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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후이법회]당초 불변의 맹세를 위해 (1)

글/ 지린 대법제자 수이슈(水袖)

[밍후이왕] 그때 수련생이 나와 만나기만 해도 남편은 좋아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밀레르빠(密勒日巴) 이야기를 해주었다. 두 사냥꾼이 각기 다르게 밀레르빠를 대했을 때 각각 같지 않은 선한 보응과 악한 보응을 받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또 과거에 스님에게 밥 한술만 먹게 해도 공덕이 무량한 일이었다고 말해주면서 대법제자들에게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남편에 나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것은 이미 남편 또한 개변되기 시작하고 있음이었다. 그 후에 내가 바쁠 때 남편은 주동적으로 나를 도와 ‘명혜주간’을 보내러 갔다. 내가 만약 하루라도 게으름을 피워 일어나서 연공을 하지 않으면 남편은 “당신 오늘은 왜 일어나서 연공을 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발정념 시간이 되어도 남편은 발정념 시간이 됐다며 나를 일깨워 주었다. 게다가 내가 누구에게 삼퇴를 권하든지를 막론하고 남편이 그 자리에만 있기만 하면 모두 나에게 협조해 주었다. 혹은 나를 도와 삼퇴를 권할 수 있도록 시작해주거나 혹은 내가 이야기할 때 관건적인 시간에 한 마디를 했다. “퇴출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퇴출했습니다.” ……나는 매우 감동 받았다. 남편의 전변을 위해, 중생이 각성한 것 때문에 감동한 것이다.

——본문 작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만약 사부님과 대법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으며, 어떻게 수련 중에서 하나 또 하나의 관을 뚫고 나올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수련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대법 중에서의 신성함(神聖)에 푹 빠져 있기도 하고, 집착심을 버린 후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함을 느끼기도 하고, 사람을 구한 뒤의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나 더욱 많이는, 수련 중의 매 한 걸음마다에 사부님께서의 심혈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는 감수이다.

어릴 적에 나는 늘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달 속에 도대체 상아(嫦娥)와 옥토끼가 있는지, 하늘에 정말 신선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거지를 보면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도하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여덟 명의 신선이 바다를 건너다(八仙過海)》라는 프로를 보고 나는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 여덟 명의 신선은, 모두 그들을 신선으로 되게끔 일깨우는 구도하는 사람이 있었다. 만약 누가 나를 구도하러 와서 오로지 신선으로 수련될 수 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고생이라도 나는 달갑게 받고 싶었다.……늘 마음속으로 나에게 전생이 있었는지.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생각했는데 어둠 속에서 마치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1996년 나는 마침내 운 좋게 대법을 만나게 되었으나 속인 중에서 너무 깊이 미혹되었기에 나는 도리어 얻기 어려운 기연을 소중하게 여길 줄 몰랐다. 당시 나는 겨우 전형적인 중사(中士)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그 후 임신하고 아이를 낳다보니 나는 근본 법공부를 하지 않고 연공도 하지 않았는데 속인과 이미 별다른 구별이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자비(慈悲)롭게 각종 방법으로 나에게 점오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법공부를 적게 했던 터라 분명히 점오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속인의 것을 내려놓지 못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50여 일이 되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열이 나고 경련을 일으켰다. 게다가 점점 심해지면서 몇 시간 마다 한 번씩 경련을 일으켰다. 아이가 수시로 생명이 위험해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당시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전법륜』중 “속인이라, 어느 날에 가서 병을 얻게 되고, 어느 날에 가서 무슨 번거로운 일과 마주치게 되며, 어느 날에 가서는 정신병을 얻거나 또는 갑자기 죽을지도 모를 것인즉, 속인의 일생은 바로 이러하다.”라는 한 마디가 떠올랐다. 나는 책은 몇 번 보지 못했지만 이 한 마디 말씀은 특별히 똑똑했다. 나는 갑자기 깨어났다. 나는 인생은 무상한 것으로 속인이 된 고통을 감수했다. 나는 속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수련을 할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다시 새롭게 대법 책을 들었다. 그때부터 어떠한 좌절과 박해에 직면했어도 수련하려는 마음이 동요한 적은 없다.

얼마 오래지 않아 나는 대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걸으면서 외우고, 앉아서 외우고, 일을 하면서 외우고, 아이를 안고서도 외워 『전법륜』을 다 외웠다. 나는 곧 경문을 외웠다. 나는 매일 대법 중에 푹 빠져 끊임없이 대법의 심오한 내함을 체험하고, 대법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함을 체험하고, 사부님의 자비롭고 위대하심을 체험했다. 나는 늘 외우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매일 법 중에 용해돼 강대한 에너지에 휩싸였으며, 신체의 미시(微观)가 한 층씩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체험했다. 나는 평온하고 상화하고 자비하게 법에 아주 빨리 동화되었다. 그때, 나는 정말이지 매일 모두 전력으로 매진하고 있음을 느꼈으며 또 이후의 수련에 견실한 기초를 닦고 있었다. 바로 이 견실하게 법공부를 한 기초는 나를 도와 내가 마난 중에서 하나 또 하나의 관을 뚫고 나가게 했는바 나는 여러 해 동안 줄곧 법을 외우기를 견지했다.

(1), 가정을 잘 평형 시키다

나는 1999년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가정환경을 잘 평형 할 수 있을지 모두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대법을 실증하러 나오면 박해를 당하여 가족이 상해를 입고 원망할 것이며 가정환경이 자연히 제대로 평형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걸어 나오지 않으면, 비록 가족은 상해를 입지 않지만 진정한 대법제자는 대법이 박해를 당할 때 집에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남편과 여러 차례 부딪치면서 끝내는 집에서의 수련 환경을 개척해 냈다.

한 차례 박해로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닐 때 남편은 끝없는 박해를 정말 견디지 못하겠다면서 나에게 이혼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성숙되지 못한 수련상태였고, 또 인간의 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어린 아이를 바라보니 나에겐 안식처가 없고 생활내원이 없는데다 남편 또한 나를 떠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수련이 쉽지 않음을 체험했다. 물론 나 자신의 집착을 찾아 내었고, 더욱 많이 나 자신의 사명을 생각하고는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는 일체도 깨끗이 사라졌다.

박해 전에 수련한 시간이 짧았던 탓에 그다지 깨달을 줄을 몰랐다. 그때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모순이 있으면 나는 바로 맹목적으로 참고 양보했다. 그러다보니 남편은 참고 양보하는 나를 나약하다고 여겼다. 내가 소굴에서 심각한 박해를 당한 뒤에도 협조하지 않자 그는 눈을 비비고 나를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또 생활 중에서 모순이 생겼을 때는 나는 자연히 잘 해야 했다. 한 번은 남편이 술을 마신 다음 나를 구타했다. 나는 안으로 자신을 찾았더니 남편의 각도에서 남편을 위해 생각해주지 않았고, 일종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사람마음이 있었으며 남편에게 자비(慈悲)도 없고 선(善)하지도 못했음을 발견했다. 법 중에서 우리는 속인과 모순이 발생하면 완전히 자신의 잘못임을 알고 있다. 비록 남편이 나를 구타했지만 조금의 원망도 없었다. 이튿날 나는 주동적으로 남편과 교류를 하면서 진실하게 나 자신이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편을 화나게 했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 남편이 도리에 어긋났으므로 남편은 도리어 내가 잘못을 인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감동하여 눈언저리가 붉어지면서 목이 메어 눈물까지 떨어뜨리려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박해로 남편의 마음속에 공포감이 조성되어 늘 내가 다시 박해 당할까 걱정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악한 당 독소가 남아 있었기에 남편은 늘 삼퇴를 권하는 게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늘 『9평공산당』을 편리한 곳에 두어 일부러 남편에게 보게 했다. 늘『9평공산당』,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당문화를 토론(漫談黨文化)』등 진상시디를 놓아서도 보게 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되자 자신도 모르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더 보충해 이야기해 주었더니 천천히 사악한 당 문화가 해체되었다. 한동안 남편은 담배를 매우 적게 피웠는데 이에 대해 남편은 “어떻게 된 것인지 그다지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은 걸까, 당신들 그 물건들을 봐서 그런 것인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늘 정념으로 남편을 인도했다. 나는 이미 예전에 남편에게 “사부님께서 비방을 당하고, 그렇게 많은 동수들이 박해를 당하고 그렇게 많은 중생이 거짓말에 미혹됐어요. 나는 한 대법제자인데 전혀 무관심하게 집안에만 있을 수 있겠어요? 만약 내가 정말로 그런다면 당신도 나에게 탄복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당신의 한 친구가 재난을 당했을 때 당신이 가서 그를 도와주지 않고 그가 물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는다면, 인간에서 당신도 좋은 사람이 아니지요.”라고 말했을 때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은 남편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때 수련생이 나와 만나기만 해도 남편은 좋아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밀레르빠(密勒日巴) 이야기를 해주었다. 두 사냥꾼이 각기 다르게 밀레르빠를 대했을 때 각각 같지 않은 선한 보응과 악한 보응을 받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또 과거에 스님에게 밥 한술만 먹게 해도 공덕이 무량한 일이었다고 말해주면서 대법제자들에게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남편에 나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것은 이미 남편 또한 개변되기 시작하고 있음이었다.

그 후에 내가 바쁠 때 남편은 주동적으로 나를 도와 ‘명혜주간’을 보내러 갔다. 내가 만약 하루라도 게으름을 피워 일어나서 연공을 하지 않으면 남편은 “당신 오늘은 왜 일어나서 연공을 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발정념 시간이 되어도 남편은 발정념 시간이 됐다며 나를 일깨워 주었다. 게다가 내가 누구에게 삼퇴를 권하든지를 막론하고 남편이 그 자리에만 있기만 하면 모두 나에게 협조해 주었다. 혹은 나를 도와 삼퇴를 권할 수 있도록 시작해주거나 혹은 내가 이야기할 때 관건적인 시간에 한 마디를 했다. “퇴출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퇴출했습니다.” ……나는 매우 감동 받았다. 남편의 전변을 위해, 중생이 각성한 것 때문에 감동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많은 수련생은 다만 연공하고 법공부 하는 것을 수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직접 법의 일면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는 때 당신이 접촉하는 사회가 바로 당신의 수련환경이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대면해야 하고 모두 반드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대충 얼버무릴 수 없다.” (《法輪大法 각 지역 설법7》〈2006년 캐나다 설법〉) 평소 가족에게 진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다시 도처에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사명을 맡은 대법제자로서 그들에게 대법제자의 품격을 보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정을 원융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다

한동안 나는 두려운 마음이 아주 많았다. 박해를 당한 몇 년 동안 하마터면 몇 번을 납치당할 뻔해서 마음속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가장 깊이 기억에 남아있는 게 가로등이 없는 어둠 속에서 진상을 하다가 갑자기 눈을 자극하는 자동차의 전조등이 비추면서 우리는 잠복해 감시하던 경찰에게 발견되었다. 나는 비록 그 자리에서는 벗어났지만 마음속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서 오랜 시간 동안 감히 다시 무엇이든 하지 못했다. 어떤 때는 나가서 진상자료를 좀 배포하려 해도 망설여졌다. 어떤 차가 다가와 전조등을 번쩍이기만 하면 깜짝 놀라 죽을 지경이었다. 그 후 차츰 법공부를 통해 정념을 강화했다. 비록 나와서 진상자료는 배포할 수는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게 평온하지 않았다.

어느 날 협조인 동수 몇 사람이 시내의 감옥과 구치소에 현수막을 걸어 놓으러 가려하면서 나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나는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억지로 간다고 대답한 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안절부절하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때로는 그곳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또 박해를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그곳에서 발견되면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하다가 또 우리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른 일이기에 누구도 교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사람의 념이었고 때로는 신의 념이었다. mp4를 열어 법공부를 하려다 영상에서 노래 《사은송(師恩頌)》이 시야에 들어왔다. “낭랑한 맹세 소리 귓가에 맴돌고, 신성한 서약은 의연히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저희는 중생을 위해 왔습니다.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데 어찌 고해로 내려감을 두려워하겠습니까. …… ”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바로 그때 내가 생각한 것은 나 자신의 안위였고 중생을 마음에 담지 않았다는 게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하시고 고생스러운 구도를 저버리고 나 자신의 책임을 잊어버렸다. 나는 몰래 결심을 했다. “꼭 가야 한다. 게다가 꼭 잘해야 한다.”

저녁에 우리는 한참 정념을 발하고 떠났다.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순조롭게 감옥과 구치소의 큰 담벽 밖과 주변에 몇 십 개의 현수막을 거는 동안 어떠한 교란도 없었다. 우리 모두가 전부 안전하게 돌아왔다. 며칠 후 구치소로 가서 발정념을 하는 동수의 말에 따르면 현수막이 아직도 걸려 있다고 했다.

사실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것은 바로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지 않은 것이며, 사상 의식이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진정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돌파해 나왔을 때 그 두려운 물질이 없어졌다. 사부님께서는 “두려움이 없다면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두려워할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강제로 행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탄연(坦然)하게 내려놓으므로 도달한 것이다.”(《정진요지2》〈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去掉最後的執著))고 말씀하셨다.

(3), 밍후이 귀지(寳地)가 나를 정진하게 하다

나는 수련하면서 여태껏 컴퓨터를 조작해 보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이들 첨단 기술로 된 물건은 나와 인연이 없으며, 나는 다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일만 잘하고 진상 알리기를 많이 하고 자료를 많이 배포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컴퓨터를 가진 후부터는 나와 컴퓨터를 분리할 수 없는 일부분이 되었다.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나를 정진시키고 나를 도와 중생을 구도하는 법기(法器)가 되었다.

나는 자세히 밍후이왕의 매개 구석을 살피면서 일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 찾는다. 밍후이왕은 그야말로 만보낭(萬寳囊)이었다. 듣는 것, 보는 것, 기술 방면의 것도 있는데 정말 없는 것이 없다. 내가 처음 밍후이왕을 열었을 때, 화면 위에서 사부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계시는 법신상을 보았을 때, 동수들이 한편 한편의 교류하고 소통하는 문장을 보았을 때, 억제하기 어렵게 격동되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매일 전 세계의 대법제자들과 한데 용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며칠동안 밍후이왕을 접속하지 않으면 곧 며칠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느낌이었다.

특히 밍후이 방송 안에서의 가청 주파 프로그램(音頻節目)은 정말 너무 좋았다. 나는 매 기의 《공중 명혜주간》과 대륙 대법제자 인터넷법회, 기술마당 등을 다운로드하여 매일 집안일을 하면서 들었다. 밍후이 동수들의 상화한 말씨와 대법음악이 어울리고, 게다가 동수들의 착실하게 수련한 문장에 마음 깊이 감동했고, 나로 하여금 차이점을 찾고 부족함을 찾게 했다. 매 번 모두 하나의 소 법회를 여는 것처럼 들으면서 늘 눈물이 볼을 적셨다. 그러면서 나도 더욱더 정진하기 시작했다.

(4), 핸드폰으로 진상을 알리다

밍후이왕에서 늘 동수들이 핸드폰으로 진상을 알리기는 문장을 보았는데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끊임없이 수련함에 따라서 이 항목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강렬해 졌다. 또 주변에서 핸드폰문자 진상 항목을 하는 동수들이 매우 적은 것을 발견했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다면 일부 동수들도 이끌어 이 항목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한 동수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런데 그 수련생이 재빨리 나에게 《핸드폰 군발》이란 소책자를 보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첫 시작부분은 그래도 보고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하드웨어에 관한 문장을 볼 때는 머리가 무거웠다. 무슨 번호를 고쳐 바꾸는 소프트웨어랑, 번호를 고쳐 바꾸는 방법이랑, 군발 소프트웨어랑, 조작 방법이랑 보고나니 머리가 흐리멍덩해졌는데 주변에는 또 물어 볼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무엇이 소프트웨어인지 전혀 모르고, 무엇이 하드웨어인지도 몰랐으며, 또 어디에 쓰이는지도 몰랐다. 무슨 소프트웨어라든가 하드웨어라든가, 무슨 설치라든가 듣자마자 멍청해져 다시 보고 싶지도 않고 보아도 무슨 말인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소책자를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아쉬워서 또 꺼내 보았다. 아마 내가 이런 소원을 가지게 되자 사부님께서 도와 주셨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보니까 이해할 만 했다. 비록 좀 어렵긴 했지만 대략적인 의미는 알 것 같았다. 나는 소책자 위에서 소개한 방법에 따라 핸드폰 하나를 산 다음, 소책자에 적힌 사용방법에 따라 조작했다. 당연히 조작하는 과정에 많은 어려운 장애에 마주쳤다. 카드를 넣는 방법에서부터 군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데까지 장애가 있었다. 매 하나의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심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수련에서의 제고되는 인소가 안에 있음이 체현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금 맨 처음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 일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아주 우습게 느껴진다. 그때는 정말 아주 성숙하지 못했다. 그날 일찍부터 새벽시장으로 가면서 메시지를 보냈는데 줄곧 60 개를 보냈다. 오전에 또 나가서 50개를 보냈다. 성공했다! 나는 흥분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오후에 다시 보냈을 때는 즉시 보낼 수 없었다. 나는 서둘러 번호를 고치고 또 새 카드를 바꾸었다. 속으로는 너무 많이 보내서가 아닐까, 이번에는 좀 적게 보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20여 개만 보냈을 뿐인데 다시 보내려 해도 보낼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문제에 부딪히면 첫 염이 사람이 념이었고 신의 념이 아니었다. 성공했다고 흥분하고 실패했다고 낙심했던 것이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나한으로 수련했다가 환희심이 일어나 떨어져 내려갔다와 같았다. 또 나한으로 수련해 올라온 다음 두려운 마음이 있어 또 떨어져 내려간 것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는가? 환희심과 과시심 그리고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이 하나도 숨김없이 죄다 폭로되어 나왔다. 사실 메시지를 보내는 과정이 수련 과정이 아니었던 적이 있는가.

이미 예전부터 사악의 봉쇄가 매우 심각해 메시지를 보내기도 매우 어려웠다. 카드 한 장을 얼마 보내지 않으면 봉쇄했다. 나는 시험적으로 천지행(天地行)을 접속해서 ID(帳號)를 하나 등록하고 인터넷 위에서 메모지를 보낸 다음 많은 동수들이 모두 와서 소통하고 교류했다. 나는 한 수련생이 댓글을 달았을 때, 기술 이외에 우리는 또 다른 것을 할 줄 알지 않는가하고 하던 말이 기억난다. 그래, 어떤 때 메시지를 보낼 때 장애에 부딪쳤는데 첫 일념은 늘 사람의 방법으로 기술적으로 찾았지 심성에서 찾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신통을 잊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메시지를 보내 사람을 구도하는 것은 한 방면이고 이 항목 중에서 자신을 수련함도 중요한 것이다. 차츰 나의 심태도 점점 좋아졌고 경험도 점점 많아졌으며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점점 순조로워졌다.

나는 각각의 사람에게 각기 댜른 메시지를 보냈다. 예컨대 현지의 박해에 대해, 나는 직접 박해에 참여한 사람과 한 계통의 사람, 직속 가족, 직속 친척이거나 단위의 동료, 친구, 친구의 친구를 비롯해서 전화번호를 알 수만 있다면 모두 메시지를 보내 그들에게 xxx가 어떠한 박해에 참여하고 법률조항에도 없는 박해를 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게다가 그들에게 문화대혁명 때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의 끝장을 알려주고는, 또 한 마디로 대법이 홍전되고 있는 성황을 개괄해 선한 마음을 품고 말은 간결하고 세련된 언어로 문제를 설명했다. 나는 또 일부 각 지역 악인들이 악보를 받은 사례들을 찾아내 간결하고 세련된 언어로 그것을 잘 편집했다. 만약 정말 목숨을 걸고 박해하는 악인이라면 그럼 이런 메시지를 늘 보내주곤 했다.

어떤 이는 메시지를 다 보낸 다음, 다시 한 세트의 멀티 메일을 보냈다. 한 단위의 사람이면 나는 그들에게 같지 않은 멀티 메일을 보냈는데 이러면 그들이 서로 전해가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다 보낸 다음 집으로 돌아 간 후, 나는 모두 관련 정보를 기록해야 했다. 예를 들면, 같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다시 같지 않은 메시지거나 전화를 했다. 메시지를 어느 번호까지 보냈으면 그 번호를 기록해 놓았는데 이렇게 하면 다음에 이어서 보내는데 편리했다. 사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아주 많이 각성했으며 음성 전화(語音電話)를 듣는 사람도 아주 많다. 어떤 사람은 다 걸었는데도 놓지 않는다. 어떤 때 나는 큰 거리를 걷다가 망망한 인해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보고, 한 편으로 전화를 걸어 메시지를 보내면서 한 편으로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심심한 외침소리가 우러나왔다. 중생들이여, 각성하시라……

우리는 법 중에서 알고 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은 바로 사악을 해체하는 과정이다. 매 하나의 메시지, 매 하나의 음성 전화는 마치 매 하나의 폭탄처럼 사악한 당의 거짓말을 부수고 있다. 많은 공안, 검찰, 법원 인원들은 모두 메시지, 멀티 메일과 음성 전화를 받고 배후에서 사사로이 의논하고 있다. “이들 대법제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보내온 이 멀티 메일들을 보라.”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의 말 한마디, 전단지 하나, 키보드 위에서 누른 한 개 키, 편지 하나 모두다 아주 큰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진상을 알게 된 생명, 그 역시 살아있는 매스컴이고 그들도 진상을 알린다.”(《각 지역 설법3》〈2003년 미국 중부 법회 설법〉)

사실 핸드폰은 진상을 알리는 것은 하나의 아주 좋은 항목이다. 나는 이미 전에 아이가 공부를 마치면 데리러 갈 때 한 학부모가 마침 음성 전화를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 시작에 그녀는 “반동이다.”고 말한 다음 나에게 듣게 했다. 나는 바로 그것을 계기로 다시 깊게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런 다음 그녀와 그녀의 아들까지도 삼퇴를 시켰는데 이름도 역시 그녀 자신이 지었다.

또 업무차 왕래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내가 갓 그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나에게 음성 전화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많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그는 곧 매우 기분 좋게 퇴출했다.

사실 나의 수입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극히 소박하게 생활하며 한 푼의 돈이라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오스트레일리아 수련생에 대한 설법》(《對澳洲學員講法》)과 《2010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모두 대법제자의 자원을 언급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바로 이만큼의 자원인데, 당신이 소모했다면, 진정하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없다.”(《2010년 뉴욕법회설법》) 한 번은 수입이 많은 수련생이 일부 카드를 사서 조건이 좋지 않은 동수에게 핸드폰 항목을 할 수 있도록 공급했다. 나는 완곡하게 사절했는데 비록 많지는 않아도 나도 수입이 있었고 이 수입은 바로 대법 자원인 것이다. 나는 대법제자의 수입은 모두 대법이 준 것이라고 이해한다. 말하자면 대법의 자원인 것이지 향수하라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구도하는 데 사용하라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밍후이왕 제7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0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10/2322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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