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안일한 마음은 수련의 길에서의 심한 장애

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대학교 교사이다. 과학연구 임무는 없고 단지 학생한테 수업만 하고 있어 시간이 비교적 충족하다. 점차 안일한 습관이 양성됐다. 무슨 일에서나 시간을 끌기를 좋아했다. 마음속에 늘 ‘좀 쉬자’하는 염두가 습관적으로 나타났고 뿐만 아니라 좀 쉬게 되면 ‘아주 편안한’(그 안일한 마음이 만족됨)을 느꼈다. 하지만 좀 지나서는 마음이 괴롭고 후회됐다.(자신의 본성의 진실한 감수) 이렇게 꽤 오랫동안 지속됐으나 돌파가 없었다.

안일함은 법공부에서 졸리게 했다. 집에서 집안 일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이 흠 잡지 않을 정도로 했다. 그런 후 소파에 앉아 편안히 법공부했다. 결과 안일한 마음이 커져 좀 지나서는 졸렸다.

안일함은 나더러 사람을 구도하는 기연을 놓치게 했다. 타지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가려고 둘째 삼촌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그날은 둘째 삼촌의 생일이었다. 둘째 삼촌의 다섯 아들,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 한 집안 가득히 모였다. 사람을 구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사촌 오빠가 나를 데리러 왔다. 옆에 있던 한 친척이 말했다. “그곳은 너무 추운데…” 이 말에 가려던 생각을 접었고 사람을 구도할 좋은 기회를 잃었다. 게다가 자신한테 구실을 대기를 앞으로 긴 시간이 있는데 그들을 만날 기회가 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안일한 마음을 늦도록 버리지 못하여 일을 할 때 늘 끌기를 좋아했고 절충을 했다. 아침 연공을 하지 않고 낮에 이리저리 시간을 내어서 했다. 오전에 법공부를 하다가 졸리면 오후에 보충했다. 4번 발정념도 효과 있게 견지하지 못했다. 법공부도 질을 보증할 수 없었다. 진상을 알리는 일도 끌기를 좋아했다. 하여 사악이 몸에서 교란을 일으켰다. 이틀 전 갑자기 온 몸이 아팠다. 머리가 무겁고 목이 아팠다. 마땅히 아픔을 참고 정진하며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많이 하며 연공을 많이 하고 진상을 알려야 했었다. 하지만 정념을 좀 하다 누워버렸다. 아주 편안하다고 느껴졌다. 하여 사악은 교란을 더 크게 만들어 어머니가 꿈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가는 모습을 보게 했다. 직장 동료는 현재 젊은 사람도 뇌혈전에 많이 걸린다고 했다. 생각 속에는 또 ‘임파암’이라는 정보가 나타났다. 이것들이 사부님과 법에 대한 나의 바른 믿음을 동요했다. 하지만 이 사이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와 점화를 뚜렷이 느꼈다. 법공부 팀에서 한 수련생이 자신이 며칠간 발정념을 근면히 하여 몸의 아픔이 하루 만에 소실됐다고 교류했고, 한 수련생은 강한 정념으로 자신을 머리 아프게 하고 속이 울렁거리게 하는 사악에게 이렇게 말하라 했다. “네가 나더러 법공부를 못하게 하더라도 나는 기필코 공부할 것이다. 너는 내가 대법 일을 하는 것을 교란할 수 없다!”, 또 한 수련생의 심득교류를 타자하여 ‘고생을 겪음’의 법리를 보여 주셨다. 나더러 안일한 마음에 얽매이지 말고 걸어 나오도록 격려해주셨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나와 같이 힘써 노력하지 않는 제자를 위로 이끌어주셨다.

나는 매번 곤하고 졸리고 할 때면 안일한 마음이 우세를 차지하는 것을 체득했다. 사실 나는 평소 법공부할 때 늘 무언가에 기대어 앉는 습관이 있다. 혹은 좀 쉴까 하는 염두가 있거나 혹은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 때 이는 모두 안일한 마음이 틈타면서 나더러 얼떨떨하게 했고 자고 싶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안일(安逸)’ 글자를 살펴보면 ‘안(安)’은 여자가 집 안에 있는 모습으로 당신더러 집의 따듯함과 편안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걸어 나오기 아주 힘들다, ‘일(逸)’은 토끼가 차에 앉은 모습이다. 원래 빨리 달릴 수 있는데 차에 앉았으니 자신의 능력 발휘를 제한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대법제자는 법에서 끊임없이 돌파해야 하는 것이나 그러한 상태를 고수한다면 정진하기 힘들 것이며 현재 사람을 구도해야 하는 급한 형세의 요구에 적응하기 힘들게 할 것이다.

안일, 역시 위사(爲私)의 일종 표현이며 그것은 사람더러 자신의 ‘편암함’만 신경 쓰게 하고 고생을 겪기를 싫어하게 한다. 바로 우리 몸을 옭매고 있는 것으로 수련인은 이것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고생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은 수련인의 심성이 좋고 나쁨의 하나의 큰 요소라 할 수 있다. 수련인은 반드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비로소 소업할 수 있고 비로소 법에서 끊임없이 정진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부님께서 부여하신 중생구도의 신성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현재 사람을 구도해야 할 긴박감을 의식했다. ‘안일함 마음’은 나의 수련의 길에서 용맹 정진할 수 없는 심한 장애로 되었음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마땅히 법을 실증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안일함’으로 모두 미뤄졌다. 마음이 아주 조급하다. 직장 일을 잘해야 하고 가정을 잘 보살펴야 하며 법공부를 잘하고 발정념을 잘해야 하며 진상을 알리는 일을 잘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모두 잘 하려면 휴식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짜내야 한다. 각종 사상과 신체의 ‘나태함’과 ‘힘듦’의 제한을 극복하려면 반드시 주의식이 아주 청성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또 법리에서 그것들을 똑똑히 인식해야 하며 사존께서 수련인에게 요구하신 ‘고생을 겪음을 낙으로 여기세’ 법리를 명기해야 한다.

오늘 뿌리에서 그것을 파내어 폭로한다. 나와 같은 문제가 있는 수련생이 있다면 함께 정진하시기를 바란다. 사존께서 우리한테 사람을 구도하도록 남겨주신 시간을 이렇게 소모할 수 없다.

이 글을 투고하기 전에 나는 또 깨달았다. 사실 진정으로 ‘무사(無私)’를 해내려면 마음속에 늘 다른 람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며 늘 중생 구도의 신성한 사명을 생각하고 있어야 했다. 그것은 일체 동력의 원천이다. 사람의 각종 향락과 집착은 말겁 시기 사람을 구도하는 사명 앞에서 얼마나 창백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인가. 아직 무엇을 더 내려놓을 수 없겠는가?

문장발표: 2010년 1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2/25/安逸心是修炼路上的严重障碍-2340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