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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후이법회] 박해 중, 사람을 구하려는 일념뿐

글/ 대륙 대법제자 한메이(韓梅)

[밍후이왕] 우선 위대하신 사부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멀고도 오랜 연대에 사부님을 따라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사람을 구도하려는 저희들을 염려하시어, 저에게 파룬따파 중에서 수련하도록, 제가 자신의 사명을 이행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어 자신의 맹세를 지키도록 해주셨습니다. 이곳에서 충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우연처럼 찾아왔던 그 기회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1996년 봄 어느 날, 출근한 뒤 한 동료와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퇴직한 후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의식 중에 “퇴직하면 부처님 수련을 하겠다. 왜냐하면 내가 젊었을 때는 늘 산에 들어가 수련만 하고 싶었고 부처님과도 인연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낯선 부녀가 나에게, 자신이 바로 부처님 수련을 하는데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당시 나는 처음으로 파룬궁에 대해 들었다. 그녀는 나에게 배우고 싶으면 책을 주겠다면서 재빨리 집에서 책 두 권을 가져왔다. 한 권은 『전법륜』이었고 다른 한 권은 『전법륜2』였다. 내가 《깨달음》란 경문에서 “인간 세상이 혼혼(渾渾)하야 주목상혼(珠目相混)이로다. 여래가 내려오심에 필연 조용하도다.”란 이 글을 보았을 때, 당시 몸은 찡하는 진동을 받았는데 불연(佛緣)이 이미 도착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자나 깨나 갈망해 왔던 불법(佛法)이 아닌가! 나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법공부를 끊임없이 하자 심성(心性)도 끊임없이 제고 되었다. 파룬따파의 박대한 법리는 마다마디마다 나를 감동시키고 배울수록 더 배우고만 싶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이야기를 잘 하셨다! 마디마디가 진리이고, 글자마다 천기였는데, 나로 하여금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인생의 참뜻은 무엇인지, 무엇이 수련인지 등 높은 법리를 깨우치게 하셨다. 나는 늘 사부님께서 “사람의 전반 수련 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고 하신 말씀을 명심했다. 이로부터 심성수련에 중시를 돌렸다.

내 생각에, 이렇게 좋은 대법을 모든 사람들이 와서 배우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인연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법수련에 들어서게 하여 비록 수련은 하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으로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라와 인민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여겨졌다. 나는 곧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찾아와 집에서 틀어놓고 이웃들 청해 모두 와서 보게 했다. 그 후에는 아예 대문 옆에 틀어 놓았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큰 길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얻고 수련하게끔 했으며 많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구도했다. 예를 들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상이 매우 완고했다. 하지만 그는 사부님의 강법을 보고난 뒤 관념이 아주 크게 변화되었으며 그때부터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 때는 늘 동수와 함께 각 연공장 사이를 분주히 오가면서 도처에 홍법하러 가서 신수련생들을 보도해주고 연공을 가르쳤다. 한 번은 내가 고열이 40도까지 올라 침대 위에 혼미한 상태에서 누워있었던 기억이 난다. 의사의 딸이 나에게 약과 주사를 준비해 놓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기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몸을 청리해 주시고 소업 해 주시는 것임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나는 꼬박 4일 동안 고열이 올랐는데, 다섯 째 날 수련생은 홍법하러 가자고 나를 불렀다. 나는 침대위에서 벌떡 일어나 홍법하러 갔는데 불편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1999년 ‘7.20’에 장××는 질투심에서, 손에 있는 권력을 이용해 파룬궁에게 광적인 박해를 진행했다. 일순간에 검은 구름이 머리를 내리눌렀다. 나는 이것이 정말이라고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나라와 인민에게 다 유익한 이 공법을 어째서 연마하지 말라고 하는가? 그 당시 나는 매일같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마음은 마치 돌로 내리 누르는 듯 늘 무거웠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동수에게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겠다고 알려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법을 수호하는 길에 들어섰다. 국가의 민원실에서 나와 수없이 많은 동수들은 납치를 당해 어떤 곳에 갇혔다. 나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홍음》을 외우고 연공을 했다. 이 기간에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어느 한 번은 사람들이 밀치락달치락하던 중에 나의 갈비뼈가 내리눌려져 부러졌다. 다만 “뚝”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나는 당시 “이 부분의 업력을 악경들에게 남겨 주세요.”고 말했다. 사부님의 법신은 즉시 나의 몸 위에 무언가 팽팽하게 씌워주셨다. 당시 속으로도 두렵지 않고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했다. 이렇게 매우 빨리 나아졌는데 정말로 너무 신기했다!

나는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의거해, 또 한 차례 톈안먼 광장으로 가서 현수막을 펼쳤다. 진수이교(金水橋) 위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선량한 사람들이여! 어서 정신 차리라. 파룬따파는 좋다!”고 외쳤다. 그 목소리는 하늘에 울려 퍼지고, 대지를 진동시켰다. 당시 나는 자신의 몸이 더 비할 바 없이 거대함을 감수했는데, 현장에 있던 무장 경찰마저도 모두 감동을 받았다. 나는 한 경찰도 눈물은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경찰차는 베이징의 큰 거리에서 질주했다. 나는 차창을 뚫고 밖에 있는 행인에게 큰 소리로 “파룬따파는 좋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나의 사부님께 결백함을 돌리라!”고 외쳤다.

이 마난(魔难) 기간, 사부님의 경문 두 편은 줄곧 끊임없이 나를 격려해 주었다. 한 편은 《대법은 견고하여 파괴될 수 없다》이고, 한 편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다. 나는 늘 “대법제자로서 확고한 정념(正念)은 절대로 동요해서는 안 된다.”(《정진요지2》〈대법은 견고하여 파괴될 수 없다〉)를 기억한다. 사부님의 이 말씀은 줄곧 나를 격려해 주었으며, 나는 어디로 가든지 사부님의 이 말씀을 동수들에게 알려주며, 정념으로 관을 돌파해야 한다고 했다.

베이징 유치장 안에서 나를 심문하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경찰은 “노부인인 당신은 집에서 복을 누리고나 있지, 왜 이곳으로 와서 시끄럽게 구는가?”고 말했다. 나는 떳떳하게 “나는 이곳으로 와 당신들에게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주요하게 알려주겠소. 조금도 소란을 피우는 게 아니오. 우리 모두 좋은 사람들이며 법도 위반하지 않았소.”고 말했다. 경찰은 “됐어, 신문하지 않겠다. 당신들은 모두 그런 말을 한다”고 말하고는 나를 다시 심문하지 않았다.

이 기간 나는 속으로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했다. 나는, 하나는 자신이 확고하게 걸어 나와 베이징으로 가 법을 수호하고 실증해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수련생을 찾아 소통해 동수들이 걸어 나오도록 일깨워주고, 법리상에서 동수들을 인식하게끔 하고 심성상에서 제고되게 하며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대대적으로 수련생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이 다년간 모아둔 돈을 꺼내 동수들이 베이징으로 들어가는 비용으로 지출했고 동수들이 얼마 필요하면 나는 얼마를 주었다. 노력을 거쳐 많은 동수들이 걸어 나왔다. 우리 집은 한 보통 가정이며 수입도 보통이다. 그러나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부터 청원을 가든지 아니면 자료를 만들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모두 대대적으로 헌신했다. 남편도 아주 지지했다. 나는 대량의 재력을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투입했으며, 저축을 다 쓴 다음 곧 남편과 상의해 겨우 몇 칸 되는 집을 팔아 버릴 준비를 했다( 그 후 다른 원인으로 성사되지 못했음). 대법이 수요하기만 한다면, 사람을 구원하는 데 수요하기만 한다면 나는 모두 조금도 아낌없이 사용했다.

1999년 ‘7.20’이후 한 단락 기간 동안 몇 몇 도시에 진상자료가 부족했다. 나는 곧 동수와 함께 자료를 보냈다. 어느 한 번은 한 도시로 자료를 보내러 가다가 일찍부터 그곳에 잠복해 있던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그들은 나를 중점인물로 여기고 비밀리에 다른 한 현 감옥으로 납치해 갔다. 그곳에서 나는 비밀을 지켰다. 악경들이 어떻게 유혹하고 위협하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는다.”는 신념뿐이었다. 나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나는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어떠한 압력 하에서도 모두 사악을 협조하지 않아야 하며, 확고한 정념은 절대 동요할 수 없으며,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해 다그쳐 중생을 구도해야 함을 깨달았다. 610 이든지 경찰이든지 아니면 죄수이든지 모두 내가 구도하려는 대상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교란하고 공갈 협박하고 나를 괴롭혀도 나는 그래도 진상을 알리려고 했다. 그들이 나를 어디로 옮겨가든지 나는 모두 진상을 알리려 했으며 그들이 나를 ‘전향’하려 하면 그건 절대로 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또 이 기회를 이용해 도리어 그들을 전향하려 했다. 나는 도처에 모두 선으로 그들은 감화시켰으며, 도처에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 주었으며, 일언일행마저도 쩐, 싼, 런의 요구로 자신을 요구했다. 얼굴 표정, 말하는 어조, 말하는 내용까지 포함해서 모두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펼쳐 보이고, 진실하고 선량하며 소박한 말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그들은 나에게 “노부인, 당신도 우리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역시 공무를 이행하고 있어서 우리 자신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전향’하고 안 하고는 당신의 일입니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을 매우 똑똑히 알고 있었다. 다만 서로 마음으로 이해하면 그만이다.

어떤 조교(幫教)는 비교적 사악했는데 나에게 전향하도록 핍박하고,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밤낮 교대로 나를 감독했다. 나는 큰 소리로 “70여 세인 할망구를 당신들이 잠을 자게 허락하지 않고 있는데 정말로 사람으로서 도저히 못할 짓을 한다!”고 외쳤다. 그들은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당신들을 구하려 해도 미처 다 못 구하겠는데 어떻게 당신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고 말했다. 나의 선념(善念)은 그들을 감동시켰으며,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잠을 자게 했다. 나의 반박해는 작용을 일으켰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흐리멍덩한 것을 보고 마음이 매우 괴로웠으며 그들이 너무 가련하게 여겨졌다! 마음이 자비해지자 나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전향 당했다고 여겨 매우 기뻐했다. 나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다시 울지 않았으며 그들이 기뻐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들이 이렇게 나를 박해하는 것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아직도 파룬궁을 요해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마땅히 그들을 구해야 한다! 나는 곧 정정당당하게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대법이 좋은 것을 알렸으며 매우 많이 알려주었다. 맨 마지막에 그들은 아주 미안해하며 “우리들은 모두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또 가족을 부양해야 합니다. 하지 않아도 안 됩니다!”고 말했다. 그들은 진상을 똑똑히 이해한 다음 다시 와서 조교가 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 내가 구도할 사람들 이었다. 조교, 경관, 일반 경찰이거나 아니면 죄수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모두 웃어른의 신분으로 그들을 나의 아이로 생각하고, 선념으로 그들의 무지함을 뽑아주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죄가 있든지, 얼마나 악한 언행이든지, 늘 그들이 너무나 가련한 감이 들곤 했다. 나는 이곳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다. 기왕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상, 바로 나에게 구도하라는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을 보면 한 사람을 구도하려 했다. 새로 온 사람이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이송돼 온 사람이든지 나는 모두 구하려 했다. 한 사람도 놓치지 않았으며 한 생명이라도 유감을 남기게 할 수 없었다.

어떤 죄수는 사회에서 매우 많은 나쁜 버릇을 양성했다. 어떤 사람은 인생에 대해 신심을 잃고 자포자기 상태였다. 나는 대법 쩐, 싼, 런으로 그들은 일깨워주고 타일렀다. 그들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되고, 인생은 무엇이며, 장래에 어디로 가야 하는가 등을 알게 해, 그들에게 정확한 인생관을 수립시키고 선념을 나타내 악성을 버리게 했다. 예를 들면, 어떤 사형수가 있었는데, 그녀는 화가 난 나머지 남편의 정부(情婦)의 아이를 죽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며칠 후 사형을 집행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그녀에게 ‘파룬따파는 좋다’를 알게 했으며 바로 그녀가 죽어서도 좋은 곳으로 간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홍음》을 외우게 하고 마음으로 ‘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우게 했다. 사람은 한 마디 말이 있다. 아침에 도를 들었다면 저녁이 죽어도 된다. 그녀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든 지를 막론하고, 그녀가 파룬따파를 인정하기만 하면 구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며칠 동안 그녀는 끊임없이 외웠다. 그 결과 바로 사형집행 전 날 아침, 교도관이 갑자기 들어와 그녀에게 사형집행을 유예로 고쳤다고 선고 했다. 감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격동되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큰 소리로 “파룬따파가 저의 생명을 구원했어요. 나도 장래 석방되면 파룬궁을 연마하겠어요.”고 말했다. 어떤 죄수들은 눈물을 머금고 “파룬따파는 너무 좋아요. 외우기만 하면 한 사람의 운명을 개변할 수 있으니. 정말 너무 신기해요.”고 말했다.

2003년, 나는 재차 납치돼 3년이란 불법 판결을 당했다. 나는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고 대법을 굳게 믿고 사부님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생사를 내려놓고 집착을 수련해 버렸으며,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했다. 성(省) 여자감옥에서 방교는 온종일 사악한 시디를 틀어놓고 나를 ‘전향’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발했다. 사악은 어떠한 수단을 이용해서도 나를 움직이지 못했으며, 나는 또 방교를 전향하려 했다. 방교는 한 사람씩 바뀌었다. 모두 나의 정념 하에 한 사람씩 개변되었다. 예컨대 나는 늘 대장에게 진상을 알렸다. 한 번은 그녀가 웃으면서 나에게 “당신은 나를 거의 잡아당겨가고 있어요.”고 말하자, 나도 웃으면서 “당신을 끌어온다면 그것도 당신이 복이 있는 거요.”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 간경들도 구원을 받아야 한다. 당신의 동료들에게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고, 파룬따파가 좋음을 기억라고 알려주라. 이러면 당신들은 행복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몇 해 동안 나는 5 차례나 청원하러 갔다가 세 차례 납치당해 여러 감옥에 갇혔다. 그곳에서도 나는 그들의 책임자를 만나도록 해 속마음을 이야기 하겠다고 요구했다. 사실은 바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높은 관직이든지, 얼마나 사악하든지, 나는 모두 마음에 선념을 담고 두려움이 없이, 조급함이 없이, 평온하고도 인내성이 있게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들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구원 당했다. 어떤 사람은 비록 명확하게 태도를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경찰은 구도를 받은 후, 또 늘 오늘은 몇 사람(죄수)이 오고, 내일은 또 몇 사람이 온다고 알려주었는데, 나가서 새로 들어온 죄수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라고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나는 비록 구세력의 이른바 고험을 경험하고 육체, 정신, 경제와 가정에서 심각한 학대와 손상을 입었지만, 나는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었다. 보기에는 나쁜 일이지만 역시 좋은 일이었다. 이것은 나를 더욱더 성숙되게 연마시켰으며 심성도 매우 큰 제고를 얻었다. 어느 감옥에서든지, 구치소와 유치장과 ‘전향’반이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내가 파룬따파에 대한 확고한 정념은 개변할 수 없었다. 사악이 어떻게 핍박하든지 나는 무슨 ‘3서’와 ‘보증’ 등을 모두 쓰지 않았으며 정정당당하고 후회없으며 유감이 없다.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내가 소굴 안에서 많은 사람을 구도하고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철저히 부정한 그 점이다.

석방된 후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연속해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법공부를 다그쳤다. 속히 사부님의 최근 몇 년 동안의 경문을 전부 보충해 찾아 한 편씩 모두 열심히 몇 번이고 보았으며, 몇 년 전에 법공부를 적게 한 손실을 다그쳐 미봉했다. 동시에 동수들과 함께 늘 농촌으로 가서 진상을 알렸다. 한 번 진상하러 갈 때면 몇 십리 길을 갔다. 나와 동수들은 아주 잘 협조했다. 그 마을에 가면 우리들은 모두 번갈아가며 발정념을 발하고 집집마다 자료를 배포했으며, 일대 일로 진상을 했는데 말없이 협조가 아주 잘 됐다. 엄동설한이든 혹서든지 모두 멈추지 않고 견지했다. 내가 70여 세인 할망구인데 자전거를 타고 백리 길을 왔다 갔다 하려면 힘들지 않겠는가? 정말 힘들다. 길이 울퉁불퉁하고 평탄하지 않고 험했는데 고생스럽지 않겠는가? 정말 고생스러웠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오히려 즐거웠다. 어떤 때 순리로우면 하루에도 몇 십 명을 구도할 수 있었다. 가장 적어도 몇 십 명은 구원할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이 구도했든지 우쭐대지 않고, 만족해하지 않았으며, 적게 구도해도 맥 풀려하지 않고 차이점을 찾아내어 연속 노력을 가했는데 이곳도 역시 나의 수련의 일부분이다.

나는 생사를 내려놓고 두려운 마음을 없앴다. 이 몇 년 동안 이른바 민감일이거나 아니면 무슨 조금이라도 변고가 있어도 나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었다. “진정하게 정도(正道)에서 수련하면 누구도 감히 경솔하게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나의 법신이 보호하기 때문에 어떠한 위험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전법륜』)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사부님의 대형 법신상을 정정당당하게 객실에 모셨다. 온 손님마저도 매우 곤경하고 우러러보았으며 누구도 감히 나를 경솔하게 건드리지 못했다. 요 몇 년 동안 나는 나의 친구, 친척들을 전부 삼퇴(퇴당, 퇴단, 퇴대) 시켰다.

말하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다! 수련하는 길에서 아직도 대법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매우 많으며, 아직도 쉽게 발견되지 못한 집착이 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안으로 찾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함을 명심하려 한다. 동수들과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며 공동으로 제고해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며 어느 한 가지라도 게을러서는(懈怠) 안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련의 역정을 돌이켜보니 고생도 있고 행복도 있었다. 비록 일부 사람을 구하는 일은 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아직도 많은 중생들이 구도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나의 사명은 큰 것이다!

이 문장은 내가 구술하고 수련생이 나를 도와 정리해 써냈다. 어떤 일은 시간이 오래 되어 회억할 때 가능하게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나는 극력 진실을 써내었다. 하나는 자신에게 채찍질하기 위해, 둘째는 차이점을 찾아내어 이후 더욱 잘 하기 위해서이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길 바란다.

(밍후이왕 제7기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0년 11월 05일
문장분류: 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5/2319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