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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으로 진상 자료를 보낸 나의 체험

[밍후이왕] 우편으로 진상 자료를 보내는 것은 내가 장기간 법을 실증한 주요 방식인데, 몇 년 사이에 보낸 편지는 부지기수이다. 이 방면의 경험과 체득을 교류하기를 희망하는 수련생이 있기에 나는 두말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쓰자고 하니 도리어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사실 그대로 쓸 수 밖에 없다. 내가 예를 들어서 나의 방법을 설명하면 아마 더 계발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대략 2002년인 것 같은데 어떤 박해 사건을 폭로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은데 잘 기억 안 나지만 나는 자신이 만든 편지 몇 십 통을 일부 사법 부문 및 각 신문사 기자에게 부쳤고, 그들은 모두 받아 보았다.

그 다음부터 나는 편지 부치는 일을 계속 견지하였는데 또한 늘 각양 각색의 교란도 받았다. 어떤 것은 수련생으로 부터 왔는데, 무슨 우체국에는 우편물 검사가 있어 진상 편지이거나 CD같은 건 막아버린다는 것이었다. 나도 어떤 땐 정말 받아 보았는지 하는 의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의심이 생길 때마다 사부님께서 편지는 순조롭게 갔을 뿐만 아니라 세인들이 모두 받았다는 점화를 해 주시곤 하였다.

내가 먼 곳에 있는 친구와 고향에 진상자료 및 CD를 부쳐 보내면 나의 모든 친척 친구가 보내온 소식은, 모두 받았다는 것이었다.

어느 한 번 나는 CD넣은 봉투 하나를 내 오빠의 주무관 겸 친구인 사람에게 부쳤는데 그는 받은 후 즉시 나의 오빠에게 알려주었고 그와 함께 이 선물을 향수하고자 하였다. 그 때 오빠의 VCD가 고장 났는데 그는 일부러 가져다 수리한 후 두 사람이 함께 보았다. 원래는 ‘천안문 분신자살 진상’이었던 것이다. 오빠는 보고 나서 엄마에게 알려 주었다.

나의 부친은 공산사당(共産邪黨)의 독해를 깊이 받아 진상 자료를 보지도 듣지도 않았고 내가 하는 말은 더더욱 듣지 않았다. 나는 방법을 생각해 내어 각종 진상 자료를 8개의 봉투에 넣은 후 수련생에게 주면서 그더러 며칠에 한 번씩 나의 부친에게 부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부친은 연속적으로 이런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 때 나의 부친은 탈당 인원수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는 적어도 진상자료를 보게 된 것이다. 이는 내가 그에게 직접 가져다 주기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었다.

나의 직장의 서기는 내가 만나서 자료를 주면 그는 감히 받지 못하기에 이런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편지도 전부 받았다. 이 때문에 그가 나를 찾아와 내가 보낸 것이 아닌가 하고 따졌다. 나는 누가 보냈던 간에 모두 당신이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며 모두 당신이 좋게 되라고 하는 일이라고 알려 주었다.

한 번은 잘 아는 수련생이 악인(惡人)의 소란을 받았는데 나는 특별히 폭로에 관한 진상자료를 참여자 본인과 주민 위원회, 가도, 파출소와 각 사법, 각 고발 기관에 부쳤는데 그들은 모두 받았다. 이로 인해 유관 부문을 떠들썩하게 해 놓았고, 수련생을 위협하면서 이 일을 조사하겠다고 하였다. 그때 수련생은 무척 긴장해 하면서 누가 한 일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이 일을 알려 줄 때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한 번은 나의 친척 수련생이 납치 당하여 세뇌반에 갔다. 나는 주민 위원회, 가도로부터 시작하여 한 급 한 급씩 그들을 찾아가서 사람을 내 놓으라고 한 동시에 명단을 수집하여 수련생에게 주었다. 수련생들은 제때에 대량으로 편지를 부쳤는데 내가 가도에 가서 사람을 내 놓으라고 할 때 가도 서기 사무실에 수련생이 막 부쳐 보낸 편지가 놓여 있었다. 내가 서기와 담화하고 있는데 각 사무실의 사업 일꾼들이 잇따라 수련생들이 갓 보낸 편지를 들고 와서, 이걸 보라 당신의 수련생들이 나에게 편지를 부쳐왔고 또 신년을 축하하기까지 하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마침 설이 다가왔던 것이다. 후에 나의 그 친척 수련생은 재빨리 석방 되었다.

기왕 모두 받을 수 있는바 우리는 더 신심 있게 대량으로 부쳤다. 거의 매 주마다 백여 통씩 부쳤는데 모든 주소는 나 자신이 직접 쓴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글씨체로 써서는 수련생들에게 주어 그들이 사면 팔방 각 우체국에서 부치게 하였다. 어떤 때 외지 수련생을 만나면 그들에게 주어 외지로부터 우리 지방으로 부쳐 오게 하였다.

또 한 번은 나의 부근에 있는 한 수련생이 진상자료 배포 당시 납치 당하였는데 나는 일부러 폭로하는 진상자료를 제작하여 수련생들에게 주어 사면팔방에서 이곳 모든 유관 부문으로 부쳐 오게 함으로서 유력하게 사악을 진섭 하였다.

어느 한 번은 한 속인이 공산사당 인원에게 잡혀갔는데 그의 모친이 날마다 검찰기관에 편지 한 통씩 섰다는 말을 우연하게 들었다. 편지에는 단 한 마디 “돌아와 밥을 먹거라.” 라는 말만 적어 넣었는데 날마다 그렇게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아들은 석방되었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편지의 위력은 작지 않은 것이다. 말을 얼마 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며, 속인도 모두 써 먹을 줄 알고 있는데 하물며 우리 대법제자는 이 방법으로 사람을 구도하고 있음에 그 위력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밍후이왕에서 문장 한 편을 보았는데, 한 수련생이 사악한 경찰에게 납치 당하자 현지 수련생 모두가 편지 한 통씩 써서 현지 정법 위원회 서기한테 보냈는데 결과 이 수련생은 재빨리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진상 편지를 부치는 것은 다른 진상 항목과 마찬가지로 수련인의 사부님과 법에 대한 바른 믿음, 게다가 법 중에서 수련해 낸 정념과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모두 마찬가지로 중생을 구도하는 좋은 방법으로서의 작용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자리에서 진상자료를 받기 꺼려하는 사람에게, 사당 독해를 깊이 받은 사람에게, 진상을 듣지도 보지도 않는 사람과 먼 곳에 있는 친척 친구 그리고 도저히 만날 수 없어 자료를 줄 수 없는 등등의 세인에게 편지로 보내는 것은 극히 훌륭한 방법이다.

우편으로 편지를 보내는 가장 좋은 점은 한 통의 편지에 수많은 내용을 부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매 한 통의 편지에 보통 A4 종이 3장 반을 넣는데 그 반장은 자료를 포장하는데 사용한다, 우체국의 규정대로라면 무게를 초과할 수 있지만 우편료를 증가하지 않고서도 편지는 여전히 보낼 수 있었다.

진상CD나 소책자를 부치는데도 역시 반장의 A4 종이로 포장을 하여 직접 봉투 안에 넣어 부친다.

문장발표: 2010년 10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21/2312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