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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수련생을 찾아오는 중에 자신을 수련

글/ 헤이룽장(黑龍江)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더 정진하자』에서 말씀하시기를 “최후의 시각이 오기 전에 구도해야 할 중생의 숫자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고, 대법제자 일부분이 아직 따라오지 못했는데, 이것이 바로 아직 최후의 이 일을 완성할 수 없는 관건 원인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이해한 것은 따라오지 못한 수련생은 걸어 나오지 못한 것과 떨어진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찾아오는 것은 우리 매 수련생들이 모두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아래에 옛 수련생을 찾는 중 자신을 수련한 작은 경험을 이야기하려 한다.

1. 과정 중 자아를 놓고 사심을 수련

몇 년 전 나는 옛 수련생을 찾는 일을 했었고 확실히 많은 시간과 정력을 투입했으며 적지 않는 고생도 했다. 1999년 7월 20일 박해가 발생한 후 나도 휘청거리면서 곤두박질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마침내 걸어 왔다. 물론 사부님의 가호를 떠날 수 없었고 수련생들의 도움도 있었다. 내가 온정하게 걷게 되자 나는 대오에서 떨어진 협조인들과 기타 수련생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마음은 아주 순정하고 다른 생각이 없었고 대법이 좋다는 것만 알고 수련생들이 이 만고의 기연을 잃지 않게 하려고만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도 하나의 제자라도 잃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또 우리들에게 법리를 이야기하셨다. 사부님은 하나하나 직접 찾아갈 수 없는데 어떻게 하는가? 바로 제자인 우리들이 찾아가야 한다.

당시 우리 집은 마을에서 6리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찾으려는 수련생들은 대부분 마을에 거주하고 있었다. 나는 직장인이기에 휴식시간을 이용해 자전거를 타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엄동설한이나 혹서에도, 도로가 질퍽거리거나 겨울날 눈에 미끄러워도 옛 수련생을 찾아 돌아오라고 권했다. 사부님의 매번 경문과 기타 자료도 모두 그들에게 가져다주고 교류했다. 오랜 세월이 가는 중 많은 지불을 했다.

한 가지 예만 들기로 하자. 어느 한번 사부님 경문이 발표되어 나는 한 수련생에게 가져갔는데 가면 없고 해서 모두 7번이나 갔었다. 그의 집은 우리 집과 6리 떨어져 있었다. 수련생과 교류할 때 또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그의 가정환경에 주의해야 하는데 정말 아주 힘들었다. 그 마음은 두 세 마디로 말할 수 없다. 비록 자신은 고생스럽지만 몇몇 수련생을 찾았는데 그 중 몇은 다른 종교에 빠졌다. 이 일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심지어 내 일편단심을 저버렸고 내 귀중한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다고 원망했으며 이런 시간을 이용하면 내가 얼마나 많은 법공부를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최근 몇 년 간 다시 옛 수련생을 찾으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날 지불해 얻은 그런 결과를 생각하면 하고 싶지 않았으며 속으로 ‘이 시간을 낭비할 것이면 법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혹은 가서 속인에게 진상을 알리자’고 생각했다. 협조인은 나에게 “당신이 이 일을 해봤으니 그래도 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다만 내 고충만 이야기 했다. 나중에 법공부하고 교류하는 중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됐다.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사부님의 요구에 원용해야 하고 자신만 생각할 수 없으며 자기만 법공부하고 제고할 수 없다. 우리는 가서 중생을 모두 구도하는데 하물며 이런 정법시기 연분이 아주 큰 천궁의 주나 왕이랴? 그들이 돌아올 수 있으면 대량의 중생을 구도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 문제에서 자아를 놓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을 수련했다. 혹시 당초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그들은 모두 누가 속인 중에 미혹되면 꼭 서로 깨우쳐 달라고 부탁했었을 것이다. 중생에 대해 모두 자비를 이야기하는데 하물며 우리들의 옛 수련생이랴? 그리하여 나는 다시 옛 수련생을 찾아오는 광명한 노정에 올랐다. 나는 비록 출근해 시간이 없었지만 그래도 시간을 짜내 그들을 찾아갔다. 법공부 시간이 적어지면 휴식시간을 줄이고 노고를 극복하고 마음으로 가서 했다.

과정 중 자비, 선함과 인내심을 수련

수련생들은 진상을 알리는 과정 중 모두 사람을 구하는 것이 힘들고 우리들의 자비와 선심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사실 옛 수련생을 찾아오는 것은 자비와 선심이 더욱 필요하다. 한 속인은 몇 마디로 그는 진상을 알고 삼퇴를 할 수 있지만 옛 수련생을 찾아오는 것은 왕왕 많은 세심한 사상 작업을 해야 하고 또 그의 가정환경과 그 자신의 각 방면 요소를 생각해야 하며 무엇 때문에 대오에서 떨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중국 사람은 악당의 사악함을 심각히 알고 있다.(사실 나도 더듬거리면서 걸어 왔는데 주요하게 두려운 마음이 조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생을 이해시키고 선심으로 그들을 대하고 그들과 함께 법을 얻은 후 상태, 이로움을 얻은 상황을 회상했으며 지금 대법이 세계에 널리 전해진 상황, 정법홍세, 정법노정, 기연을 잡고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따라가서 우리들의 중생을 구도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했다. 수련생은 그들의 마음의 매듭을 풀고 보따리를 풀었다. 한번 찾아서 안 되면 두 번, 수 차례 찾아 갔으며 정말 스스로의 자비, 선심, 인내심을 수련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비를 우리들의 선심을 통해 그들에게 전달했으며 그들 본성의 일면을 계발해 그들로 하여금 빨리 돌아오게 했다. 수련생이 즉시 돌아오든 관계없이 나는 다 선의로 대했다. 속으로 수련생을 원망하지 않고 더욱 그들 앞에서 ‘당신은 왜 이러는가? 저러는가?’하지 않았다. 비록 잠시 올라오지 않아도 단정을 내리지 않았으며 이 사람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변화에 따라 다시 찾고 아마도 정법홍세에 따르거나 혹은 그와 연분이 있는 수련생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3. 과정 중 명리심,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 과시심, 환희심을 수련

옛 수련생을 찾기 시작할 때 사부님의 요구에 원용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과정 중 나는 자신에게 하나의 나쁜 마음, 명리심이 숨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명리심도 이 일을 하는 일부분 동력이 됐으며 속으로 일을 잘해 성적을 내고 수련생들에게 보여주며 나는 다른 곳은 안 되지만 이 방면은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또 만약 잘하면 원고를 쓸 것이 있고 발표되면 명리를 함께 얻을 수 있고 위덕을 쌓는다고 생각했다. 한 번 한 수련생이 그가 옛 수련생 하나 찾았다고 하자 나는 즉시 7명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때 과시심이 나왔고 동시에 자아를 실증했으며 속으로 ‘당신이 보시오, 내가 괜찮죠? 다른 것은 안 되어도 이 방면은 당신보다 낫습니다’고 생각했다.

환희심도 있었다. 예를 들면 수련생을 순리롭게 찾으면 기뻐하고 많이 찾으면 득의양양해 하며 스스로 기뻐했다. 마침 사부님이 법이 있었기에 이런 어떤 마음은 그때 발견하고 버렸으며 어떤 것은 나중에 발견하고 버렸다. 사실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셨으며 나는 다만 그 마음만 있고 뛰어다니며 입을 움직였을 뿐이다. 정말 어떤 때는 내가 누구를 찾으려고 생각하면 그가 내 앞에 왔다.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무엇을 실증할 수 있으랴? 무엇을 나타내려고 하면 그 과정 중 사람 마음이 노출되어 하나하나 그것을 버렸다.

4. 과정 중 안일한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을 수련

나는 출근하기에 시간이 없는데 수련생을 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길을 걸어야 하고 교류를 해야 하며 어떤 때 찾아가면 또 집에 없어 기다려야 했다. 이러자면 주말, 점심시간, 저녁 등 시간을 이용해 수련생을 찾아야 했는데 자신의 휴식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했다. 만약 법공부를 지체하면 저녁을 이용해 적게 자고 보충했다. 수련생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어 반시간 노정이 걸렸다. 그러면 나는 길에서 법을 외웠다. 어떤 때 안일한 마음이 일어나 고생스럽다고 느꼈다. 그러나 제때에 그것을 수련해 버렸다. 그리고 수련생을 찾는 과정 중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수련생의 가정환경이 나쁘면 이런 수련생을 찾아야 하는가? 찾자면 수련생 가족이 나를 반대하고 원망할까봐 두렵고 가정 불화를 조성하고 심지어 잘못하면 악의적으로 나를 고발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것도 정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바로 구세력의 안배에 부합된다. 사악은 수련인을 망치려하고 중생을 훼멸하려고 하는데 만약 내가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수련생은 어찌 올라올 수 있으랴? 한 수련생의 가족과 친척은 모두 그가 수련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가 확고하므로 가족은 방법이 없었으며 도리어 어떤 때 그를 깨워 아침 연공을 하라고 했다. 이것은 내 정념을 더욱 확고하게 했으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수련해 버리도록 했다.

5. 과정 중 자아를 집착하는 마음을 수련하고 수련생들과 함께 제고

나는 예전에 보도원을 했었고 또 좀 학력이 있다고 늘 스스로 잘난 체하며 다른 사람을 좀 업신여기고 다른 수련생보다 높다는 마음이 있어 종종 자아에 집착했다. 이 몇 년간 비록 많이 수련해 버렸지만 아직도 있다. 특히는 옛 수련생을 대하며 그들은 이미 아주 많이 떨어졌다고 여기고 나보다 너무 멀리 떨어졌다고 여겨 일종 높은데서 아래를 보는 느낌이었고 수련생과 나는 어떠어떠 하다고 말했다. 뜻인즉 수련생에게 나를 따라 배우라는 것이며 늘 다른 사람을 지도하려는 심태가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제때에 이런 나쁜 마음을 발견하고 수련해 버렸다.

우리는 다른 수련생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올라오면 우리들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들에게 법공부하고 교류하는 중 서서히 제고하도록 하고 그들 근기에 따라 깨닫도록 하며 제고하는 정도는 꼭 다를 것이니 완벽하게 요구하고 질책할 수 없다. 사실 매 수련생은 모두 스스로 빛나는 점이 있다. 그들로부터 나 자신의 단점을 보고 그들 장점도 내 제고를 촉진했다. 예를 들면 A수련생이 올라온 후 법공부하고 교류를 통해 매우 정진했다. 그는 택시기사였는데 시간이 없고 생활도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금전을 담담하게 보고 법을 제 1위에 놓았다. 이전에는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와 바로 잠을 잤는데 지금은 아침 3시 반에 일어나 5장 공법과 발정념을 하고 기타 세 개 정각에도 기본상 모두 했다. 평소 또 속인이나 승객에게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표하고 저녁 6시전에 집에 돌아가 발정념하고 밥 먹고 법공부를 했으며 TV도 보지 않았다. 수련을 생활 속에 녹아들게 했으며 일심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의 몸으로부터 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보았다.

B수련생은 가정 부녀자인데 그는 타인을 위해 생각할 수 있었고 생활을 간소하게 하고 명리에 담담하며 일에 봉착하면 참을 수 있고 쟁투심이 없었으며 정말 나보다 많이 나았다. C수련생은 우리 집 인근에 있는데 가족이 그가 수련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아주 확고했고 매일 아침 3시 반에 우리 집에 와서 연공했다. 나는 본래 아침에 늦잠을 잤었는데 그 때문에 정진하게 됐다. D수련생은 젊은 제자였는데 그는 아주 순정하고 다채로운 사회에 오염되지 않았고 올라오자 아주 정진했다. E수련생은 독수 상태였는데 나중에 하지 않았다. 지금 올라온 후 교류를 하고 스스로 걸어 나와 병업이 있는 수련생 집에 가서 함께 법공부 했다. 그들에게는 모두 나를 촉진하는 장점이 있다. 정말 수련생을 돕는 것은 자신을 돕는 것이다.

6. 과정 중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수시로 자신을 찾다

비록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과정을 중히 여기라는 법리를 이야기 했음에도 왕왕 수련생을 찾는 과정 중 어떤 때 조급해 찾자마자 올라 왔으면 했다. 나는 이것은 일을 함에 결과에 집착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렇게 하면 일은 반대로 되고 오히려 수련생을 가로 막게 되는데 사실은 일하는 마음이고 자신의 수련에 주의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인식하고 늘 자신을 깨우치고 찾는 과정 중 그가 올라오기를 기대하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수시로 자신을 찾고 ‘수련생이 왜 올라오지 못했을까, 자신의 무슨 마음이 촉성한 것이 아닌가? 자비심, 선심이 부족하고 조급해 하는 마음이 아닌가? 혹은 과시심, 환희심인가’ 등 수시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 잡았다. 자신의 마음이 수련생이 돌아오는데 장애하지 않도록 했으며 자신을 수련 잘하려 했고 마음으로 가서 했다.

이외 과거 교훈을 섭취하고 올라온 수련생들이 온정하게 걷도록 하기 위해 가능하면 그들에게 되도록 법공부 장소에 가게 했으며 갈 수 없는 사람은 늘 저녁 시간을 이용해 수련생들 집에 가서 그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했다. 자료가 필요하면 자료를 찾아주었다. 수련생을 찾아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고히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그들더러 온정하게 걸어가도록 해야 한다.

수련생을 찾는 과정 중 나는 자그마한 일을 했고 일부 수련생들도 찾아 왔다. 이 일체 공은 사부님께 돌려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 중 확실히 적지 않은 사람마음을 버렸다. 나는 수련생을 찾는 것은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나는 수련생을 찾는 과정 중 그런 사람마음을 수련해 버렸다. 본래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 오직 이런 사람마음을 수련해 버려야만 비로소 진정한 내가 나타나고 자신을 찾아올 수 있다.

물론 이 일을 나는 아직 잘하지 못했으며 계속 잘하려고 한다. 사부님은 『더 정진하지』에서 우리들에게 정법이 종결할 수 없는 두 가지 관건적 원인 중 하나는 대법제자 일부분이 아직 따라오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사부님의 요구에 원용하고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 사부님께서 만족하도록 법정인간이 일찍 오게 하자.

부당한 점이 있으면 자비로 시정해 주시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1월 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3/2344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