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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순박함을 단단히 지키자(‘2010년 뉴욕법회설법’을 읽고)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어려서부터 단순한 여자아이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인간관계에서 도무지 도통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정직해서 직장 상사를 불쾌하게 했으며 속인 생활에서 큰 손실을 보았고 이로써 큰 충격을 당했다. 그 후로 명예와 이익을 도모하는 일에서 더욱 담담해졌다.

수련 후 비록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으나 인간 세상에 대해 여전히 흐리멍덩했다. 나는 수련생을 아주 신성하게 보았고 모두가 아주 쩐(眞)ㆍ싼(善)ㆍ런(忍) 답다고 생각했고 속인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연속 동수들의 나에 대한 평가에서 처세에 능하지 못하다고 들었다. 어떤 수련생은 대면해서 나의 결점을 지적했다. “나는 당신이 처세에서 비교적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그 후 한 동수와의 합작을 그만두게 되면서 그 동수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자네는 속인의 이 과목을 배우지 못했군, 사회의 이 학문이 결핍하네…” 그들은 속인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비교적 조건이 좋으며 모두 나보다 돈이 많다. 나에게 지적할 때 그들의 태도는 모두 의기충만한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나도 한때 망연자실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내 수련을 극력 돕고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A는 나를 이용해 그의 일을 돕도록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복분으로 속인사회의 명리를 바꾸려 했으며 더욱 많은 돈을 벌기 바랐다. 그는 나와 합작한 그 한 해에 장사가 아주 잘 됐다. B는 나와 가까이하면서 내 신임을 얻어 그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기를 바랐다. 나중에야 그의 진실한 의도가 폭로됐다. 그 때 나는 아주 답답했다. 어찌 이러한 수련인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대법제자 속에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그들의 어떠한 말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자연히 물러갈 것이라고 나에게 점화해주셨다. 내가 그에게 기술을 가르침에 어떤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나에 관해 좋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들 어떻단 말인가? 나는 단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지 않은가. 사실 그들 생각과 작법에 대해 나는 일찍 알아챘고 심지어 그들의 다음 일보까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들을 돕기로 선택했고 그들이 늘 끊임없는 수련과정에 처해 있다고 여겼고 점점 더 잘 수련할 것이라 생각했다.

두 차례의 큰 손실을 본 후 내 침묵의 시간이 더 늘어났다. 성실과 신임은 사람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사람을 대함에 너는 신임할 수 있는가? 사람을 대함에 너는 성실할 수 있는가?”고 늘 자신에게 자문했다. 나는 더는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토로하지 않았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나의 심사를 단번에 남김없이 훑어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원래 나는 희로애락이 얼굴에 잘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신심을 잃지 않았고 이러한 일이 나 여기에 발생됨은 반드시 내가 수련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수많은 거짓말에 대면해 사부님께서는 법공부할 때 재차 나에게 관용하라고 점화하셨다! 어릴 적에 선생님은 나로 인해 울게 된 친구를 이끌고 내 부모님에게 일러바쳤다. “이 아이는 뭐나 다 좋은데 눈에 들어온 한 알의 모래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때 친구는 거짓말을 했었고 나는 많은 친구들 앞에서 그의 일을 폭로해 그가 울게 된 것이다. 현재 나는 아주 후회하고 있다.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기에 A와 B중에서 한 명은 장기적으로 명리정을 버리지 못하고 색욕심을 버리지 못해 나중에 여우부체를 불러왔다. 다른 한 명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동수 사이에서 내가 인간물정을 잘 모르는 탓으로 구세력은 틈을 타서 동수사이에 간격을 만들었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점심을 먹게 되어 나는 집에 돌아가려 했고 수련생은 나에게 꼭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으며 수련생은 여전히 재삼 만류했다. 나는 주저앉아 밥을 먹었는데 수련생은 또 기뻐하지 않았다. 말할 때 좀 찔러댔다. 어떤 때는 늘 이러한 함정을 밟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은 아주 간절했으나 정작 실제로 하게 되면 좀 달랐다. 나는 자신이 젊어서인가 생각했다. 연차가 늘어나자 점차 무엇인가 알게 되었다. ‘아, 원래 그저 형식적인 답례였을 뿐이었구나, 그럼 동수 집에서 밥을 먹지 말자, 물도 가지고 다녀야겠다.’ 사실 많은 수련생은 박해를 당했었고 긴 시간동안 단식도 했다. 밥을 먹는 문제에서 정말로 중하게 보지 않으며 어떤 때 먹지 않아도 별 감각이 없다. 동수사이에 이렇게 체면을 차리는 말이 없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난처한 일이 많아졌다. 일을 하는데 중도에서 방해를 한다든가, 대충 일을 얼버무리거나, 지위를 중하게 본다거나, 가난을 멀리하고 부를 탐내는 등등인데 여러 차례 충격을 당한 후 나는 사람이 수련하고 있음이 명백해졌고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높아도 실제로는 맞지 않음을 알았다. 하지만 어떠한 충격에서도 나는 진정으로 동요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를 고무 격려하셨다. 현재 ‘2010년 뉴욕법회 설법’이 나왔다. 맨 마지막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말만 할 줄 알고 가서 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며, 나는 그런 교활한 사람도 싫어한다. 나는 순박한 사람, 착실하고 견실한 사람을 좋아한다. 또한 희망하건대 여러분이 이렇게 다년 간의 수련 중에서, 바른 방면으로부터 지혜를 향상시키기 바라며, 처세와 처신 상에서 수확(收穫)이 너무 많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더 이상 망연자실하지 않을 것이다.

문장발표: 2010년 9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9/23/2299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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