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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함’에서 ‘대법이 수요하면 함’에 이르기까지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함’에서 ‘대법이 수요하면 함’에 이르기까지의 변화 과정은 자신의 길을 걷던 데로부터 정체를 이루는 과정이다.

걸어온 길을 회고해 보면 이 몇 년간 비록 바쁘게 보냈고 한 일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 보면 모두 ‘나’를 벗어나지 못했다. 쟁투심, 경쟁심. 과시심, 우쭐하기 좋아하는 마음 등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그 중에 섞여 있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항목을 하고 자금 투입과 한 일의 많고 적음을 중하게 보았는데 일하는 것이란 자신이 수련에서 떨어질까, 자신의 길을 걷는 기회를 잃을까, 위덕을 수립할 기회를 잃을까 두려워서였는데 무형 중에 일은 많이 해도 실지로는 법에서 제고한 것이 아니었다. 자아를 닦아버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팽창됐고, 심지어 공덕을 바라는 더러운 마음을 품고 대법에서 얻으려고만 했지 대법의 수요를 원용하기 위해, 진정하게 무사적으로 지불한 것은 아니었다. 이로 인해 속인 공간장에 모순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수량보장’을 위해 만들어 낸 자료가 너무 많아 동수에게 압력을 빚어준 동시에 자료점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부득불 이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자금 투입에 집착함으로 가정 관계를 바로 잡지 못해 가족의 몰이해를 빚어낸 등등이다.

이 같은 완고한 집착에 대해 시초에는 그것의 존재를 의식했지만 법리상 인식이 분명하지 못해 버릴 방법이 없었다. 이후에 갈수록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최근에 와서 법공부 할 때에야 비로소 문득 깨우치게 됐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실증해야 하는 것은 법의 위력이지 개인의 능력이 아니다. 개인의 일체는 모두 법에서 얻은 것이며, 개체의 일체 표현은 법 특성의 나타냄이지 이른바 개인 능력의 나타냄이 아니다. 일체는 법에서 오고 일체는 모두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이며 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 우선 기점이 발라야 한다. 실증하는 것은 법이지 자신이 아니다. 법이 나에게 무엇을 하길 수요한다면 나는 곧 무엇을 잘해야 한다.

예전에는 늘 위덕을 창립할 기회를 잃을까 두려워했는데 지금은 분명히 알았다. 나는 대법의 한 개 입자이므로 이는 자신 몫, 나의 일이고 자신의 일인데 어찌 자신이 자신을 위한 일을 좀 하고는 공로를 요구할 수 있는가? 예전엔 늘 경쟁심이 있었는데 남보다 더 많이 했고 지불한 자금도 더 많다고 여겨 우쭐거리면서 심지어 남을 깔보기조차 했다. 지금은 알게 됐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로서 한 대가족의 형제자매와도 같다. 매 개인의 특기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며 생명 특징이 다르고 수련의 길이 다르다. 여러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동일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자아의 이끌림으로 인해 스스로 동수와의 사이에 간격을 빚어내고 정체를 이탈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자료를 만들 때 혼자 다 끌어안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하게 했는데 자신이 채용한 방법을 잃을까 두려웠다. 이 며칠간 션윈 공연을 보면서 대형을 변환하기 위해 어떤 배우는 잠시 막후로 퇴장했다가 프로그램 맨 마지막에 나와 정체적인 형태를 이뤘는데 이는 나에게 무척 커다란 계발을 줬다. 당신이 줄곧 무대에서 줄곧 주연의 위치에 있었다 해서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많이 했고 위덕을 건립한 것이 아니다. 자신에 집착하지 않고 대법 정체의 수요에 따라 무조건 협력하고 굽힐 수도 펼 수도 있으며,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으며,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오직 대법의 수요대로 한다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마음 속에 추호의 자아도 없고, 단지 대법 정체적인 수요만 있고, 전 우주의 이익만 있다면 이런 마음이야말로 비로소 순정한 것이며 해낸 일이 비로소 진정으로 신성한 것이다.

정체적 관념이 강하기만 하면 문제를 보는 방식이 예전보다 많은 구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먼저 ‘밍후이주간’을 볼 때 처음의 몇 페이지는 해외 법 실증과 각지 박해 사례이므로 늘 지나쳐 버리고 보지 않았다. 지금은 더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지 않을 뿐더러 그것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깊이 느낀다. 그리하여 정념으로 해외 동수들이 하는 법 실증의 각개 항목을 가지 해 주고, 어느 지역 어떤 동수든 사악의 박해와 교란을 받기만 하면 정념으로 사악을 해체하는데 이는 바로 우리 매 개인의 항목이다. 어떤 항목은 나의 육신이 참여할 방법이 없지만 나는 정념으로 가지를 해주어 그것이 보다 완벽해지게 한다. 구세력의 사악한 참여 속에 대법 역시 하나의 정체로 고험 받게 됐는바, 우리는 사람마음으로 스스로 구역을 나누어 간격을 만들 것이 아니라 어느 지역, 어느 동수의 교란과 박해든 모두 대법에 대한 파괴이고 모두 우리 매 대법제자에 대한 교란과 파괴이므로 모두 와서 정념으로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부님 신경문 『더 정진하자』를 학습하고 나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이라면, 정법 진행은 이미 새로운 단계에로 들어섰다. 예전은 매 대법제자마다 자신의 길을 걸어내는 단계였다면, 지금은 자신의 길을 걷던 단계에 이젠 종지부를 찍고 나중에는 반드시 하나의 정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엄중하게 말한다면 만일 자아적인 생각이 너무 강하고 또 버리기 싫어한다면 정법 가운데서의 작용은 구세력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서 구세력은 바로 그들이 가장 좋다고 여기는 것을 정법 중에 강요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우리 대법제자는 모두 자기의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정념으로 정체적 요구에 협력해 어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묵묵히 원용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정체에는 누락이 없을 것이고 역량이 커질 것이며 구해낸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는 정법의 요구이고 신 우주의 위타(爲他), 위공(爲公)한 특성의 요구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무의식적으로 절충하면서 정법을 교란하는 문제를 말하겠다. 나는 이렇게 인식한다. 우리가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현재 역사는 정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면 바로 정법의 요구이고 바로 가장 훌륭한 것이므로 우리는 오로지 완전히 사부님 말씀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신우주의 완전한 한 입자로 되려면 반드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고 말씀하신 것과 ‘똑같게’ 해야만 한다. 이 ‘똑같게’ 하는 과정이 바로 수련하는 과정이고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을 버리는 과정이며, 바로 끊임없이 자아를 버리는 과정이며, 우매한 견해를 돌파하는 과정이며, 眞善忍 신우주 법리에 동화되는 과정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은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 2010년 8월 2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25/2287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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