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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韻 공연 홍보에 참여한 수련 체득

글/시카고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자리에서 나는 2010년 시카고 神韻(션윈) 공연을 알리는데 참여한 전반 과정에서의 수련 체득을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적절치 못한 곳은 수련생 여러분이 자비롭게 지적하여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神韻(션윈) 공연 홍보에 참여, 협력하는 과정에서 수련하다

내가 시카고 2010년 神韻(션윈) 공연 준비에 진정으로 참여하여 협력하게 된 것은 2009년 8, 9월 사이부터였다. 그때 공연장은 이미 기타 수련생들에 의하여 정해졌다. 협력 팀은 특히는 전업기술 요구가 비교적 높은 방면에서, 예를 들면 매체 광고, 매표 거점을 찾는 일, 매표 업무 관리, 재무관리, 단체 표 판매 등 이러한 방면은 일정한 경험이 있는 수련생이 전직으로 책임져야 했었다. 그때 나에게 배분된 것은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지를 배부하는 것을 협력하는 것과 공연 전후의 뒷일과 보안을 책임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은 전에 해보았기 때문에 큰 사상압력은 없었다.

그때 나에게는 하나의 비교적 강렬한 염두가 있었다. 금년에 반드시 자신의 최대의 노력을 다하여 반드시 시카고 2010년 神韻(션윈)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려 했다. 동시에 하나의 모호한 생각이 있었다: 자신에게 배분된 일 외에 나는 마땅히 가능하다면 더욱 많은 것을 하려 했다.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서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다.

일을 추진할수록 내가 주동적으로 참여한 일이 점차 늘어났다. 초기에 神韻(션윈) 공연 내용을 소개하는 양성 자료 제작과 실제로 훈련하고 양성하는 일, 중기, 후기에 각 매표 거점의 인력, 설비의 협조, 포스터를 붙이고 특간을 보내주는 것을 협조하는 일, 공연 전후의 후근 보안 협조, 후기에 매표 거점마다 매일 법공부하고 교류하는 배치, 협조 팀에서 매주 한차례 항목 추진 사업회의를 사회하는 일, 전반적으로 시종 매주 한차례 큰 팀으로 법공부하고 교류하는 것을 배치하는 등이었다.

모든 이러한 일은 기본적으로 모두 수련생과 교제해야 했고 대부분 일은 모두 아주 자질구레하고 번거롭고 아주 세밀해야 하며, 또 많은 일은 잘하지도 못했다. 현재 돌이켜 볼 때 기쁜 것은 내가 한 협조인이 되기 위하여 한 일이 아니라 그 당시 이러한 일은 어떤 사람이 가서 마음을 들여 생각하여 해야 했으나 잠시 누가 하지 않고 있었고 그것을 내가 보게 되어 스스로 마땅히 가서 해야 한다고 생각되었고 또 할 수 있어서 가서 하게 된 것이다.

나는 협조에 참여하는 과정 역시 수련하여 제고하는 과정임을 체득했다. 여기서 나는 스스로 안일함을 구하고, 시끄러움을 두려워하고, 마음고생을 두려워하는 것을 극복한 방면의 체득을 말해보려 한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을 다니면서 밤샘을 하지 못했다. 만일 어느 날 새벽 늦게까지 밤샘을 하게 되면 며칠 지나서야 회복이 됐다. 때문에 생활 절주는 줄곧 비교적 규율적이었고 여기서 감히 한 발작 내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수련 후 어쩔 수 없이 밤샘을 하게 되면 연공을 통하여 회복이 비교적 빨랐다. 그렇지만 일단 밤샘하고 늦게 자거나 혹은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잠자는 첫날밤은 침대에 누워도 잠잘 수 없었다. 아주 피곤해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잠들어도 얕은 잠을 잤고 아주 발리 또 깨어났다. 그리하여 새벽 2, 3시에야 잠들면 그날 밤은 일반적으로 2, 3시간만 잘 수 있었고 이튿날 사업은 일반적으로 아주 피곤하여 정력도 아주 차했다.

그 외에 나의 성격은 비교적 자세하고 책임성이 있는 사람이며 일단 대답한 일은 일반적으로 제대로 완성하는 편이다. 너무나 세심한 탓으로 늘 다른 한 극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바로 너무나 세심한 것을 추구하기에 같은 일도 다른 사람은 두 시간에 완성할 것을 나라면 아마 두 시간 반을 들여야 완성하며 그러나 두 사람의 결과는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직 수련을 하지 않는 아내는 내가 협조하여 관리하는 사업을 하는 것에 합당하지 않다고 했다. 너무 세밀하여 사람만 지칠 것이란다. 나도 이것이 자신의 성격상의 하나의 결함이라 여겼다.

거의 반년동안 진행된 神韻(션윈) 공연 준비 과정에서 늘 부득불 자신의 규율적인 생활을 타파해야 했다. 밤샘을 하려 하지 않았으나 부득불 밤샘을 해야 했고 세밀하게 마음고생하지 않으려 했으나 부득불 그렇게 해야 했고 몸이 힘들고 마음은 더욱 힘들었다. 속으로는 늘 무슨 일을 절대 빠뜨리거나 소홀히 하여 일을 지체하지 말아야 하며 총체적인 진전에 영향주지 말 것을 생각했다. 마음속에 늘 일종 압력이 있었다. 법공부와 연공이 따라가지 못할 때 낮의 일 효율은 현저히 떨어졌고 아주 피곤했었다. 이러할 때면 물러설 생각이 생기기도 했다. 마음속도 아주 고통스러웠고 심리적으로 아내의 말을 인정하기도 했다. “어머나, 당신의 머리카락이 빠져 몇 개 남지 않았네요. 당신은 왜 주동적으로 이런 마음고생을 도맡는가요. 당신은 원래 정력이 일반적이고 사업에서 이미 적잖은 압력이 있었는데 당신은 어찌 이렇게 많은 것에 마음을 쓸 수 있겠어요? 당신은 병사가 되면 안 되는가요? 다른 사람이 뭘 시키면 그대로 하면 편하잖아요? 그럼 병사가 되면 당신은 파룬궁이 아닌가요, 역시 파룬궁이잖아요?”

이럴 때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이러한 일은 반드시 누구라도 해야 하며 당신이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하며 당신이 마음고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 견지해나가자.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도 점차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일리노이 주 Springfield, OH시의 공연은 시카고 공연보다 두 달 전에 개최했다. 그러나 현지에는 한명의 수련생밖에 없었다. 공연의 총 협조인은 두 시간 노정이 걸리는 Urbana-Champaign에 있었다. 그때 시카고의 공연으로 준비사업이 한창 긴장하게 진행됐다. 나는 전에 神韻(션윈)의 후근협조와 보안의 일을 한 적이 있어서 이런 일에 있어서 기타 수련생보다 익숙하다 생각되어 주동적으로 Springfield, OH의 공연의 후근과 보안의 일을 협조하겠다고 제기했다. 실제 일을 직접 하면서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신경 쓸 일이 훨씬 많았고 더 고생스러웠다.

Springfield, OH 현지에서는 배우와 사업인원의 식사를 해결할 수 없어 시카고의 수련생이 도와 해결해야 했다. 며칠 밤 부득불 수련생과 밤샘하며 새벽 2, 3시까지 상의하고 토론하면서 전반 과정의 세부사항을 결정했다. 그러고 나서 이튿날 아침 눈 뜨면 비자각적으로 오늘 아직 어느 사항을 결정해야 할지, 어느 수련생한테 전화를 해야 할지 생각했다. 온 하루 24시간 神韻(션윈)의 차를 지켜야 하는 것은 금년에 제출된 하나의 새로운 요구였다. 왜냐하면 중공특무가 줄곧 기회를 타 파괴하려 하기 때문이다. 수련생들은 모두 아주 협조를 잘했고 전화 몇 통으로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됐다. 수련생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에 근거하여 神韻(션윈)의 차량이 Springfield, OH에 도착하여 떠날 때까지의 전반 과정을 지켜야 했다.

공연하는 날 神韻(션윈)의 차가 도착한 후 우리 4명의 수련생은 돌아가면서 밤샘했는데 사람마다 대개 여관에서 3시간 잘 수 있었다. 내가 휴식할 차례였는데 아주 피곤해도 환경을 바꾼 탓으로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으며 그냥 누워서 휴식을 취할 뿐이었다. 그날 밤은 아주 추웠고 공교롭게 내가 지키게 될 차의 휘발유가 거의 떨어졌다. 그러나 감히 시동을 걸 수도 없었고 히터만 틀었다.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몸에 감쌌다. 오래 앉아 있게 되자 덜덜 떨렸다. 일정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차창에는 한 층의 수증기가 얼어붙었다. 닦아내야만 밖의 정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날 밤은 정말로 춥고 힘들었으며 아주 길었다. 나는 수시로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이튿날 낮 계속하여 차를 지켰다. 기타 시간에 일부 심부름을 하였는데 나는 아주 피곤함을 느꼈다. 차를 지키는 인원과 이튿날 극장의 일을 배치한 후 나는 큰 눈과 더불어 여관에 돌아왔다. 이때 나의 체력은 거의 바닥이 났다. 마지막 하루아침 8시에 극장에 도착하여 짐을 내리고 무대를 설치해야 했다. 공연이 끝난 후 큰 눈 속에서 하루 밤의 시간을 들여 차를 몰고 시카고에 도착했다. 마침내 편히 잠잘 수 있었다.

이 단계의 전후 10일간의 일을 돌이켜 보면 마치 큰 전쟁에 참가한 것 같았다. 통화도 몇 백통이 되는지 모른다. 몇 번이나 늘 정력이 고갈됐고 자신의 체능의 극한을 초월했었다. 그러나 마음속은 너무 편안했고 나는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있었다. 나는 나의 책임을 이행하고 나의 서약을 실현하고 있었다.

시카고의 神韻(션윈)공연에 협조 일을 통하여 나는 더욱 대법 항목의 사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체득했다. 또한 협조를 책임진 수련생이 어깨에 짊어진 책임과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는 압력을 느낄 수 있었다. 수련생이 참여한 협조의 항목이 클수록, 많을수록 그가 감당할 신체적 심리적 압력이 더욱 컸다. 그는 자신으로 지배할 시간이 더 줄어든다. 법공부와 연공할 시간을 포함해서이다. 그러므로 그는 반드시 시시각각 정념정행을 유지해야 걸어 나갈 수 있으며 잘 할 수 있고 진정으로 협조를 잘 할 수 있다. 이 점을 인식하자 나는 더욱 주동적으로 기타 수련생과의 협조를 잘하게 했다. 그 외에 협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더욱 많은 수련생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많은 수련생의 빛나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늘 수련생들이 묵묵히 자신의 곤란을 극복하고 사심 없이 대가를 지불하며 타인을 위하는 행위에 감동됐다. 나는 이런 것에 고무되어 협조하는 일에서 될수록 수련생을 위하여 고려했다. 동시에 수련생의 정념정행에서 자신의 부족과 거리를 발견했으며 자신의 수련과 제고에 거대한 방조가 있었다.

직장에서 神韻(션윈)을 알리다

회사에서 몇 년간 나는 인사부에서 일했다. 나는 神韻(션윈) 공연 소식을 내부 메일함을 이용하여 본사에서 일리노이 주에까지 알렸다. 그 외에 인사부에 속해 있는 30여명 동료에게 상세히 神韻(션윈)을 소개했다. 나중에 티켓을 구매하고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두 명이었고 물론 그들은 자신의 가족과 함께 왔었다. 올해는 회사에서 재정비하여 전자함 서비스가 취소됐다. 그때 좀 유감스러웠다. 왜냐하면 더 많은 동료에게 神韻(션윈)의 소식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위안이 되는 것은 과거 2년간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나는 계속하여 우리 부분의 동료에게 神韻(션윈)을 소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망설였다. 동료들이 내가 늘 사업과 관계없는 일을 한다고 여길까 근심됐던 것이다.

회사에서 지난 일 년 간 3차례 감원이 있었으며 언제 또 감원할지 모른다. 만일 내가 감원 대상이거나 혹은 주변의 동료가 감원 대상이면 이 동료는 아직 나를 통하여 神韻(션윈)의 소개를 듣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럼 아마 이후에 더는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 아마 영원한 유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여 나는 神韻(션윈) 팸플릿과 아름답게 제작된 특간을 들고 점심식사시간을 이용하여 내가 알고 있는 동료마다 神韻(션윈)을 소개했다. 그 속에는 같은 부서의 사람도 있었고 많이는 다른 부서의 사람이었다. 지어는 전혀 업무적으로 접촉이 없었던 사람이다. 단지 현관에서 마주쳤을 뿐이다. 나는 모든 방법을 대어 대화하려 했고 화제를 다시 神韻(션윈)으로 끌어왔다.

십 며칠이 지나 기회가 있어 몇 십 명 동료에게 神韻(션윈)을 소개할 수 있었다. 나중에 3명의 동료와 그들 각자 가족은 함께 神韻(션윈)을 관람했다. 또 그들에게 공연에 대한 감수를 물었는데 모두 아주 좋아했다. 그중 한 동료는 특별히 나에게 일부 파룬궁에 관한 정황을 문의했고 더 많은 진상을 요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자신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 기뻤고 다행스러웠다. 왜냐하면 이 동료들 중에 일부는 근래에 다른 회사로 옮겼고 연락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왜 수련하는가

시카고의 神韻(션윈) 공연은 금년 4월에 결정됐다. 5월부터 나는 일상적인 회사 업무로 아주 다망하게 보냈다. 매주 평균 업무시간이 60시간 좌우였다. 이렇게 긴 시간은 표면적으로 볼 때 몇 개의 원인이 있었다. ① 내가 속한 상품 연구개발부의 일은 아시아이며 늘 밤에 회의를 열어 업무의 진행과 해결에 관한 일부 구체적인 문제를 토론해야 했다. 두 곳의 시차는 12시간이다. 이러한 업무 특성은 자연히 두 곳의 업무시간이 늘 연장됐다. ② 동료들이 모두 업무에서 힘을 쏟았으나 아무런 잔업수당이 없었다. 제일 적은 업무시간이 50몇 시간 됐다. 많으면 7, 80시간이 됐다. 이 면에서 동료들이 다년간 줄곧 업무적으로 아주 근면하였지만 전반적으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우리 부서는 작년에 30%의 직원을 감원했다. 일자리를 보존하려면 자신이 이 부문에서 가치를 체현해야 했으며 일정한 정도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일해야 했다. ③ 나의 업무 내용은 큰 변동이 있었고 전의 업무경험은 실질적인 귀감이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많은 것은 입사 초기처럼 공부해야 했다. 하루빨리 맡은 바 임무를 잘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들여 짧은 시간 내에 따라내야 했다.

몇 달간 고강도로 일을 하자 기술로는 비록 진보했으나 내가 예견한 수준과는 아직 많은 차이가 났다. 또한 아주 피곤했다. 심신이 피로를 느꼈으며 특히 심리적으로 더했다. 나는 줄곧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고 전의 업무에서 사장과 동료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의 업무 환경에서 나는 근본 관심을 받지 못했고 심리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늘 억울하게 생각됐고 다년간 공부하여 학위를 따낸 시간이 아까웠다. 만일 동료와 마찬가지로 일찍 일하고 학위를 따지 않았으면 오늘 나도 동료들에 못지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한테는 이러한 운명이 아니잖은가! 사실 나도 이러한 심태의 배후는 아주 강한 체면과 명을 구하고 이기려는 집착심임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노력하여 그것을 극복하려 했으나 극복이 안됐고 스스로 고뇌에 아주 시달렸다.

5월부터 시카고의 수련생들은 2011년 神韻(션윈) 공연를 시작했다. 수련생들이 전심으로 조사정법의 수련 속으로 투입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마치 완전히 일에 파묻힌 것 같았다. 시간을 내어 그 속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법공부와 연공마저 매일 유지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낙오한 느낌이 들었고 수련생들의 정진하는 발걸음에 따라갈 수 없었으며 아주 조급해났다. 그래서 늘 일에 더 시간을 들여 잘 파악한 후 대법 항목에 투입하려 했다.

그러나 현실은 소원과 반대였다. 내가 이미 많은 노력을 들였으나 사업상 진보는 갈수록 느려지는 것 같았고 압력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나중에는 꿈속에서 깨어나기도 했다. 업무상 일로 근심하고 사고하는 것이었으며 아침에 눈을 뜨면 역시 업무적인 일을 근심하고 있었다. 한 단락 시간은 지나 입맛이 떨어지고 잠도 잘 자지 못했으며 신체상황이 갈수록 말이 아닌 정황에 달했다. 나는 자신의 힘으로는 이 속에서 걸어 나오기 힘들다고 느껴졌다. 나는 반드시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반드시 그 속에서 걸어 나와야 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나는 두 명의 수련생과 열심히 자신의 5개월간의 수련정황을 교류하고 있었다. 수련생은 아주 내심으로 나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는 잠간 멍해졌다. 안을 향하여 자신을 찾았고 이내 한 무더기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찾아냈다: 사업에서 잘하지 못하면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했고, 일터를 잃으면 자신의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지 못하며 결국 집을 팔아야 했다. 내가 높은 가격으로 집을 샀는데 지금 팔면 손실이 너무 컸다. 또 뭘 두려워하고 있는가, 친인들이 나를 원망하고 이해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 “만일 당신이 전에 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파룬궁에 적은 시간을 들이면 어찌 이렇게 될 수 있겠는가?” 수련생에게 이러한 두려워하는 마음을 말하면서 나는 이미 인식했다. 이러한 두려워하는 마음의 뿌리는 역시 ‘명, 리, 정’이며 자신은 여전히 이 세 글자에 단단히 끌려가고 있었다.

수련생이 계속하여 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왜 수련하는지 나에게 알려줄 수 있어요?”

나는 또 멍해졌다. 이내 수련생에게 말했다: 나는 생명이 존재하는 의미가 생로병사하는 몇 십 년처럼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며 더욱 고급적이고 더욱 아름다운 생명 형식과 경지가 있음을 믿고 있으며 수련을 통하여 능히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고 반본귀진 할 수 있다. 뭘 더 말해야 함을 느꼈으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수련생은 선의적으로 일깨워주었다. “우리는 오늘날 정법수련하고 있다.” 나는 전신이 진감했다. 마치 갑자기 대법에 대한 인식이 한층 깊어진 것 같았다. 지난 몇 달간 스스로도 자신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조사정법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으나 유성같이 반짝 빛나고 지나버리는 염두였다. 진정으로 마음속에 이 몇 글자의 깊은 함의와 분량을 새기지 않았다.

그렇다. 망망한 몇 십억 인구에서 얼마나 되는 사람이 행운스레 대법을 얻을 수 있겠는가. 또 얼마나 되는 사람이 지나간 세월 속에서 걸어지나왔던가. 그러나 나는 행운스럽게 그 속의 하나가 될 수 있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속에서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정법수련의 원만으로 향하여 가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생명 존재의 전부의 의의일 것이다!

나는 아주 부끄러웠다. 동수한테 대답할 때 첫 일념은 진정으로 정법수련을 첫 자리에 놓지 않았고 ‘왜 수련하는가’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서 하나의 명석하고 명확하며 단호한 인식이 없었다.

이와 동시에 나는 자신이 하나의 착오를 범했음을 인식했다. 바로 속인의 사업을 첫 자리에 놓았고 정법수련을 두 번째 위치에 놓은 것이다. 이 일념지차는 사실 2010년 시카고 神韻(션윈)공연이 결속되기 전부터였다. 그때 나에게는 이런 일념이 있었다. “회사에서 감원이 너무 빈번하다. 일자리를 잃으면 다시 찾기 힘들다. 공연이 끝난 후 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겠다. 아무튼 금년의 션위에서 나는 나의 최대의 노력을 다하였잖은가.” 이 염두의 배후는 일종 자신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이미 많은 것을 지불했고 괜찮다는 느낌이었고 좀 쉬어도 괜찮으며 자신의 사적인 일에 바삐 보내도 된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위사의 일념지차로 나는 과거 5개월의 수련에서 한 단락의 큰 굽은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날 밤 차를 몰로 집으로 가는 길에 지난 몇 달간 종래로 없었던 마음에서 밖으로 나오는 편안함을 느꼈고 마치 한 층의 아주 두텁고 단단하게 나를 감싸고 있던 더러운 것이 나의 몸에서 제거되는 것을 느꼈다. 그 후의 한 달간 입맛이 없고 잠을 잘 자지 못하던 정황이 더는 없었고 업무적으로 진전도 빨랐다. 체면을 아끼고 명을 구하고 이기려는 집착심이 비록 때때로 나오기는 하나 나에 대한 영향은 이미 뚜렷이 감소됐다. 점차 일부 시간을 내어 대법의 항목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정황이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수련생의 도움에 감사를 드린다. 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배치하여 나더러 왜 수련하는지 근본적인 문제에서의 차이를 인식하게 한 것에 감사드린다.

한 단락 큰 굽은 길을 걸으면서 나는 의식했다. 어떠한 때라도 마땅히 대법을 첫 자리에 놓아야 하며 사상에서 명백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실천 속에서 해내야 하는 것이다. 수련 속에서 특히 곤란과 미혹 속에서 늘 자신에게 ‘왜 수련하는지’ 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물어봐야 한다. 일단 이 점이 명백해지면 세간의 각종 현상에 대하여 쉬이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일부 집착심을 쉽게 버릴 수 있다.

(2010년 시카고 법회 발언 원고에서 선정하여 게재)

문장발표: 2010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15/參與神韻晚會推廣的修煉體會-2325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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