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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닦으면 얼마나 얻을 수 있다’ 에 대한 인식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몇 년 동안 각 지역 동수들의 육신이 먼저 떠난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우리 지역도 이런 문제가 비교적 뚜렷했다. 문제가 나타난 동수들은 각 연령층에 모두 있고, 어떤 사람은 세 가지 일도 아주 잘했다. 이 며 칠 동안 또 두 수련생이 잇따라 병태로 세상을 떠났다. 한 분은 80여 세였고 한 분은 40여 세였다. 이일로 인해 속인에게 부면적인 영향을 끼쳤고, 사악도 기회를 타서 요언을 날조했다. 많은 동수들은 모두 젊은 수련생이 안타깝다고 말했지만, 노년 수련생이 세상을 떠난데 대해서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심지어 “아이구, 얼마 닦으면 얼마 얻을 수 있어요.” 라고 말을 하는 동수도 있었다. 나는 듣고 나서 좀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정념이 아니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동수의 마음을 고려해서 나는 단 “이것은 사부님이 안배하신 것이 아니어요.” 라고 말했다.

육신을 일찍 잃는 문제에서 원인은 너무 많다. 사부님은 설법에서 역사의 염원, 은혜와 원망, 또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구세력(舊势力)과 무슨 서약을 했다는 등등의 원인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것은 구세력이 박해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련을 시작해서부터 그것이 우리를 관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의 일생을 다시 안배 해 주셨고, 심지어 수련을 하기 전에도 우리를 보살피고 계셨으며, 사부님은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셨다. 하지만 구세력이 안배한 요소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우리 몸을 따라다니고 있다. 우리가 정념이 부족하면 그것은 틈을 타고 들어와 부동한 정도의 박해가 나타날 수 있다. 사부님은 중생이 구도되길 바라시고, 정법이 끝나면 대법제자들의 원만을 바라신다. “얼마 닦으면 얼마 얻을 수 있다.” 는 사부님의 중생에 대한 자비이다. 제자로서 사부님의 자비만 누릴 수 없고, 우리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중요한 책임을 짊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련은 엄숙하여 정법노정에 따라가지 못하거나, 법이 부동한 층차에서 우리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육신은 이 물질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제자들이 조성한 손실은 예측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대법제자가 기회가 없어 잘 닦지 못한 그 부분이 대응된 천체도 따라서 훼멸되기 때문이다. 대법제자가 중생구도 중에서 한 명이 10명을 감당하고, 10명이 100명을 감당한다. 하지만 구세력은 오히려 대법제자의 일사일념을 호시탐탐 지켜보고 있고, 틈을 잡으면 대법제자를 박해하며 아울러 중생을 훼멸한다.

“얼마 닦으면 얼마 얻을 수 있다.”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이지, 이것은 사부님께서 필요로 하신 것이 아니다. 제자로서 반드시 법에서 인식을 제고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큰 누락이다. 현재 몇 명 수련생은 신체적인 박해로 스스로 생활할 수 없게 되어, 가족 동수들의 많은 정력이 연관되기 때문에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온 힘을 기우릴 수 없게 되었다. 주변 동수들은 오늘 이곳에 가서 발정념을 하고 내일은 저 곳으로 가서 발정념을 하는데, 마치 조롱박을 누르면 박이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으며 아주 피동적이였다. 마난에 있는 수련생은 여전히 약을 먹지 않고 주사를 맞지 않는 다고 생각하면서, 구세력의 안배 중에서 어떻게 고비를 잘 넘을 것인가에만 국한되어 있다. 심지어 가족에게 약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법에서 제고하지 못하면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할 방법이 없다. 원만 전에는 여전히 업력이 존재함으로써 사람 마음을 단련하고, 몸은 부동한 병업의 소업현상이 나타나지만, 세 가지 일을 하는 데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마난이 크다면 그것은 구세력의 교란이며 박해다. 그러므로 법에서 제고해 올라온 사부님의 안배인지, 아니면 구세력의 교란인지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는 보증이다.

문장발표 : 2010년 1월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2/交流–谈对“修多少,得多少”的认识-2348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