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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길에서 나는 어떻게 결혼 문제를 대했는가 하는 경험

글/ 대륙 다롄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의 성장과 수련의 길에서 어떻게 결혼 문제를 대했는가에 대한 경험을 써내 여러분과 탐구해 보고자 한다. 대법은 원용하다. 결혼하고 안 하고는 정진하는 대법제자로 말한다면 모두 영향 없다고 나는 여긴다.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일장춘몽이어서 내려놓을 수도 있다. 꿰뚫어 볼 수 없다면 결혼을 한 번 체험해 보고 조금씩 마음을 버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중사가 도를 얻듯 한 나 같은 이런 사람은 아마 영향이 엄청 클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수련의 길에서 결혼은 줄곧 뜻대로 되지 못했고, 또한 그 가운데서 나에게 정에 대한 집착을 철저히 내려놓게 했다.

나는 1998년 말경에 법을 얻었다. 따뜻한 가정에 대한 장구한 동경은 성장 중 오히려 줄곧 추구해도 늘 얻을 수 없는 강렬한 추구가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오히려 뜻대로 되지 않았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 부부 인연으로 통하는 길을 가로 막았다. 그러므로 나 개인으로 말한다면 따스한 가정에 대한 집착심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수련 중 이 문제는 내내 나를 교란해 잘못을 저지르게 했다.

그럼 가장 마지막 차례를 이야기 해 보겠다. 금년 봄 나는 중급 도시로부터 현 성으로 돌아 온 후 결혼해야 할지 하는 생각이 또 나왔다. 한 번은 남편을 잃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도 정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수련생과 교류하게 됐다. 그녀가 말했다. “정말 부러워요, 이렇게 젊었는데도 정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 내가 말했다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찾지 못했어요.” 담소하는 이 한 마디를 하고는 잊어 버렸다. 며칠 안 지나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 사람을 구하려고 아무렇게나 한 사람 무리에 가담하여 한담했다. 그런데 무의식 중 내가 마음 속으로 늘 좋아하던 그런 표준적인 미혼 남성을 만나게 됐다. 나는 마음이 움직였다. 그는 진상을 아주 듣기 좋아했고 『전법륜』 책도 보았다. 다만 내가 막 그 도시로부터 현으로 돌아와 거리가 이미 아주 멀 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왜 내가 그 도시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도 그를 만나지 못했을까?

돌아온 후 무형 중 먼 거리와 돌아온 후의 적응되지 않는 환경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 느끼게 했다. 내 생각에 이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사부님께서 보셨다. 내가 만약 아직도 그 도시에 있었고, 그를 만났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자신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를 무척 좋아하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수련생이 물었다. “감각이란 무엇이죠?” 그렇다, 나는 즉각 대답 했다. “색과 욕이죠.” 사람 속에서 볼 때 그는 사업에 성과가 있고 사람도 괜찮고 인물도 내 이상형에 부합되며 그도 나에게 호감이 있었다. 물론 나는 그를 만나자 내가 먼저 그를 거절해 버렸다(완전히 정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갖고 있는 약간의 속인 마음이 가져다 준 자비감이 작용을 한 것이다) 그를 거절한 후 마음 속에는 아직도 고통스런 과정이 있었다. 내려놓는 과정에 좀 끌리긴 했지만 자신의 몸의 색욕 방면의 물질도 사부님께서 떼어 버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잃어버린 실질은 좋지 못한 물질인데 무엇인가? 바로 업력이며, 그것과 사람의 마음은 상보상성(相辅相成)하는 것이다.” (『전법륜』)

늘 사부님 말씀을 생각하곤 했다. “고통은 업력의 빚을 갚는 것이며, 마음에 못마땅한 일은 심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 속인으로 말한다 해도 사실 역시 이 이치이다. 모두 업을 없애고 있으며, 업을 없앰으로 해서 좋은 다음 일생이 있다. 다만 사람이 모를 뿐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업력을 없애 버리고, 수련 중에서 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와 최후에 원만한다. 한 대법제자로 말한다면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법리이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몇 년이 지나갔는데도 아직도 근본적으로 관념을 개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되는 해를 수련했는가?”(『2008년 뉴욕법회설법』)

그렇다면 분명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 중생을 깨우치고 진상을 알리려 했는데 왜 이끌렸는가? 구세력은 당신의 집착에 따라 당신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먼저 번에 수련생에게 나의 집착을 막 말했는데 구세력이 보게 됐고 구세력은 내 집착에 따라 마치 내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일이 성사된 것처럼 했다. 그 전에 나는 큰 도시로부터 작은 도시로 돌아왔고, 본래 자신은 남자 친구를 찾자는 마음을 포기했다고 여겼는데, 그러나 이 일, 이 사람을 통해 자신은 결코 철저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따라서 내가 지난 해 보았던 한 점쟁이가 한 말에 부합됐던 것이다,(그때 그 여자는 내 관상을 봐주겠다고 했는데 그 때 나도 자신의 앞길을 무척 알고 싶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지위가 나보다 높고 나보다 잘생긴 남자 친구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때 나는 믿지도 않았고 이후에는 잊어 버렸다. 그런데 그를 만나자 딱 맞아 떨어졌고 생각할수록 그인 것 같았다. 그의 대부분 사유는 확실히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대법 수련 중에서 당신의 마음을 마땅히 버려야 할 때 부딪힌 일은 좋지 않는 일이다.

나는 이곳을 떠나려는 생명이다. 그 며칠 동안 나는 늘 그 한 페이지에 있는 “한 수련인으로서 금후의 인생 도로는 개변될 것이며, 나의 법신은 새롭게 당신에게 안배해 줄 것이다.” (『전법륜』)란 이 한 단락을 보곤 했다. 이 일을 통해 정말로 나를 결혼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폭로한 것이며, 이로부터 하나의 심리 과정을 겪었으며 나중에는 모두 내려 놓게 했다.

남녀지정, 부부의 정을 내려놓으면 대신 오는 것은 자비다. 내려 놓을 수 있다면 그럼 분명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런 물질도 없을 것이다. 관건은 자신의 마음에 있다. 나는 지금 바로 이런 감각이다. 말하지도 못한다. 그 물질이 거의 없어졌다. 법공부를 많이 하면 그런 물질이 더욱 없어진다.

“고층차에서 보면 속인은 사회 중에서 그야말로 흙을 주무르면서도 더러운 줄 모르고, 땅에서 흙을 주무르며 놀고 있다고 한다.”(『전법륜』) 고층차, 고층차. 자세히 깨우쳤을까? 이 일에 대해 내려놓지 못했다면 바로 사람 마음이고, 내려놓았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며, 고층차 수련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간단하지만 아직 멀었다. 마음을 움직인 기간, 나는 그와의 관계를 일반 친구의 위치에 놓으려 했지만 전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인간의 명리정은 장구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 했으나. 나중에 그는 끝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지향(志向)이 다르면 일을 같이 논할 수 없어요.” 그렇다, 아직 결혼 생활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의견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영화 보기를 즐기는데 나도 예전에는 보기 무척 좋아했지만 지금은 영화를 보려는 욕망이 아예 없다. 그는 여행을 즐기는데 나도 예전에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고 여긴다. ……편안하고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여행 역시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 역시 구실이다. 더 이후, 한 동안 이끌리고 나니 또 색욕지심이 나타났다. 하지만 흔히 좋지 못한 일을 생각하게 되면 몹시 아픈데 마치 손오공이 긴고주(緊箍咒-손오공의 머리에 씌운 띠를 조이는 주문)를 당한 것 같았다.

다섯 달이 지나가자 겨우 마음이 안정됐다.

나는 사부님 법신이 나에게 안배한 길에서 무슨 손해든 입지 않게 하는 상황에서 이 한 관을 넘었고 색욕지심을 버렸다. 사람을 구함에 꼭 결혼해야만 구하는 셈인가? 다른 사람은 어떻게 구하고 있는가? 그런 마음이 없고 속인의 경지와는 먼 것이며 이곳을 떠나려는 생명인 것이다. 내가 결혼하기만 하면 떨어질 것이고 따스한 시골에 가서 분발하지 못할 것이며, 굽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것은 어쨌든 최후에는 담담하게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내 원래의 길을 개변하고 지금의 길을 안배해 주셨고, 필경은 내가 반드시 지나가야 하고 또 지나갈 수 있으며 내가 약간을 감당하고 조금 고통을 겪으면 나머지 물질은 모두 사부님께서 버려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매 사람의 근기가 부동하고, 업력의 크기가 부동하며, 환경 등등이 부동함에 따라 우리에게 수련의 길을 안배해 주셨다. 우리의 일생은 수련의 일생이다. 인생은 짧디 짧은데, 수련하지 않을 때는 결혼가정에 대해 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고, 좋고 나쁘고는 모두 영원한 할 수 없었다. 수련 후 비록 고독하고 적적하기도 해서 가정을 갈망하고 의뢰심이 있었다. 하지만 최종에는 의뢰심도 닦아 버렸다. 나는 줄곧 내심 깊은 곳의 신의 일면을 따라 걸어왔으며, 신의 일면은 기본상 나의 사람의 일면을 이끌 수 있었다. 그러길래 나는 이 일에 대해 다시는 미혹 당하지 않게 됐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다. 부당한 곳은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2010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16/修炼路上我如何对待婚姻问题的经历-23256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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