하게 됐고 금생에 대법을 확고히 수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했다.

법을 얻은 후 나는 명리를 담담히 보게 됐지만 사업은 원래보다 더 잘 했으며 마음은 더 밝아졌다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타인을 선하게 대했다. 사업 여가에 수련생과 함께 주변 지역에 나가 대법을 널리 선전하면서 대법의 복음을 세인에게 전해 주었다. 그 한 동안은 얼마나 보람차고 즐거웠던지 날마다 모두 대법의 홍대한 은혜 속에 잠겨 있었다. 단체로 법공부, 연공, 홍법는 생활은 대법이란 이 정토에서 얼마나 만족스러웠던가.

2. 비바람 속에서 길을 잃지 않다

1999년 7.20, 중공과 장(江)씨 깡패 집단은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사존께서 비방을 당하고 대법이 모함당했으며, 1억 대법도가 사당에게 각종 방식으로 박해 당했다. 박해는 날마다 승급했고 독은 널리 퍼져 중생을 해쳤다. 나는 내심으로 막막함과 고통을 겪은 후 아내와 함께 99년 12월 26일경, 사부님과 대법의 결백함을 돌려달라고 쓴 편지를 지니고 베이징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길에 올랐다. 직장에 연루시키지 않으려고 떠나기 전에 사직서를 남겼다.

천안문 광장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대법을 실증하는 수천 만 대법제자의 장거를 목격했고 참여했다. 그 피와 눈물은 천지가 통곡하고 귀신을 놀라게 했다. 우리는 이후에 직장과 지방 정부는 나를 현지로 데려다 사형수 감방에 가둬놓았고, 경찰은 중죄인을 시켜 내가 수련을 포기하도록 박해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죄인들에게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말을 해주었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얘기해 주었으며 내가 깨달은 대법 법리로 그들을 좋은 사람이 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많은 죄인들은 대법의 순결하고 선량한 법리에 탄복했고 한 죄인은 “내가 만약 이런 이치를 일찍 알았더라면 감옥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년은 겨우 17살인데 패싸움에서 사람을 때려죽였다. 그는 대법진상을 들은 후 날마다 나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들려달라고 했으며 그는 감옥에서 앞으로 꼭 좋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에 보답함으로써 그가 지은 죄악을 속죄하겠다고 맹세했다. 마피아처럼 등급이 삼엄한 감방이 나중에는 대법 법리의 감화로 사람마다 서로 관심하고 사랑하면서 싸우지 않고. 빼앗지 않는 ‘평화감방’이 됐다. 나중에 경찰은 나를 당직실에 불러다 놓고 몰래 물었다. “그들이 정말 싸우지 않는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모두 불가사의 하다고 느꼈다. 아울러 이른바 ‘엄격한 관리 감방’이 어찌하여 ‘평화감방’으로 변했을까 궁금해 했다.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대법의 위력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나는 늘 생각하곤 한다. 만약 사당의 박해가 없었다면 길을 잃은 이 생명들은 자유롭게 대법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고 마음을 다시 고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아무리 악인일지라도 모두 선한 일면이 있기 마련인데 하물며 대법의 법리는 바로 사람 마음을 바르게 하는 천법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는 중공에 불법 노동교화 1년 형을 당했다. 노동교화소에서 나는 여전히 사부님을 확고히 믿고 대법을 확고히 믿었으며 어디로 가면 어디서 대법 진상을 말했다. 악경이 말하지 못하게 할지라도 나는 그들의 그 따위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선념으로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특히 자신은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힘든 일이란 해보지 못했는데 사악은 육체와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을 채용해 낮에는 가장 힘든 일을 시키고 밤에는 또 사당의 훈계, 학습, 세뇌, 군인자세로 서 있기를 시켰다. 나는 수시로 몹시 힘들고 몹시 제압당하는 감을 느꼈고 게다가 줄곧 속인 중의 선진, 모범으로서 박수소리와 꽃다발 속에서 지내던 인생이 대번에 지옥 같은 생활로 들어서고 보니 그 낙차야 말로 ‘고기심지(苦其心志)’(『홍음』)였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사부님을 믿었고 대법을 믿었다. 매 번 내가 지쳐서 일을 할 수 없게 될 때면 늘 경찰이 나의 사상 보고를 들으려 했다. 그러면 나는 기회를 빌어 대법의 진상, 수련 심득을 얘기해 주는데 일을 끝마칠 때까지 한다. 실은 모두 사부님의 가호와 초상적인 안배였던 것이다.

어제는 수련생이었던 사람이 혹독한 환경과 압력으로 타협하거나 사오하고 또 사악을 도와 다른 대법제자를 전향시키는 것을 보면 나는 몹시 마음이 상한다. 한 번은 악경이 그들과 나를 담화하게 했다. 나는 온 오전 시간을 사존의 걱정과 고생스런 구도를 말했고 중생을 위한 사부님의 감당을 말했으며 그들이 제출한 문제를 일일이 대답해 주면서 그들에게 대법의 기연을 소중이 여기게 했고 사부님께서 구도해 주신 은혜에 어긋나지 말기를 바랐다. 오후에 일하러 가는 시간에 나는 사오한 수련생들이 노동교화소 정원에 정연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마약범은 파룬궁이 ‘반탄(反彈-반대로 튕기다)’ 한다고 말했다. (신사신법으로 되돌아옴을 가리킴)

법공부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대법제자들은 개인적으로 각자 외운 경문을 쪽지에 써서 서로 전해가며 읽었다. 저녁이면 이불 밑에서 외웠고 틈만 있으면 『전법륜』 속 매 한 단락의 법, 매 하나의 제목, 매 한 강의 내용을 회억했고, 경문 속 매 한 구절, 하다못해 오직 하나의 제목만이라도 기억했으며, 낮이고 밤이고 없이 속으로 수없이 기억하고 외우고 했다. 위대한 법리는 나의 정념을 확고하게 했고 나를 이끌어 그 잔혹한 고압의 세월을 걸어올 수 있게 했다. 그 때 사악은 나를 전향시키기 위하여 늘 한 밤중인 2,3시면 나를 다른 한 감방으로 끌고 가서는 대법을 포기하도록 나를 핍박했으나 나는 사부님의 “사부님 있고 법이 있는데 두려울 게 뭔가”(『시드니법회설법』), “생사를 내려놓으면 당신은 신이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은 사람이다” (『뉴욕법회설법』)란 법을 단단히 기억했다. 매 번 모두 그들에 대한 진상 알리기로 그들의 문제를 해답해 주는 것으로 끝을 마쳤는데 질식되고 굳어진 그런 기분이 사라지고 나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어느날 저녁 나는 악경에게 불려 당직실로 갔는데 안에 들어서자 책상에 수갑과 밧줄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악경은 음침한 얼굴로 나에게 잘 생각해 보라면서 반드시 ‘전향’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자신의 심태를 가라앉히고 사존과 법을 확고히 믿는다는 것을 표명했고 묻는 말에 대답했다. 나중에 악경은 나 때문에 몇 백 위안이나 되는 봉급과 상여금을 삭감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眞ㆍ善ㆍ忍’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려 한 이유로 무고하게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세인들이 대법을 소중히 여기고 대법에 죄를 짓는 것을 면하게 하기 위하여 베이징에 청원을 가서 진상을 반영한 이유로 도리어 감옥, 노동교화소에 갇혔습니다. 가정에 재난이 들씌워 지고 복지 대우 같은 건 계산에 넣지 않고도 몇 천 위안의 봉급을 손해 보았지만 우리는 모두 말하지 않는데 당신들은 사람을 해치고도 그까짓 봉급을 손해 보았다고 억울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는 악행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크고도 붉은 사과 한 개를 나에게 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장려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오직 마난 중에서 신사신법 하기만 하면 곧바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 된다.

2001년 4월, 표면으로 보면 수련생이 전화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 내 납치를 초래한 것 같지만, 안에서 찾아보니 내가 노동교화소에서 돌아온 후 법공부를 강화하지 않았고 색욕심, 안일심을 방종했으며, 주변 동료 및 중생에게 진일보 진상 알리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로 나에게 노동교화 1년을 판결했다고 했다. 노동교화소로 가는 도중 나와 수련생은 대법의 진상을 말해주고 발졍념을 했다. 노동교화소에 이르니 우레가 울고 번개가 번쩍였으며 우리 둘은 신체검사에 불합격 되어 노동교화소에서 받기를 거부했다. 악경은 달가워하지 않고 또 전화로 연락했지만 그래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몰래 기뻐했다. 구치소로 되돌아온 우리는 또 환희심,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 어서 빨리 나가려는 마음이 일었으나 이런 나쁜 마음을 안에서 찾아보고 해체하지 않았다. 3일 후 또 간쑤성(甘肃省) 610의 협조로 평안대 제1 노동교화소에 갇히게 됐다.

이 시기의 노동교화소 악경은 더욱 사악하게 변해 대법제자를 더욱 심하게 박해했다. 대낮에 노역을 시키고도 밤이면 정신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혔는데 나의 의식주, 언행 등 모든 방면에서 트집을 잡아 박해했다. 어떤 수련생은 철제 침대에 수갑을 채워 달아맸는데 앉지도 설수도 없게 했다. 어떤 사람은 둘러싸여 몰매를 맞았고, 어떤 사람은 24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대법을 비방하는 글을 끊임없이 읽어주어 대법제자를 세뇌했다.

나는 그런 공포적이고 강압적인 사악한 소굴에서 법을 실증했고 사전의 서약을 실현하면서 대법을 수호했으며 구할 수 있는 일체 중생을 구도했다. 수련생들은 비바람 속에서 한 배를 타고서 대법에 대한 정념과 바른 믿음으로 줄곧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앞장에 서서 청원하고 전단지를 배포하고 방송을 삽입했으며 자료점을 만들었다. 얼마나 훌륭한 수련생들인가! 나와 함께 수감됐던 두 수련생은 악경의 박해로 사망했는데 매번 그 한 장면을 회상할 때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위대하신 사존과 위대한 불법은 수천수만의 위대한 제자를 만들어냈다. 이런 수련생들의 법에 대한 확고함은 사악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우리가 정체적으로 잘할 때면 노동교화소의 그 사악한 기제들은 즉시 붕괴되고 마비됐다.

3. 사부님 가호로 위난 중에서 대법의 위덕 나타냐

2000년 7월 나와 아내는 네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또 다시 베이징으로 법을 실증하러 갔다, 사당의 지방, 직장에 대한 연루된 박해를 타파하기 위해 나는 이름을 대지 않고 베이징 쑹원(崇文)문 공안분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내가 감옥 규정을 외우지 않았으니 악경은 감방 죄수들을 발동해 말썽을 일으키고 도발하고 압력을 가했다. 늦가을이라 날씨는 점점 싸늘해 져 모두들 내의를 입었지만 나는 여전히 청원갈 때 입었던 반바지 반팔 옷을 입고 있었고 전 감방 죄수들은 모두 악경의 통제 하에 나를 박해하는데 참여했으며 나에게 먹고, 입고 쓸 것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

하루는 악경이 나를 감방에서 불러내다 전기봉으로 나를 충격했는데 당분간 어떻게 대처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갑자기 악경이 나를 충격하면서 말했다. “네 사부의 경문을 외우면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 때 나는 사부님께서 악경의 입을 이용해 나를 점화해 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끊임없이 외웠다.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 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 않노라.” (『홍음』「무존」) 그 악경은 전문적으로 내 대동맥, 신경이 민감한 부위만 골라 충격했지만 나는 얼마나 괴로운지 느끼지 못했는데 그 전기봉은 전기가 없어졌다. 악경은 나에게 대법 책 한 권을 주면서 자기도 대법 수련을 했는데 나에게 세상 물정을 알고 수련을 포기하며 이름과 주소를 대라고 했다. 내가 책을 펼쳐보니 사존의 법상이 보였다. 사존께서는 자애로운 부친과도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빛에는 사랑과 가호가 비껴 있었고 자비로운 미소는 나를 고무격려 해 주셨다. 나는 정념이 배로 늘었고 눈물이 샘처럼 솟아올랐다. 나에게 전해 주신 것은 제자가 잘한 것을 보셨을 때의 사부님의 기쁨, 제자가 바르게 잘 걸어갈 것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40분이 지나서 내가 감방으로 돌아오니 한 죄수가 욕설을 퍼부었다. “이 짐승 같은 것들이 사람을 이 정도로 때리다니!” 그 때에야 나는 내 두 팔, 다리가 전기 충격으로 화상을 입어 물집이 생겼고 물집 위에 또 물집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죄인들은 대법에 대한 나의 확고한 믿음을 보고는 여느 때와는 달리 토마토 등 먹을 것들을 나에게 주었으며 아울러 그 때부터 악경에 협조하지 않았고 여러 방면으로 나를 관심하고 나를 도와주었다. 내가 직장과 소재한 지역 공안에 압송되어 돌아가게 됐을 때 모든 죄수들이 정연하게 열을 지어 나와 작별했는데 그 장면은 악경들을 감탄케 했다. 그들은 사람을 탄압할 줄만 알았지 사람을 진정으로 교육할 줄은 모른다. 오직 ‘眞ㆍ善ㆍ忍’을 수련하는 대법제자만이 법리로 사람들의 선념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며 재능과 덕을 겸비한 사람을 보면 본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게 하며, 사람의 선념을 계발해 사람의 본성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12년 동안의 박해 가운데서 얼마나 사악한 사람이든 나의 대법 법리의 감화 아래에 비단 사악을 협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있는 힘껏 대법제자를 보호해 주었다. 옥중의 검은 소굴에서 수련생에게 경문을 전해 주었고 함께 『홍음』을 외웠고 벗으로 됐다. 무수한 생명이 구원되어 사존의 홍대한 은혜 속에 잠길 수 있게 됐다.

노동교화소에서의 박해는 각양각색이지만 나는 시종 신사신법 하면 못해낼 것이 없고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일념을 품고 있었다. 한 번은 노동교화소에서 대법을 비방하는 영화 관람을 조직했는데 나는 단연히 제지하면서 보러 가지 않았다.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가 악독하고 잔혹하기로 소문이 난 악경 리쩐깡(李振剛)은 나를 사무실에 불러다 놓고 욕설을 퍼 부으면서 나에게 손을 쓰려 했다. 나는 속으로 “사악한 자들아 그만 창궐하거라. 천지가 다시 밝아오면 끓는 물에 떨어지려니 폭력으로는 인심을 움직이기 어렵거늘 광풍이 몰아쳐 가을을 더욱 서늘케 하노라.”(『홍음2』 「가을바람 서늘하구나」)를 묵념했다. 나는 갑자기 자신의 신체가 비할 데 없이 커지고 눈앞 악경은 작다 못해 볼 나위조차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사악한 기염은 오간데 없어지고 눈에는 공포가 가득 서려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정념을 부단히 발하면서 악인의 눈을 정시했다.

그 때부터 리쩐깡은 감히 나를 직접 박해하지 못하고 마약범을 시켜 나를 괴롭히게 했다. 날마다 나를 벽을 마주하고 서 있게 하면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아울러 두 죄수 감시원을 시켜 돌아가며 대법을 모함하는 책을 읽게 했다. 나는 속으로 너희들 말은 결정하지 못하며 나는 한 마디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발정념을 했다. 그들은 앉아 있을 수 없어 잠시 후 가는 사람은 가고 숨을 사람은 숨어 버렸다. 발정념으로 나를 박해하는데 참여한 모든 악경은 현세현보 하라고 했더니 그 날 저녁 악경들이 한데 모여 술을 마실 때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죄다 취해서 전부가 토했는데 가짜 술인 줄로 여겼다. 배가 아파서 1주일 동안이나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먹기만 하면 토했다.

악경은 나를 여섯 달 동안 나가지 못하게 했고 가족 동수와도 면회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저 날마다 법을 외우고 발정념 했다. 사악의 박해는 기세등등했다. 생사에 직면해 나는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유서 한 장을 써서 봉쇄를 돌파하고 내 동창에게 부쳐 보냈다. 편지에서 나는 먼저 대법이 널리 전해지고 있는 것과 아름다움을 말하고 다음에 자신의 감옥에서의 처지와 대법제자가 당하고 있는 각가지 박해를 쓰고는 동창에게 만약 내가 건물에서 뛰어 내렸다거나 자살 혹은 앓아서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건 틀림없이 악인의 박해로 죽은 것이니 유서를 내 부친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 해 나는 서른 한 살이었는데, 그러한 박해 환경에서 유서를 쓰게 되니 마음 한 구석엔 또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지와 가호 하에 여섯 달 동안 나에게 검은 손을 뻗혔던 악경은 나에 대해 별다른 수가 없어 나중에는 흐지부지 하고 말았다.

2003년 7월 나는 핍박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어 고정된 거처가 없었다. 그런데 610은 특무 및 사회의 할 일 없는 자들을 파견해 도처에서 나를 찾았고 내 고향 친인들을 감시했다. 그 한 시기 어려운 나날에 나는 대법제자의 책임 ㅡ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잊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힘껏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렸다. 대법 진상을 종이에 쓰거나 새 트럼프, 노트에 써서 도처에 배포했고, 대법의 아름다움, 진상, 사당의 깡패 본성을 통속적이고 알기 쉬운 시가 형식으로 소책자에 편집해 주민 집 입구에 놓았다. 그 때는 다른 수련생이나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없었다. 사존께서는 나에게 진상자료를 만들려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가지하고 도와서 설비를 사게 하시고 CD를 굽고, 『9평』을 만들며 각종 진상 자료를 만들게 하셨다.

일하는 마음, 안에서 찾음이 부족하고 제때에 자신을 귀정하지 않았던 까닭에 대량으로 진상 지폐를 사용하던 어느 하루 사악이 세 맡고 있는 집으로 미행했다. 또한 이때에 와서 나는 내 집주인도 전문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민간 특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사악은 수 많은 미행원을 배치했는데 건물에 다른 세입자들까지 참여해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듯한 기세였다. 저녁이면 사악한 물질이 나를 습격해 와서는 나를 겹겹히 둘러싸려 하는 감을 느꼈고 나는 장시간 발정념으로 사악을 해체했다. 나는 각종 경로를 통해 집의 동수에게 나의 상황을 알려주어 그들도 함께 발정념을 해 나를 가지하면서 함께 난관을 넘었다. 무릇 내가 접촉할 수 있었던 미행원은 내가 모두 지혜롭게 『9평』과 기타의 진상 자료를 그들에게 주어 보게 했고 사당이 어떻게 대법,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나와 내 가족을 박해했는지에 대한 경험을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이름을 감추고 떠돌이 하던 생활을 마치고 정정당당하게 세인들 앞에 나타나 대법의 선한 말과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하고 대법제자의 순정, 대선(大善), 대인(大忍)과 정기를 실증했다. 주위 환경이 개변되고 사람들 머릿속 사당이 날조한 독해가 흩어졌다. 사람들은 대법제자를 적대시 하던 것이 관심으로 변했고 애호하고 선하게 대하는 것으로 변했다.

박해로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해서부터 나와 아내 수련생은 건설 현장에서 고된 막일도 했고, 찐빵 가게도 해 보고 노점을 벌려 보기도 했다. 지금은 작은 가게를 경영하고 있다. 비록 적지 않은 고생을 했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즐거웠고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후회 없는 우리의 선택이었다. 지금 우리의 장사는 아주 잘되고 있으며, 인연도 상당히 좋아 속인들이 매우 부러워한다. 나는 늘 세인에게 얘기해 준다. 이는 우리 온 집이 대법을 수련해서 얻은 복이라고.

머리를 돌려 매 한 관, 매 한 난을 총결해 보면 실은 모두 우리의 사람마음을 겨냥해 온 것으로서 오직 신사신법 하기만 하면 사악은 우리를 건드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매 한 걸음을 온건하게 걸을 수 있다. 사존의 홍대한 은혜와 구도를 일일이 다 진술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제자는 사부님 은혜에 무릎 꿇고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위대하신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어렵습니다. 사부님을 부를 때마다 눈물이 샘솟듯 합니다.

모든 국내외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린다. 우리 비바람 속에서 같은 배를 타고 대법의 아름다움의 감로를 인간세상에 뿌려주면서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자!

부족한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허스!

(밍후이왕 제7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0년 11월 21일

문장분류: 대륙법회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21/2324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