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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모집선정] 10여년 동안 간직한 현수막(사진)

글/ 대륙대법제자 칭저우

[밍후이왕] 1992년 5월 13일은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공개적으로 법을 전파한 날이다. 박해가 10년 지속됐지만 많은 대법제자는 확고하게 대법수련의 길을 가고 있다. 또 하나의 5월 13일 즈음하여 10년 정법(正法)의 길을 돌아본다. 대법제자들이 얼마나 많은 감동적인 순간을 남겼는가! 길고 긴 우주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휘황한 장거를 목격했는가! 근 10년을 간직한 현수막이 그 위대한 시대를 목격한 역사적 증거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사당(邪黨)은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박해를 시작해 ‘쩐(眞)ㆍ싼(善)ㆍ런(忍)’ 법리대로 수련하는 선량한 국민을 정부의 대립 면으로 몰고 갔다. 대법제자들은 자발적으로 선량한 마음을 안고 각급 정부부서에 파룬궁이 사람에게 선을 가르치고 사회에 복을 가져다 준다는 진실한 상황을 알려, 이 대재난이 하루빨리 끝마치기를 희망했지만 오히려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리하여 갈수록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천안문 광장에 가서 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알리며 정의를 호소했다.

2000년 6월 28일 새벽 나는 아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천안문으로 가려고 갈아탄 버스에서 타지 대법제자 몇 명을 만나 함께 갔다. 그 때 천안문 광장은 여행객이 적어 경찰차 몇 대가 서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전체 광장에는 음침하고 스산한 기운이 돌았다. 수시로 광장에서 어떤 사람이 현수막을 들고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고 달려온 경찰차에게 금방 끌려갔다. 나는 가방에서 ‘眞ㆍ善ㆍ忍’이 적힌 작은 현수막을 꺼내 아들에게 건넸다. 7살 된 아들은 작은 고사리 손으로 머리위로 번쩍 쳐들었다. 나는 한 동수와 함께 ‘파룬따파 하오’가 적힌 큰 현수막을 들고 힘껏 소리쳤다. “파룬따파 하오!”, “파룬따파는 바른 법이다!”, “우리 사부에게 결백을 돌려달라!” 정의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무장 경찰이 신속히 달려와 우리 현수막을 앗아갔다. 경찰차가 소리를 내며 오더니 사복경찰 몇 명이 내려와서 우리를 마구 구타했다. 나는 머리채가 잡혀 경찰차로 끌려갔고 아들도 끌려갔다. 얼마 되지 않아 경찰차 안에는 대법제자가 꽉 찼다. 우리는 천안문 파출소에 끌려가 어느 방에 갇혔다. 그곳에는 이미 대법제자 여러 명이 갇혀있었다. 머리가 흰 노인과 몇 살 된 아이도 있었다. 경찰은 우리를 수색, 심문, 위협했다. 우리는 원망하지 않고 홍대한 자비심으로 거짓말에 미혹된 경찰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확고하게 수호했다. 경찰들은 어쩔 수 없어하면서도 탄복했다. “정말 한 사부가 가르쳐 냈구나!”

나는 바닥에 쌓아 놓은 대법 현수막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이 ‘眞ㆍ善ㆍ忍’ 작은 현수막과 ‘法輪大法’ 큰 현수막은 우리가 집을 떠나기 며칠 전, 남편이 한 획 한 획 정성을 들여 쓴 것이다. 그는 우리는 바래주면서 ‘학생들 시험지를 상사에게 다 넘기면 나도 베이징에 법을 수호하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현수막에 적힌 신성하기 이를 데 없는 ‘法輪大法’, ‘眞ㆍ善ㆍ忍’ 이 몇 글자를 보면서 ‘나는 현수막을 가져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경찰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眞ㆍ善ㆍ忍’ 현수막을 얼른 아들에게 건넸고, 다시 ‘法輪大法’ 현수막을 가지는데 경찰이 들어와 뺏으려 했다. 한 수련생이 즉시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현수막은 우리 두 사람 사이 가슴에 있었다. 다른 대법제자도 두려워하지 않고 경찰을 나무랐다. 아들은 작은 손으로 몸에 감춘 현수막을 꽉 잡고 있었는데 얼굴이 빨개졌다.

경찰은 우리를 강제로 분리시키려고 끌고 갔다. 이별을 앞두고 한 노인 대법제자가 가방에서 작은 케이크를 꺼내 아들에게 주면서 ‘빨리 먹어라’고 했다. 이 이름을 모르는 할머니는 한 마디 진심 어린 말을 하려고 먼 곳에서 베이징까지 와서 잡혀 들어왔다.

경찰은 나와 아들을 이리저리 끌면서 데려갔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지만 우리는 두렵지 않았다. 가다가 파출소 문 앞에서 멈췄다. 나는 아들을 데리고 안으로 뛰어가면서 “法輪大法 현수막을 아직 나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내 현수막을 돌려달라!”고 소리쳤다. 이때 부근에 있던 사복경찰이 몰려와서 욕하면서 우리를 밀쳐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떠났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좌석표를 사지 못해 나와 아들은 객차 사이 통로에 서 있었다. 얼마 지났는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우리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주위 승차객이 나에게 더운 날씨에 뭐 하러 나왔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이 억울한 진상과 ‘眞ㆍ善ㆍ忍’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아들은 몸에 숨겼던 ‘眞ㆍ善ㆍ忍’ 현수막을 그들에게 보였다. 이때 젊은 여자가 걸어오더니 눈물을 머금고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시안(西安)의 대법제자였는데 베이징 관련부서에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주 베이징 사무소에 갇혀 회사에서 그녀를 데려가는 중이었다. 그 순간 우리 마음은 서로 긴밀히 연결됐다.

이렇게 우리는 이 ‘眞ㆍ善ㆍ忍’ 현수막을 집으로 가져왔다. 나중에 우리 부부는 수 차례 박해를 받았다. 납치, 재산 몰수, 판결을 받았으나 이 현수막은 매번 재난을 피해 보존됐다. 그 후에 나는 감옥에서 숨이 곧 넘어가게 되어 집으로 왔는데 이 현수막이 아직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위안을 얻었다.

그 후 나날 동안 나는 박해를 받아 불구가 된 몸을 끌고 아들과 함께 남편이 감옥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세월이 비록 힘들지만 나는 자신이 사존을 따라 신의 길을 가는 대 법도라는 사실을 잘 안다. 7살 때 천안문에서 ‘眞ㆍ善ㆍ忍’ 현수막을 높이 든 어린 제자는 엄마와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용기가 있다. 사실 우리는 지나왔다.

파룬따파의 날 원고를 모집하는 시기 나는 이 현수막을 보면서 10년 간 법을 실증한 길을 회고했다. 눈앞에 그 해에 남편이 엎드려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오르고 귀가에는 마치 ‘파룬따파 하오’의 외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리고 나중에 감옥에서 지낸 나날들, 특히 한 파룬따파의 날 새벽에 바람을 쐬러 나간 마당에서 우리 대법제자 몇 명은 둥글게 서서 대 연화수인을 하고 함께 “파룬따파 하오! 파룬따파 하오! 파룬따파 하오!”를 외쳤다.

파룬따파 하오! 이것은 우리 억만 파룬따파 제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소리다! 10년의 잔혹한 박해를 겪고 대법제자는 넘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확고, 성숙, 안정되게 조사정법(助師正法)의 신성한 길을 가면서 파룬따파의 아름다운 복음(福音)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2010년 밍후이왕 ‘5.13 파룬따파의 날’ 원고모집선정)

문장발표: 2010년 5월 12일
문장분류: 원고모집선정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5/12/222533.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10/5/21/117232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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