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가정관을 돌파해 중생을 구도

글/ 톈진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68세다. 남편의 전처는 세 아이를 낳은 뒤 세상을 떠났다. 내가 시집왔을 때 가장 큰 아이가 겨우 5살이었고, 내가 또 두 아이를 낳았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데다가 복잡한 가정 관계와 과로로 내 몸은 몇 년 동안에 망가졌으며 고혈압, 심장병, 위염, 불면증 등 각종 질병을 앓았다. 내가 매우 고통스러웠던 그 때, 운 좋게 파룬따파를 얻었다. 내가 금방 대법 책을 보자마자 사부님은 곧 내 몸을 청리해 주셨다. 나흘이 지난 후 질병이 전부 없어져 병이 없이 온몸이 가뿐했으며, 일을 할 수도 있게 되어 남편도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1999년 7.20에 중공 사악한 당은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가족은 사악한 당의 선전의 영향을 받아 내가 연공하는 것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특히 남편이 가장 심하게 지키고 관할했다. 그에게 사부님과 대법이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고 알려주어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나를 욕하고 구타했다. 심지어 나와 이혼까지 하겠다며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연공만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나의 옷을 정리하자 그는 내가 정말 가려하는 것을 보더니 이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때로부터 내가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해도 남편은 상관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내가 이 관을 돌파하도록 가지해 주셨던 것이다.

나는 대법 중에서 매우 많은 이로움을 얻었지만 사부님은 나를 위해 매우 많은 것들을 감당하셨다. 사부님과 대법이 억울함을 당했을 때 나는 늘 집에 숨어서 법공부를 하고 연공만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오래 되자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으며 마땅히 일어나서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번 촌간부가 중공 사악한 당 정권인원을 거느리고 우리 집으로 찾아와 연마하는지를 물었다. 남편은 비위를 맞추면서 “연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자신이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이유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갈 때 나는 뒤쫓아 가서 “나는 여전히 연마한다”고 외쳤다. 집으로 들어 온 뒤 남편이 또 나와 한바탕 다툰 뒤에야 이 관을 또 넘긴 셈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심성(心性)이 제고됨에 따라 사부님은 내가 두려워하는 물질을 아주 많이 없애 주셨다. 남편에 대한 두려운 마음도 상대적으로 적어졌으며 나는 저녁에 진상하러 나갔다. 어느 한 번, 그는 문을 잠궈 나를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며,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이웃들이 잠을 자는 것을 영향줄까 봐 두려워 걸어서 10리 밖에 있는 친정집으로 갔다. 이튿날 집으로 돌아 온 후, 남편은 노발대발했다. 나는 그와 논쟁하지 않고 그에게 성내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때에야 남편은 좀 진정됐다. 그 후, 나는 마땅히 문 앞에 앉아 발정념을 발해 남편의 배후의 사악을 청리해야 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깨달음이 부족해 잘하지 못한 이유로 자신이 많은 감당하지 말았어야 할 난을 감당했다. 이것도 한 번의 교훈이라고도 하겠다. 이로부터 나는 또 앞으로 한 걸을 내디뎠다.

나는 낮에 나가 진상을 알렸으며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어느 한번은 옥수수를 파는 장사꾼과 진상을 알렸다. 내가 막 그에게 진상자료를 주려할 때 남편이 내 뒤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두려운 마음이 올라와 진상자료를 호주머니 안에 도로 넣을까도 생각했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무엇을 하러 왔는가, 나는 사람을 구하러 왔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진상자료를 장사꾼에게 주었다. 남편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두려운 마음을 또 한층 없애 버렸다.

정법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각지에서 잇따라 법공부팀이 회복됐다. 처음에 남편은 나를 나가서 법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다. 어느 한 번 나는 연속 4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또 먹고도 싶지 않았지만 평소와 같이 남편에게 밥을 해주었다. 나흘 째, 내가 남편에게 “저는 나가야 하겠어요”고 말하자, 그는 “그럼 나가봐”고 말했다. 나는 곧 법공부팀으로 갔으며, 또 돌아와서는 밥을 먹을 수가 있었다. 남편은 보아하니 정말 나가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저녁 법공부팀으로 가서 법공부를 했다.

매 번 장날이면, 나는 차를 타고 10리 밖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가서 진상 알리기를 했으며 가는 도중 차 위에서 발정념을 발했다. 어떤 때에 남편은, 오늘은 장날인데 가라고 했으며 또 조심도 하라고 일깨워주었다. 비록 나는 깨달음이 좋지 않지만 매번 일에 부딪힐 때마다 사부님을 생각할 수 있었기에 관을 넘길 수 있었다.

어느 하루저녁, 갑자기 뇌혈전 증상이 나타났던 일이 기억난다. 오른손을 들지 못하고 다섯 손가락을 펼 수 없었으며, 물건을 들 수도 없고 걷는 것도 곤란해 졌다. 당시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대단치 않게 여겼다. 나의 마음속에는 오직 “구세력이 나를 박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연공인이며 파룬따파를 연마하는 수련인이다. 일체는 나의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며 사부님께서 나를 책임지신다. 구세력은 손을 댈 자격이 없다”는 일념뿐이었다. 나의 손은 약간씩 펴지기 시작하고 물건도 들 수 있었으며 걷는 것도 그리 곤란하지 않게 됐다. 이것은 대법의 위력이다. 나는 또 한 차례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했다. 남편은 이 일을 통해 나를 더욱 이해하고 지지했다.

정법노정이 이미 맨 마지막에 이르렀다. 나는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법공부를 잘하며, 다그쳐 사람을 구하고 일심으로 사부님을 굳게 믿으면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곳을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26/2314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