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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정확히 인식하여 자신을 승화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여기에서 말하는 ‘진상’은 생명의 진상을 가리킨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생명의 진상을 이야기 하셨다. “사람의 최초 생명은 우주 중에서 온 것이다. 우주 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쩐(真),싼(善),런(忍),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그렇게 많은 생명들의 좋지 않은 행위는 당연히 그 본성, 자신의 행위가 아니며, 좋지 않은 염두도 그 선천적인 생명에서 온 것이 아니며, 다시 말하면 본성 –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분명히 좋지 않은 후천적이면서 이기적인 관념에서 온 것이고, 필경 다른 영체의 생명이 조종하고 통제하여 온 것이다.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는 대법 제자들에게 “주의식이 강해야 한다”고 하셨고, 역시 『파룬따파 대원만법』에서는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기를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주이스(主意識)를 겨냥하여 수련하는 것으로서 수련자가 명명백백하게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여 일체 집착(執著)을 내려놓고 본인의 씬싱(心性)을 제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시 속인의 생활 중에서 반드시 자신의 주의식이 자신의 대뇌를 조종 통제하여야 하지 외래의 요소의 교란과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양성된 각종 관념과 습관으로 하여금 자신이 방임한 틈을 타고 사악이 기어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시시각각 ‘본성인 자신’이 자비하게 일체 봉착하게 되는 사물을 독점하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인식한 후 나는 실천 중에서 이러한 법리를 힘써 운용하였는데 자신의 제고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래 자신의 인식을 말 하려 한다.

첫째: 속인과 왕래 할 때

속인이 대법에 대해 좋지 않은 행위와 언행을 하는 것을 보고 들었을 때 이전에는 그와 쟁론하거나 혹은 그 속인을 싫어하고 더는 대면하려 하지 않았고, 더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즉시 이것은 그 본인이 아니며, 거짓말로 독해하는 ‘그것’이 그의 입을 조종 통제하고 그의 인피를 조종 통제하여 표현한 것으로서 구세력이 곧 내가 속인의 표현 행위에 미혹되게끔 하여 이 사람을 업신여기면서 그를 구도하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구도되지 못 하게 하는 목적에 도달하게끔 한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지금 만약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 생각이 나타나기만 하면 나는 ‘이 생각’은 내가 아니고 선천적인 내가 아니며, 본성적인 나는 절대 이런 생각이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바로 우주 특성에 부합되지 않는 물질 요소로 즉시 닦아버려야 하며, 구세력은 바로 기어들 수 있는 틈, ‘가짜 나’가 나의 머릿속에 반영되어 주의식을 대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면 나는 즉시 발정념 하여 ‘가짜 나’를 청리하고, 동시에 속인을 통제하는 배후의 요소를 청리하고, 속인 자신의 본성을 대체하는 ‘가짜 그’를 청리하곤 한다.

지금은 점차 한 생명의 본질을 볼 수 있으며, 한 생명을 진정으로 책임지며, 표면 현상과 가상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이때의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관용, 자비하게 되면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사실 전반 정법 중 모두 이러한 일종의 가장 관용하며, 가장 자비한 형식으로 하고 있다. 생명이 역사상에서의 지난날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당신이 역사상에서 얼마나 큰 죄를 지었던지, 얼마나 큰 착오가 있었던 지를 모두 보지 않고 다만 오늘 정법에 대한 태도만 보며, 대법에 대한 인식을 보는데 바로 이 한 조목이다.” (『각지 설법 7』「2006년 캐나다 법회 설법」)그렇다면 대법제자로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할 때, 나는 되도록 이 생명의 좋은 일면을 보고, 절대 그가 표현하는 좋지 않은 가상에 좌우지 되지 않고, 애써 그를 구하였다. 나는 이것이 곧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곧 일종 선(善)과 인(忍)의 표현이며, 이것이 수련자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대도 관용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생명의 진상을 명확히 인식하면 자신의 용량도 확충됨을 느끼게 되었다.

둘째: 동수와 왕래할 때

노년 동수들의 말 많고 꾸물거리는 모양을 보아도 나는 더 이상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고, 도피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모르는 체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동수의 그 ‘말 많은’ 그 물질은 ‘동수 본인 자신’이 아니고 후천적인 관념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번거롭다’도 역시 내가 아니라 ‘가짜 나’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기회를 이용하여 이 ‘마음이 번거롭다’를 제거하고 그것의 배후의 집착을 찾아내었다. 그런 후 다시 선의적으로 ‘말이 많다’의 물질이 바로 그의 주의식을 대체하면서 그가 방임하는 ‘사람 일면’의 틈을 타고 기어 들어오려고 한다고 수련생을 일깨워 준다. 내가 이렇게 하였을 때 나는 그처럼 이성적이었고, 더는 이전처럼 마음이 불편하거나 펄쩍 뛰며 노발대발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건성 건성 하면서 일을 처리할 때, 조급해 하면서 침착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어도 나는 더는 지적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질책하고 원망하는’ ‘가짜인 나’가 나를 조종 통제하는 기회가 없게 하기 위하여 제때에 그 어떤 관념 혹은 집착과 ‘가짜 나’를 찾아내었는데, 그것들을 배제하는 과정이 곧 자신을 바로 잡는 과정이고, 곧 자신의 마음을 방임하지 않는 과정 이었다. 동시에 나는 선의적으로 동수의 그 ‘조급하고 침착하지 못하다’의 요소가 그를 통제하는데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아울러 묵묵히 발정념 하여 동수의 좋지 않은 행위의 배후 요소를 제거하였다.

나는 생명의 진상을 알았으며, 진정으로 파룬궁과 기타 일체 공법과의 다른 점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명명백백하게 주의식을 수련하는 것이다. 이때 나는 구세력을 조소할 수 있었다. 그것들은 늘 나와 동수 사이에 간극을 산생하게 하여 정체 형성을 아주 어렵게 하였는데 취하는 방법이 곧 ‘가짜 나’가 나 자신을 대체하게 하여, 동수의 여러 가지 잘못, 착오, 집착을 중히 보게 하고 수련생을 업신여기면서 ‘가짜 동수’를 업신여기게 한다. 나는 지금 쉽게 구세력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는다. (사실 무슨 구세력인가, 그것들은 근본 존재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들이 없으면 대법제자들은 모두 『전법륜』의 법리에 따라 수련할 수 있다. 법리상에서 생명이 산생할 때의 본성은 무사(無私) 선량하다고 말한 이상 우리는 반드시 이 법리를 실천 중에 응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오직 구세력이 집요하게 참여하여 들어오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것들을 철저히 청리해 버리자! 그것들 자신이 대법제자들에게 청리 시킬 기회를 준 이상 왜 그것을 파악하지 않겠는가!) 다만 동수들의 좋은 일면만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좋은 일면이 비로소 진정한 동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하면서 자신이 수련생을 포용하기 시작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자신과 수련생은 하나의 정체처럼 그 어떤 ‘모래’도 뒤섞여 들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정체적으로 승화하게 되었다.

셋째, 나와 ‘자신’이 내왕할 때

혼자 있거나 혹은 조용히 있을 때 매우 많은 ‘가짜 나’가 모두 나와서는 대뇌와 소통하면서 각종 관념이 반영된다. ‘가짜 나’는 각양각색의 이야기 줄거리를 편집하는데 내가 그 이야기 줄거리의 주인공이다. 진정한 나의 주의식은 이때 ‘가짜 나’를 확실히 파악하면서 그것들에게 각종 이야기는 사람 중에서 각기 다른 쾌락을 찾는 것뿐이고, 성취감, 명리, 색, 욕 등은 결국 환상적인 것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 아니며, 결국은 이기적인 것이며 자신에게 유리하고 남에게는 불리한 것이다 라고 알려 준다. 타인을 위한다면 진정한 나는 주의식을 강화하여 확실하게 대뇌와 ‘가짜 나’를 파악하며, 동시에 ‘가짜 나’를 강압하여 ‘함께’ 관련되는 법리를 공부하여, ‘가짜 나’의 일사일념을 가늠하고, ‘가짜 나’의 형성과 그 결구를 해부한다면 ‘가짜 나’는 하나하나 모두 해체된다.

‘가짜 나’는 또 각양각색의 지난 일을 대뇌에 반영하는데 슬픔과 기쁨, 헤어짐과 만남, 세상 일이 변하기 쉬워 덧없는 것 등이 있다. 나의 주의식은 본성을 ‘가짜 나’에게 그런 지난 일을 감수하지 말며, 힘써 “잘라 버리는 건 자신이 아니요 모두가 미혹 속의 어리석음이로다”(『홍음2』「집착을 버려라」)고 알려 준다.

‘가짜 나’가 늘 소리 없이 나타나는 이상, ‘진짜 나’는 곧 주동적으로 부동한 시기의 ‘가짜 나’를 동원하여 그것의 옳고 그름을 분석하고, 그 때 시공 중의 일체 (우주 중에 있기에 손을 한번 휘저어도 다른 공간에 모두 존재함)를 바로 잡아야 한다. ‘진짜 나’는 ‘자신’이 예전부터 해를 끼쳤던 동창, 친구, 새, 개미, 꽃, 풀 등등 모두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를 기억하라고 알려 주어야 한다.

생명의 진상을 똑똑히 인식하면 ‘본성인 나, 후천 관념인 나’를 매우 쉽게 분별할 수 있고, 주의식을 매우 쉽게 강화할 수 있다. 그렇게 원래 자신이 혼자 있으면서도 의연히 수련할 수 있은 것은 자신의 본성의 일면이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어 ‘가짜 나’가 틈을 타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이 망망한 건곤, 자신도 그 중에 있으니 당연히 동시에 자신을 ‘법정(法正)’하는 것이다. 구세력은 속인을 통제하여 그들이 ‘나’의 각종 가상을 보게 하여 대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데 이런 가상은, 말할 때 거친 소리로 말하는 ‘가짜 나’, 몸가짐에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을 한 ‘가짜 나’, 작은 이익(사소한 일)을 지나치게 따지는 ‘가짜 나’ 등등의 가상이 ‘가짜 나’가 내부에 영향을 주고, 심지어는 대법을 파괴하는 형상을 표현하게 하여, 속인들이 보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대법에 부정적인 인상이 있게 한다. 나는 힘써 하나하나의 ‘가짜 나’를 수련해 버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변에 숨어있는, 심지어 몸에 지니고 있는 우주의 쓰레기이기 때문이다. “큰 뜻을 품고서 사소한 일에 소홀히 하지 않노라”(『정진요지』「성자」)해야만 비로소 구세력으로 하여금 나와 속인 간의 간격을 되도록 적게 조성하게 된다.

넷째: 속인과 서로 몸을 스치면서 지나갈 때

속인의 일을 대법제자는 근본적으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봉착하게 되면 반드시 자신의 심성과 관계된다. 나는 지금 정법시기의 일체 좋지 않은 현상, 가상의 배후에는 모두 구세력이 강행하여 참여한 그림자가 있거나, 혹은 속인의 도덕이 잘못 되었거나, 혹은 속인이 정확하게 대법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혹은 대법에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과 사는 양립할 수 없고, 진짜와 가짜는 공존할 수 없기에 보았다면 반드시 주동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속인들이 각종 ‘가짜 나’ 에 미혹되어 분명치 못하고, 다투고 싸우는 것에 미혹되어 ‘진정한 나’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은 구세력의 층층의 안배와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어떤 동수들은 거리에서, 상점 문 앞에서 진행하는 마성적인 무도, 가무표현 혹은 저급한 것들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데 이는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들이 인류 도덕을 아래도 미끄럼질치게 하여 미혹된 중생들로 하여금 이른 바 ‘가장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하는 그 배후에는 필히 요소가 있는데 곧바로 나로 하여금 보게 한 것은 나의 심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반드시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틈이 없어 기어 들지 못하는 사악은 나의 대뇌에 좋지 않은 종자를 심어 놓아 다음의 교란에 복선을 매장하게 되는데, 이때, 나는 그것이 수련인을 해하거나, 속인을 해하거나를 막론하고, 특히 그 배후에 요소가 있을 때 우리는 발정념하여 그것을 청리해야 한다.

근간의 느낌과 깨달음인데 동수들과 서로 격려하려고 한다. 만약 합당치 않은 면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하여 주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10년 9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9/2293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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