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에 법을 얻은 노 제자다. 법을 얻은 십 몇 년이래,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나를 지옥에서 건져 주셨다. 온 몸이 병투성이에, 약을 떠나서는 살 수 없던 사람이 활력이 충만 되고 몸이 건강한 사람으로 환골탈태 했다. 예전의 자신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던 사람으로부터 진리를 위해 과감히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중생을 위해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법 수련자로 승화했다.
아래에 이 몇 년 동안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해 중생을 구도한 방면에서의 자신의 약간한 체험을 말해 보려 한다.
1. 가족의 곤혹으로부터 걸어 나와 사람을 구하다
나는 2000년 베이징으로 청원을 갔다가 현지 구치소에 붙잡혔다. 구치소에서 초과 수금 박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은 또 경제적으로 610의 갈취 협박을 당했다.
구치소에서 돌아온 후, 온 가족이 나를 법공부도 연공도 못하게 하고 밖에 나기지 못하게 했다. 특히 남편은 온 하루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고 저녁에 잠도 한 방에서 잤으므로 법 공부도, 연공도 할 수 없었으며 어디도 갈 수 없었다. 단번에 수련환경을 잃어버려 그 동안 나는 내심으로 무척 고통스럽고 소침해 졌다. 이후에 남편의 누이동생이 암에 걸렸는데 남편은 나에게 동생을 보살펴 주러 가라고 했다.
시누이 집에 가서 나는 수련인의 표준으로 그들 집 모든 사람을 잘 대해 주었다. 고생을 먼저 하고 즐거움을 나중에 누리면서 시누이를 알뜰히 보살펴 주었으므로 그들 온 가족의 칭찬을 받았다. 하루는 그들 가족이 한 스님을 불러다 시누이 병을 치료한다면서 무슨 물건을 붙이려 했다. 나는 말했다. “붙이지 말아요, 우리 파룬궁은 가장 고명한데 아마 시누이를 도와줄 수 도 있을 겁니다.” 나는 『전법륜』을 꺼내어 그들에게 읽어 주었다. 남편은 반대 했지만 나는 말했다. “나는 외손녀도 내버리고 와서 당신 여동생을 보살펴 주고 있어요. 나는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하기에 비로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나는 시누이 집에서 독방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날마다 저녁이면 또 다시 책을 읽고 연공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두 손에 사존의 법을 받쳐 드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엉키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사부님, 저는 끝내 법속으로 또 다시 돌아오게 됐습니다.
2004년에 나는 손자를 돌보기 위해 거주지를 옮겼다. 거주하는 곳에는 주민구역이 있고, 버스 정거장, 대학교, 초등. 중학교가 있었는데 이곳은 사람을 구할 기회가 많았고 또한 이 몇 년래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할 수 있은 아주 훌륭한 환경이었다. 나는 반찬을 사러 나가는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렸으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했다.
처음에는 늘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나는 이 문제를 겨냥해 안을 향해 찾아봤다. 찾아낸 것을 남편을 두려워하고 자녀들이 나를 책망할까 두려워하며 그들이 알고 나를 나가지 못하게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모두 사람의 관념이므로 그것을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나는 착실한 법공부를 통해 부단히 심성을 제고하고 정념을 증강했다. 그 이후 나는 날마다 정정당당하게 혼자 나가서 직접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박해당하는 진상을 알려주고 삼퇴를 권했는데 빠지는 날이 아주 적었다. 서서히 가족들도 더는 내가 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2. 친척 친구를 방문하고 총망히 길을 가면서 사람을 구원
이 몇 년 동안 나는 사존의 가르침에 따라 시시각각 자신을 대법제자로 여기고, 올 때의 대원을 잊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고 있다.
처음엔 경험의 부족으로 신변의 인연 있는 사람부터 시작했다. 평소, 명절 휴무에 나는 하루의 기회도 놓치지 않고 친척, 친구를 방문하면서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 주었다. 내 꾸준한 노력으로 친척친구들 대다수가 삼퇴를 했고 인근 이웃들에게도 적지 않게 탈퇴를 권고했다. 삼퇴한 친척친구들 중 많은 사람들이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목격했다. 내 한 친척은 삼퇴한 후 성심으로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썬런 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외우고 집을 나설 때는 호신부를 늘 지니고 다녔으므로 두 번이나 큰 교통사고를 당했어도 무사했다. 그의 아들은 삼퇴 이후 성적이 점차 올라갔고 또 유명대학에 합격했다.
내가 사는 곳은 인구가 좀 밀집돼 있고, 오가는 사람도 많았으므로 될수록 인연 있는 한 사람도 놓치지 않았으며 온갖 기회를 다 이용해 진상을 알렸다. 어떤 때는 길에서 어떤 때는 차에서, 어떤 때는 차에서 내려 길을 묻는 운전기사에게 진상을 알렸다.
한 번은 길가에서 지도를 보고 있는 세 사람을 보고 다가가서 외지 분들이냐고, 어디로 가려 하는지 알려주겠다는 식으로 그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진상을 말해 주었다. 파룬궁 문제를 말하게 됐을 때 그들은 파룬궁은 살인하고 분신자살 한다면서 이는 나라에서 반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나라에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장쩌민에게 질투심이 난 것이며, 그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파룬궁은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벼슬을 해도 탐오하지 않으며,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노인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심성을 닦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병 환자들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몸이 모두 좋아졌습니다. 진수(眞修)하면 불치병이 모두 낫습니다.(밍후이왕에 실례가 아주 많다) 파룬궁을 배운 사람은 또 사람을 때리지 않고 욕하지 않으며, 맞아도 같이 때리지 않고 욕해도 반발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어서 대중의 환영을 받습니다. 장쩌민과 중공 사당은 대법이 민심을 얻을까 두려워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면 붙잡아다 연마하겠느냐고 묻고서 연마하겠다면 감옥에 잡아넣고 판결합니다. 각종 고문을 채용해 괴롭히며, 어떤 사람에서는 또 산채로 장기를 적출해 고가로 팔아먹으며 시체는 태워버려 흔적을 없앱니다. 하늘이 그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이 사악한 조직에 들었던 사람은 탈퇴해야만 평안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것들 단체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이런 말을 통해 그들 세 사람은 모두 탈퇴했고 아울러 이 당은 정말 끝장이라고 했다.
또 한 번은 지난 해였는데, 아침에 나는 야채 시장에 채소를 사러 갔다. 큰 길을 건너 신호등이 있는데서 멀지 않은 곳에 20대 처녀가 가방을 메고 서 있었는데 두 손으로 간 부위를 만지고 있는 것이 몹시 아픈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차를 불러 병원에 갈까요?” 그녀는 머리만 젖었는데 말할 힘조차 없었다. 잠시 후 내가 또 물었다. “왜 병원에 안 가죠?” 그녀는 간신히 말했다. “출근이 늦었어요.” 온 얼굴이 눈물범벅인 것을 보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좋고도 시간이 들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알려줄 테니 속으로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 쩐싼런 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를 외워 보세요.” 그녀는 여섯 번 외웠다. 나는 그녀가 많이 좋아진 것을 보고 물었다. “어때요? 안 아프죠?” 그녀가 말했다 “ 안 아파요.” 나는 그녀에게 텔레비전에서 말한 수련생이 분신자살했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며, 돌아가서 늘 파룬따파 하오를 외우고, 마음속으로부터 중공 사당 조직에서 퇴출하면 장래 평안을 지킬 수 있다고 알려줬다. 그녀는 연신 고맙다고 하기에 나는 감사드리겠으면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했다.
이상과 같은 예는 아주 많아 더 들지 않겠다.
3. 학교 안팎에서 진상을 알리다
내가 사는 곳은 사람이 많은데 주민구역을 제외하고도 버스 정거장, 각종 학교들이 있다. 특히 대학교 길에는 감시카메라가 무척 많다. 처음 이곳에서 진상을 알릴 때는 마음이 당황했고 안전하지 않다는 감을 느꼈다. 이 때 나는 진지하게 법공부를 많이 했다. 사부님 법은 나에게 정념을 가해 주었다. 이후에 나는 이곳을 중점으로 삼고 정념정행 했는데 이곳에 와서 진상을 알릴 때 더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학생들이 휴일에 학교에 돌아오거나 일요일이면 모두 내가 가장 바쁠 때다. 매번 이 때면 나는 자전거를 밀고 그들을 숙소나 역전으로 실어다 주는데 걸어가면서 말해 준다. 그들에게 의혹이 있을 때 나는 그들에게 6.4학생운동을 말해준다. 학생들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탐관오리를 반대해 천안문 광장에 앉았다. 저녁에 중공 탐관은 탱크를 몰고 학생을 깔아뭉갰고 기관총으로 학생을 사격해 이 한 순간에 천안문 광장은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대외적으로 그들은 부상자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반대로 학생이 그들의 탱크를 불태웠다고 선전했다. 지금 그들은 또 ‘진선인’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있다. 학생들은 듣고 나서 무척 놀랐고 또한 진상을 알게 됐다. 많은 학생들은 당, 단, 대에서 다 퇴출하겠다고 했고, 또 어떤 학생은 당의 벼슬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 이곳 겨울은 몹시 춥다. 대학생은 전국 각지에서 왔으므로 어떤 사람은 이곳이 이렇게 추운 줄을 모르고 옷을 많이 껴입지 않았다. 나는 늘 몇 벌을 더 갖고 나가서는 길에서 학생에게 입게 하고, 짐 같은 것을 자전거에 실어다 학교 숙소까지 보내 주면서 걸어가는 한 편 진상을 얘기하고 삼퇴를 권한다. 그들은 파룬궁 수련생이 고생도 마다하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에도 나와서 사람을 구하는 것을 보고 무척 감동해 했다.
2006년 6월 어느 날, 한 학교의 학생들이 어떤 학생은 기부금 상자를 들고 어떤 학생은 1위안씩 하는 신문을 들었다. 나는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들 중 한 학생이 요독증에 걸렸는데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이런 기금 형식으로 학우에게 돈을 모아 준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너희들 참 훌륭하구나! 학우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정신만은 아주 훌륭하다. 나도 너희들에게 알려 주겠다, 그에게 꼭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알게 하고, 또 자기 내심으로부터 중공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면 앞으로 평안을 지킬 수 있을 거야.” 이렇게 그들과 진상을 말하면 그들은 곧 알고 기쁘게 삼퇴한다. 어느 학생은 말했다. “당신이 하는 일은 우리가 하는 일보다 더 의의가 있습니다.” 토요일 이날 나는 신문 6부를 사고 10명을 탈퇴시켰다. 일요일에 나는 또 신문 6부를 사고 11명을 탈퇴시켰다.
10여 년의 비바람 속에서 비록 수많은 고생을 겪었지만 나로 하여금 끝없는 법의 빛발 속에 푹 잠겨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깊이 느끼게 됐다. 특히 우리는 사존께서 친히 구도해 주시었으니 또 얼마나 행운스러운가. 오직 최후의 시각에 사람을 더 많이, 더 많이 구하는 것으로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며, 사부님께 실망을 끼치지 않는 것이다.
본인 층차에 제한이 있고 수련이 그다지 성숙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으므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를 삼가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10/2307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