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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수련으로 남동생의 백혈병이 낫다

글/중국대륙대법제자

남동생은 1986년생이며 광시(廣西) 루자이(鹿寨)에서 태어났다.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각종 운동을 즐겼으며 신체가 건장했다. 남달리 총명하여 학업 성적도 늘 좋았다. 나는 남동생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중학교를 그만두고 광둥(廣東) 둥관(東莞)에서 취직했다. 한 달 동안 야근까지 하여 벌어들인 게 겨우 2천 위안이었다. 그러나 나날이 커가는 남동생의 모습에 희망으로 가득 찼다.

2008년 남동생은 대학입시에 합격하여 상하이 푸둥(浦東)의 한 대학에 입학했다. 집안은 기쁨으로 넘쳤고 출세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009년 4월의 어느 날 어머니는 전화로 울면서 남동생이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줄곧 열이 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돼지콜레라에 감염된 것으로 짐작했다. 아버지는 아주 초조해하셨다. 친척과 친구들한테서 3만 위안을 구하여 그날밤 상하이로 갔다. 비록 병원에서 돼지콜레라가 아니라고 하였으나 결과는 더욱 나쁜 소식으로 가족들의 마음이 다 찢어졌다. 병원에서 급성 백혈병이라고 했다. 잠시 열은 떨어졌지만 곧 무균실에서 화학요법을 받아야 했다. 한 달간의 병원치료비는 약10만 위안이었다!

보통의 농촌 집안으로 남동생의 학비 마련이 어려워 나는 혼자서 먹는 것조차 절약했으며 아내마저 맞아들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겨우 마련한 3만 위안은 주위 친척들의 모든 저축이었다. 집안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퇴원 후 남동생은 휴학하고 집에 돌아왔다. 비록 학교에서 모금하였으나 비싼 의료비에 비하면 역부족이었다. 만일 다시 열이 나면 생명이 위험했다. 죽기만 기다리는 남동생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매일같이 눈물을 흘렸다.

2009년 말 남동생의 병은 잠시 안정됐으며 재발하지 않았다. 남동생은 혼자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모두 반대했지만 동생은 혼자서 가만히 집을 나섰다. 내가 하던 일을 그만하고 광시에 급히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병석에 누워계셨다.

반년동안 남동생은 매달 정해진 시간에 잘 있다고 집에 전화하고는 곧 끊어버렸다. 그러나 전화에서 남동생의 목소리는 우렁찼으며 가족은 날이 지나감에 따라 더는 근심하지 않았다.

금년 8월 남동생은 다시 집에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우리에게 병이 전부 나았다고 알렸다! 우리는 모두 믿을 수 없었으나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남동생을 질책하지 않았다. 어느 날밤 나는 남동생에게 물었다. 왜 치료를 받지 않고 혼자서 가만히 집을 나섰느냐,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너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인데… 남동생은 오히려 신비한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병원에서 치료할 때 초(焦)씨 성을 가진 의사가 남몰래 자신에게 알려주기를 돈을 쓰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나 담략이 작으면 안 된다고 했단다. 그러나 비싼 의료비를 남동생은 허용할 수 없었다. 남동생은 성심껏 그 초씨 의사한테 방법을 가르쳐달라 했으며 의사는 알려주었다: 바로 진심으로 파룬궁(파룬따파)을 수련하는 것이었다.

중공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잔혹한 박해로 무수한 파룬따파 제자가 박해를 당했으며 남동생은 남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휴학하고 한 대법제자를 따라 안후이(安徽) 루안(陸安)으로 갔다. 반년동안 수련하자 과연 신체가 날마다 좋아졌으며 병원에 가서 백혈구를 검사했다. 결과는 이미 정상인과 똑같았다!

어머니는 남동생이 집을 떠난 타격으로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으나 남동생이 파룬궁을 가르친 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연공했다. 현재는 이미 일어나 일을 할 수 있다. 정말 파룬따파는 너무나 신기했다!

현재 나도 매일 연공한다. 매일 힘든 일을 해도 새 힘이 솟구쳤다! 파룬따파에 감사드리며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원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2010년 10월 29일

문장분류: 밍후이 주보 186호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186/A02/index.html#7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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